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2 23:29
연재수 :
224 회
조회수 :
23,379
추천수 :
532
글자수 :
955,903

작성
23.06.11 15:59
조회
461
추천
10
글자
9쪽

최초의 전사 (4)

DUMMY

4화


난장을 치고 간 지 딱 열흘째 되던 날 토러스라는 종족명을 가진 소머리 괴물이 다시 나타났다.

그날, 급하게 과식을 해서 며칠 고생을 좀 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기로 다짐한 괴물은 경쾌한 발놀림으로 마을로 다가왔다.


이 인간이란 맛있는 종족들은 부지런하기도 하다.

신나게 부숴 놓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자기들 서식지를 말끔하게 고쳐 놓았다.

하지만 멍청하고 부주의한 것은 아무리 가르침을 주어도 고쳐지지 않는 듯했다.


목책을 보강한다고 여러 놈들이 달라붙어 뭔가를 하는 모양인데,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다.

물론 성문 따위는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는 없지만, 이건 마음가짐의 문제다.

심지어 자신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했는데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 하고 있다.

이놈들은 오늘도 호되게 혼나 봐야 할 것 같다.


자신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부주의한 먹잇감들을 보며 소머리는 대놓고 성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망루 위에서 하품을 하던 놈과 눈이 딱 마주쳤다.

잠시 후 소머리는 배를 잡고 바닥을 구를 뻔 했다.


성문 밖에 있던 놈들은 뛰다가 자빠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뛰다가, 또다시 구르기를 반복하면서 네발로 기어서 성문 안으로 도망을 쳤고, 망루 위에 있던 놈들은 고함을 치고, 뭔 길쭉한 것을 물고는 볼이 터져라 부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후 성문 앞에서 다리 역할을 하던 통나무 문짝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소머리는 팔다리를 살살 흔들어서 근육을 풀어준 후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통나무 다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질주하던 소머리는 해자 앞에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거의 자기 키만큼 뛰어오른 놈은 아직 반도 올라오지 못 한 통나무 문짝을 두 발로 내려찍은 후 성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통나무 도개교를 들어올리기 위해 도르래를 돌리고 있던 병사들은 손목이 꺾이고, 손잡이에 복부를 찍힌 채 바닥을 뒹굴었다.

시작하자마자 몇 명 골로 보내 버린 소머리는 달려오면서 붙은 가속도로 내문 역할을 하던 통나무 격자문마저 어깨로 들이받아 부숴 버렸다.


‘자, 이제 이놈들은 전부 내 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머리는 바닥이 꺼지고, 몸이 쑥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엄청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함정 속 바닥에는 쇠꼬챙이가 촘촘히 박혀 있었고, 달려오던 속도에 제 몸무게까지 더해져서 시원하게 발바닥을 뚫고 박혀 버렸다.

놈의 입에서 분노와 고통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음메에에엑!”

“백작, 원래 소들이 저렇게 웁니까? 분명 대사만 들으면 소 울음이 맞는 것 같은데, 꼭 호랑이가 소 우는 걸 흉내 내는 것 같지 않소?”


웨이버튼 경이 모두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이라고 한 말이었지만, 정말 호랑이 포효 소리와 비슷해서 농담 같지도 않았고, 긴장도 풀리지 않았다.

솔직히 더 무서워졌다.


“시작하라.”


백작의 지시에 부관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앞으로 나서 주먹을 들어 올리면서 소리를 쳤다.


“궁수!”


부관의 외침에 목책의 난간 뒤에 엎드려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머리의 얼굴을 향해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고통을 참아 가면서 발을 꼬챙이에서 빼고 있던 소머리는 너무 많은 화살이 면상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고, 하나라도 눈에 박힐까봐 팔을 들어 막을 수밖에 없었다.

반쯤 빠진 발이 도로 박혀 버렸다.

누가 봐도 더럽게 아파 보였다.


“그물 투척!”


성문 옆에 있던 마구간과 헛간에서 쇠그물을 든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괴물들을 상대하는데 이골이 난 숙련된 병사들이 소머리의 머리 위로 그물을 능숙하게 덮어씌웠다.

정성 들여 짠 쇠그물에 곳곳에 날카로운 돌기까지 얽어 놔서 질기디질긴 소머리의 피부에도 그물이 파고들었다.


“잡았...!!”


소머리는 병사들이 좋아할 틈도 주지 않고 그 질긴 그물을 잡아 뜯어 버리기 시작했다.

피부에 생채기 좀 남기고 그물 세 장이 전부 걸레가 되어 버렸다.

피부에 박힌 그물을 힘으로 잡아 뜯어서 전부 갈가리 찢어 버리기까지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함정 가장자리를 양손으로 짚더니 그대로 뛰어 올랐다.

한 번에 양발을 뽑아내느라 피가 양쪽에서 솟구쳤지만, 소머리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 기색이었다.

피범벅이 된 발로 천천히 병사들이 밀집한 곳으로 다가오는데, 눈에서 살기를 넘어 귀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듯 했다.


그물에 엉킨 채 버둥대다가 자빠지면 함정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 도끼와 철퇴로 다진 쇠고기로 만들어 버릴 셈이었는데...

그렇게 엿장수 마음대로 쉽게 쉽게 되지를 않는다.

병사들의 손이 땀으로 흥건해질 때쯤 다시 부관의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궁수!”

“쇠사슬 투척!”


궁수들이 다시 소머리의 안면에 화살을 날렸고, 소머리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파리 쫓듯 팔을 휘둘러 화살들을 쳐냈다.

그 순간 소머리의 양 측면에 서 있던 기사들이 등 뒤로 감추고 있던 쇠사슬을 꺼내서 머리 위로 휘두르다 소머리의 양 손목으로 던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합을 맞춰 왔는지 단 한 번의 시도로 양 손목에 쇠사슬을 감는데 성공했다.

쇠사슬 끝에는 쇠갈고리가 달려 있어 쇠사슬이 감기는 순간 갈고리가 피부에 박히며 딱 물려 버렸다.


소머리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민 듯 양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쇠사슬을 잡고 있던 두 기사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소머리는 헛짓거리 그만 하라는 듯 거만한 몸짓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순간 소머리가 멈칫했다.

벗기기 귀찮아서 쇠사슬을 그냥 달고 움직였는데 순간 누가 자신을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손목을 따라 쇠사슬을 훑어보니 사슬의 끝부분이 쇠말뚝에 연결 되어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다들 잡아당겨!”


백작의 부관이 병사들에게 버럭 고함을 쳤다.

그와 동시에 한쪽당 스물이 넘는 병사들이 사슬에 달라붙어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무려 사십 명이 넘는 사람이 줄에 달라붙어서 용을 쓰니 소머리조차도 쉽게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사슬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져서 끼기긱 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 못 버티고 끊어질 것 같았다.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 쇠꼬챙이를 든 로저가 달려 나왔다.

그냥 쇠꼬챙이도 아닌 가죽을 감은 손잡이에, 찌를 때 손이 미끄러지지 말라고 손 보호대 즉 코등이까지 달아 놓은 엄청 공들여 만든 물건이었다.

로저의 부탁에 대장장이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섭섭하지 말라고 정성껏 세 자루나 만들어서 건네줬다.

나머지 두 자루는 등에 메고 있었다.


소머리가 사슬을 끊어 버리려 애쓰는 동안 로저는 거침없이 소머리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소머리도 등 뒤의 기척을 느낀 듯 허리를 틀면서 오른 다리를 뒤로 빼서 뒷발로 후려갈기려 했지만, 로저는 상관없다는 듯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소머리의 가랑이 사이로 뛰어든 로저는 열흘 동안 밤낮없이 연습한 대로 있는 힘껏 쇠꼬챙이를 위로 쑤셨다.

꼬챙이가 소머리의 항문으로 들어가 직장을 뚫고 소장을 거쳐 위까지 박혔다.

꼬챙이를 박은 후 로저는 온 몸을 날려 소머리의 다리 사이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엄청난 고통에 발광을 하는 괴물의 몸 밑에서 사지 멀쩡하게 빠져나오는 것은 너무 허무맹랑한 계획이었다.

당연하게도 통나무같은 소머리의 다리가 로저의 옆구리에 틀어박혔고,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로저는 한참을 날았다.

바닥에 처박히고 나서도 몇 바퀴를 더 구르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쓰러져 있는 로저를 보니 미동도 없는 것이 이미 숨이 끊긴 듯 했다.


그 모습을 보고 기사들 병사들 할 것 없이 모두가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을 수 없어 고함을 치면서 달려들려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로저가 몸을 일으켰다.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일어섰다.


병사들 중 위드링튼의 수비대에 속한 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놈의 맹세만 아니면 그만 지랄하고 누워 있으라고 외치고 싶었다.

늑골이 나가고 팔다리의 뼈들이 모두 아작이 났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등 뒤에 메고 있던 꼬챙이들을 꺼내 양손에 쥐고 괴물에게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은 기적 그 자체였다.


항문으로 피를 쏟아 내며 몸부림치는 소머리 앞에 선 로저는 꼬챙이 두 자루를 역수로 쥐고 망설임 없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소머리의 양 손목에 감겨 있던 쇠사슬이 끊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07.25 23:59
    No. 1

    로저와 소 머리를 보면서
    다윗과 골리앗이 연상 되는군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5 최고길동
    작성일
    23.07.26 05:07
    No. 2

    추천과 댓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가님 덕에 제 댓글창이 댓글창 같아 보이네요.ㅠㅠ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가님도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죽어서야 웃기다 (2) 23.06.17 263 5 9쪽
15 죽어서야 웃기다 (1) 23.06.17 278 5 9쪽
14 토사구팽 (6) 23.06.17 281 6 9쪽
13 토사구팽 (5) 23.06.17 275 4 9쪽
12 토사구팽 (4) 23.06.17 279 5 9쪽
11 토사구팽 (3) 23.06.17 303 4 9쪽
10 토사구팽 (2) +2 23.06.17 326 6 9쪽
9 토사구팽 (1) 23.06.17 371 7 9쪽
8 최초의 전사 (7) +2 23.06.12 393 11 9쪽
7 최초의 전사 (6) +2 23.06.12 396 9 9쪽
6 최초의 전사 (5) +2 23.06.12 422 11 10쪽
» 최초의 전사 (4) +2 23.06.11 462 10 9쪽
4 최초의 전사 (3) +2 23.06.11 597 10 9쪽
3 최초의 전사 (2) +2 23.06.11 752 13 9쪽
2 최초의 전사 (1) +2 23.06.11 1,302 12 9쪽
1 프롤로그 +10 23.06.11 1,870 19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