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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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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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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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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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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최초의 전사 (5)

DUMMY

5화


소머리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사슬을 끊어 내고 팔을 뻗었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은 로저는 간발의 차로 소머리의 손을 스쳐 지나갔다.


양손에 쥔 꼬챙이의 끝이 등에 닿을 만큼 상체를 젖힌 로저는 온 몸을 쫙 펴면서 바닥에 머리를 꽂을 기세로 몸을 던졌다.


쇠꼬챙이 두 자루가 소머리의 양쪽 고환에 사이좋게 한 자루씩 박혔고, 이번에도 로저는 바닥에 처박힌 후 한참을 더 굴러가야만 했다.

소머리는 피를 철철 흘려 가면서도 너만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듯 낯짝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린 채 로저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리 괴물이라도 하반신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고 움직임이 굼벵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순간 쇠사슬을 든 기사들이 다시 소머리의 양옆으로 뛰어들어 사슬을 던졌고, 이번에는 양 발목에 쇠사슬을 감았다.

이제는 병사들도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기사들의 뒤로 뛰어가 사슬을 잡아들었다.

그러고는 다들 눈을 맞추고 둘 하나를 외친 후 있는 힘껏 사슬을 당겼다.


소머리의 양발이 순간이나마 공중에 떴고 발레리노라도 된 것처럼 두 다리를 쫙 벌린 채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항문에 박혀 있던 꼬챙이가 손잡이까지 다 들어가 버렸고, 꼬챙이가 박혀 있던 양 고환이 찢어지면서 터져 버렸다.


난폭한 괴물도 이 지경에 이르자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병사들이 그 모습을 보고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려는 순간 백작이 고함을 쳤다.


“팔에도 사슬 감아! 얼른 사슬 더 가져와! 도끼 든 놈들은 당장 뒤로 물러서!”


백작의 말에 기사들이 달려들어 양팔에 다시 사슬을 감았고, 사지를 잡아당겨 바닥에 박힌 쇠말뚝들에 고정시켰다.


이제는 완전히 마음이 놓인 병사들이 기세등등해져서 살기를 뿜어 대기 시작했다.

흉포한 기세를 떨치며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 이번에는 예배당의 신부가 뛰어나와 고함을 쳤다.


“심장을 상하게 해선 안 돼!”


앞서 백작이 말할 때와는 달리 병사들은 순간 신부를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무슨 의도로 말한 건지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물들이 설치는 세상에서 신성모독을 행할 만큼 무모한 자는 없었다.

그 분노가 바닥에 자빠져 있는 소새끼에게 향했다.


한참 매타작이 이어지고도 소머리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도끼질을 수십 번 당하고서야 피부에 균열이 생길 정도로 튼튼한 몸뚱어리였다.

서슬 퍼런 기세로 달려들던 병사들도 질려 버렸다는 듯이 멍하니 소머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새 일어난 로저가 소머리의 가슴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어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신부가 옆으로 다가와 로저를 축복하기 시작했고, 로저의 손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이 멍청한 놈아! 네 가족들이 여기 없어서 망정이지. 이 꼴을 봤으면...’

‘괴물 손에 가족을 잃은 게 너 혼자냐. 이 안에 그런 사연 없는 놈이 누가 있냐. 이 어리석은 놈아.’


로저의 가족들을 포함한 위드링튼의 주민들은 이미 엑시스턴으로 피신해 있었고, 위드링튼 출신은 수비대만이 이곳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속으로 울분을 토하다가 도저히 못 보겠던지 하나둘 자리를 떠 버렸다.

외지인들만 남은 곳에서 로저는 괴물의 심장을 뽑아 피를 마셨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이 자를 예배당으로 옮기고 그대가 성심껏 보살피시오. 만약 살아난다면 지체 없이 내게 전하고, 안타깝게도 명을 다한다면 시신을 내 성으로 보내도록 하시오. 내 손으로 직접 장례를 치르겠소.”

“예, 각하.”


백작의 명에 신부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예배당에 속한 하인들을 불러 로저를 조심히 들어 옮기게 했다.


---


열흘 후 엑시스턴에 머물며 공사 감독관을 닦달하던 백작에게 위드링튼으로부터 전령이 도착했다.

위드링튼에 병사들과 함께 남겨두었던 부관이자 조카인 앨런이 기사를 보내왔다.


“각하, 급히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냐? 또 그 괴물인가?”

“그게 아니옵고··· 그 아이가 깨어났다는데···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앨런경이 지체 없이 모시라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무슨 보고를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하나 싶었지만, 그의 조카는 촌수가 가깝다고 부관을 삼은 놈이 아니다.

백작은 호위기사들을 부른 후 바로 말에 올랐다.

엑시스턴의 감독관이 속이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백작을 배웅했다.


엑시스턴에서 위드링튼은 말을 타고 달리면 금세 도착하는 거리이다.

전령에게 물어봤자 자세한 것은 못 들은 모양이라 궁금해서라도 백작은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위드링튼의 목책 앞까지 도착하자 성문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앨런과 부하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도대체 무슨 보고를 이따위로 하며,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렇게 서두르느냐는 질문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앨런이 다급히 다가와 백작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아직 다른 영주들은 모릅니다. 백부님, 어서 예배당으로 가시죠.”


급하긴 급한 모양이라 입을 다물고 조카를 따라 빠르게 걸었다.

도대체 뭔 일인가 싶어서 예배당으로 들어가니 신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나와 구석에 있는 방문을 가리켰다.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백작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앨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재빨리 방문을 닫고 보고를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깨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합니다. 깨어나면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나흘 전부텁니다.”

“이··· 이게 그 아이가 맞느냐?”

“얼굴은 딱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백부님.”


백작이 고개를 돌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앨런은 괘념치 않고 보고를 이어 갔다.


“급한 대로 망토를 이어 붙여서 입혀 놨습니다. 발가벗겨 놓은 상태로 보고를 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재단사를 불러 치수를 재게 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옷을 지으라 했으니 금방 완성할 겁니다.”

“재단사는 어디에 있느냐? 혹시 돌려보냈느냐?”


그러자 앨런은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옆방을 가리켰다.


“처음 부를 때부터 옷감을 다 들고 오도록 시켰습니다.”

“잘했다.”


백작은 그제야 안심된 듯 조카의 어깨를 두들기며 의자에 앉았다.

눈앞의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눈이 의심스러웠다.

몇 번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한 후 다시 봤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잠시 후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가 들어와 옷이 완성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네가 직접 받아서 가져오너라. 재단사는 금화 두 개를 주고 저 방에서 일주일만 지내라고 하고.”

“네, 백부님.”


앨런이 나가고, 백작은 의자에 몸을 완전히 파묻었다.

그러고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코를 골고 있는 로저라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열흘 전 이 아이의 활약이 다시 떠올랐다.

열흘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떠올리고도 질리지도 않고 또다시 그 날의 기억 속에 잠겨 들었다.


변경에서 평생을 괴물들과 드잡이질을 하면서 살아온 그조차도 소머리 괴물을 처음 봤을 때 적지 않은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 어마어마한 덩치와 흉악하기 짝이 없는 기세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망설임조차 없었어...’


기특하다는 생각 따위가 아닌, 기사로서 그리고 같은 남자로서 경외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무모한 머저리들이야 여럿 봤다.

그가 보는 앞에서 공을 세우고 싶어 하는 놈들이 한둘이었겠나.


하지만 이 아이는 무모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괴물의 연약한 곳을 공략했다.


궁정에서 기사도 타령이나 하면서 귀부인들 앞에서 예쁘게 검무나 추다 온 가문의 어린 기사놈들이 떠올랐다.

이 곳의 성주로 있다가 얼마 전 목 없는 시체가 된 놈 또한 그들 중 한 놈이었다.


그 모지리들이었으면 아무리 괴물이라도 생식기를 공격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하니 하는 개소리를 지껄였을 것이다.

그 놈들과 어울리며 궁정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는 등신 같은 두 아들 놈들까지 떠오르자 백작은 참을 수 없는 깊은 빡침에 골이 깨질 것 같았다.

가문에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놈이 조카인 앨런 하나 밖에 없었다.


‘밥버러지 같은 놈들 대신 차라리 저 놈이 내 자식이었다면...’


로저의 얼굴을 응시하며 상념에 빠지려는 순간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하도 많이 들은 소리라 지금 얼마나 다급하게 불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바로 머리 위에서 종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예배당 꼭대기에 달아 놓은 것인데, 이곳 위드링튼에서는 주로 거주민들에게 집안에 처박혀서 숨도 크게 쉬지 말고 엎어져 있으란 경고를 할 때 쓰는 것이다.


백작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고, 옷을 들고 들어오던 앨런은 로저가 누워 있는 침대에 옷가지들을 집어던진 후 백작을 쫓아 뛰었다.

예배당을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도 우르르 달려 나와 뒤에 따라붙었다.

성문 앞에 도착할 때쯤 경계를 서던 기사들이 달려 나와 백작을 맞이했다.


“어떤 종류가 몇 마리나 왔느냐?”


앨런이 먼저 나서서 기사들에게 물었다.

기사들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 앞뒤 가릴 것 없이 나섰다.


“토... 토러스 다섯 마리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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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07.26 22:50
    No. 1

    로저가 소머리 심장을 먹고 육체가 커진 모양이군요.
    영웅은 그렇게 고난을 통해서 탄생하겠죠.
    재밌게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최고길동
    작성일
    23.07.27 20:12
    No. 2

    댓글 감사합니다. 다음편 댓글에 길게 쓸게요. 엄청 기다려 왔던 댓글이라서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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