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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17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22 18:29
조회
845
추천
17
글자
10쪽

28화. 그녀의 대답은 노.

DUMMY

“현아야. 잠깐만.”


분홍은 오른손을 빙글빙글 돌려 현아가 노래를 멈추게 한다.


분홍은 갑자기 음악을 팍 끄면 안 된다는 걸 아르바이트 할 때 앞니가 벌어진 여사장에게 배웠다. 그 사장은 남편과의 잠자리에 대해서 분홍에게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분홍을 경악시키던 사람이었다.


“난 남편이랑 하기 전에 꼭 다리털을 밀어.”


그녀는 다리에 남자처럼 털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숱이 많다기보다는 한 줄기가 매우 두꺼웠다. 주방 옆 소파에 두 다리를 올리고 앉아 스타킹 안으로 숭숭 보이는 두꺼운 털들을 분홍에게 보여주면서 저런 말따위를 하곤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비를 벌기 위해 커피숍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만 열아홉의 분홍은 여사장의 그런 종류의 솔직함에 속으로는 혼비백산하곤 했지만, 유별난 표현을 하는 건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적당히 “네...”라고 받아주곤 했다.


앞니가 벌어진 이상하게 솔직한 사장님에게 분홍이 배운 것도 있었다. 그 사장님은 알바 분홍더러 까페에서 음악을 교체할 때 반드시 페이드 아웃(fade-out)을 시키라고 했다.


‘여기가 음악 다방도 아니고 나더러 음악을 서서히 줄이라고?’


분홍은 조금 놀랐지만 그녀의 지시를 통해 다음을 깨달았다.


‘아, 음악이란... 듣는 사람을 늘 생각해야 되는구나. 음악이 갑자기 툭- 끊기면 손님들이 놀라겠지.’


그리고 ‘나는 명색이 가수가 되겠다는 사람인데 틀어진 음악을 귀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구나. 이 이상한 성격의 사장님만큼도...’ 라는 것.


분홍은 노래를 배울 때 선생님들이 갑자기 반주를 뚝- 멈추면 매번 깜짝 놀랬다. 녹음된 반주 엠알(MR)에 맞춰 부를 때 분홍이 잘못 부르기라도 하면 교수님들은 갑자기 엠알을 확- 꺼버리기도 하셨다. 분홍은 그럴 때마다 신기할 정도로 매번 놀랐다. 그래서 강사가 된 분홍이 개발한 티칭 스킬 teaching skill 이, 바로 손으로 원을 두세 번 그려주는 것이다. 그럼 학생은 선생님의 손을 보고 저절로 ‘아, 잠시 노래를 멈추라는 것이구나.’ 하고 미리 신호를 접수하게 되고, 또 그 형태가 ‘아웃’을 그리는 직선이 아니고 원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치지 않고 스스로 멈추고 선생님의 코멘트를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선생님의 코멘트가 완전히 편할 수는 없지만.)


“현아야. 모든 가수에게 파워풀한 고음을 갖는 건 꿈일 거야. 쌤도 마찬가지야."

"......"

"그런데 우선 음정과 피치가 정확한 상태에서 지르는 게 베스트야. 그렇다고 현아 네가 음정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닌데, 네가 워낙 고음을 무서워하다보니까, 고음에서 힘들어하면서 소리는 소리대로 지르는 모습이 힘들어 보여. 조금 지나치게 말하면, 화나서 소리지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다시 가보자. 왓 아 쌔드 투마셀프 what I said to myself 그 부분, 겁내지 말고, 부드럽게 그냥 두성 섞어서 가봐. 우선 볼륨은 잊어버려.”


현아는 고음을 두려워하는 학생이다. 분홍에게 문의전화를 하던 날부터, 현아는 “제가 고음이 엉망이여서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실제로 들어보니 노래를 부를 때 고음만 나오면 목에 핏대를 세우는 건은 물론이고 눈의 흰자위도 빨개지고, 무엇보다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고 고개도 돌려버려 정면을 향하지 못한다.


처음에 분홍은 그런 현아에게 레슨 때마다 고음을 집중적으로 지도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고음에 대한 두려움이 큰 현아에게 역으로 한두 달 정도는 고음을 피하게 해주는 게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중에 고음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 곡을 골라준 것이다. 그러나, 역시 휘트니 휴스턴은 애드립 파트에서 고음을 구사했고 애드립을 그대로 카피해온 현아를 괴롭히고 있었다.


보컬 트레이닝을 할 때 발성이론을 가르쳐야 하고 강사라면 해부학에도 일가견이 있어야 되는 건 사실이지만, 발성이란 성대나 두개골의 해부도를 보고 이해했다고 해서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깨닫게 된다고 해도 그것을 몸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또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몇 개월의 시간은 생각만 하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되고 생각과 연습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래에 한 번 두려움을 가지게 되면 막상 노래는 부르지 못하고 머리로 '왜 난 안 되지?' 라는 생각만 하게 된다. 분홍은 그 몇 개월의 시간을 학생이 노래를 할 수 있게 같이 걸어가주는 것이 보컬 선생한테 가장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론과 실기가 병행이 되면 학생들은 자신의 소리를 스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 거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 날짜를 잡을 때 슬쩍 쳐다보니 현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의욕을 되찾은듯해 보였다. 분홍은 현아의 밝아진 얼굴을 보고나서 온 몸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행복해진다.


그러면서도 괜히 엄하게 한 마디 한다.


“연습 안 하면서 고민하지 마. 차라리 연습 안 될 땐 그냥 놀아. 알겠지? 고민만 많이 하고 연습은 안 하면 그 사람 미쳐.”

“네, 쌤.”


방에서 나오는데 송이 계단으로 내려온다.


현아는 연습실로 들어오는 송에게 낮고 작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네, 잘 가요.”


송은 현아에게 점잖게 인사를 하더니, “분홍. 잠깐 우리 커피좀 마실까?”라고 묻는다. 검은색 건물에 들어와 살라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두 사람에게 “커피좀 마실까?”는 ‘우리끼리 할 말이 있어.’라는 뜻이다.


"현아야, 다음 시간에 보자."


검은색 건물은 보라색 슬리퍼를 신은 연이 엄마의 영역이고, 분홍과 송이 어디서 무슨 말을 하든 연이 엄마가 들을 우려가 있다. 더군다나 씨씨티비로 검은색 건물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장악되어 있다.


“들을 준비가 됐어?”


송은 픽업 테이블에서 쟁반에 받아온 아이스 까페 라떼를 분홍 앞에 놓아주고, 자신 앞에는 뜨거운 까페 라떼를 놓는다. 쟁반은 넓은 창턱에 올려놓은 뒤 묻는다.


"수업 땜에 목 마를 것 같아서 자기 꺼는 아이스야."

“땡큐... 뭐, 안 좋은 소식이야?”


분홍은 길죽한 스테인레스 스푼으로 우유를 저어 섞으면서 송의 얼굴을 살핀다.


“우선 황윤희의 대답은 노야.”

“노?”

“자기가 레슨할 때 연이 엄마가 불러서 사무실에 갔었거든.”

“1층?”

“응. 우선, 사모님 생각은 방 두 개는 안 된다. 분홍이 네가 고시원 들어와서 살고 연습실 공짜로 쓰면, 방 값에 연습실 값 버는 거니깐, 그러면 되는 거 아니냐는 거야.”

“...... 나참.”


두 사람은 커피아트 2층에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플라자 고시텔 검은색 건물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본다.


분홍은 얼굴에 열이 오르고 숨이 가빠지는 걸 느낀다.


“아니, 뭐야. 방 두 개는 연이 엄마가 말한 거잖아. 연이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지? 그리고, 황윤희는 우리가 수당 달라고 한 것 때문에 그런 거래? 아니,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 주면 우리가 어떻게 열심히 일하겠냐고. 동기가 있어야 밤을 새서 일을 하더라도 하지. 우리가 손님을 많이 몰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황윤희 그 여자한테도 좋은 거 아냐. 그래서 이십프로 받는다는 건데, 그것도 안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캐시 뮤직이 맨날 그 모양 그꼴이지!”


캐시 뮤직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아했던 분홍이었다.

하지만 이제 황윤희와 거래를 시작하게 되니까 도리어 분홍이 매상을 걱정하고 있다.


“분홍, 네 말이 다 맞아. 근데, 그 여자 생각하는 싸이즈가 그것밖에 안 되는 걸 어떡해. 사장이 자기 가게를 자기 맘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겠어..."


송은 두 손으로 분홍의 오른손을 감싸쥔다.


'자기가 장사 다 하겠다고 나를 꼬실 땐 언제고 이제는 송은 쿨해졌어. 아,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하잖아...'


"난 분홍 네가 어떤 결정을 해도 괜찮아. 기분이 많이 상하지 않았으면 너 혼자 들어가서 사는 것도 방법이고. 어차피 이 송은 네가 보고 싶어서 매일같이 올 텐데 뭘. 달라지는 것은 없어. 걱정 마.”


송도 상처를 받았는지 붉어진 얼굴로 애써 분홍을 위로한다.


그때 분홍의 전화벨이 울린다.


“... 연이 엄만데. 나, 안 받어.”

“하하하. 분홍. 그러지 말고 받아봐.”

“...... 여보세요. 네, 언니.”


연이 엄마야 말로 링 밖에 있지만 선수보다 애절하다. 이제 그녀의 딸의 출산 날짜는 다가오고 자타공인 ‘친연이엄마파’인 분홍과 송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녀도 선수라면 선수이다. 검은색 건물의 암투와 정치의 한 복판에 놓인 선수이다.


“내가 김밥을 좀 해놨어. 먹으러 올루와.”

“아뇨. 제가 지금... 입맛이... 밥 먹은지 얼마 안 돼서 나중에 갈게요.”


분홍은 이런 기분에 연이 엄마가 만든 김밥 같은 건 먹고 싶지 않다. 그냥 커피아트에서 멍때리기로 한다. 그러나 송은 “그럼 나라도 혼자 잠깐 다녀올게. 무슨 할 말이 있나봐.” 하고 일어선다.


분홍은 송을 말리려다 그만둔다. 커피아트 2층 창가 자리에서 검은색 건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송의 뒷모습을 분홍은 내려다본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분홍이_창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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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우리, 쫓겨나는 거야? 16.04.02 1,397 8 13쪽
37 37화. 고시원의 아침. 16.03.21 701 12 10쪽
36 36화. 허풍의 재발견. 16.03.18 852 11 11쪽
35 35화. 송의 프리젠테이션. +2 16.03.13 1,070 12 20쪽
34 34화. 프랑스 사람들처럼. 16.03.11 777 15 11쪽
33 33화. 분홍이 같은 애는 없어. +2 16.03.08 986 14 8쪽
32 32화. 플라자 고시텔. 16.03.02 1,125 15 10쪽
31 31화. 성냥갑 같은. 16.02.29 971 15 9쪽
30 30화. 추억이라는 놈. 16.02.24 880 16 13쪽
29 29화. 고시원 첫날밤 잘 보내. 16.02.23 1,102 20 6쪽
» 28화. 그녀의 대답은 노. 16.02.22 846 17 10쪽
27 27화. 선생님은 능력자 16.02.21 990 17 7쪽
26 26화. 방 두 개. +2 16.02.21 865 19 9쪽
25 25화. 떨리고 두근거려. +2 16.02.19 1,056 17 16쪽
24 24화. 해볼게요. 16.02.18 740 16 7쪽
23 23화. 송, 진심이야? 16.02.16 776 18 11쪽
22 22화. 두번째 유혹. +2 16.02.15 995 16 12쪽
21 21화. 강남 남자. 16.02.14 896 18 13쪽
20 20화. 누런 개, 연이. 16.02.13 791 17 12쪽
19 19화. 사모님 예쁘죠? 16.02.12 923 19 13쪽
18 18화. 번-아웃. 16.02.10 779 21 10쪽
17 17화. 나에게도 남편이 있다. 16.02.09 805 22 11쪽
16 16화. 나는 당신 편이예요. +2 16.02.08 813 19 10쪽
15 15화. 두 지배자의 갈등. 16.02.07 842 19 9쪽
14 14화. 꽁지머리 남자와의 화해. 16.02.07 897 19 11쪽
13 13화. 새로운 지배자. 16.02.05 790 19 12쪽
12 12화. 초록색 교복. 16.02.05 851 20 11쪽
11 11화. 컵밥과 조각케익. 16.02.05 1,029 21 9쪽
10 10화. 깊어진 계약. 16.01.25 1,057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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