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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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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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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5,903

작성
23.06.12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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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최초의 전사 (6)

DUMMY

6화


기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못난 놈이라고 귓방망이라도 한 대 제공했을 텐데.

그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앨런은 다급히 몸을 돌려 백작의 팔을 잡았다.

그러고는 호위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말 가져와, 이 새끼들아! 백부님과 영주들 모시고 엑시스턴으로 가!”


그러자 호위기사 몇 놈이 백작의 지시도 듣지 않고 마구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야, 뭐 하는 거야?”

“큰아버지, 여기 있으면 안 돼. 큰아버지가 여기서 잘못되면 우리 가문 무너지는 거 시간문제야. 다섯 마리면 저딴 목책 끼고 무슨 짓을 해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어!”

“그래서 나더러 부하들 팽개치고 도망을 쳐서 가문의 이름에 똥칠을 하라는 거냐?”


백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위기사 두 놈이 백작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고 백작을 들어 올리려 하였다.

옆에는 어느새 말고삐를 잡은 기사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안 놔? 이 새끼들아!”

“백작, 뭐 하시오? 어서 말에 오르시오!”

“조막만한 뒷문으로 빠져나가야 하오! 지체할 시간이 없소!”


그새 세 명의 영주들도 말에 탄 채 호위병들을 이끌고 도착해 있었다.

백작도 더 이상 호기를 부릴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잠깐 팔 놔봐라.”


백작의 침착한 말투에 기사들이 황급히 팔을 놓고 송구한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앨런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주변에서 듣든 말든 해야 할 말을 쏟아 냈다.


“이곳 수비대만 남기고 병력을 전부 엑시스턴으로 물리십시오. 제가 남아 수비대와 시간을 끌겠습니다! 이곳 수비대의 가솔들에게 꼭 합당한 보상을 해 주십시오!”


잠시 뜸을 들인 후 속삭이듯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예배당의 그 아이 놓고 가시면 안 됩니다.”


앨런은 수비대의 가솔들에 대한 보상을 말할 때는 망루 위에 있는 놈들까지 다 들으라고 있는 대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백작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백작은 앨런의 멱살을 잡고 자신의 코앞까지 잡아당긴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큰놈이고, 예배당 안의 그놈이 작은놈이었으면 난 지금 당장 여기서 죽어도 안심하고 웃으면서 죽었을 거다.”

“큰아버지...”


백작의 동생인 앨런의 아비 볼드윈은 이십 년도 전에 괴물 쫓으러 나갔다가 죽었다.

앨런과 그의 형제들은 백작의 성에서 백작의 자식들과 정말 자식처럼 키워졌다.

백작은 그에게 그냥 아비였다.


“야, 어서 각하를 모셔!”


앨런은 호위기사들에게 소리치고 백작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성문 쪽 계단으로 향했다.

저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오는 소머리들이 언제까지 이런 신파극을 다 기다려 줄지 알 수 없었다.

빨리 전투 지휘를 시작해야 한다.

거기다 수비병들 앞에서 질질 짜기라도 하면 이놈들 사기도 바닥까지 꼬라박힌다.


“천한 놈이 드릴 말씀은 아니오나 눈물 없이는 못 보겠군요. 허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갑자기 들린 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크게 고함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모든 사람들의 귓속에 그의 목소리가 꽂힌 듯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굳어 버렸다.


“야, 저놈이 들 만한 크고 단단한 거 가져와!”


백작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그제야 기사들도 알아듣고 다급하게 움직였다.


“아, 그것도 그냥 두십시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그냥 편하게 구경이나 하십시오.”


로저는 꼭 소머리가 하던 것처럼 어슬렁거리며 한쪽 구석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열흘 전에 소머리 놈의 팔다리를 묶기 위해 썼던 사슬 달린 쇠말뚝 앞으로 다가갔다.


‘뭐하지? 아, 저걸 뽑으려는구나. 근데 저게 혼자서 용쓴다고 뽑히나? 아, 저게 저렇게 쉽게 뽑히는 거구나.’

‘뭐하지? 아, 하나 더 뽑는구나. 그렇지, 솔직히 무기는 양손에 들어야 폼이 나지.’


뭔가 다들 홀린 듯하다.

꿈속을 헤매는 듯한 표정들이다.

로저는 쇠말뚝이 달린 사슬을 양손에 감고 쇠말뚝을 질질 끌면서 성문 앞까지 산보하듯 걸어갔다.

그러고는 성문 옆에 서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수비대장 존에게 물었다.


“형, 문 안 열 거요?”

“아, 미안. 내가 좀 정신이 없지?”


바깥에 소머리가 다섯이나 와 있는데 다들 말릴 생각도 안 하고 홀린 듯이 문을 열고 있다.

빨리 못 열어 줘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목책 앞에 와서 집 보러 온 부동산 아저씨들처럼 둘러보던 소머리들은 천천히 내려오는 도개교를 보면서 진심으로 어이없음을 느꼈다.


‘보통 이럴 땐 급하게 문을 닫지 않나? 잘 닫아 놓은 문을 굳이 여나?’


지들도 꼴에 유사인류라고 사람 흉내를 내며 고민에 빠졌다.


자기들 종족 중에서도 유난히 까부는 놈이 한 놈 있었다.

여기저기 잘 쏘다니는데, 요 근래 들어 한동안 안 보인다.

안 보여도 너무 오래 안 보여서 흔적을 쫓아 와봤더니 맛 좋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 새끼, 이런 걸 봤으면 일단 우리에게 먼저 알렸어야지. 제 혼자 처먹으려 했네. 지만 입인가.’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흔적이 더 이상 없다.

뭔가 이상해서 문 앞에서 고민 중인데 문이 열린다.

그러고는 분명 생긴 것은 인간인가 뭔가 하는 종족 같은데 정말 느낌이 이상하게 친숙한 놈이 나왔다.


이상하게 크다.

분명 자신들보다는 작지만 너무 크다.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저 이상한 놈의 동족들을 보니 키만 해도 머리 서너 개 정도는 더 커 보인다.

몸통이나 팔다리 굵기만 봐도 제 동족들보다는 자신들과 더 가까워 보인다.


‘일단 패놓고, 하나하나 뜯어보면 알겠지.’


이 이상의 고민은 그들의 뇌가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


‘근데 쟤는 손에 뭘 들고 자꾸 돌리고 있는 거야? 정신 사납게.’


로저는 도저히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소머리가 무려 다섯인데 이상하게 같잖다.

양손에 감은 사슬을 천천히 돌리면서 한 놈씩 위아래로 훑어보는데 그냥 키는 좀 큰데 싸움은 못하는 동네 형들 같다.


로저는 원래 어릴 때부터 싸움을 잘했다.

키도 큰 편인데 몸도 날래서 저보다 나이 많은 놈들도 곧잘 밟아 버리곤 했다.

거기다 깡도 워낙 세서 동네에서 유명했다, 개차반으로.


오 년 전 백작의 지시로 이곳 위드링튼으로 이주한 후에도 그의 명성은 여전했다.

거기다 어릴 때부터 도축업 하는 아버지에게 ‘비록 소 잡는 칼이지만’ 칼 쓰는 법도 배워, 손에 뭐가 잡히면 더욱 무서워지는 지랄병 환자였다.

작년에 아름다운 엘라와 결혼한 후 갑자기 사람이 변해서 수비대에 들어가 성실히 돈도 벌고, 가정적인 사랑꾼이 된 로저였다.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과연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벌이곤 했었다.


그런데 이젠 엘라가 없다.

그것도 저 소머리 달고 있는 상열의 호로새끼들 때문에.

말릴 사람도 안 보인다, 너무 커져서.

뭐 들고 있다, 양손에.


너무 별거 없어 보이는 놈들이지만 십삼 년 싸움꾼 로저는 나이에 비해 노련했다.


‘내가 갑자기 세져서 지금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신중하게 한 놈씩 조져야 한다.’


로저는 자신을 기준으로 가장 좌측에 있는 소머리부터 조지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선빵을 치고 나서 이놈들의 역량을 가늠하자. 그리고 절대 포위되면 안 된다.’


그는 양손에 있던 쇠말뚝 달린 사슬들을 점점 빨리 돌리더니 짧은 기합과 함께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튀어 나갔다.

눈 깜짝할 새에 삼십 보 이상의 거리를 뛰어넘어 소머리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오른발을 먼저 딛고, 왼발이 땅에 닿는 순간 땅을 뚫고 왼 다리를 심어 버릴 기세로 땅을 밟았다.

그와 동시에 허리가 돌아가고, 쇠사슬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꽉 쥐면서 딱히 팔을 더 움직이지 않고 회전하면서 얻은 가속도에 기분 좋게 몸을 맡겨 버렸다.


‘잘 들어갔다! 좀 아플 거다, 이 새끼야!’


퍽!

쇠말뚝이 시원하게 소머리의 왼뺨에 박혔다.

원래는 바로 후속타가 들어가야 한다.

왼손의 쇠말뚝으로 오른뺨도 갈기던가, 그냥 무릎으로 급소를 차버리던가, 아니면 발목을 걷어차 자빠뜨리고 면상을 밟아 버리던가.


로저가 싸움의 초짜도 아닌데 선빵 날리고 멍하니 쳐다본 것은 소머리의 맷집을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어, 얘 왜 누워 있지? 안 일어나나?’


고작 한 대 맞고 픽 쓰러졌다.

이놈들도 죽은 척을 하나 싶어서 대뜸 달려들어서 쇠말뚝으로 머리를 찍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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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07.27 18:15
    No. 1

    스토리 진행이 짜임새가 있군요.
    다만 작가가 개입해서 해설을 하는 것은
    약간 거슬리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작품울
    소머리와의 전쟁으로만 끌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작가도 알고 있겠죠
    재밌게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최고길동
    작성일
    23.07.27 20:19
    No. 2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간절히 기다려 온 댓글이 제 글에 대한 비평이었거든요.
    솔직히 이 댓글 보면서 뜨끔했습니다.
    제가 등장인물들의 언행에 대한 합리성 혹은 당위성 등등에 대한...
    집착이 강하거든요.
    글을 계속 쓰면서 될수있으면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도록 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앞으로도 봐주시다가 눈에 보이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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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초의 전사 (3) +2 23.06.11 597 10 9쪽
3 최초의 전사 (2) +2 23.06.11 752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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