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2 23:29
연재수 :
224 회
조회수 :
23,376
추천수 :
532
글자수 :
955,903

작성
23.06.17 22:41
조회
280
추천
6
글자
9쪽

토사구팽 (6)

DUMMY

13화


한동안은 자신의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로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년간의 경험이 그에게 확신을 주고 있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로저도 죽음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자신에게 농락당하다 죽은 수많은 생명체가 느낀 절망감을 똑같이 느끼게 된 것이다.


‘이렇게는 못 죽어! 죽을 때 죽더라도 저 두 놈만은 반드시 죽이고 죽어야 해!’


아직도 피를 질질 흘리며 자신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놈의 뒤통수에 검 대신 손바닥을 내리쳤다.

모기 잡듯이 내려쳤는데 운 좋게도 놈의 옆통수의 절반은 맞았다.


그 모습을 보고, 허파에 바람이 든 듯 처웃던 마법사 놈이 겨우 진정을 하고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놈의 몸에 달린 전사 놈들도 이제 고작 다섯이다. 저런 흉악한 놈이 팔 하나 잘렸다고 금방 죽을 리가 없어. 이걸로 끝낸다.’


“지긋지긋한 애새끼야! 이제 그만 뒈져 버려라!”


마법사가 자신의 남은 모든 마력을 쥐어짜 마지막으로 불덩이를 하나 만들었다.

이것까지 던지고 나면 그는 완벽하게 전투 불능이 된다.


‘이런, 니미! 손바닥이 무슨 요술 주머니도 아니고... 무슨 불덩이가 끝도 없이 나와!’


“네 놈도 이제 죽는구나! 짐에게 버릇없이 까불더니 꼴좋다! 어서 지옥으로 가라! 네 놈 피붙이들도 모두 잡아 죽여서 네 곁으로 보내 주마! 네 누이 년도 마찬가지다! 크하하하하!”


왕 놈이 실성한 듯 괴성을 지르며 씨불이자, 로저도 손톱만큼 남아 있던 이성이 사라졌다.


“벌레 새끼야! 난 절대로 여기서 안 죽는다! 반드시 살아 돌아와서 네 놈과 네 놈 졸개들, 그 놈들 새끼들까지 전부 찢어 죽일 거다!”


그 순간 마법사의 손에 있던 불덩이가 던져졌다.


‘이 몸 상태로 이 새끼들을 달고 아무 피해 없이 저걸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판단이 선 로저는 무게 중심을 뒤로 하고 그대로 뒤로 누워 버렸다.

다리에 매달려 있던 놈들도 어어 하면서 같이 쓰러졌다.

바닥에 눕자마자 로저는 옆으로 굴렀고, 끝까지 그의 다리를 놓지 않은 세 놈과 함께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끄아아아악!”


마지막에 로저의 다리를 놓은 두 전사도 곧 화마에 휩싸인 채 비명을 지르면서 따라 떨어졌다.

왕과 마법사 그리고 남은 열한 명의 전사들이 모두 부리나케 낭떠러지 앞까지 뛰어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전사 다섯이 떨어지고 있는 로저의 등을 향해 검을 집어 던졌다.

한 자루는 빗나가고 다른 한 자루는 허벅지에 박혔다.

그리고 나머지 세 자루는 등을 뚫고 들어가 배까지 관통해서 박혀 버렸다.


왕과 마법사의 눈에 검을 네 자루나 박은 채로 계곡물에 처박히는 로저가 보였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렸다.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간악한 역적 놈을 처단하셨습니다.”

“이게 모두 공의 헌신 덕분이오. 내 공에게 한 약조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황송하옵니다. 폐하.”


말을 마친 후 왕은 곁눈질로 마법사의 옆얼굴을 훔쳐봤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이면 살아남은 자신의 수하들이 이 거만한 마법사를 무난하게 죽여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왼팔에 구멍이 뚫린 대가로 눈에 가시 같던 두 놈을 한날한시에 죽여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웬 떡이냐! 돌 하나로 뱀 두 마리를 때려죽일 수 있게 되었어! 역시 신은 나의 편임이 분명해. 애초에 스티븐 그 애새끼가 아니라 내가 왕이 되는 것이 당연했던 거야. 나야말로 신의 가호를 받는 진정한 제왕이니까! 후세에도 나 험프리는 왕권을 위협하던 두 난신적자 놈들을 제거한 명군으로 길이길이 기억되겠지!’


왕이 마음속으로 핑크빛 꿈에 부풀어 있는 동안 마법사는 두 손가락을 입에 물더니 힘껏 휘파람을 불었다.


‘뭐 하는 거야, 노인네가? 숲에서 뱀 나오게시리.’


마법사의 휘파람 소리가 언덕 아래 숲까지 퍼져 나간 순간, 처음 마법사가 등장했던 방향에서 스무 놈이 회색 망토를 두르고 쏟아져 나왔다.


‘틸리얼 가문의 호위 부대다! 이렇게 지척에 있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전사들은 탄식을 하며 왕을 에워싸듯 호위 대형을 갖췄다.

회색 망토를 뒤집어쓴 놈들도 마법사의 주변에 인의 장벽을 쳤다.


‘이런 뭣 같은 늙은이가... 내 수하들이 죽어 나갈 동안 끝까지 이놈들을 감추고 있었구나!’


“폐하, 역적을 처리하였으니 신은 이만 성으로 돌아가겠나이다. 혹시 폐하께서도 신과 동행하시어 신의 성에서 팔을 치료하시고 휴식을 취하시겠나이까?”

“하하, 고작 이런 상처로 어찌 공의 신세를 진단 말이오. 고생이 많으셨소. 어서 돌아가 쉬시오. 나는 앨커스터로 가서 간단히 치료를 받은 후, 콘체스터로 들어간 진압 부대의 보고를 받아야 하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가 직접 폐하를 모셔야 하는데... 늙어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불충한 신을 용서하여 주소서.”

“허허, 공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오.”


‘웃기고 있네. 입에 침이나 바르고 지껄여라, 이 늙은이야.’


“공께서도 푹 쉬고 나면 콘체스터 성으로 오시겠소? 로저 놈의 피붙이들도 남김없이 제거해야 하지 않겠소.”

“지당하십니다, 폐하. 하루만 쉬면 마력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겁니다. 마력만 회복되면 지체 없이 따르겠습니다.”

“정말 든든하오. 백작.”

“그럼 신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폐하.”


호위들에게 둘러싸여 부리나케 떠나는 거버스의 눈알에서 살기가 줄줄 흘렀다.


‘험프리 이 사갈 같은 놈아, 네 놈 눈깔에 살기가 어린 것을 내가 못 본 줄 아느냐. 지금은 지쳐서 돌아가지만 기회 봐서 네 놈도 교체시켜 주마. 왕족은 아직도 많아, 이 패륜아 새끼야.’


마법사가 수하들과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왕은 복잡해진 머리를 굴리느라 미칠 지경이었다.


‘저 영감이 제 호위를 따로 준비해 둔 것을 보면... 내 의도를 미리 눈치챘다는 것인데... 그냥 가버리는 것을 보니 확실히 지치긴 지쳤다는 거고... 그런데 눈깔을 보니 심상치가 않더란 말이지... 이대로 앨커스터로 바로 가도 되나? 저 영감이 혹시 호위뿐 아니라 매복까지 준비한 것은 아니겠지...’


용의주도한 험프리는 마법사 거버스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진심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앨커스터에는 험프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불러낼 병력이 없다.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한 병력 대부분이 이미 콘체스터의 영역 내로 들어가 있는 상태다.


‘당장 불러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의 병력이라면...’


“콜싯으로 가자. 너희 중 한 명만 먼저 전령으로 보내라. 콜싯의 주장관에게 호위대를 이끌고 나와 짐을 보호하라 이르라.”

“네, 폐하.”


현재 왕과 호위들이 있는 이곳은 월링퍼드주 크레인데일.

앨커스터주와 월링퍼드주 사이의 경계 역할을 하는 크레인강 상류에 있는 협곡 지대다.

이곳에서 북으로 올라가면 베이퍼드주, 남으로 내려가면 콜싯주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직행하면 앨커스터성이 나오는데, 일부러 남쪽으로 내려가 콜싯주의 주장관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북상하려는 것이다.

혹시라도 베이퍼드주에서 뭐라도 보내, 앨커스터로 직행하는 자신의 뒤를 치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다.

베이퍼드주의 상위 영주 중 가장 강력한 영주가 베이퍼드 백작인 거버스 틸리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방금 전까지 힘을 합쳐 싸우던 놈들이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서로를 못 믿어서 각자 자신의 본거지로 안전하게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로저 놈... 어차피 물속에서 죽을 거다. 로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놈이라도 물속에서 피 냄새까지 풍기고 살아나오는 것은 불가능해. 빌어먹을, 일흔 놈씩이나 와서 쉰아홉이 죽고 고작 열하나라니... 병신새끼들! 수색한다고 이 머릿수로 여기 죽치고 있다가는 저 노인네 손에 죽을 수도 있다. 일단 튀자! 수색은 주장관에게 맡기는 수밖에...’


왕이 생각하기에 대마법사는 얼마든지 자신을 죽이고 로저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러고도 남을 능력과 강단을 지닌 흉악한 위인이다.


원래는 급류 주변부터 크레인강 초입까지 수하들을 보내 샅샅이 뒤지게 해서, 만에 하나 로저 놈이 살아 있을 손톱만큼의 가능성도 없게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수색을 위해 병력을 분산시킬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독사들끼리 손을 잡고 일을 도모했을 때 발생하는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죽어서야 웃기다 (2) 23.06.17 263 5 9쪽
15 죽어서야 웃기다 (1) 23.06.17 278 5 9쪽
» 토사구팽 (6) 23.06.17 281 6 9쪽
13 토사구팽 (5) 23.06.17 275 4 9쪽
12 토사구팽 (4) 23.06.17 279 5 9쪽
11 토사구팽 (3) 23.06.17 303 4 9쪽
10 토사구팽 (2) +2 23.06.17 326 6 9쪽
9 토사구팽 (1) 23.06.17 371 7 9쪽
8 최초의 전사 (7) +2 23.06.12 393 11 9쪽
7 최초의 전사 (6) +2 23.06.12 395 9 9쪽
6 최초의 전사 (5) +2 23.06.12 421 11 10쪽
5 최초의 전사 (4) +2 23.06.11 461 10 9쪽
4 최초의 전사 (3) +2 23.06.11 597 10 9쪽
3 최초의 전사 (2) +2 23.06.11 752 13 9쪽
2 최초의 전사 (1) +2 23.06.11 1,302 12 9쪽
1 프롤로그 +10 23.06.11 1,870 19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