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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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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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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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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10,448

작성
23.09.1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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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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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인연 (9)

DUMMY

81화


말은 험하게 했지만 행동으로 실천할 필요는 없었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실감한 미오가 묻지도 않은 것까지 넋두리하듯 다 쏟아 낸 것이다.


급한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지운은 침대에 팔베개를 하고 가로누운 채로 느긋하게 경청했다.

물론 침대 위에 깔린 천 쪼가리, 털 쪼가리들은 전부 정화 마법으로 절여진 상태다.


침실 안에 있는 촛불을 다 켜고, 자정이 되도록 그녀의 굴곡진 인생사를 다 들어줘야 했다.

그녀가 이 정도로 불굴의 투 머치 토커일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운 자신이 그렇게 하라고 협박까지 하면서 시킨 거라, 뭐라 할 말도 없었다.

하루 내내 물만 먹고 쫄쫄 굶은 상태임에도, 꾹 참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의 마지막 음성을 새겨들었다.


장대한 서사를 마치고, 한 번 더 반복해서 들려준다기에 고통 없이 보내 줬다.

사실 하지운이 검증 차원에서, 같은 이야기를 열 번씩 반복해서 듣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둔 상태였다.

쓰잘데기 없는 협박을 해 둔 것이다.


두 여자의 몸에 가시를 꽂고 기력을 뽑다가, 육체가 붕괴하기 직전에 미오의 두 손을 염동력으로 부숴 버렸다.

이미 신경이 다 삭아 없어졌을 터라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결박 의자와 나무통 등을 뻥 뚫린 벽 밖으로 던져 버리고, 물청소도 한 번 더 한 후 침대에 드러누웠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음식물을 구해 오는 것은 택도 없는 일이고, 하지운은 오랜만에 편한 잠자리에서 숙면이나 취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침대 사이즈가 그의 새로운 신체에 비하면 약간 협소한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두 달 가까이 괴물 소굴 속에서 풍찬노숙 중이었던 하지운에게, 지붕 아래에서 누리는 수면 활동은, 그저 감동 그 자체였다.


슬슬 잠에 빠지려던 하지운의 감각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내성으로 접근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배도 고픈데 노곤하기까지 한 하지운이었다.

추위만 해결한 갓 입소한 훈련병의 상태나 다름이 없던 그였다.


그 순간 하지운 자신도 감당 못할 흉포한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내성으로 접근하던 놈들이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갑자기 온몸을 바닥에 내던지며 오체투지를 해 버렸다.

씩씩거리며 내려다보던 하지운도 순간 벙쪄 버렸다.


‘한판 붙자고 온 놈들은 아닌가 보네. 근데 저 가운데 있는 놈 누구지? 왜 느낌이 친숙하지?’


궁금해하고 있을 필요가 없는 하지운이다.

그대로 내성의 안뜰로 몸을 날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구덩이를 하나 더 만들며, 초면에 예의 바른 친구들을 손수 영접 나갔다.


“어떻게 왔어? 날 보러 온 건가? 어디 소속 용사들인고?”


무리의 한가운데에 엎드려 있던 인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쭈글쭈글한 손으로 머리를 덮고 있던 후드를 젖히더니, 다시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각하, 다시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우선 송구스러운 사죄의 말씀을, 저희 무리를 대변하여, 올리옵니다. 각하의 존안을 다시 뵙게 되었을 때, 이렇게 자비를 읍소하게 될 줄은 몰랐나이다. 천한 놈들이 귀인을 몰라뵙고 저지른 잘못을 한 번만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크흡... 영감, 잘 지냈어? 하긴 이상하긴 하더라고. 클러필 같은 촌구석의 대장장이가 지나치게 거슬리기에, 난 자네가 무슨 은거기인 같은 건가 했지. 정보 길드에서 무슨 일 해? 직책이 뭔가?”

“벨라스터주의 전대 총책이었습니다, 각하. 하지만 지금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한낱 촌로에 불과하옵니다.”

“한낱 늙은이가 이런 상황에 조직을 대표해서 화친을 청하러 왔다고?”

“화친은 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자비를 구걸하러 왔다고 보아 주시옵소서.”

“나와 딱히 척질 마음도 없었던 것 같은데, 금이야 옥이야 길러 낸 아이들을 겁도 없이 나에게 내던진 이유가 뭐지?”

“각하, 잠시만 무례를 범하겠나이다. 용서하소서.”

“그러든지.”

“두 놈을 끌고 와라.”


무리의 끝에서 사지가 결박되어 자빠져 있던 놈들이 전사들의 손에 머리끄덩이가 잡힌 채로 질질 끌려왔다.


“누구인가?”

“벨라스터와 벨램튼의 총책들이옵니다. 각하께 말씀 올리기 정말 민망하옵게도, 이 두 놈이 루지먼트 가문의 영애에게 홀려서 조직을 배신했나이다.”

“푸흡...”


사실 미오에게 들어서 다 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괴상한 소문을 접한 벨램튼주의 지부에서 그녀의 주변에 정보원을 심었다.

그리고 그 정보원이 그녀에게 홀딱 반해서 모든 것을 다 털어놔 버렸다.


역으로 벨램튼 지부가 미오에게 탈탈 털리기 시작했다.

지부 내의 사내놈들이 전부 그녀의 권능에 무릎을 꿇어 버린 것이다.

정보 장사하는 놈들이 사랑에 눈이 멀어, 입이 헐거워져 버리니, 단숨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보 길드 한 개 지부를 파죽지세로 집어삼킨 그녀의 안구에 더 이상 뵈는 것이 없어졌다.

자신감이 탱천한 그녀는 인접한 벨라스터주의 총책까지 불러들였다.

벨램튼주의 총책을 조종하여,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유인한 것이다.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 앞에 견뎌 낼 남정네는 없었다.

두 개 주의 조직원들이 전부, 충실한 사랑의 노예로, 거듭나 버렸다.


사실 병적으로 깔끔을 떠는 하지운이나 냄새가 어쩌고 지랄을 떤 것이지, 이 동네 인간들의 체취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다.

강물 속에 피라냐 같은 것들이 한 무더기로 생지랄을 떨고 있는데, 물이 귀하지 않을 리가 없다.

당연히 이 동네에서 하루에 한 번씩 샤워를 하는 미친놈이 존재할 리도 만무했다.


미오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의 생활에 적응해, 냄새에 둔감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운이란 미친놈을 만나 개쪽 당하지만 않았다면, 평생 신경 쓰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각하께옵서 원하시면 이 두 놈을 예물로 바치고 싶사옵니다. 거두어 주시겠나이까?”

“아휴, 됐어. 차라리 영감네 윗선으로 올려 보내서,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삼으라고 해. 아무리 요녀에게 홀렸다지만, 한 지역을 책임진다는 놈들이 둘이나 자신의 책무를 내팽개치다니. 통탄할 일이 아닌가.”

“정말 그러하옵니다, 각하. 민망하고 송구스러운 마음 가눌 길이 없나이다.”

“그런데 영감. 내가 낮에 죽인 영감네 아이들이 대충 일흔 정도 되었어. 그 정도면 서부, 북부 할 것 없이 변경 지역 전부를 상대로 살수 장사를 할 수 있을 전력인데. 나와 화친이 가능하겠어? 영감네 조직 내에 나에게 억하심정을 품은 놈이 여럿 있을 텐데. 안 그래?”

“각하, 저희가 그 정도로 천지 분간을 못 하는 놈들이었으면, 천한 것들이 이토록 오랜 시간을 버텨 낼 수 있었겠사옵니까. 아이들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다시 키우면 그만이옵니다. 하지만 각하 같은 분과 척을 지게 되면, 저희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지옵니다. 저희는 장사꾼이지 무부의 집단이 아니옵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현재 나의 신분은 대역죄인이며, 나의 가문은 깨끗이 소멸되었다. 네놈들에게 나와 친분을 맺는 행위가 과연 실익이 있느냐? 네놈들이 험프리의 명을 받아 나를 기만하려는 것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직접 찾아와 예물을 바치겠다느니 하는 짓이 굳이 필요한 행위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각하. 각하의 선조분들께서는 삼백육십 년 전 루아레에서, 아머릭 왕가의 초대 왕 아널프 폐하와 함께, 이곳으로 이주하셨습니다. 당시 가주이셨던 위그 드 드라시 공께서는 드라시와 라 아그의 백작이시자, 초대 왕 폐하의 사촌 동생이셨습니다. 이곳 브리갠트에서는 휴 드 드레이시의 이름으로 콘체스터 백작위를 수여받으시어, 루아레와 브리갠트 양국에 광대한 토지를 보유하신 당대 최강의 대제후 중 한 분이셨습니다.”

“이봐, 영감. 내가 아무리 괴물 죽이고 다니는데 환장병이 들었다 해도, 가문의 역사조차 모르고 있을 놈으로 보이는가? 우리 가문의 족보는 왜 읊고 있는 것인가?”

“각하의 가문은 그 뿌리부터 고귀하였습니다. 만약... 현 왕가가 대가 끊길 경우... 많은 가문이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은 것을 근거로 차기 왕권을 노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 각하의 가문만큼 그 시작부터 고결했던 가문은 드뭅니다. 각하의 가문을 제외하면 셋밖에 없사옵니다.”

“우리 가문은 지난달에 멸문하지 않았나? 내가 잘못 알고 있나?”

“각하께서 건재하시니 멸문은 어불성설이옵니다. 애초에 저희는 각하 한 분을 드레이시 전체 전력의 사 할로 평가해 왔습니다. 천한 놈들이 각하에 대해 함부로 논한 것은 진실로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저희 같은 놈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 원래 그런 것이옵니다.”

“알아, 송구스러워할 필요 없으니 계속 읊어 봐.”

“각하께서 신묘한 권능을 얻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루지먼트 가문의 영애와 그 휘하의 신사분들의 권능도 이미 각하께서 취하셨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나이다.”

“하아... 내 입이 문제였군.”

“따라서 저희는 드레이시 가문의 전력에 전혀 변함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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