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1 00:14
연재수 :
223 회
조회수 :
23,253
추천수 :
531
글자수 :
951,721

작성
23.06.11 12:15
조회
592
추천
10
글자
9쪽

최초의 전사 (3)

DUMMY

3화


대륙에 존재하는 열 개의 왕국들은 다들 예외 없이 괴물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괴물들이 특히 더 설쳐대는 변경 지역에 서로 명칭만 다르지 내용은 유사한 제도를 만들어 특권과 책임을 부여했다.


브리갠트 왕국도 서부 변경의 육주와 북부 변경의 오주 총 열한 개의 주를 ‘변경 주’로 명명하고,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영주들에게 자치권과 면세권을 부여했다.


그들이 지켜야 할 책무는 오로지 자신의 소유지에 걸어 들어오는 것들 중에 사람 아닌 것들을 모두 죽이는 것뿐이다.

그 외에 책무라기보다는 상식에 가까운 것들이 있는데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과 작위 상속 시 왕성에서 충성 맹세를 하는 것이다.


위드링튼이 속한 콘체스터주는 서부 변경 육주 중 하나이며, 주 내에는 왕에게 직접 봉토를 수여받은 상위 영주가 백작을 포함해서 총 네 명이 있다.

비슷한 사이즈의 다른 주들의 경우 상위 영주가 못해도 열은 넘고, 대부분 스무 명 전후인 것을 생각하면 매우 적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원래 콘체스터주 내에 장원을 소유한 상위 영주의 수는 열일곱이었다.


초창기 변경 지역은 의외로 영주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땅이었다.

왕의 간섭을 받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으며, 바깥으로는 주인 없는 땅이 광활하게 펼쳐진 기회의 땅이었다.

따라서 변경 지역에 영지를 받고 들어온 자들 대부분이 호전적인 야심가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야심이 꺾이고, 호전적인 성격이 나약하게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이곳은 주인 없는 땅이 아니었다.

물론 괴물들이 어슬렁거리는 곳인 줄도 모르고 들어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올 줄은 그들 모두 상상도 못 했다.

괴물들을 상대로 방어에 실패하면 남는 것은 온 일족이 산 채로 뜯어 먹히는 끔찍한 결말 밖에 없었다.


그래도 언어라도 통하는 왕이 간섭하는 것이 낫지, 의사소통도 안 되는 괴물들에게 밤낮없이 갈굼 당하는 것은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세금 안 내면 뭐하나.

요새 수리비, 병력 유지비 등 돈 들어갈 곳들이 천지인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봉토를 이웃 영주들에게 헐값에 넘기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괴물들에게 요새가 털려서 일족이 전부 몰살당하는 일도 간간이 발생했다.

이건 서부, 북부 구분할 것도 없이 변경 지역의 모든 주가 다 같이 겪고 있는 일이었다.


결국 담력과 역량을 모두 갖춘 자들만이 수십 년 동안 살아남아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런 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작금의 변경 지대이다.


콘체스터주의 상위 네 가문의 수장이 위드링튼에 모두 모이는데 육 일이 걸렸다.

전령이 각 가문의 성에 도착하고, 연락을 받은 영주들이 하위 영주들에게 전령을 보내고, 자신도 직속 부대를 무장시키고 이곳으로 달려오기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위드링튼의 수비병들은 자신들의 고위 영주들이 이렇게 빠릿빠릿한 줄도 모르고 의심했다며 안심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잘난 놈들이 얼마나 급했으면 이렇게 부리나케 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다들 뒤숭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백작께서는 어쩌시렵니까? 이런 곳에서 토러스인가 뭔가 하는 그 소 닮았다는 괴물들이 떼로 몰려들면 방어가 가능하겠습니까?”


네 가문의 수장 중 하나인 터싱엄의 영주 휴 터싱엄이 물었다.

그들은 위드링튼의 중심부에 건설된 아성(keep)의 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회의 중이었다.

터싱엄의 질문 속에는 이렇게 부실한 시설로 칼도 안 박히는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터싱엄경이 우려하시는 것은 잘 압니다. 저도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엑시스턴에 짓고 있는 요새가 완공되기까지 최소 삼 개월은 더 걸린다고 합니다. 아랫것들을 닦달해봤지만 차라리 목을 쳐달라 하더군요. 이곳을 포기하면 아직 외벽 공사도 안 끝난 곳에서 괴물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엑시스턴까지 뚫리면 나나 터싱엄경 당신이나 예전 처지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웨이버튼의 영주 일버트 웨이버튼이 백작을 거들고 나섰다.

그의 일족의 거성인 웨이버튼은 엑시스턴으로부터 걸어서 하루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다.

또다시 자신부터 온 가족이 성벽 위에서 도끼를 휘두르며 밤을 지새우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오 년 전 콘체스터주의 영주들은 모든 역량을 쥐어짜서 돼지머리와 개머리들을 도륙하고 이곳 위드링튼까지 밀고 들어왔다.

엄청난 인명과 비용의 손실이 있었고, 그 대가로 육십여 개에 달하는 새로운 장원이 주 소속 영지로 추가되었다.

이 땅들은 네 가문이 들인 비용만큼에 비례해 분할되었고, 그들 모두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마다 요새를 지어 방어선을 구축해왔다.


특히 엑시스턴의 요새는 위드링튼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서 짓고 있는 대형 요새다.

완공되면 주 내에서 백작의 거성 다음으로 거대한 성이 될 예정이다. 이것만 완성되어도 방어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네 명 중에 새로 얻은 땅들을 잃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인 땅인데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하아, 미치겠네. 뭐 여기서 죽도록 싸워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의논합시다.”


말을 마치고 터싱엄은 골이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댔다.

백작이 침묵하고 있던 나머지 한명에게도 고개를 돌려 의견을 물었다.

백작과 눈이 마주친 캘블리 영주 루퍼스 브리즌이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엑시스턴의 요새가 완성될 때까지는 여기서 최대한 버텨보는 게 최선인 듯합니다.”

“그런데 백작, 신성한 맹세를 했다는 핏덩어리 얘기는 들으셨소?”

“예, 들었습니다. 꽤 용감한 놈이라던데 참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아니, 한 놈이 아쉬운 상황에 어린놈이 씨도 남기지 않고 죽으려 하다니···”


네 명의 가문에서 긁어모아 온 병력이 천명이 안 된다.

그마저도 일부는 인근의 다른 마을에 지원병으로 보냈다.

소머리가 꼭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이들이 돈이 없어서 사병을 모으지 못 한 것이 아니다.

백작만 해도 콘체스터주에만 삼백오십 개에 달하는 장원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여섯 개 주에 퍼져 있는 장원들을 모두 합하면 사백 개가 넘는 장원을 소유한 왕국 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부호였다.

이 넷 중 가장 밀린다는 브리즌 가문조차도 콘체스터주 내에 육십 개, 다른 여덟 개 주에 오십여 개의 장원을 가지고 있었다.

넷 다 알아주는 부자다.


그런데 정작 주 내에 젊은 남자가 없다.

최소한의 농사지을 놈, 특별한 기술 가진 놈들 빼고 나면 힘 좀 쓸 만한 젊은 놈들이 씨가 말랐다.

수십 년 동안 괴물들과 치고받은 대가다.


하도 사람이 귀하니 어느새 변경 영주들 사이에는 약간은 괴상한 형태의 생명 중시 사상이 퍼지고 있었다.

백작이 고작 시골 마을 청년의 다가올 죽음을 안타까워하다니... 궁정의 귀족들이 들으면 놀라서 먹던 술을 뿜어 버릴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주에서 용병들을 사오지 않으시렵니까?”


웨이버튼 영주가 혹시 비용이 부족하시면 더 보태겠다는 말은 차마 덧붙이지 못 하고 나름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백작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그동안의 정중한 말투와는 다른 다소 날카로운 투로 대답했다.


“작년부터 건설 중인 요새들에 수비병으로 쓰려고 몇 번을 접촉했었소. 그런데 천한 것들이 아무리 급료를 올려준다고 해도 오려 하지를 않아! 용병이란 것들이 죽음이 두려워서 꽁무니를 빼다니! 버러지 같은 것들.”

“말세군, 말세야. 용병이 괴물이 무섭다고 피하면 지들은 도대체 누구와 싸워서 돈을 벌려는 거야?”

“궁정에 빌붙어 있는 놈들 중에 서로 감정 상한 놈들이 상대방 피붙이들 납치할 때 많이 불러다 쓰지 않소. 돈 벌 곳은 많아.”

“진짜 개 같은 꼴이네! 누군 괴물 소굴에서 죽도록 싸우고 있고, 누구는 궁에서 권력 다툼 한다고 남의 집 애새끼들이나 납치하고.”

“자 회의는 이만하고 아랫것들 일하는 거나 둘러봅시다. 왕궁 얘기 시작하면 짜증만 쌓이니 그쯤하고.”


백작의 말에 다들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머리가 다녀간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여유가 없긴 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07.23 22:56
    No. 1

    로마 시대에도
    체격이 크고 전투력이 막강한 게르만족은
    로마 군대한테 괴물 취급을 받았죠.
    그런 역사를 떠올리며 독서를 하면
    이 작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군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최고길동
    작성일
    23.07.24 22:22
    No. 2

    댓글 감사합니다.
    머리를 비우고 읽을 수 있는 깽판물을 썼는데...
    너무 정성스럽게 읽어주셔서 뭐라 드릴 말씀이...
    그저 감사드리고 조만간 저도 찾아뵙겠습니다.
    작가님도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죽어서야 웃기다 (1) 23.06.17 278 5 9쪽
14 토사구팽 (6) 23.06.17 280 6 9쪽
13 토사구팽 (5) 23.06.17 274 4 9쪽
12 토사구팽 (4) 23.06.17 278 5 9쪽
11 토사구팽 (3) 23.06.17 302 4 9쪽
10 토사구팽 (2) +2 23.06.17 325 6 9쪽
9 토사구팽 (1) 23.06.17 370 7 9쪽
8 최초의 전사 (7) +2 23.06.12 391 11 9쪽
7 최초의 전사 (6) +2 23.06.12 393 9 9쪽
6 최초의 전사 (5) +2 23.06.12 419 11 10쪽
5 최초의 전사 (4) +2 23.06.11 458 10 9쪽
» 최초의 전사 (3) +2 23.06.11 593 10 9쪽
3 최초의 전사 (2) +2 23.06.11 747 13 9쪽
2 최초의 전사 (1) +2 23.06.11 1,297 12 9쪽
1 프롤로그 +10 23.06.11 1,863 19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