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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재

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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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19.06.28 09:02
최근연재일 :
2020.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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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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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화. 마탑주 회의(2)

DUMMY

무언가 잘못되었다 하여 이를 성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뒷받침되어야만 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도 그 잘못을 범하지 않았을 때 주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 무리의 존재는 확실히 이질적이다.

본래 마력과 성력은 한 몸에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던가.

또한 그들이 마드라드를 비롯한 바람의 마탑에 적대적인 성격이라면 다른 마탑이나 나라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허나, 조사관의 말에서 밝혀진 사실은 현우에게 있어서 불리하게 작용했다.

자기 자신도 신의 힘이 개입되었음이 분명한 현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드러난 이상, '이면의 별'이라는 정체 모를 비밀 조직에 대한 공조를 요청하는 것은 그 당위성 측면에서 지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화의 비라는 그 마법이, 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전혀요. 제가 모시는 아그룬 님의 경우 바다에 한해서라면 대양을 휘감는 비바람을 몰아내고 불러들이는 것 정도는 그분에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포트란과 마드라드를 뒤덮었던 비는 조금 더 본질적으로 물을 지배하시는 분께서 맡으신 소양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네가 말하는 그 신이..."

"네. 우투나스 님이죠. 순환하는 물의 흐름을 관장하는 분으로 기억합니다. 아그룬 님을 믿는 저희들과는 꽤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교단입니다."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순간 알베라의 눈썹이 꿈틀했다. 신의 능력과 외모를 묘사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신을 위한 찬양의 과정이었다.

정식으로 드리는 제사와도 견줄 수 있는 행위가 도중에 중단되었다는 것은 즉 모시는 신에 대한 권위를 무시한다는 것과 동일했다.

그러나 재판관으로서 성국 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을 돌아다녀본 경험과 지식이 있어, 그는 다행히도 내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알베라 조사관의 말대로라면 결국, 날개의 마법사 또한 신의 힘을 사용했다는 결과가 남게 돼요. 그 이야기는 즉, 그가 했던 논지가 전부 어그러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무이즈 탑주."

"남이 말을 하고 있는데 자꾸 끼어들지 마세요, 프리오니르 탑주. 그대가 저 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눈치챘지만, 굳이 그걸 전면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이미 들켰다니 어쩔 수 없군. 왜 날개의 마법사를 잡아먹지 못해서 이렇게 안달이 났나. 환영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는 결코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며 역설을 펼쳤던 자가 누구였더라? 이렇게나 마나의 길을 걷는 후배가 못미더워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겐가."

"옛날 옛적의 말도 기억하고 있다니, 역시나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네요."

"그렇게 세월이 지났어도 어떻게든 바득바득 젊은 피부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누군가도 어처구니 짝이 없네. 세월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는 걸세. 환영으로 어떻게든 젊게 보이고 싶어도 여기 있는 이들은 대부분 그대의 본질을 꿰뚫어볼 실력이 되고 남음이니."


뚜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분통이 터진 무이즈에게 걸어왔다.

도리아 제국을 대표한 마법사가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며 귓가에 모종의 이야기를 속삭였다.

다시 자신의 것으로 지정된 자리로 돌아가는 돌발적인 행동에 이미 다른 이들은 황실마법사 조세 롤랑에게 눈을 흘겼는데, 그럼에도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제국의 일은 타국의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게 했다.


"그자들도 조사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당연히, 날개의 마법사 장현우 또한 이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고요."

"롤랑, 그대는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무슨 말입니까, 아드리안."


기가 찬다는 듯 아드리안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한차례 쓸어 올리며 롤랑의 말에 답했다.


"이미 이오니아의 미네바에 역병을 퍼트렸던 전적이 있지 않나."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이곳에서 시작하여도 일천 마일은 더 벗어난 도리아 제국의 황도에 거하는 제가 어떻게,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소국의 항구도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단 말인지."

"...역병을 퍼트렸던 장본인인 여검사 '엘라인'의 은신처에서 확보한 자료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네. 도리아 제국의 정보부와 결탁했던 흔적을 발견했지. 이미 한번 사절을 보내 엄중히 항의를 하지 않았던가."

"아, 보호령 쪽에다가 항의를 하신 모양입니다. 뭐, 그쪽도 제국이긴 제국이나 그곳과 진실된 제국의 영토와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아직 소식이 들려오려면 멀었나 보지요."

"제국의 체계가 스스로 낙후되어있다 생각하는 겐가."

"...그렇게 들리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십쇼. 허나 그 결과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이오니아의 아드리안. 우리가 결코 힘이 달리어 그쪽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외다. 이미 종전협정에 명시된 기한은 끝난 지 오래요."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래, 내 알겠네."


초록은 동색이요,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스승의 친우이자 이미 몇 번이고 그를 옹호하였으며, 자신이 마탑주 회의에 끌려가다시피 하여 소명을 해야 할 위험에 처했을 때도 니암과 같이 최대한의 권리를 보장해주었던 아드리안이 이리 롤랑에게 핍박받는 것을 현우는 더는 지켜보지 못했다.


"하지만 도리아의 기사가 직접 제게 칼을 들이밀고, 또한 왕국민들을 헤쳤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그래서 현우는 머리 속 기억들의 뭉치에서 찾아낸 어떤 사실을 언급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날개의 마법사."

"피르미니. 그 자는 분명히 기사의 자격을 가진 이였죠. 미네바 역병 사태를 주도했던 수뇌부들 중 하나가 분명했고, 그의 입에서는 백합의 깃발이 언급되었습니다."


대륙에 발을 들이민 나라들 중에서, 현재 백합의 문양을 쓰는 것은 도리아 제국밖에 없었다.

광활한 대지를 품에 안고, 푸른색과 백색으로 빛나는 백합 깃발은 제국 곳곳에 세워진 성과 요새의 성벽에 드날리며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는 상징이 된 지 오래였다.


"...그 말을 어찌 믿습니까."

"글쎄요. 그런데 말이죠. 다들 너무 점잖은 척 하시는 건 아닌지?"


알피오르의 유일한 마탑, 강철의 수장인 루카소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날개의 마법사에 대한 정보들은 여기 계신 수장들이나 각 나라를 대표하여 오신 분 정도라면 미리 정보를 어느 정도 모아서 알고 있을 텐데요. 설마 이곳에 오면서 그런 준비를 하지 않으셨다는 분은 없겠지요?"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나 대강은 들어서 알고 있다네. 전 바람의 마탑주가 이야기를 꺼낸 것도 있었고 말이야."


얀손이 루카소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프리오니르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동의했다.


"애초에 불꽃의 마탑에 공조 요청이 들어온 이상 우리에게도 그 소식이 전해지는 건 그리 느리지 않지. 적어도 미네바에서 있었던 안타까운 일에 대해서는 성국과 알피오르를 통해서 알음알음 소식통을 통해서 들은 바 있긴 하네."

"그렇죠? 그래서 롤랑, 당신은 저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도리아 제국의 기사가..."

"기사... 네, 맞습니다. 정확히는 기사였었습니다."


숨기려 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그는 짤막한 사과의 말을 덧붙였다.


"더 정확하게, 아주 낱낱이 말씀을 드리자면, 그는 과거 어떤 기사단에 머물렀다가 탈주한 기사입니다. 그 이후에는 군적은 물론 기사단의 계보에도 피르미니란 이름을 완전히 지웠거든요."

"...그리고? 설마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대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 자가 어디 갔는지 결국엔 실종 처리를 했다고만 들었는데, 어우. 그 곳에서 그런 끔찍한 참상을 저질렀을 줄이야 설마 제가 그것까지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저기 있는 아드리안 노인이나 코린티아 제국에서 오신 구르드 씨와 다르게 황실 마법사들 중에서도 세 번째 단계에 불과합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실 다른 두 분과 달리,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웃기는군. 제국 황실 마법병단의 3인자가 권한이 적다고 징징대는 꼴이라니."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베네코 왕국의 프리모 탑주."

"...각자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다르겠지요."


도리아 제국과 또 다른 도리아 제국과의 영토로 둘러싸인 베네코 왕국의 상황상, 아무리 왕국과는 다른 노선을 걸어 중립을 유지하겠다 선언한 바위의 마탑이라 한들 롤랑의 노골적인 물음에 마탑주 프리모는 비교적 유순한 답변을 입에 담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으니까.


그것을 본 구르드가 여태까지 유지하던 침묵을 깨고 한 줄기 평을 날렸다.


"차라리 롤랑, 자네보다는 조금 시끄럽더라도 뷔용을 보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분께서는 워낙 바쁘셔서 대신 제가 온 겁니다, 구르드 씨."

"저기... 열띤 토론 중에 죄송한데 말입니다."


현우가 손을 번쩍 들고 라이카 의장에게 질문을 던져도 되는지 물었다.

왕홀에 비견되는 권력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라면 지금의 발언들을 단번에 정리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다분히 섞여있었다.

그녀가 흔쾌히 허락을 표했고, 현우는 지금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만약 제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대로 종료가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전부 이곳에서 펼친 것 같은데요."

"간단하다. 소명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게 된다면, 그대로 규약에 따라 마법사의 처우가 결정된다."


의외로 대답은 니암에게서 흘러나왔다. 무언가 내재된 생각끼리 충돌하고 있는 듯, 그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대륙의 기후에 영향을 줄 정도로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그에 대한 배상 또는 처벌을 판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

"콜 탑주의 말이 맞소. 대륙의 사람들 다수가 농사나 물고기를 잡는 등의 일을 하고 있는 만큼, 당연히 그에 영향을 주는 비를 부르는 등의 행위는 엄격히 관리되어야 하지."

"아마 제가 사십하고도 육 년 전쯤에 비슷한 사항에 대해 말을 받은 적이 있을 겁니다."


엘프에게 허락 받은 긴 수명과 그에 따른 가공할 기억력 덕분에, 별다른 규약집이나 판례집을 끌고 오지 않아도 이 임시로 마련된 회의장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마탑주 회의의 대부분의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 자에게 이십 년간 마력을 억제하는 구속구를 착용토록 판결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거라면 나도 아직 기억하고 있네. 내가 처음으로 수장이 되어 참석한 회의였으니."


얀손이 라이카의 말을 받아 자신의 경험을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결국 처벌을 받은 마법사는 반발 끝에 대륙의 마법사들을 적으로 돌리는 멍청하면서도 안타까운 행위를 저지르게 되었고, 이에 따라 마법사들의 연합에 의하여 조용히 대륙에서 스러졌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 말을 들은 현우는 얼굴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시시한 말장난처럼 들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판결이 내려진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판결의 내용이었다.

이십 년. 마법사에게 스무 해 동안 마력의 사용을 금지한다면 결국 그것이 다른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재야에 박혀 다른 걸로 밥을 빌어먹고 살라는 통지나 다름 없었기에, 순간이나마 현우는 사십여 년 전의 그 사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하지만 걱정 마시길. 처벌 뿐만 아니라 배상으로도 죄를 뉘우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경우에는 이리아에 배상을 하는 것으로 처리를 할 수도 있겠군."

"그것보다도, 오히려 아무런 처벌도 없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는가."


아무런 일도 없던 것으로 무마가 가능한 것인가. 무릇 사람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수 밖에 없는 제안에 현우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물 흘러가듯 이대로 잊혀지며, 시간이 지난 후에 '그런 일도 있었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직 남아있는 셈이다.


"이미 정쟁을 한번 치른 적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쉬울 걸세. 과반의 인정, 그것이 자네의 처우를 결정할 것이니."

"어느 쪽으로 흘러가던지 말이군요."

"하지만 기권도 많아서 결국엔 정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 라이카 의장께서 말씀하셨던 처벌 이후로 제대로 마탑주 회의에서 처벌이 결정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땅, 땅!


앞부분이 망치처럼 생긴 홀을 두어 번 두들긴 뒤, 라이카는 빙그레 미소를 띠며 외쳤다.


"이것으로 오늘의 회의는 종료하도록 할까요?"

"...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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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라드의 나비는 폭풍을 부른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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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217화. 학회의 밤은 길었다(2) 20.04.28 24 0 13쪽
216 216화. 학회의 밤은 길었다(1) 20.04.27 28 0 13쪽
» 215화. 마탑주 회의(2) 20.04.23 25 0 13쪽
214 214화. 마탑주 회의(1) 20.04.22 29 0 14쪽
213 213화. 용의 경고 20.04.21 26 0 13쪽
212 212화. 대륙 마법 학회(3) 20.04.20 23 0 14쪽
211 211화. 대륙 마법 학회(2) 20.04.17 29 0 14쪽
210 210화. 대륙 마법 학회(1) 20.04.16 24 0 14쪽
209 209화. 소환 명령(2) 20.04.15 24 0 14쪽
208 208화. 소환 명령(1) 20.04.14 25 0 13쪽
207 207화. 바람이 분다(5) 20.04.13 25 0 15쪽
206 206화. 바람이 분다(4) 20.04.10 23 0 13쪽
205 205화. 바람이 분다(3) 20.04.09 27 0 14쪽
204 204화. 바람이 분다(2) 20.04.07 29 0 13쪽
203 203화. 바람이 분다(1) 20.04.06 34 0 14쪽
202 202화. 융(3) +2 20.04.03 29 1 14쪽
201 201화. 융(2) 20.04.02 29 0 13쪽
200 200화. 융(1) +2 20.04.01 34 0 14쪽
199 199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5) 20.03.31 27 0 14쪽
198 198화. 폭풍은 두 번 몰아치나니(4) 20.03.30 2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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