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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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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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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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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죽어서야 웃기다 (1)

DUMMY

14화


하지운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사이버국가고시센터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했다.

오월 십일 오늘이 바로 2022년 9급 공무원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일이다.

마이페이지로 들어간 후 합격조회를 누르면 바로 합격 여부와 본인의 시험 성적을 알 수 있다.


손 떨리는 것은 둘째 치고 입은 바짝 말라 있는데 오줌이 계속 마렵다.

화장실을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몸속의 수분이 전부 오줌으로 변한 것 같다.


눌렀다.

합격...했다.

눈물이 쏟아진다.

너무 기쁘니까 비명이 나오려고 한다.

입을 필사적으로 틀어막았다.

비명이 나오던 입을 갑자기 막았더니 AV 여배우 신음 소리 비슷한 소리가 나왔다.


막말로 개민망했다.

이곳은 고시원이다.

옆방에서 아침 댓바람부터 개지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민망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쁨이 그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다.

드디어 하지운의 나이 서른셋에 무엇인가를 이루었다.

목표를 잡고 스스로 노력해서 달성한 게 고삼 이후로 처음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거듭 실패하고 그가 선택한 직업은 장르 소설 작가였다.

어렸을 때부터 글 잘 쓴다는 말은 종종 들어왔기 때문에 취업 활동보다는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스물일곱 살부터 오 년 동안 열 편의 글을 썼다.

굉장한 다작이다.

하지만 완결을 시킨 것은 고작 세 편이다.

간단히 말해 처망했다.

한 줌도 안 되는 독자를 믿고 오 년을 버텼지만, 남은 것은 이 좁아터진 고시원 방 한 칸이다.


그래도 집은 좀 살아서 처음 작가 한다고 나올 때 집에서 전셋집도 하나 구해 줬었다.

그 보증금 덕에 지금까지 아사하지 않은 거다.


작년부터 다 포기하고 가진 돈을 다 털어 넣어서 공무원 시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일 년 만에 9급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아직 면접이 남았지만 하지운은 이미 최종 합격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집에 떳떳하게 들어갈 수 있다. 더 이상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피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삼 년이 넘도록 본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그가 가 봤자 가족들이 따뜻하게 맞아 줄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절이며 집안의 경조사까지 전부 불참할 정도로 다른 가족들이 그를 경원시하지는 않았다.

단지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것이 너무 싫어서 글 쓰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끊은 것뿐이다.


너무 울어서 앞이 안 보인다.

입고 있던 티셔츠에 얼굴을 닦았다.

어차피 할인 마트에서 산 청소용 부직포 값보다 싼 옷이다.

벌써 눈이 부었는지 눈물을 닦았는데도 뭔가 세상이 또렷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 동안의 자신의 인생처럼.


그래도 어느 정도 시야를 확보한 후 일어났다.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손민홍 선수처럼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다.


완전 축알못이었지만 영국에서 활약하는 손민홍 선수의 기사를 보고, 이거 돈이 되겠다 싶어 해외 축구 소설을 썼었다.

그리고 축알못이라고 온갖 조롱을 다 당하고, 한 권 분량도 못 써 보고 글을 내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하지운은 손민홍 선수의 소속팀인 톱클리프 쿨스퍼의 광팬이 되었다.

글 쓰려고 구단 정보를 검색하다 소설은 망하고 팬심만 남게 된 것이다.


책상과 침대를 빼면 일 제곱미터의 공간이 있다.

여기서 무릎 세리머니는 택도 없고, 그냥 점프한 채 오른 주먹을 허공을 향해 질렀다.

천정이 낮아 형광등을 후려칠까봐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고 했다.

점프했다가 착지하는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오월이지만 창문이 없는 좁은 방은 아직도 잘 때 건조하다.

아침마다 코가 답답해서 바닥에 젖은 걸레를 깔아 놓았다.

그런데 그걸 잊어 먹었다.

형광등이 걱정되어 위를 보다가 바닥의 걸레를 못 본 것이다.

사실 너무 기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착지하다 바닥에 깔린 걸레를 밟고 미끄러져 책상 모서리에 뒤통수가 부딪혔다.

동시에 목뼈가 부러지고 그 자리에서 하지운씨는 한 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합격 당일 그의 나이 삼십삼 세의 젊은 나이에 좁은 고시원 방에서 일어난 일이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늠도 되지 않는다.

분명 걸레를 밟고 미끄러진 것은 기억나는데, 그 이후의 일은 그의 머릿속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지금 구름 위에 서 있다.

그런데 발이 안 빠진다.

불안해서 계속 발로 눌러봤는데 굉장히 단단한 느낌이다.


‘구름이 원래 이런가...’


어디로 갈 엄두도 안 난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봐도 끝이 안 보인다.

끝없는 구름의 바다다.

위로 올려다보니 그냥 하늘 밖에 없다.


‘그런데 난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방금 오셨어요. 일단 앉으세요.”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돌아보니, 이 세상 미모가 아닌 듯한 미녀가 서 있었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아주 몸매가 대단했다.

넋을 빼고 보다가 자세히 보니 고삼 때 다니던 학원에서 같은 강의실을 썼던 첫사랑을 닮은 듯했다.


‘닮긴 했는데... 걔를 어따 비벼. 이 분은 완전히 천상계 미녀네! 초 울트라 미녀!’


그녀의 외모에 놀라 감탄을 하던 그는 다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어느새 대리석으로 마감을 한 굉장히 비싸 보이는 가정집 거실에 서 있었다.

자신의 뒤에는 엄청 큰 소파가 있었고, 정면에는 가로 길이가 삼 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벽걸이 TV가 걸려 있었다.

그 외에 것들까지 전형적인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회장댁 느낌의 공간이었다.


‘초미녀가 앉으라니 앉자.’


소파에 앉았더니 다른 세상 초미녀도 좌측의 일인용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꼬았다.

거듭 개쩐다고 생각했다.


일단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미녀 앞이라 목소리를 쫙 깔고서.


“저 죽었습니까?”

“네.”

“저, 그럼 저는 어디로 가나요? 혹시 지옥은 아니죠? 천국 갈 정도로 뭘 한건 없지만, 그래도 지옥 갈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하지운 님, 저희는 따로 천국과 지옥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사망 시 자동으로 소멸되고요.”


‘와, 씨! 다행이다! 지옥 가는 줄 알고 개쫄았네.’


제일 신경 쓰이던 것을 물어봤으니 그 다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 호칭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천사님이라 부르면 될까요?”

“제 등에 날개가 있나요?”

“아뇨, 그럼 보살님은 어떠세요?”

“저희는 인간들이 만든 종교를 존중은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거기에 맞춰서 역할극을 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호칭이 필요하시면 누님으로 하세요. 제가 이래 봬도 연배가 좀 되거든요.”

“... 누님이요?”

“싫으시면 ‘저기요’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누님.”


가장 궁금했던 것들은 해소가 되었다.

이제는 이 상황에서 당연히 해야 될 것 같은 질문들을 이어갔다.


“그럼 이곳은 어디인가요?”

“일단 이곳은 특별한 명칭은 없어요. 인간이셨던 분들 입장에서 가장 이해하시기 쉬운 단어를 선택하자면 ‘저승’정도 되겠네요.”

“아아! 그럼 아름다운 저승 미녀 누님이셨군요!”

“어머, 하지운 님께서는 말씀을 참 스윗하게 잘 하시네요.”

“극찬 감사드립니다, 누님. 저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죠?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돼요.”

“누님께서는 언제부터 이토록 아름다우셨습니까? 설마 엄마 배 속에서부터?”

“어머, 과찬이세요. 그런 말씀은 마세요.”

“아닙니다! 맹세코 누님 같은 미인은 제 평생... 처음 봅니다...”


하지운은 죽어서 눈에 뵈는 것이 없어서 그런지, 그답지 않게 저세상 미녀를 상대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평생이라는 단어를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는 흠칫했다.


‘평생... 살아 있을 때 이랬으면 내 인생이 그 지경은 아니었을 텐데.’


그는 서른셋이 되도록 아직도 연애 경험이 없다.

그리고 그 상태로 죽었다.

시험에 합격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 생각하고 죽도록 공부했는데...


‘죽도록 공부했는데 죽을 줄이야... 그리고 정말 새로운 세상으로 올 줄이야...’


미녀 앞이라 정신 못 차리고 까불다가 갑자기 현타가 왔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이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 죽어봐서 얼떨떨한 데다가, 너무 예뻐서 소름 끼치는 미녀를 보고 있다 보니 잠시 사고가 멈춰 있었던 것뿐이다.


‘나... 그러고 보니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해 보고 고시원에서 개고생하다... 뒈졌네.’


상념에 빠져 있던 하지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녀가 말을 이었다.


“우선 ‘그분’을 대신해서 축하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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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최초의 전사 (4) +2 23.06.11 462 10 9쪽
4 최초의 전사 (3) +2 23.06.11 597 10 9쪽
3 최초의 전사 (2) +2 23.06.11 752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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