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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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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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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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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학회의 밤은 길었다(1)

DUMMY

도대체 갑작스럽게 종료한다는 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말인가.

그리고 다들 동의하는 듯한 분위기는 또 무엇이고.

이에 무어라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 허나 문득 어깨에 몸을 대며 그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어 현우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위로 올려다보았다.


노인 특유의 갈라지고 투박한 손이 현우의 어깨에 닿았다. 거칠지만 따뜻했다.

분명히 아직 현우에게는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한번 가볍게 차고는 입을 닫았다.


아드리안은 라이카 의장에게 점잖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나 완드가 한 바퀴 회전하며 발생한 빛무리와 함께,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쏜살같이 모습을 감췄다.

눈을 감은 채 회의에 나왔던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머리 속으로 정리 중인 듯 보이는 니암을 제외한다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는 사람은 현우와 아드리안 뿐이었다.


"회의가 하루 아침에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가. 어차피 다음 주까지는 시간이 널널하니..."

"분명히 회의가 시작될 때까지만 하여도, 다들 바쁜 사람들이라면서 후딱 끝내자고 닦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닌가요. 저만 갑작스럽게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에요."

"정말로 바쁘고 할 일이 많았더라면 미지의 마탑을 이끄는 수장처럼 아예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니."


어디던지 똑같았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말이다.

다들 똑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며 현우는 살짝 어이없음을 표했다.

이에 아드리안 역시 푸근한 미소로 그의 기분을 다시 한번 풀어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저들은 각자 몇 주치의 일 정도는 끝낸 상태일 터. 나 또한 이 노인네가 반드시 필요한 일들은 대강 확인한 후, 나머지는 다른 마법사들에게 맡기고 온 참이네."

"굳이 센 척을 해야 하는 이유라도... 다들 적으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자네의 말을 빌리자면 굳이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나."


진실된 얼굴로 마주할 수는 없는 것일까.

왕실 연회던, 혹은 마탑의 연설 때이던. 어디서나 사람들의 행동원리는 비슷한 궤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서로가 지금 보고 있는 얼굴과 쏟아지는 말이 모두 진실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구의 오해도 없이 무탈하게 회의와 거래가 오가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리라.


하여튼 지금까지 현우가 겪었던 논리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다음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직은 남들에 비하면 어리다 할 수 있는 마법사의 눈에는 그 방법이 훤히 보였다.


"가죠. 내일 또 회의가 열리기 전에 말입니다."

"응? 어디를 갈 줄 알고 그러는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드리안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시간은 널널하다고 하니까... 다들 각자의 방이나 물밑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제 목숨은 제가 지키는 것이 맞겠죠."

"혼자서 행동은 금한다, 장."


어느새 현우에게 다가온 니암이 평소와 같았지만 조금 더 굳은 얼굴로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지금 이 자리는 날개의 마법사 개인의 실책에 대한 징계를 목적으로 한 것이기도 하나, 회의의 안건은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마법사들 또한 이를 빌미로 다른 안건에 대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다들 오늘은 간만 본 셈."

"예, 예.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말을 들어서, 저도 좀 숨통을 틀만한 시간 좀 주시면 안될까요?"


필시 이번에도 자기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으리란 게 분명히 드러나자, 니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말을 꺼내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아드리안에 의해 곧바로 차단되었다.


"처음 회의에 참석한 것인데 이미 논리를 꿰뚫고 있군. 시어도어가 자네에게 도움을 주었나? 그 녀석은 이렇게 신경을 쓸 깜냥이 되지 않는데."

"하아... 스승님께서 루크를 데리고 이곳 저곳을 싸돌아 다니신 덕분에 얻은 겁니다."


짤막하지만 많은 것들이 그의 말에 담겨있었다.

보는 현우마저 시어도어가 그에게 한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서 얼굴이 살짝 달아오를 지경이었으니, 그의 친우이자 같은 마드라드 동기이기도 했던 아드리안은 어떻겠는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야 마는 노인의 옆에서, 니암은 이마를 긁으며 시간을 죽이고선 스리슬쩍 운을 떼었다.


"아무튼, 다른 마탑의 수장들과 국가의 대표들이 어디에 묵는지는 제가 모르고 있으니, 그곳은 아드리안 님께서 수고해주셔야겠습니다."

"걱정 말게. 어차피 다들 이 학회가 열리는 공간 안에 있을 터이니."


일국의 모든 것이 집대성되어있는 곳이 바로 수도이다.

허나 알피오르의 수도인 랜신에는 이렇게 여러 개의 거대한 천막을 치고도 남음의 거대한 규모의 공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현우가 술집이자 식당이었던 천막 안에서 들었던 정보로는 이런 공터가 두어 개 정도 더 조성되어 있는 듯 한 것을 보면, 분명히 실수에 의해서 공터로 남겨둔 것은 아니리라.


"간단하네. 어떠한 행사가 열리든 간에, 모든 행사의 참여자들은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을 걸세. 그래서 우리가 머무르는 숙소 또한 이곳에 마련되어있는 거고."


아드리안은 왕국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와 어떻게든 여러 거래와 행사를 유치시켜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의 합의점을 찾은 결과라며 자칫 무성하게 피어날 수 있는 여러 추측들을 간단히 일축시켰다.


"저는 그냥 호의로 숙소를 마련해준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이들이 학회가 끝날 때까지 나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네. 낮이야 랜싯의 거리를 돌아다녀도 상관 없지만 밤에만 숙소로 돌아오면 되는 셈이네."

"조금 억압이 있는 건 확실한 사실이네요."

"하지만 우리가 대륙 마법 학회를 유치하게 되었다고 한들, 나라도 전하께 같은 청을 드렸을 것이 분명하네. 예전에도 그랬고, 대부분의 나라들 또한 이런 방책을 생각하고 있을 걸세."


과장을 조금 더 보태어 대륙의 모든 마법사들의 관심을 가지는 행사이다.

가보지 않더라도 '여기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 나왔더라'하면 누구나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나 보자'는 반응을 보일 정도의 인지도였다.

마침 학회가 열리는 근처에 머무르거나 들를 일이 있는 마법사들이라면 여정을 변경해서라도 들리고 싶은 곳이 바로 대륙 마법 학회가 아니던가.


아직까지 현우는 제대로 된 학회의 진면목을 구경할 수 없었으나, 식당의 식탁에서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들을 듣고 있노라면 결코 그 명성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은 이곳에 온지 아직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현우라 할지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들은 물론 나와 자네들도 이곳에 사용할 돈이 꽤나 많을 걸세. 이미 왕실에서 자네들에게 격려금 일부와 더불어 자네들이 쓸 돈을 알피오르의 화폐로 바꾸어주지 않았나."

"그렇긴 하죠. 혹시 모를까 싶어 좀 돈을 많이 바꿨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저런 일에 휘말리다 보니 어느새 현우의 돈주머니는 그득해져 있었다.

포트란의 은행에 대부분을 보관한 지금, 그가 가지고 온 돈은 전에 비하면 많이 들고 온 것도 아니다.

슈테판 리가 사라진 후, 그가 장로로서 취득했던 이득과 재산 등은 마땅히 스승인 니암에게 돌아가야 할 것을 제외하고선 전부 정당한 승자인 현우에게 승계되었으니까.


"2주 간의 일정이라면 물경 천은 넘는 마법사들이 알피오르의 수도를 찾아오겠지. 그리고 마법사들은 다들..."

"웬만하면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죠. 저도 그렇고, 아마 예상컨대 아드리안 님이나 콜 탑주님도 그러실 거고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에 학회의 소식을 듣고자 식당에서 썼던 돈만 해도 예전이었다면 정말 벌벌 떨면서 주머니에서 은화를 꺼냈을 것이 분명했다. 학기 초만 해도 벤과 같이 오늘 식당의 음식이 뭐가 더 싸냐를 두고 열띤 토론을 펼친 적도 있었다.

허나 이제는 구리가 아닌 은화마저 턱 꺼내는 것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안드레아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적어도 마탑주 회의에 참석할 정도의 고위 마법사들이라면 다들 큰손인지라, 그들이 뿌리고 가는 돈의 액수는 상당할 수 밖에 없네."

"그 대신, 경쟁자들을 한 자리에 끌어 모은 만큼 충돌이나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말입니다."

"콜 탑주의 말이 맞네. 더군다나 경지에 이른 실력자들이 손을 쓴다면 당연히 일의 규모는 클 터, 거기에 국가간의 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노릇이지."

"그렇다면 더더욱 서로를 갈라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현우의 물음에 답한 것은 그들이 누군가의 지정된 숙소 앞에 도착하여 가건물의 문을 두드리려는 참에 안쪽에서 들린 주인의 목소리였다.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목적이겠지. 차라리 싸울 거라면 왕국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을 해결하는 것이 나은 데다가,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보호함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어딜 가지 않고 숙소로 바로 돌아갔군, 프리오니르."

"아드리안, 자네 덕분에 잿가루 노인네와의 내기에서 내가 이기게 되었어. 고맙네."


당연히 현우에 대한 사면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 의견을 결집하러 올 터.

그리고 시작은 아무래도 일전에 이미 현우와 면식이 있었던 두 명의 탑주 중 한 명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서 과연 누구에게 먼저 의논의 손길이 다가올 지에 대해 북쪽의 제국 코린티아에서 온 두 명의 마탑주는 간단한 내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걸었나."

"마탑대전 때 누구의 마탑을 앞에 내세울 것인가 정도네. 별로 시답잖은 일이지."

"재미있겠군. 다음 해에는 '얼음과 불꽃의 장'이 되겠어."


서로의 마탑과 그 구성원들이 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결코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제국 전체와 그 너머의 나라들에게까지 퍼지는 축제의 정식 명칭을 두고 치르는 내기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볼티모어 전 탑주가 자네보고 뭐라 하지는 않던가? 딱딱하다던가 매사에 여유가 없다던가 하는 말 말일세."

"아쉽게도 프리오니르 탑주님을 제외하고서도 오늘 안에 보아야 하는 이들이 많아서 말이지요. 되도록이면 빠르게 끝마친 뒤 곧바로 불꽃의 마탑으로 발걸음 할 계획입니다만."

"얀손 탑주의 얼굴이 어땠는지 나중에 말해주게, 아니지. 나중에 내가 직접 물어보도록 하겠네."


현우는 아직 자신과 일행에게 배정되었다는 숙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이곳과 거의 다르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역시 상인의 나라는 돈이 많아. 가건물치고는 꽤나 좋은 것들로만 가구들을 구해놨네."

"날개의 마법사의 무죄를 지지하는 대신,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조금만 기다려보게. 마실 것이라도 한잔씩 들면서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누군가의 정성스런 손길이 묻었을 것이 분명한 광택 있는 안락의자에 앉은 프리오니르는 달궈진 주전자의 물을 따랐다.

쪼르르 따라지는 물과 솟은 김이 그의 얼굴을 덮은 가운데, 프리오니르는 다른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번 학회의 주제가 '마법의 교류와 확대'로 알고 있네만. 여기 마침 마탑과 이오니아 양쪽에 관련된 마법사들이 있으니 거래를 트기는 쉽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래서 무엇을 원하는가, 프리오니르."

"교류는 어떤가. 말 그대로의 교류."

"단순히 마탑간의 교류를 말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만, 정확히 마드라드와 얼음의 마탑 간의 교환 학생 제도 등을 원하시는 겁니까?"


니암의 말에 프리오니르는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게 아니네. 단지... 그래, 아직까지도 바다 건너 동쪽 대륙에서 온 이들은 이오니아에만 살고 있지 않나. 확실히 우리 쪽 기후가 추운 건 어쩔 수 없다만은..."

"알겠네. 이국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물건 등을 요한다 이 말이로군."

"역시 아드리안, 그대는 노인 치고는 머리가 잘 돌아가. 더불어 종이도 좀 더 부탁하네. 최근에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만. 제국과의 거래는 내가 알아서 힘쓸 터이니."

"구르드가 알면 까무러칠 일이겠어."

"이미 자네들이 오기 전에 황실과 이야기를 마쳤으니 그쪽은 걱정 말게. 이국의 사치품을 값싼 가격에 들여올 수 있는데 설마 구르드 그 자가 반대할 리가 있겠나?"


아예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적절한 값은 치르기로 하였다.

물론 그 가격대 또한 프리오니르의 기준에서 적절하다 말할 수 있는 저가가 분명했으나, 어찌되었든 이것으로 날개의 마법사에 대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양쪽 모두 만족하는 거래였다.

그렇게 모두가 프리오니르의 숙소를 나가려 자리에서 일어서자, 잠시 프리오니르는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춰 세웠다.


"잠시만, 날개의 마법사에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빌려줄 수 있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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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217화. 학회의 밤은 길었다(2) 20.04.28 24 0 13쪽
» 216화. 학회의 밤은 길었다(1) 20.04.27 28 0 13쪽
215 215화. 마탑주 회의(2) 20.04.23 24 0 13쪽
214 214화. 마탑주 회의(1) 20.04.22 29 0 14쪽
213 213화. 용의 경고 20.04.21 26 0 13쪽
212 212화. 대륙 마법 학회(3) 20.04.20 23 0 14쪽
211 211화. 대륙 마법 학회(2) 20.04.17 29 0 14쪽
210 210화. 대륙 마법 학회(1) 20.04.16 24 0 14쪽
209 209화. 소환 명령(2) 20.04.15 23 0 14쪽
208 208화. 소환 명령(1) 20.04.14 25 0 13쪽
207 207화. 바람이 분다(5) 20.04.13 25 0 15쪽
206 206화. 바람이 분다(4) 20.04.10 23 0 13쪽
205 205화. 바람이 분다(3) 20.04.09 27 0 14쪽
204 204화. 바람이 분다(2) 20.04.07 29 0 13쪽
203 203화. 바람이 분다(1) 20.04.06 34 0 14쪽
202 202화. 융(3) +2 20.04.03 29 1 14쪽
201 201화. 융(2) 20.04.02 29 0 13쪽
200 200화. 융(1) +2 20.04.01 33 0 14쪽
199 199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5) 20.03.31 27 0 14쪽
198 198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4) 20.03.30 2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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