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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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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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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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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학살 (1961년 10월 17일, 프랑스 파리)

DUMMY

성당 응접실에서 가르니에는 오랜만에 파리에 온 한 여변호사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델핀 아마라란 이름의 35세 여성은 오랑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피에 누아르(Pied-Noir), 즉 알제리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계였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프랑스 당국에 의해 불법 구금당한 알제리인들을 변호해주었다. 이어 의문사당한 독립운동가들의 유족들을 도와줬다.


오랑부터 알제, 콩스탕틴에 이르기까지 뇌수가 튀기고 피와 살점이 거리에 늘어지는 광경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이 북아프리카 진주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녀는 증거를 수집하고 억울한 이들을 변호했다. 그 덕에 알제리 내 프랑스계 사회에서는 ‘반골’로 낙인찍혔다. 식민지 당국도 그녀를 예의주시하고 감시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뼈아픈 일도 겪었지만 아마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올해 국민 투표가 통과되어 알제리 독립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녀는 또 다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알제리인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1,500 킬로미터를 날아와 파리까지 온 것이다. 아마라와 가르니에는 신부가 전후 오랑의 교구 초청을 받아 잠시 머물렀을 때 성당에서 만난 인연이 십여년 째 지속된 덕에 오늘까지 이른 것이다. 가르니에는 그녀를 딸과 같이 생각하며 아마라의 활동을 응원하고 또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사람은 있나?”


“아직은 없습니다. 하고 있는 일 하기에도 벅차서요.”


“참, 지금 여기서 살면서 공부하고 있는 누군가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


“그 아이는 참 행운아예요. 그 피비린내다던 전쟁에서도 살아남아 이제는 하고 싶은 공부에 온전히 몰두하고 있으니까요.”


아마라 역시 가르니에로부터 현태준에 대한 얘기는 자주 들었다.


“이런 정치적 풍파에 휩쓸릴 일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훌륭한 과학자로 자라날 겁니다. 휴우, 에두아르도 그때 그 일만 없었으면 지금은 교수가 되고 또 자랑스러운 남편이 되었겠죠...”


몇 년 전 박사 학위를 밟던 아마라의 남편 에두아르는 알제리인들의 독립을 지지하는 격문을 썼다가 오랑시 헌병 당국에 연행됐다. 며칠 후 그는 교외 저수지에서 익사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술을 마시고 수영하다가 물에 빠졌다는 게 당국의 해명이었지만 에두아르는 평소에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시신에는 멍자국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약관화였다. 일종의 경고였다. 그 경고에도 아마라는 남편을 살해한 헌병대 수사관들을 찾아내려 했지만 끝끝내 실패했다.


“정말 일이 바빠서 재혼이나 연애를 못하는게 맞지?”


“...”


아마라는 답을 하지 않았다. 신부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계속 진상을 밝히려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가 됐어. 아마라 변호사도 평생 추모만 하면서 독신으로 살 수는 없잖아? 의지할 사람 만나서 진상 규명하는 게 오히려 천국에서 보고 있을 자네 남편이 기뻐하지 않겠나.”


“솔직히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신부님께서 저에게 그 말씀을 하시기에는 신부님 과거도...”


아마라가 커피를 마시며 미소 짓고 가르니에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내가 주제넘게 나섰지. 미안하오.”


“아닙니다. 유일하게 저를 격려해주시는 분이 신부님인데요. 그 말씀은 맞습니다. 언젠가는 이 슬픔을 떨쳐내야죠. 그리고 에두아르처럼 처참한 고통을 지금도 겪고 있는 알제리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 또한 그 슬픔을 떨쳐내는 길입니다.”


가르니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라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모리스 파퐁이 알제리인과 무슬림들에게 통행 금지를 강요하고 있죠.”


“그래. FLN에서 여름부터 계속 경찰을 살해하고 있잖아. 그걸 막겠다는 명분이지.”


“테러 방지란 말은 인종 차별을 가리기 위한 전형적인 수사죠. 알제리와 모로코에서 하던 짓을 여기서도 그대로 하네요.”


파리 경찰서장 모리스 파퐁의 이름을 떠올리자 아마라가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르니에 역시 그 말에 동조했다.


“그 자는 정말 역겨운 자야. 파퐁이 지난 전쟁 때 비시 정권 밑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안다고. 그런데 뻔뻔하게 자기가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다고...”


“좀 불안하네요. 동료들 얘기가 오늘 저녁에 알제리인들이 통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다는데...”


“흠...”


가르니에 역시 무언가 불안한 감정을 느끼고는 커피를 마시며 애써 그 마음을 달랬다.


....


비슷한 시각, 현태준과 시몽은 시내 중심부 몽마르뜨 거리 근처를 걸어가고 있었다. 밤까지 새가면서 도출해낸 연구 결과를 축하하는 의미로 시몽은 ‘억지로’ 현태준을 시내 중심부 까페까지 끌고 와 저녁을 사주고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너 진짜 어떻게 그렇게 밤을 몇차례 새고도 멀쩡하니? 계산하다가 실수할법 한데 전혀 틀린 게 없더라. 지금 저녁까지 이렇게...”


“아니야, 나 안 멀쩡해. 너무 졸려. 빵이고 뭐고 그냥 자고 싶어.”


둘 다 밤을 샌 탓에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하하, 미셸 너도 사람은 사람이지. 여기까지 끌고 와서 미안하다. 네가 파리에 오래 있으면서 그런 거 한번 먹어본 적이 없잖아. 그래서 사주려고 하하. 맛있었어?”


“맛있었어. 고마워.”


아버지가 유수 기업 임원에 친척들이 관료에 학자까지 포진해 있는 시몽은 재력도 과시해줄 겸 해서 현태준을 종종 이런 곳으로 데려갔다. 현태준은 솔직히 얘기해서 비싼 밥 먹을 시간에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는 걸 더 좋아했지만 가르니에 신부가 이런 친분들을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다는 권유에 내심과 달리 이들 부자 학생들의 모임에 ‘억지로’ 끼어들곤 했다. 신부는 현태준이 프랑스의 명문 가문 자제들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수십년 뒤 그가 한국에서 교수든 연구원이든 그리고 어쩌면 과학부 장관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기여할 때가 왔을 때 그 인맥이 현태준 본인과 한국 발전에 분명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 믿었다.


시몽과 함께 걸어가던 현태준은 연신 하품을 하다가 특이한 광경에 그 하품을 멈췄다.


“저 사람들은 뭔데 왜 저렇게 몰려서 걸어가지?”


엄청난 인파의 알제리인들이었다. 천명은 족히 넘어보였다. 피켓을 든 이들은 시내 중심부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시몽은 아까 전 식사할 때 근처에서 평소와 다르게 계속 시끄러운 인파 소리가 들리고 경찰이 계속 거리를 돌아다닌 이유가 뭐였는지 깨닫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알제리인들이야.”


“알제리인? 저 사람들이 왜?”


현태준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시몽을 쳐다보았다.


“일단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자.”


시몽이 현태준을 재촉하려 할 때 그들을 막아선 것은 고압적인 인상에 몽둥이를 든 경찰관이었다.


“너네들 뭐야?”


“네?”


시몽의 목소리에 불안이 실렸다.


“너도 알제리놈이냐?”


“아뇨, 아니에요.”


“무슨 일이야 시몽?”


급작스러운 상황에 현태준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신분증 내놔.”


경찰관이 시몽에게 손짓했다. 그는 현태준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현태준이 알제리인이 아니라는건 누가 봐도 확실했다.


“신분증이요? 왜요?”


“내놓으라면 내놓으라고!”


그렇지 않아도 험상궃은 표정이었던 경찰관의 표정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기세에 눌린 시몽이 순순히 신분증과 학생증을 내놓았다. 이 고압적인 경관은 신분증과 학생증을 한참 쳐다봤다.


“흠...”


경관은 갑자기 표정이 부드러워지더니 신분증을 시몽에게 돌려줬다. 시몽은 당황한 기색이 아직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신분증을 받아챙겼다.


“오해해서 미안하군. 학생. 훌륭한 학교 다니는구만.”


“아, 네...”


“둘다 같은 학교인가?”


“네...”


“자네들 지금 바로 학교 돌아가게. 빨리. 여기 계속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거기 휘말릴 필요 없어.”


“...”


무언가를 예감한 시몽은 현태준을 쳐다봤다.


“가자, 미셸.”


“응?”


“빨리 가자고.”


시몽은 현태준의 팔을 붙잡고 황급히 자리를 나섰다. 둘은 근처에 서 있던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평소와 다르게 길을 한참 돌아 학교로 갔다. 학교로 도착한 시몽은 빨리 자라며 현태준을 먼저 방으로 돌려보냈다. 방 안에 있던 쟝은 라디오를 들으며 시내에 쫙 깔린 경찰과 시위대 얘기를 현태준에게 꺼냈지만 마침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 현태준은 들을 새도 없이 바로 잠에 들어버리고 쟝 역시 어깨를 으쓱하다 나가버렸다.


이윽고 현태준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중간 중간에 폭죽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현태준은 왜 이 시각에 갑자기 폭죽을 터뜨리냐며 귀를 막고 머리를 베개로 덮었다.


....


아마라와 신부는 저 멀리서 총소리가 나고 있음에도 경찰에게 달려들기는 커녕 근처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겁많은 자신들을 자책하고 있었다. 사실은 달려가봤자 너무 늦었다. 이미 알제리인들의 시신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맙소사 하느님...’


총소리가 파리 거리를 장식했다. 오늘 밤은 광기의 밤이었다. 가르니에는 20여년 전 나치가 자신이 사랑하는 제2의 고향 파리를 강점했던 그 시절을 다시 떠올렸다. 이번에 가해자는 나치가 아니라 같은 프랑스인이었다. 죽은 사람이 수백 명은 족히 넘어보였다.


그들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체포를 피해 도망 다니는 알제리인들을 근처 건물로 숨겨주는 것 뿐이었다. 둘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이라는 생각을 결코 할 수 없었다.


아침이 되었다. 아마라는 상황 파악을 다시 해보기 위해 기자, 동료들과 함께 현장으로 다시 갔고 신부는 성당으로 돌아왔다. 가르니에는 무언가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사목실 의자에 앉아 얼굴을 쥐어 감싸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부 발표는 단 두명이 죽었다며 거짓말투성이었다.


때마침 들어온 현태준이 괴로워하는 신부를 보고 달려갔다.


“신부님, 괜찮으세요? 어디 안 좋으세요?”


“태준아...”


가르니에가 씁쓸한 표정으로 현태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어제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었니?”


“어젯밤에요?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있긴 했는데... 그냥 학교로 돌아왔죠.”


신부는 현장에 현태준이 있었다는 데 놀라면서 그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내심 안도했다. 가르니에는 놀란 기색을 애써 숨겼다.


“혹시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니?”


“모르겠어요. 애들이 뭐 있었다고 수군거리긴 했는데 전 자서...”


신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끔찍했단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는 이 나라가 정작 사람들을 상대로... 그것도 아주 거짓말을 뻔뻔하게...”


신부는 라디오를 가리켰다.


“내가 프랑스인인게 정말 한심하다.”


그런 말을 절대 해본적이 없던 신부가 난생 처음 듣는 말을 하자 현태준은 당황스러웠다.


“대체 무슨 일인가요? 신부님?”


“너도 곧 알게 될거다. 지금은 공부하는데 바빠서 잘 이해를 못할 수도 있지만 이게 알제리인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니에는 쓴 웃음을 지었다. 신부는 다시 입을 열었다.


“폭력은 사람 간의 폭력이나 전쟁만 있는 게 아니란다. 때로는 아니, 자주 국가도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특히 안식처가 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들이 만만하거든.”


“...”


“자유를 찾아 떠나온 이들에게 안식처 따위는 없는 법이지...”


현태준은 신부를 말없이 쳐다봤다.


작가의말

1. ‘피에 누아르’는 알제리가 프랑스 식민지이던 시절 알제리에 정착한 유럽계 백인들을 가리키는 단어다. 1962년 알제리 독립 이후 대부분 프랑스 본토로 추방되었다.


2. FLN: 국민해방전선. 알제리의 민족주의 정당으로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폭력 투쟁을 이끌었다. 1962년 알제리 독립 이후 1988년 다당제 허용 이전까지 알제리의 유일한 합법 정당이었다.


3. 모리스 파퐁(1910~2007)은 파리 학살 이후에도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하다가 1981년 나치 전범 행위에 가담한 사실(유대인 추방 등)이 폭로되어 몰락한다. 1997년에야 재판이 시작되었고 1998년 최종 재판에서 금고 1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가석방되어 2007년 사망한다.


4. 알제리 독립 전쟁 중 알제리에서 프랑스 당국에 의해 의문사한 프랑스인 희생자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모리스 오댕 사건이다. 수학과 교수이던 모리스 오댕은 1957년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대원을 숨겨줬다는 혐의로 프랑스군에 연행된 후 실종되었고 이후 고문사당했음이 밝혀졌다. 2018년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오댕의 미망인에게 해당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해 역사상 처음으로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프랑스 당국이 자행한 국가 폭력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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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5 2 9쪽
64 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9 2 11쪽
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6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4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7 2 12쪽
60 불사조 방원철 1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17 64 2 9쪽
59 센 강 (1963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3.09 52 2 13쪽
58 상봉 (1963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3.02 26 2 15쪽
57 김용덕과 현태룡의 꿈 (1963년 여름) 24.02.27 33 2 12쪽
56 신라의 달밤 (1963년 여름) 24.02.24 70 2 12쪽
55 영남계 VS 이북계 (1963년 여름) 24.02.21 49 2 12쪽
54 4대 의혹 사건 (1962년 ~ 1963년 3월) 24.02.18 67 2 18쪽
53 혼인, 중앙정보부 입사 (1962년) 24.02.15 60 2 17쪽
» 파리 학살 (1961년 10월 17일, 프랑스 파리) 24.02.12 72 3 12쪽
51 인종 차별 (1961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2.07 59 3 13쪽
50 상견례 (1961년 겨울) 24.02.04 53 3 10쪽
49 첫 연애 (1961년 겨울) 24.02.01 81 3 13쪽
48 미래의 장인을 취조하다 (1961년 여름) 24.01.30 55 3 13쪽
47 미래의 배우자 (1961년 여름) 24.01.28 72 3 13쪽
46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 18일) 24.01.25 59 3 11쪽
45 살아있는 쿠데타의 밤 (1961년 5월) 24.01.24 92 3 9쪽
44 두 건의 적발 – 미완의 쿠데타 (1960년 3월) 24.01.23 59 3 12쪽
43 부정선거 (1960년 2~3월) 24.01.22 142 3 12쪽
42 팡세-단상들 (1960년 2월, 프랑스 파리) 24.01.20 91 3 12쪽
41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2 – 새로운 기회 (1959년, 강원도) 24.01.19 59 3 10쪽
40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1 (1959년, 강원도) 24.01.18 56 3 13쪽
39 되살아난 협잡 본능 3 (1959년, 강원도) 24.01.17 124 3 10쪽
38 되살아난 협잡 본능 2 (1959년, 강원도) 24.01.16 68 3 7쪽
37 되살아난 협잡 본능 1 (1959년, 강원도) 24.01.15 65 3 10쪽
36 현태룡과 방원철의 재회 2 (1959년 강원도) 24.01.14 6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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