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17 05:37
연재수 :
260 회
조회수 :
28,317
추천수 :
574
글자수 :
1,110,448

작성
23.10.01 00:27
조회
87
추천
3
글자
9쪽

정진 (3)

DUMMY

89화


테일강 너머에서 용역 깡패 짓을 경험해 본 하지운은 지금 킬러의 세계에까지 저변을 넓혀 보고 있는 중이다.

판타지 세계에서 다양한 깽판을 체험해 보며, 넘치는 아드레날린에 주체를 못 하고 있는 하지운이다.


작금의 하지운은, 극도로 아름다운 변태녀 임승아에게 완전히 미쳐 있는, 사랑의 노예 그 자체다.

그에게 이 동네의 모든 여자는 임승아 미만잡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한심한 미녀 귀신은 잠시도 쉬지 않고, 남친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밀 감시 중이다.


그런데 이게 또 변태 중의 상변태 하지운을 미치게 하는 포인트였다.

여친에게 감시받는 경험을 처음 해 본 하지운은 천지가 개벽하는 상상 초월의 쾌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구속받는 것조차 환장을 하면서 즐길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하지운이 자신의 구속에 오히려 흡족함을 드러내자, 자신만만해진 임승아는 대놓고 집착을 남발했다.

그에 따라 하지운의 쾌감도 상한가를 뚫어 버렸다.

지랄 같은 변태성의 선순환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서로에게 미쳐 있는 개미친 연놈들인지라, 하지운의 버킷 리스트에 성범죄는 포함되지 않았다.

사실 애초부터 하지운에게 임승아를 제외한 모든 여성은 머리 긴 두발짐승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하지운의 변태성 중에 수간 성향은 없다.


순결하면서 지고지순한 변태 살인마 하지운은, 성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를 이곳에서 체험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 하지운의 복장이 목불인견 그 자체인 것이다.

주홍빛 터럭을 댄디컷으로 다듬은 초대형 기생오라비가, 한밤중에 시커먼 슈트 차림으로, 울창한 숲속을 날듯이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오른손에는 연필마저 쥐어져 있는 상태다.


고작 연필 한 자루를 요구하는데, 쩨쩨하게 거절할 저승이 아니었다.

그 어떤 제재도 없이, 연필 한 박스와 기차 모양의 연필깎이를 선물로 보내 줬다.


물론 연필깎이의 몸통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정말로 친환경적인 저승이다.

거기다 연필의 크기는, 하지운의 손 크기에 맞춘 것인지, 대충 단소만 했다.

심지어 연필에 연필심이 없었다.

단지 중심 부위에 검은 칠만 되어 있었다.

하지운이 무슨 목적으로 요구한 것인지 훤히 알고 있는 저승이었다.


평생 연필을 써 본 적이 없던 그인지라, 난생처음 보는, 연필깎이란 물건을 붙들고 한참을 씨름해야만 했다.


어쨌든 하지운은 예쁘게 잘 깎인 연필을 거꾸로 쥐고, 숲 한복판 공터에 세워진, 천막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채, 천막의 삼십 보 거리까지 다가간 하지운이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하지운을 중심으로, 이백 마리가 넘는, 소머리 좀비가 원을 이룬 채 겹겹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천막 안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기척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감지되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의심 많은 하지운이 거침없이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던 것이다.


“웬 놈이냐? 도일리가 보낸 놈이냐?”


천막의 휘장을 세차게 밀쳐 내며, 눈매가 날카로운 청년이 거침없이 걸어 나왔다.


자신감이 넘치는 걸음으로 하지운 앞에 선 청년이, 순간 움찔하고 뒷걸음질 치려다, 겨우 자세를 잡았다.

그는 자신의 면상에 피어오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려,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관상은 과학이라고, 청년은 결코 겁 많고 경박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많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댄디컷에 장례식 복장을 갖춘 이 미터 팔십의, 꽃미남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세 배경의 판타지 세계에서 말이다.


슈트는 재단사를 조져서 어떻게 만들었다 쳐도, 저 번쩍거리는 정장 구두는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던 청년이다.


“너... 뭐냐?”

“안녕, 난 로저 드레이시 역할에 푹 빠져 있는 참가자야. 넌 아서 퍼렛 흉내 중인 참가자 놈 맞지?”

“... 맞다. 그런데 너... 굉장히 충실하게 미션을 수행 중인 모양이구나. 복장부터 정성을 다한 티가 난다. 이곳 생활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한 네 모습을 보니 참으로 부럽구나.”

“네 졸개들 머릿수를 보니, 너도 번창하는 모양인데 부러워할 것이 무에 있느냐? 그런데 내가 오는 걸 어떻게 알고, 이렇게 준비를 잘하고 있었던 거지?”


하지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의 나뭇가지에서 다람쥐들이 쏟아져 내렸다.

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하지운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좀비들까지 훑어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시체 새끼들이 시취를 풍기질 않는구나. 사령술이라는 것이 기대보다 훨씬 유용해 보이는군.”

“아, 얼마 전에 레벨 업을 끝마쳤거든. 백 레벨이 되니까, 죽이기 전과 다름없는 상태로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하더구나. 그런데 넌... 아니... 로저는 어쩌다 죽은 거냐? 그놈이 죽을 수도 있었구나.”


‘무협지에 나오는 생강시 같은 거구나! 완전 대박인데! 그런데... 이 새끼 말투나 느낌이 나랑 너무 닮았는데... 그럼... 이 새끼도 정상은 아니겠네.’


“아, 넌 숲에 처박혀 있느라 못 들었겠구나. 드레이시 가문 자체가 쫄딱 망했다. 반역으로 몰려서 험프리와 거버스에게 몰살당했지.”

“거버스? 아! 그 늙은 마법사! 역시 마법이 최고구나. 그냥 마법을 고를걸... 끝까지 고민하다가... 하아... 후회되는군. 그런데 너는 무슨 능력을 골랐기에 꼴이 그러냐? 손에 든 그 연필 모양의 몽둥이는 어디다가 쓰는 거고?”

“아, 이거...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이벤트 소품 같은 거다. 신경 쓰지 마라. 난 강탈 골랐다. 그런데 네가 우리들 중의 첫 번째 같은데, 저승에서 능력 고를 때 말이다. 능력 몇 개 있었냐?”

“내가 고른 사령술까지 백 개가 있었다. 그런데 너 강탈 골랐다고? 이야! 과연 로저와 잘 어울리는 살인마구나, 너!”

“네놈 능력은 뭐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딴 소리를 하는 거냐? 번개 마법 없었냐? 설마 번개 마법이 있는데도 사령술을 고른 거냐?”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걸 뭐 하러 고민해? 너 졸개들 북적거리는 걸 좋아하는구나. 전생에 조직범죄 종사자였냐?”

“......”

“미친... 너 정말 범죄 조직에 있던 놈이냐? 대박! 영화에서만 봤지,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너 전생에 국적 어디였냐? 이탈리아? 러시아?”

“콜롬비아다...”

“... 씨발... 대박!! 카르텔? 너희 잠수함도 있다면서?”

“아니... 난 그 정도는 아니고, 물건 받아서 지역에서 유통시키는...”

“아아...”


말투와 눈빛이 비슷한 두 놈이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콜롬비아인의 경우, 반년을 넘게 산 사람을 구경도 해 보질 못했다.

그러니 하지운을 통해, 숲 밖의 소식을 듣는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운도 반갑기는 매한가지였다.

굳이 귀찮게 고문할 필요 없이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니, 즐겁지 않을 리가 없었다.


사실 하지운은 로저와 달리, 비위가 약하고 결벽증이 심해, 고문을 그렇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단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로저와 하지운 사이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필요하면 고문도 서슴없이 해 버리는 것이다.


남자 둘이서 야밤에, 불빛도 없는 숲속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

이 기괴한 장면은 둘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심전심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둘 모두 담소가 끝나는 대로, 상대방을 대번에 죽여 버릴 생각들을 품고 있었다.

이미 서로가 서로의 눈에 시체로 보였다.

시신 앞에서, 굳이 삼가야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솔직담백한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지니, 금세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하하. 정말 즐거운 대화였다. 난 더 이상 네게 궁금한 것이 없는데, 너는 어떠냐? 더 물어볼 것이 있느냐?”

“아무리 쥐어짜도 더는 물어볼 것이 없구나. 매번 이렇게 깔끔하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감사의 뜻으로 최대한 고통 없이 단숨에 죽여주마.”

“나도 같은 마음이다. 내 소환물들이 네놈을 산 채로 뜯어 먹기 전에, 먼저 목을 쳐 주마.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2 마왕의 길 (13) 23.11.16 56 1 10쪽
111 마왕의 길 (12) 23.11.15 63 1 10쪽
110 마왕의 길 (11) 23.11.12 63 2 10쪽
109 마왕의 길 (10) 23.11.10 70 2 10쪽
108 마왕의 길 (9) 23.11.08 67 2 11쪽
107 마왕의 길 (8) 23.11.06 66 2 11쪽
106 마왕의 길 (7) 23.11.04 63 2 10쪽
105 마왕의 길 (6) 23.11.01 69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70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67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68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81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78 3 9쪽
99 정진 (12) 23.10.19 68 2 10쪽
98 정진 (11) 23.10.18 75 2 9쪽
97 정진 (10) 23.10.15 74 3 10쪽
96 정진 (9) 23.10.12 78 3 9쪽
95 정진 (8) 23.10.10 84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89 3 9쪽
93 정진 (6) 23.10.06 84 4 9쪽
92 정진 (5) 23.10.04 76 3 9쪽
91 정진 (4) 23.10.02 79 4 10쪽
» 정진 (3) 23.10.01 88 3 9쪽
89 정진 (2) 23.09.29 90 3 9쪽
88 정진 (1) 23.09.27 95 3 9쪽
87 인연 (14) 23.09.25 98 3 10쪽
86 인연 (13) 23.09.23 92 3 10쪽
85 인연 (12) 23.09.21 94 3 10쪽
84 인연 (11) +2 23.09.20 100 3 10쪽
83 인연 (10) 23.09.18 111 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