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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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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1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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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06
추천수 :
574
글자수 :
1,110,448

작성
23.10.02 22:39
조회
78
추천
4
글자
10쪽

정진 (4)

DUMMY

90화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굉음을 내며, 크고 단단한 무언가가 희끗거리며 지나갔다.

짙은 회색빛의 거대한 물체가 지나간 자리에는, 머리통을 잃어버린 근육질의 괴한들이 두 팔을 휘젓고 있었다.


머리가 터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은 놈들이 다시 꿋꿋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덩치들의 투혼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에는 크고 단단한 것이 덩치들의 하반신을 뚫고 지나갔다.

놈들의 골반이 박살 나면서, 양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머리도 없고 다리도 없으면, 놈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내내 궁금하던 하지운이다.

역시 놈들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두 팔로 열심히 바닥을 기어 왔다.


사실 기어 왔다기보다는 뛰어왔다.

두 팔을 다리처럼 놀리면서, 상체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운의 입이 초승달처럼 벌어졌다.

표정만 보면, 극도의 쾌감에 복상사라도 할 것 같은 낯짝이다.

잠시 후 자신이 차지하게 될 능력을 감상하며, 행복감을 주체 못 하고 있는 중이다.


장르 소설 작가 출신의 소시오패스가 불사의 군단을 지휘하는 자신의 늠름한 자태를 상상했다.

미친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현실이 되어 갈 때마다, 하지운은 벅찬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결국 눈물 한 방울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또다시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는 듯한 하지운을 바라보며, 콜롬비아인이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뭐지? 이 새끼... 정신병자인가? 내 고객으로 딱인데... 죽여야 하다니, 정말 안타깝군...’


잘하는 게 마약 유통인 전직 마약 딜러 호르헤 군은 이 동네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할 계획이었다.


살짝만 봐도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 하지운을 보며, 냉철한 콜롬비아인은 헛헛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데, 이 동네 최고 갑부의 후계자로 추정되는, 놈을 당장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도 가슴 아팠던 것이다.


중증 약쟁이로 만들어 빨대를 꽂아 버리면, 어딘가 꿍쳐 놓았을 드레이시의 재산을 티끌도 안 남기고 다 빨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르헤 군은 그런 짓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해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기에, 더욱 애처롭고 처연하면서도 찬란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로저 호소인의 정신 나간 퍼포먼스 때문에, 생포라는 단어는 일찌감치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생포는 포기했지만, 콜롬비아인의 마음속에 딱히 걱정이 더해지지는 않았다.

로저 호소인도 결국은 사람인데 체력이 고갈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의 군대는 아직도 머릿수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호르헤 군이 바보라서, 번개 마법을 팽개치고, 사령술을 택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알고 보면 사령술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일단 전투 중에는 마력 소모가 거의 없다.

언데드를 만드는 과정 중에만 마력이 소모되고, 이미 만들어진 언데드를 굴릴 때는 극소량의 마력만 필요로 한다.


거기다 레벨이 백을 넘기면, 굴릴 수 있는 언데드의 마릿수에 제한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린다.

제 역량만큼 끌고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마릿수도 자신의 마력 총량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지배력에 의해 결정된다.

강인한 의지력만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천수만의 시체 군단을 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 냉혹한 남미 사나이가 운용할 수 있는 최대 마릿수는 삼백이다.


이 삼백이라는 수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이 머릿수면 탤머스주 같은 지자체 서너 개가, 전력을 쥐어짜야지만, 겨우 막아 낼 수 있을까 말까 한 숫자다.


철저히 상식에 기반하여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호르헤 군의 판단력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단지 하지운의 경지가 몰상식한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이 순간 하지운은 드레이시 가문의 가전무예를 펼치며, 지극히 상식적인 대응을 하고 있었다.

다수의 언데드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말뚝 달린 쇠사슬을 꺼내 팔방을 신나게 타작 중이다.

이보다 상식적일 수가 없는 장면이다.


사실 언데드들을 신나게 때려 부숴 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술사가 약간의 마력만 소모하면, 금세 다시 멀쩡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죽은 자를 굴려 먹는 사령술의 진정한 묘미인 것이다.


사령술로 소환된 좀비들을 소멸시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불에 태워서 정화시키면 된다.

이런 울창한 숲속에선,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른 재주는 없냐? 그냥 다짜고짜 달려드는 거 말고 다른 참신한 아이디어는 없는 건가? 같은 방식의 공격만 반복되니까 슬슬 질린다.”


금세 싫증이 나기 시작한 하지운이 업데이트를 요구했다.

물론 손발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말이다.


하지운의 요구에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던 남미 사나이가 입을 열었다.


“지쳤으니 잠시만 쉬게 해 달라는 간청을 참으로 무례하게 하는구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려도 들어줄까 말까 한 상황인데. 정 힘들어서, 더 못 싸우겠으면 자결해라. 기다려 주마. 그 정도 자비는 베풀어 줘야지.”

“됐다. 그냥 내가 흡수해서 혼자 연구할게. 어차피 사람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혹시나 했다. 넌 뭐 색다른 아이디어가 있지 않을까 했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미 사나이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왼팔의 끝에는 당연히 왼손이 달려 있었고, 그 손에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단검을 구해 왔는지, 쇠말뚝으로 소머리 좀비들을 쥐어패는 하지운의 뒤통수를 향해, 쉬지 않고 단검을 집어던진 호르헤 군이었다.

그래서 하지운은 본색을 드러내자마자, 일단 이 남미 사나이의 팔부터 잘라 버렸다.

중간중간 정신이 사나워, 짜증이 머리끝까지 북받쳐 있었던 것이다.


그걸로는 영 부족한 것 같아, 호르헤 군의 양 무릎까지 염동력으로 날려 버렸다.

왼손잡이 검사에게 오른팔만 남겨 주고,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버린 하지운이 쇠말뚝을 수납장으로 던져 넣었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좀비들의 모가지에 가시로 만든 주사 바늘을 꽂아 넣었다.

동료 좀비들이 갑자기 돌처럼 굳어진 채 자신들의 진로를 방해하자, 뒤를 따르던 놈들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머리 위로 덮쳐 봤자, 하지운에게는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주사 바늘로 사용할 터럭은 사실 머리통에 가장 많이 달려 있으니 말이다.


앞 열에 있던 놈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리기가 무섭게, 뒤에서 대기 중이던 놈들이 알아서 가시에 처박혀 주었다.

놈들을 지휘 통제해 줄 우두머리가 사지 중 삼지가 날아가 버린 채,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있는 중이다.


좀비 놈들의 움직임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돌적인 소머리 놈들의 행동거지 딱 그 자체다.

놈들을 통제하는 술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 주는 모습이었다.


하지운의 생각대로였다.

좀비 놈들을 소멸시키겠다고, 숲 한가운데서 불을 지르는 또라이 짓을 할 필요는 애초에 없었다.


마법이 되었든 사령술이 되었든 그 어떤 능력이라도, 일단 발동을 시키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좀비 놈들의 체내에도, 시체를 지탱시켜 줄 에너지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만약 누군가 놈들의 몸속에 담겨 있는 에너지를 뽑아 가 버린다면, 언데드고 나발이고,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당장 썩어 문드러진 시체로 되돌아가 버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운의 예상대로 기력을 빨린 놈들은, 더 이상 재소환되지 못하고, 가루가 된 채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물론 시신 속에 고여 있던 힘을 흡수하면서, 하지운의 마음속에 꺼림칙함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사전에 상담사에게 문의해 보았다.


“자기야, 언데드 몸속에 있는 기력도 뽑아 먹어도 돼?”


「안 되는 건 아닌데. 굳이?」


“있잖아... 그거 많이 빨아 먹으면 말야. 혹시... 건강에 지장 있는 건 아니지?”


「아... 이 새끼... 뭘 물어보나 했다. 걱정 마. 건강에 딱히 문제 될 건 없어. 특히 네가 지금 걱정 중인, 발기 부전이나 정력 감퇴 같은,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안심해. 그런데 너 이런 고민까지, 여친인 나와 상담하는 게 맞는 거야?」


“그럼 어떡해? 내가 이런 걸 물어볼 만큼, 믿고 의지하는 존재가 너밖에 없는데. 그럼... 너 말고 다른 고민 상담할 존재를 만들라는 말이야? 지금 그런 뜻으로 말한 거야?”


「아... 아니야! 내가 경솔했어! 내가 말을 잘못했어! 지운아, 앞으로도 특히 이런 고민들은 무조건 나한테만 얘기해! 내가 정성을 다해서 상담해 줄게. 절대 다른 존재 따위는 만들 생각도 하지 마! 알았지? 자기야, 알아들은 거지?」


어찌 되었든 찝찝함을 해소한 하지운은 이백삼십여 마리의 소머리 좀비들을 모두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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