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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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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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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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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글자수 :
951,721

작성
23.06.1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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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9쪽

토사구팽 (2)

DUMMY

9화


로저의 외침과 동시에 마법사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 이제라도 자비를 구걸할 마음이 들었느냐? 어서 말해 보거라. 내 기꺼이 들어주마.”

“쌍판대기 옆에 그렇게 큰 불을 피워 놓고 왜 영감 면상이 멀쩡하지? 아니, 머리카락이라도 끄슬러야 정상 아닌가?”

“... 그게 궁금했냐? 곧 죽을 상황에 그게 네 놈 유언이냐?”

“상황이 어찌 됐든 나는 궁금한 건 못 참아.”


미친놈의 개소리는 무시하고 불덩어리를 집어 던지려던 마법사는 순간 떠오른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원래 사람이 나이가 들면 죽음과 관련된 것들에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저렇게 뛰어난 놈이 저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는다면, 원귀가 되어서 찾아올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곧 죽을 놈이다. 가는 길에 미련 없이 죽게 해주자. 괜히 박하게 해서 꿈자리 뒤숭숭하게 만들지 말고.’

“이 불은 나의 의지로 피어올린 것이다. 나의 의지를 벗어나지 않는 한 절대 아무 곳에나 옮겨붙지 않는다. 내 의지력이 닿는 공간 안에서는 충실한 나의 종이라 할 수 있지.”

“고마워, 영감. 아주 친절한 새끼구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로저의 양손이 번개 같은 속도로 아래로 뻗어졌다.

양손에 쥐고 있던 망치가 자루까지 땅에 꽂혔고, 어느새 허리 뒤에 매달려 있던 단검 두 자루가 대신 잡혀 있었다.

팔을 뒤로 빼는 등의 준비 동작도 없이 역수로 잡고 있던 단검들을 그대로 마법사의 몸뚱이를 향해 날렸다.


아무리 청년 대괴수 로저만 못하다 해도 마법사의 옆을 지키고 있던 자들 역시 토러스의 피를 처먹고 강화된 괴물들이었다.

특히 마법사에게서 가장 가까이 서 있던 두 놈은 개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놈들이었다.

두 놈 다 마법사의 몸과 가까운 쪽 팔에 방패를 달고 있었는데, 방패라기보다는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통짜 쇳덩어리였다.

악명 높은 괴수 로저 드레이시를 상대하기 위해 왕명으로 제작된 특수 아이템이었다.


로저의 양손에 단검이 있다는 것을 본 순간 두 놈 다 방패로 마법사의 앞을 막았다.

마법사의 왼편에 서 있던 놈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팔을 들어 마법사의 머리를 막았고, 오른쪽에 서 있던 놈은 왼쪽으로 움직이며 마법사의 가슴을 막았다.


푹!

끄윽!

아윽!


단검 두 자루가 그 두꺼운 방패를 뚫고 두 전사의 팔에 박혔다.

둘 다 새어 나오는 신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마법사의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같잖다는 듯 말을 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 고작 머리 쓴 것이 이거냐?”

“이야! 영감 깡다구 좋네! 겁 좀 주면 혼비백산해서 손에 든 불덩어리를 놓칠 줄 알았는데. 그러면 영감 몸에 불이 옮겨붙어서, 네가 만든 불에 네가 타 죽는 촌극을 볼 줄 알았지. 근데 영감도 오래 살아 봐서 알겠지만, 세상만사 쉬운 일이 없어. 그지?”


대마법사 거버스의 등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 새끼, 용력만 뛰어난 바보인 줄 알았더니 머리도 잘 굴러가는 놈이다. 얼른 죽여 버려야겠다!’


마법사의 오른손에 있던 불덩어리가 줄어들어 마법사의 머리만 해졌다.

동시에 마법사의 왼손에도 그만한 크기의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로저도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낮추고 마법사의 공격에 대비했다.


마법사의 양손 위에 떠 있던 불덩어리들이 순간 사람 눈알만 한 크기로 쪼그라들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로저의 왼 무릎이 굽혀지며 허리가 왼편으로 고속으로 회전했다.

그의 머리가 있던 공간에 얇고 긴 붉은 기둥이 눈 깜짝할 새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로저의 오른 다리가 우측으로 살짝 빠지면서 허리가 반대방향으로 회전했다.

또다시 그의 머리가 있던 곳을 붉은 기둥이 뚫고 지나갔다.

지켜보던 이들이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놓칠 정도로 빠른 몸놀림이었다.


로저가 살짝 고개만 돌려 뒤를 보았다.

건너편 언덕 위의 나무들이 벌써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평범한 불이 전혀 아니었다.

무슨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주변으로 미친 듯한 속도로 번져 나가는데 금세 언덕 전체가 불지옥이라도 된 듯했다.


로저의 등에서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는데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긴장감이었다.

열 살에 처음 돼지머리 괴물의 목을 땄을 때도 이 정도로 긴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법사가 온 것을 보고 쪽팔리지만 좌우의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뛰어들어 도주를 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나마 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쏙 들어갔다.

아무리 로저 자신이라 해도 저 불길 속에서 살아나오는 것은 택도 없어 보였다.


‘니미, 뭐가 이렇게 빨라! 거기다 스치기만 해도 순식간에 타 죽겠네! 무슨 불이 저렇게 빨리 번져!’


놀라기는 마법사 거버스도 마찬가지였다.


‘피해... 이걸? 고작 이 거리에서... 이 새끼... 오늘 반드시 죽여야겠다!’


몇 주 전에 왕 놈이 거버스 본인을 직접 찾아와, 저 로저 놈을 치자며 대가로 갖가지 보상을 들먹여 댔었다.

살짝 흥미가 생겨서 계속 떠들어 보라고 가만 뒀더니, 왜 저놈을 지금 죽여야 하는지를 설명하며 열변을 토해 댔었다.

더 강해지면 누구도 통제를 못할 거라며 더럽게 호들갑을 떨길래 피식 웃어 줬었다.


‘웃지 말고 귀담아 들을 걸...’


남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마법사 거버스의 전투 방식은 그냥 좀 큰 불덩이를 만들어서 표적 근처에 대충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금세 그 일대가 불바다가 되고, 알아서 표적이고 그 주변 놈들이고 다 불구덩이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다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리곤 했다.

방금 로저에게 쓴 기술은 정말 재빠른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 둔 것으로, 실전에서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로저와 거버스의 신분과 왕국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둘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 둘이 안면도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로저가 궁정 근처도 가 보지 않은 변경 지역의 어린아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현왕의 반란을 도와 왕좌를 갈아 치운 장본인이다.


현왕의 대관식부터 혼례까지 근 몇 년 동안 대형 왕실 행사가 두 개였고, 그 외에도 대귀족들이 궁정으로 소집되어 새 왕과 지지고 볶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왕의 외척이자 왕국 제일 검인 로저와 왕국 유일의 전투 마법사이자 백작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거버스가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 게, 이 마법사라는 놈이 새로운 마법을 연구한답시고 최근까지 근 십오 년 동안이나 자신의 성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사이에 수시로 첩들을 갈아 치우고 있었지만 대외 활동은 아예 없었다.

심지어 폐위된 선왕이 반란군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고 애걸을 하는 것도 깨끗하게 개무시해 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처박혀서 만들어 낸 새로운 마법이 바로 ‘불의 창’! 방금 로저에게 날렸던 두 발의 불의 기둥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집안 대소사도 관장하고, 어린 첩들도 부지런히 상대하고 있기는 했다.

그래도 무려 십오 년의 세월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거버스가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들어 낸 회심의 기술! ‘불의 창’


방금 로저가 리허설도 없이 한 번에 피해 버렸다.

그것도 두 발을 연속으로.


고작 삼십 보 조금 넘는 가까운 거리에서 날린 것을 여유 있게 피하는 로저를 보고, 거버스는 아흔여덟의 나이에 처음으로 경악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솔직히 이곳으로 오는 길에 설레긴 했다.

그동안 온 힘을 다해 만들어 온 새로운 마법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고, 그 대상이 무려 자신을 제외하면 왕국 최강의 전사로 꼽히는 로저 드레이시였기 때문이다.

이보다 완벽한 시연회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불의 창으로 로저를 태워 버린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퍼포먼스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망감과 허탈감이 밀려오긴 했다.

하지만 거버스에게 더 크게 밀려온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어쩌면 자신과 동등할지도 모르는 강자를 만났다는 것이 내일모레 백 살 먹는 노인네에게도 무서움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처음 만난 호적수에 당황하고 있는 것은 로저도 마찬가지.


‘아니, 뭐 했다고 벌써 지치지?’


괴물들을 때려죽이는데 맛 들려 삼 일 밤낮을 잠도 자지 않고 망치질을 한 적도 있는 쾌락형 살육마 로저였다.

육체만 놓고 보면 왕국 최강인 그가 고작 불기둥 두 개 피하고 약간이지만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것이고, 방금 피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정신력을 소모했다는 증거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본 적이 없던 로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당혹스러움이었다.


‘지랄, 정신 차려라! 이 병신새끼야!’


스스로에게 쌍욕을 하며 마음을 다잡던 로저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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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다오랑
    작성일
    24.03.07 07:03
    No. 1

    3/7 오늘은 여기까지 읽고 갑니다. 글이 다소 무거운 느낌이 들면서도 술술 읽히는 마력도 있습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최고길동
    작성일
    24.03.08 21:59
    No. 2

    아쉬운 점도 보이시면 꼭 적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글 처음 쓰면서 칭찬은 기대도 안 했고 제 나쁜점들을 꼭 알아 내고 싶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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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최초의 전사 (4) +2 23.06.11 458 10 9쪽
4 최초의 전사 (3) +2 23.06.11 592 10 9쪽
3 최초의 전사 (2) +2 23.06.11 747 13 9쪽
2 최초의 전사 (1) +2 23.06.11 1,297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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