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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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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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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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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
글자수 :
1,110,448

작성
23.09.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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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인연 (13)

DUMMY

85화


“저런... 의도치 않게 당신들 도움을 받아 버린 꼴이 되었군.”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점에 대한, 백작의 날카로운 지적은... 뭐랄까, 정말이지 따끔했소. 그 보답으로 나도 그대의 문제점을 콕 집어서 가르쳐 주지.”

“롱그레이 공... 굳이 안 그러셔도...”

“그대의 문제점은 하찮은 것을 진심으로 하찮게 여긴다는 것이오. 너무 순수하게 무시하더군. 대습지에서 그대가 부려 먹었던 자들이 그랬다더군. 끝까지 자신들의 이름을 묻지 않더라고. 원, 투, 쓰리, 포라고 불렀다던데... 사실이오?”

“그렇소.”

“크랜필드의 영주 말이오. 그대가 죽였잖소.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의 이름을 한번 말 해 보시오. 이름 듣는 것 좋아하지 않소. 나도 한번 들어 봅시다. 죽인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잖소.”

“......”

“아니! 그새 잊어 먹은 것이오?”

“피, 피어스 경이던가...”

“다행이군. 블루베리의 피넛츠나, 라즈베리의 피너스가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소. 그자들이 말하길, 그대가 피어스 경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더군. 별소리가 다 나왔었다는데...”

“허어! 아주 죽도록 팼나 보오.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아냈구려.”

“때리긴 누굴 때려? 시중들 아이들을 붙여 주고, 술을 진탕 먹인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알아낸 것들인데. 모두가 다 당신처럼 망치부터 꺼내는 줄 아시오?”

“아니! 그 새끼들이 뭘 잘했다고! 술 시중을 들어? 그 네 놈을 잘 접어서, 바람개비를 만들었어야지!”

“하아... 사람으로... 도대체 뭘 만들라는 거요? 늪에서 도마뱀 낚는 미끼로 충분히 굴려 먹었다면서? 이게 문제라는 거야!”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을 어쩌라는 거요?”

“우리가 한 해에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아시오?”

“내가 어찌 알겠소? 우리 가문의 연간 수익과 맞먹을 거라는 추측만 했었지.”

“우리가 아주 조금 더 많소.”

“미치겠군! 정보 장사가 그렇게 벌이가 좋다고?”

“왕성에서 경쟁 중인 자들이, 서로의 약점을 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까지 하는지 아시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궁정의 귀부인들께서, 신사분들의 생식기 크기에, 극진한 관심을 기울이시는지 아시오?”

“푸흐흑... 숲을 이 잡듯 뒤져서, 괴물들을 잡아 와... 가죽 벗기고... 피 뽑고... 뼈다귀 추려 내고... 또 괴물 죽이고, 또 가죽... 이런 생식기 씨발!”

“그 하찮은 정보들이 어떻게 획득되는지 아시오? 그대처럼 하찮은 것들을 진정으로 하찮게 여기시는 분들 덕분에, 팔아먹을 거리가 멈추질 않고 공급되는 것이오.”

“하아, 그러니까! 천것들 앞에서 입조심하라는 것 아니오?”

“종교 세력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비단 그대만의 문제가 아니지. 솔직히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니까. 제국이 바다에 잠겨 버린 이유가 ‘법왕이 세속의 권력 다툼을 주도했기 때문이다.’라고 모두들 믿고 있으니. 법왕이 제국을 장악하자마자, 이를 괘씸히 여기신 ‘그분’께서 신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말이오.”

“설마... 공께서 제국 멸망의 진실을 알아내신 것이오?”

“뭔 소리요? 그럴 리가 있겠소?”

“아니, 그러면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요?”

“아무리 성직 제후령이 폐쇄되고, 대주교나 대수도원장도 없이, 지금은 그저 예배당의 신부들만이 성직자의 전부라고 해도 말이오. 아무리 그들이 촌구석의 혼례, 장례나 주관하는 걸로 일생을 보낸다 해도 말이오.”

“......”

“악마는 어떤 용도로도, 절대로 입에 올리면 안 될 말이지! 그들이 합심하여, 그대를 비롯한, 권능을 가지고 부활한 자들을 잡아 죽이는! ‘신성한 군대’라도 소집하자고 설쳐 대면, 반대할 자가 있을 것 같소? 왕인들 그들을 억누를 수 있겠소? 잠깐... 왕이 그들을 통제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더 부추기면 부추기지.”

“뭐, 좀 피곤하기는 하겠네...”

“이거 봐! ‘까짓것, 다 죽이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튀어나오네.”

“롱그레이 공! 독심술도 익히셨소?”

“그럴 리가 있겠소? 그대의 솔직담백한 안면 근육이 거짓 없이 속마음을 표출하고 있지 않소? 그대는 본래 날 적부터 표정을 감춰 본 적이 없는 거요?”

“나야말로 그럴 리가 있겠소? 그저 심성이 티 없이 질박하고 천진난만하여, 속마음을 잘 감추지 못하는 것뿐이오.”

“그대의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에 장단 맞추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소. 터무니없는 소리는 자제합시다. 그대가 그런 농담을 하면 재밌기보다는 너무 무섭소. 특히 폭삭 늙은 나 같은 이들에게는, 심적인 타격이 훨씬 더 크오.”


노인의 증손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홀에서 나가기가 무섭게, 하지운은 도로 테이블로 되돌아가 앉았다.

자신과 노인의 설레는 키 차이 때문에, 도저히 일어서 있는 상태로는,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노인의 키가 절대로 작은 편은 아니었다.

대충 봐도 백팔십은 되어 보이는데, 허리가 굽어드는 고령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노인은, 열일곱에 집안이 망하는 바람에, 괴물 피를 먹지도 못했다.


별명이 ‘긴 다리’인 노인이 하지운 앞에 섰는데, 하필 노인의 눈높이에 하지운의 그것이 위치했다.

노인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가, 허리와 목이 아파, 잠시만 몸을 펴면 상황이 굉장히 거시기해지는 것이다.


노인의 안구 건강을 위해 잽싸게 의자에 앉아 줬다.

하지운의 인성 수준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최고의 배려를 보인 것이다.


“내가 오늘은, 평소와 달리, 얼마나 자비롭고 관대하게 굴고 있는데! 어찌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오? 나도 상처를 받소!”

“우리 애들이 겁도 없이 먼저 덤빈 것이라, 할 말은 아니긴 하나... 일흔 놈이나 되는 아이들을 다 죽여 놓고, 관대했다는 것이오?”

“그건 어제잖소?”

“아아...”

“노령의 그대가 오후 내내 말을 달리고는, 새벽까지 침소에 들지도 못하고 있으니 많이 힘드실 거요. 얼른 대화를 마치고 푹 주무셔야겠소. 날짜 감각이 없는 것을 보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닌 듯해 보이오.”

“백작의 진심 어린 염려에 감사드리오. 그럼 본격적인 대화에 임해 봅시다. 좀 전에 그대의 손에서 불덩어리가 튀어나왔을 때 말이오. 내 눈알도 같이 튀어 나갈 것 같았소. 거기에다 우리의 도움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그대의 진솔한 고백에 나야말로 큰 상처를 받았소. 솔직히 그대가 한 말에, 딱히 틀린 구석이 없지 않소. 반박할 수가 없어서, 가슴이 저미는 듯했소.”

“저런... 내가 말을 너무 솔직하게 했나 보오.”

“그런데!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말이오. 당신이 생각보다 훨씬 더 결점이 많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뭐요? 이 노인네가!”

“고강한 무예에 비해, 지나치게 자잘한 흠이 많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칠푼이 같다고 하면 되려나? 아주 잘되었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쪽에서 그대에게 팔아먹을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는 말이오. 그대는 두 발 달린 노다지요!”

“이보시오, 영감! 유사 이래 혓바닥을 놀리다가 죽은 인간 중에, 거짓말했다고 죽은 놈이 몇이나 될 것 같소?”

“......”

“죄다 참말을 하다가 죽은 자들뿐이오. 거짓말한 놈들은 오히려 명을 늘렸지. 진실을 입에 올리는 일은, 그만큼 위험한 짓이라는 거요. 내가 오늘 관대한 만큼, 내일이나 모레쯤, 그에 상응하는 지랄이 있을 것이오.”

“상관없소! 오늘 내로 그대와의 계약을 전부 체결하고, 지체 없이 달아날 거요.”

“이놈의 노인네가... 당신이 오래 사는 비결이 있었군!”

“브레비어! 캔트니! 피츠페인! 레셀! 맬럿! 다 외웠소?”

“그렇소만... 뭐요, 이들은?”

“아니, 아까부터 이름 불러 달라면서? 누구긴 누구야?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간부들이지. 원래는 열 놈이었는데, 이래저래 죽고 나까지 여섯 남았소. 우리 아래 급으로 한 백 놈 가까이 있는데, 그놈들 이름까지 다 읊어야 하오?”

“됐소. 자잘한 것들까지는 필요 없소. 추후에라도 그 안에서 죽일 놈 나오면, 사전에 당신들에게 양해만 구하면 될 것 아니오?”

“좋겠소, 강해서. 세상만사가 편하겠구려.”

“부인은 하지 않겠소. 그런데... 정말 한 놈도 없네. 당신들 뭐야? 무슨 정보 길드가 이렇게 게을러? 왕실을 제외하면 가장 큰 가문이 망하는 마당에, 아무 수작질도 안 했다고? 당신들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정말 주야장천 남의 사타구니만 훔쳐보고 다니는 거야? 어이가 없네. 최소 두 놈은 죽이고 시작할 줄 알았는데...”

“이놈 봐라! 정말 의심했네! 야 이놈아, 내가 아까 분명히 말했잖느냐! 우리는 일체 관여 안 했다고.”

“장사꾼 말을 누가 믿어, 이 영감탱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들이.”

“그건 잡상인들 얘기고! 우리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천금과 같은 거상들이다! 신뢰가 곧 생명이라고!”

“웃기시네. 비대한 노름꾼 집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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