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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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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6.02 12:42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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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9
추천수 :
246
글자수 :
442,959

작성
24.01.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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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가혹한 업보 (1956년 1월 30일, 서울)

DUMMY

“이 추운 겨울에 먼 길 와주셔서 정말 고맙소.”


특무대가 한때 안가로 썼던 서울 시내의 한 허름한 한옥 주택에는 군인들과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들의 배경은 다 다르나 이들의 목적은 한가지였다. 바로 김창환과 방원철을 처단하는 것.


모인 인원은 다음과 같았다: 전직 특무대 간부 허재영 대령, 허 대령과 함께 특무대 지역부대에서 근무했던 신초익 중령과 송용곤 예비역 소령, 이유환 중사, 그리고 방원철이 주도한 지리산 관짝 사건에서 피해를 본 중령과 상여꾼, 그리고 육사 태권도부원의 소위 이북 노래 사건 때 연행되어 고문을 심하게 당해 육사에서 출교당한 박광세.


특히 박광세는 서울대 대신 육군사관학교를 선택할 정도로 장교에 대한 열망이 큰 젊은이였다. 김창환이 제시한 서울대 재입학이라는 공수표가 굳이 아니더라도 입시를 다시 한번 치러 서울대에 갈 실력은 충분했지만 이 실세 국회의원의 막내 아들에게 있어서 학벌은 이제 전혀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방원철 덕에 병신이 되었고 장교는 더 이상 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대의’를 실행하려는 이들에게 있어 박광세가 품은 증오심은 충분한 설득 거리가 될 수 있었다.


“김창환이 사람들을 너무 많이 해하고 있어요. 열 명의 무고한 사람이 나와도 한 명의 빨갱이만 잡으면 된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실제로, 간첩 하나 잡기 위해 열 명 이상의 무고한 양민이 억울하게 재판받고 처벌받습니다.”


허재영이 운을 띄었다.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누군가 혼잣말했다.


“모두 강문복 장군께서 직접 엄선하신 분이니 믿고 말씀드리겠소.”


정일원과 백선협에 이어 군부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강문복 중장은 5년 전 파평산 전투에서 중공군의 남진을 저지한 전쟁영웅으로 군부 내 최고의 작전통이었다. 정일원, 백선협과도 갈등이 있던 김창환은 강문복한고도 역시 앙숙지간이었다.


강문복이 보기에 김창환은 야전의 용사들을 훼방 놓는 간악한 도적일 뿐이었다. 육군참모총장이 건의해도 노망이 든 게 분명한 대통령의 쓸데없는 과보호 덕에 김창환이 제 자리를 유지하자, 강문복은 자신이 총대를 메기로 결심하고 사람을 모았다. 마침 마산과 대전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 특무대 파견대장을 역임한 허재영이 강문복에게 김창환을 제거할 궁리를 하고 있다는 진심을 밝혔다.


강문복은 자신이 직접 김창환을 암살하는 작전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허재영이 강하게 말렸다.


“장군님께서는 나라를 위해서 더 큰 일을 하셔야 합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허재영이 워낙 심하게 만류한 덕에 강 중장은 대신 비용을 지원하고 이들이 잘못된다면 가족을 책임져주는 조건으로 김창환 처단 작전에 참여할 이들을 모았다. 모의자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며 김창환을 어떤 식으로든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뜻 있는’ 특무대 요원이거나 혹은 특무대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내일 아침 김창환을 제거할 겁니다.”


“김창환만 죽입니까?”


박광세가 질문했다.


“장군님께서 왜 자네를 섭외하셨겠는가? 자네를 그렇게 만든 방원철도 제거해야지.”


방원철도 처리하자는 허재영의 말에 지리산에서 연행됐던 중령이 동의를 표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방원철 그놈은 어떤 점에선 김창환보다 악질인 놈이에요. 살려두었다가는 김창환보다 더한 악행을 계속 벌일 자입니다.”


“자, 이제 작전을 논의해보겠소?”


“일단 김창환은 출근 시간이 항상 정해져 있으니 그때를 노리면 손쉽게 해치울 수 있습니다. 멍청한 놈이 뭐가 그래 자신 있는지 자신은 국가보안을 가장 잘 챙기는 사람이라면서 정작 본인 보안은 신경 안 씁디다.”


특무대 본부에서 오래 일했던 신초익이 의견을 냈다. 옆에 있던 송용곤이 강문복이 지원해준 기관총을 가리켰다.


“이유환 중사가 준비한 지프로 김창환 출근길에 차를 막고 이걸로 끝내면 됩니다.”


“방원철이는?”


허재영이 물었다.


“제가 그 집 주위를 둘러봤는데, 방원철은 집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해치워야겠습니다. 김창환네 집처럼 큼직한 비탈길이 있는 게 아니라서요.”


상여꾼이 말했다.


“계획은 다 된 것 같군. 무운을 빕시다.”


...


단기 4289년(1956년) 1월 30일 월요일 오전 7시.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1가 일대.


일요일이 끝나고 다들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새로운 주의 시작이었다. 아직 바깥이 옅은 어둠에 휩싸인 가운데 김창환이 자택 대문을 나오자 차 앞에서 대기하던 중사 계급의 운전수가 경례했다.


“충성.”


김창환이 목례로 경례를 받아주자 운전수는 지프 조수석 문을 열어 김창환이 탑승하게 도왔다. 그리고 그는 얼어붙은 스타팅 막대기를 차에 꽂아 한겨울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돌렸다. 이윽고 지프차가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여우가 굴에서 나왔다.”


김창환의 집 앞을 감시하던 허재영이 음어를 써서 김창환이 나왔음을 무전으로 알렸다. 신초식, 송용곤, 이유환이 탄 지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 저거 뭐야?”


갑자기 왠 지프가 자신이 탄 차를 막자 김창환은 당황했다. 왜정 때부터 스파이로 활약했던 김창환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후진하라, 후진!”


뒤에서 허재영이 탄 차가 김창환의 지프를 막았다.


“하..”


신초식과 송용곤이 지프에서 나와 기관총으로 김창환의 지프를 겨눴다.


탕탕탕탕탕탕. 파바박 파바박.


김창환은 신초식과 송용곤이 난사한 기관총에 벌집이 되었다. 이들이 발사하는 기관총 총알의 강력한 반동에 이미 시체가 된 그의 몸이 계속 흔들렸다. 운전수 역시 심한 부상을 입고 신음하고 있었다. 주변 행인들이 급작스러운 총격에 상황 파악을 못하고 당황하는 동안 암살범들은 빠르게 차량에 탑승해 도주했다.


해방이 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좌익 용공분자로 몰아 해쳤던 무소불위의 특무대장 김창환은 이렇게 허무하게 염라대왕을 만나러 갔다.


...


원효로 1가에서 총소리가 나자 원효로 2가에서 방원철의 자택을 감시하던 일행 중 하나인 박광세가 총소리를 듣고 절뚝거리면서 지프로 달려가 방원철 자택 담벼락을 올랐다.


“야, 경거망동하지 말라!”


중령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박광세는 담을 넘어 방원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탕탕탕!


박광세는 창에 비친 사람 그림자를 보고 흥분해 총을 난사했다.


파바박 파바박 파바박.


총을 여러발 맞은 그림자가 픽 쓰러졌다.


“뭐야!”


박광세는 자신이 쏜 게 방원철이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총상 없이 멀쩡한 방원철이 총소리에 놀란 얼굴로 침실에서 뛰쳐나와 박광세를 덮쳤다. 이 불구가 된 전 육사 생도는 육탄전을 벌이면서 저항했지만 이내 방원철에게 제압되었다.


탕!


방원철이 쏜 총탄에 박광세가 절명했다.


“하.. 에미나이..”


방원철은 자신이 죽인 사람이 박광세인걸 확인하고 탄식했다. 그리고 탄식도 잠시 방원철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방금 전 박광세가 총을 쏜 곳은 주방이었다.


방원철은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몸 여러 곳에 총알을 맞아 쓰러져있는 황정숙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가 평소에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틀어놓던 아궁이 위 라디오에서는 오늘 급작스레 닥친 방원철 일가의 비극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이인권의 인기 가요 ‘귀국선’이 하염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방원철은 입에서 피를 흘리는 황정숙에게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방원철이 황정숙을 들려 하자 그녀의 머리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여보, 여보, 정숙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방원철은 황정숙의 시신을 부둥켜안은 채 하염없이 울 뿐이었다.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은 크다.”


방원철이 이 급작스레 닥친 사별에 오열하는 동안 그의 집 바깥에서는 새벽의 총소리에 놀란 주민들이 방원철 일가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


“김창환 장군을 중장으로 추서하고 국군장으로 장례를 치르세요.”


김창환 피살을 보고받은 이승만은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통해했다. 대통령 머릿 속의 세계와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이토록 괴리감이 큰 것이었다. 김창환은 사후 1계급 특진했으며, 국군 최초로 국군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특무대장의 장례 날 육해공군의 전 부대는 조기를 게양하고 장병들의 음주가무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이 팔순 노인네를 제외하고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 중장은 나라를 위해서 순국했으며, 충령의 공을 세웠다.”


대통령이 김창환의 죽음을 기리는 동안, 김창환의 오른팔이자 두뇌였던 방원철의 부인상에는 이순영과 평안교회 사람 몇몇을 제외하고는 조문을 오지 않았다. 전부 김창환의 장례식으로 몰린 것이었다.


그 이후 방원철의 운명 역시 가혹했다. 사후 예우를 받은 김창환과 달리, 그는 특무대에서 방출되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해야 할까, 방원철이 빨갱이로 몰았던 김기전과 같은 이들이 역으로 특무대로 발령받았다.


방원철은 최전방 야전 부대 중대장으로 발령받았다. 그가 아내에게 맹세한 일이 결국은 ‘이루어진’ 셈이지만 그것은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 이 선택을 기뻐할 아내는 방원철이 자초한 업보의 굴레 아래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업보는 이렇게 가혹한 것이었다.


그리고 업보와 상관없이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야전으로 쫒겨 난 방원철에게도, 생도 생활을 마쳐가는 현태룡에게도, 사춘기에 진입하며 목소리가 굵어지는 현태준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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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두 건의 적발 – 미완의 쿠데타 (1960년 3월) 24.01.23 5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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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팡세-단상들 (1960년 2월, 프랑스 파리) 24.01.20 9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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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1 (1959년, 강원도) 24.01.18 5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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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되살아난 협잡 본능 2 (1959년, 강원도) 24.01.16 68 3 7쪽
37 되살아난 협잡 본능 1 (1959년, 강원도) 24.01.15 65 3 10쪽
36 현태룡과 방원철의 재회 2 (1959년 강원도) 24.01.14 6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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