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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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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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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448

작성
23.09.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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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인연 (7)

DUMMY

79화


결벽증 환자에게 염동력이 생겼다.

이제는 직접 적의 신체에 주먹을 박아 넣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운의 조증에 불을 지핀 가장 치명적인 이유였다.

그동안 얼마나 찝찝했는지 모른다.

거기에다 원거리에서 주먹질이 가능해지니, 격투 중에 몸에 피가 튈 걱정도 덜해졌다.


너무 기뻐서 정신을 못 차리다가, 하마터면 기력을 흡수하려고 다리만 작살내 놓은 놈들을 잊어버릴 뻔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드는 생각에 현타가 왔다.

염동력이 생기면 뭐 하나.

기력 흡수 때문에, 결국 적들의 생살에 접촉을 해야 하는데.


다시 하지운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기력 흡수는, 무조건 자신의 신체 일부가, 상대의 맨살에 닿아야만 발동이 되는 능력이다.


열심히 기고 있는 놈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가장 뒤에 쳐져 있는 놈에게로 다가갔다.

하지운의 발자국 소리에, 기겁을 하는 놈의 목덜미에 오른손을 다소곳이 올려놓았다.

아니, 올려놓으려 하던 도중에 갑자기 아이디어 하나가 번쩍 떠올랐다.


살짝 숙였던 몸을 도로 세우고, 놈의 엉덩이를 향해 오른 손등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손등의 털 한 가닥을 가시로 만들었다.

가시를 주사 바늘처럼 놈의 엉덩이에 박아 넣고는, 기력 흡수를 발동해 보았다.


가시도 하지운의 신체의 일부인 털이 변형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신체에서 발사되지 않고 달려 있는 상태라면, 가시 또한 신체의 일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차피 아성 내에 넘치는 것이 실험체다.

남녀 합쳐서 쉰넷이나 되는데, 부담 없이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이게 되네... 씨발... 너무 좋아서 미쳐 버리겠네...’


진실로 흡족하여, 배를 잡고 허파에 바람이 든 놈처럼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그러다가 기 빨리고 있던 놈을 내려다보고,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기겁을 했다.


“에구머니나! 누구세요?”


놈이 있던 자리에 피골이 상접한 쭈글쭈글한 산송장이 하나 엎드려 있었다.

피부를 보니 족히 백 살은 넘는 인생 대선배님으로 보였다.


놈이 고개를 젖혀 하지운의 물음에 친절하게 대꾸를 해 주려던 순간, 놈의 온몸이 폭파 해체된 건물처럼 주저앉아 버렸다.

걸치고 있던 가죽 갑옷의 무게를 못 견딘 것이다.


가벼운 맛에 입는 것이 가죽 갑옷이다.

위드링튼의 로저가 소머리 괴물을 개작살낸 이후, 브리갠트의 패션계에 혁명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금속을 소재로 하는 방어구 일체가 현장에서 급격한 속도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신 그 자리를, 소머리나 여우머리의 가죽이라는, 첨단 경량 신소재를 사용한 전투복이 대체하였다.

그런 천연 경량 갑옷의 무게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로, 육신의 강도가 약해졌다는 말이 된다.


놈이 뒤집어쓰고 있던 가죽 갑옷의 틈 사이로 부스러진 뼛조각과 말라비틀어진 살점, 꼬질꼬질한 각질 덩어리 따위가 비집고 새어 나왔다.

계속 보고 있으니 밥맛이 훌쩍 달아났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승아가 차려 준 진수성찬을 모조리 압수당했다.

입에 맞지도 않을 이곳 음식들을 먹을 생각에, 착잡한 마음을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몇 년이나 더 굴러먹을지 알 수도 없는 마당에, 밥맛도 도주하셨고, 하지운은 소식하는 습관이나 들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음식물 섭취는 최소로 줄이고, 필수 영양소 획득은 기력 흡수로 갈음하는 게 나아 보였다.

가만 보니 사만이라는 숫자를 금세 채울 수도 있겠다는 섬뜩한 생각을 하는 하지운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처럼 양 손등을 앞으로 향한 채, 놈들의 뒤를 따랐다.

괴상한 포즈로 어슬렁거리며 쫓아오는 하지운을 보고, 사방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석조 건물이라 그런지, 서라운드 음향 시스템이라도 구현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수십 명이 공포에 질려서 토해 내는 비명 소리가 하지운의 고막에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전달하였다.


진저리를 치던 하지운이, 팔꿈치부터 손가락 마디에까지, 최대한 많은 수의 가늘고 긴 가시를 올려 세웠다.

급하게 먹다가 체할 수도 있지만, 우물쭈물하다가 고막에 손상이 오는 것이 더 걱정되었다.


한 번에 스무 명의 몸에 급조해서 만든 주사 바늘을 꽂아 넣었다.

기겁을 하면서 몸부림치는 놈들 모두에게 동시에 기력 흡수를 시전하였다.


이번에는 딴짓하지 않고 제대로 시간을 재 보았다.

다 빨아먹는데 이십 초도 걸리질 않았다.

속으로 십팔까지 세니, 육신이 주저앉는 놈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 숫자가 채 이십이 되기도 전에 나머지 열아홉 놈이 전부 연쇄 붕괴 해 버렸다.


이 짓을 두 번만 더 반복하면, 나머지 용사들도 전부 지저분한 찌꺼기로 변형시켜 버릴 수 있다.


동료들이 그 꼴이 되는 것을 보고, 용사들이 거의 악을 쓰면서 계단을 굴러 버렸다.

아픈 것도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계단을 피와 토사물, 똥오줌으로 도저히 사람이 밟고 지나갈 수가 없는 상태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다고 못 쫓아갈 하지운이 아니었다.

주먹질 몇 번으로, 침실의 한쪽 벽을 통째로 철거해 버렸다.


“아우, 씨발! 이제 좀 살 거 같네. 코가 썩는 줄. 얼른 마저 정리하고, 물청소 한 번 해야지. 옘병, 바닥 보고 있으니까 토할 거 같네.”


침실 바닥을 둘러보면서 구시렁거리던 하지운이 뚫린 벽 밖으로 히뜩 몸을 던졌다.

참고로 이곳의 높이는 지상으로부터 이십 미터가 조금 넘는다.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내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죽을힘을 다해 홀까지 기어 내려온 전사들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저것만 열고 아성 밖으로 나가면, 왠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들 희망에 찬 얼굴로 다시 열심히 기어 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통짜 원목에 쇠판을 덧대어 만든 그 두꺼운 문짝이 박살이 났다.

박살이 난 채 날리는 문짝의 파편들 사이로, 거대한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용맹한 전사들의 입에서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괴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오, 시끄러. 이 동네에서도 귀마개 파나? 조선소 소음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괴물 피를 먹고 강화된 삼십여 명의 인간들이 죽음을 직감하고 내지르는 비명의 합창이었다.

석재로 마감이 된 넓은 홀에서 목청껏 질러 대는 불협화음에, 소음성 난청이 걱정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하지운이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고통 없이 죽여 드릴 겁니다. 여러분들은 고문 안 해요. 그러니 울지 마시고 심호흡들 하세요. 그러다 숨넘어가겠어요. 거기 용사분, 토하지 마세요. 제가 다 치워야 하잖아요. 자! 다들 진정하시고, 엉덩이 내미세요. 따끔하고, 이십 초만 꾹 참으면 됩니다. 다들 아셨죠?”


비명 소리가 더욱 우렁차졌다.

곧 죽어도 살려 주겠다는 말은 안 하는 솔직한 하지운이었다.


“이런 씹새끼들이... 고문을 해 달라는 건가? 도저히 사람 마음은 알 수가 없네.”


그냥 꾹 참고, 극심한 소음 속에서 기력 흡수를 시전하였다.

일 분도 안 돼서 조용해졌다. 하지운이 마지막 남은 생존자에게 다가갔다.


“토머스의 피붙이들이랑 성에서 일하던 놈들은 다 어쨌냐? 내가 오기 전에 피신시켰냐?”

“......”

“너 루지먼트 소속이지? 네가 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쇠말뚝들을 네 귀여운 아가씨의 주둥이와 항문에 쑤셔 박는 수가 있어. 침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그네스 생각도 해야지.”

“네, 각하! 모두 피신시켰습니다!”

“왜 그랬어? 심부름할 놈이 하나도 없잖아. 하인이라도 한두 놈 남겨 뒀으면 좋았을걸. 내가 그런 천것들까지 죽일 거라 생각한 거야? 어이가 없네.”


발목이 잘린 쌍검녀를 염동력으로 머리끄덩이를 잡아 올린 후, 홀 밖으로 끌고 나갔다.

아성 밖의 안뜰로 나가니, 깊이가 조금 얕긴 해도, 개 한 마리 정도는 족히 묻을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자신을 산 채로 파묻을 거라고 오해를 한 것인지, 쌍검녀가 갑자기 몸부림을 치면서 발광을 하였다.

다행히 검 두 자루는 하지운의 염동력에 애저녁에 박살 났다.

물론 그녀의 입장에서 다행이었다.


몸부림치는 그녀를 붙들고, 하지운이 전력을 다해 바닥을 찼다.

그리고 너무 높이 뛰어올랐다.

침실이 아닌 아성의 지붕에 착지해 버렸다.

민망해서 쌍검녀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성의 모서리에 붙어 있는 감시탑에, 문짝이 달려 있었다.

문짝을 대충 걷어차 부수고 쌍검녀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침실 앞에, 성주에게 보고를 하러 올라온 가신들을 위한, 대기실 용도로 만들어진 공간이 있었다.

그곳 바닥에 징그러운 살 껍질들로 떡칠이 된, 스무 벌의 가죽 갑옷이 널려 있었다.


대충 발로 차서 벽 쪽으로 몰아 놓고 침실로 들어서니, 미오 짱이 넋이 나간 얼굴로 다소곳이 결박 의자에 앉아 하지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겁을 줬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살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말 손톱만큼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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