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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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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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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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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어른 괄시는 해도 3

DUMMY

3


“안심하세요. 말하지 않겠습니다.”


예상과 다른 대답에 찬용은 바로 갸웃했다. 둘의 사연에 깊이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인가.


하지만 정작 지금의 행동과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애초부처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면, 이런 식으로 부지런히 찾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이쪽에게 전할 말이 있나.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그동안 소중히 키운 따님과의 교제를 허락해 주세요 같은 요청일 경우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머리가 일순 새하얘진 탓이었다.


“제가 함부로 끼어들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 그래··· 그건 그렇지.”

“지금까지 말씀하지 않으시는 데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겠죠.”

“으음, 맞아 맞아.”


도리어 상명이 상대의 행동에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직전의 대답부터 은근하게 영혼이 이탈한 느낌인데 뒤늦게 술기운이 올라왔나.


하지만 신체 회복 능력이 뛰어난 오귀에게 알코올은 순전히 쓰디쓴 물이었다. 고량주 하나를 단번에 입으로 주입하지 않는 이상 효과가 미미했다.


아니면 잠시나마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일까. 대화 도중에 유심히 생각할 점이 있다던가. 현재로서 후자가 제일 유력하겠다.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받아칠 성품일 테니까.


상명은 남은 이야기를 마저 끝내기로 했다.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할 고백이 아닌 만큼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찬용은 맞장구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감사하다는 말인가. 곤지암 사태에서 끝내 거절하지 못했던 부탁? 이제까지 이룩했던 성과를 모조리 자신에게 넘겨서? 아니라면 도현을 현재 모습으로 성장하게 만든 노력?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더욱 헷갈렸다. 찬용의 입은 조금 전보다 훨씬 무거워졌다. 막상 맞닥뜨린 뒤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돌아간다니··· 그럼?”

“네, 생각하시는 곳이 맞습니다.”


상명에게 들은 바가 없었어도 알기 쉬웠다. 곤지암 사태 직후 요란했던 언론 덕이었다. 기밀 시설로 통하는 길목에서 상명의 차가 발견되지 않았던가. 전후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언론들이 이용하기 딱 좋은 소재였다.


그래서 범상치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대학 생활까지, 속속들이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웬만한 사람들이 그 얼굴을 인지할 정도였다.


도현의 폭로가 의미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다시금 신분을 노출하지 않았던가. 마주한 즉시 했던 걱정은 단순한 빈말이 아니었다.


“전보다 문턱이 높을 텐데.”

“지금은···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나저나 파란 지붕으로 다시 돌아갈 뜻이 없었다니, 다소 놀라웠지만 최근의 일들을 상기하면 마냥 이해 못할 결심은 아니었다.


현 대통령은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이후로 직무가 완전히 정지되었다. 근거 중에서도 주된 하나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도박에 몸담았다는 사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곤지암 사태였다.


본인은 끝까지 아니라고 우겼으나, 관련한 문서에서 그를 가리키는 정황이 계속 많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마터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일개 오귀의 먹이로 전락할 뻔했다. 확실한 해명 없이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다.


더구나 상명은 문제의 사고로 인생이 바뀐 피해자였다. 살려는 욕심에 미친 과학자가 급히 귀왕의 피를 투여하지 않았다면 다른 이들처럼 시체로 발견되었겠다. 당시 어떤 선택이 있었든,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건 이후 정부가 보였던 태도도 문제였다. 현장 수습을 최대한 늦추는 정도로 모자라, 그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 상황도 멋대로 줄이지 않았는가.


급기야 처음으로 신분이 확인된 전 청와대 경호원에게 혐의를 넘기기까지, 이 정도면 덕분이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이어서 터진 충무로 살인 사건은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배신감보다 죄악감이 더 컸습니다.”


그런 국가 원수를 어떻게 지킨다는 말인가. 큰 불이 별안간 연구소를 삼켰어도 돌아갈 엄두조차 못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면 가능하더라도, 모든 사실이 드러난 지금은 그 선택이 마치 국민을 경시하는 판단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관련 업종에서 다른 일을 알아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누구보다 튼튼한 육체로 거듭나지 않았는가. 조건은 오히려 젊었을 적보다 개선되었다. 위생상 다분히 주의를 요하는 작업만 아니면 어떤 일이든 거뜬하게 해내겠다.


그래서 종종 오는 후배들의 제의를 완고히 거절했다. 그런데 사태가 이러한 국면으로 접어들 줄이야. 도현과 동행하던 시점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도현이 언급되는 가운데, 언젠가부터 그의 마음속에 설렘이 가득 스며들었다.


불의에 절대 타협하지 않을 사람이 원수(元首)가 된다면, 대한민국은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잠깐 상상해도 귓가가 시끄러웠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면 정말 익숙할 장면이었다.


비록 청와대 내부가 정신없어진들, 그것이 국민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관리가 바빠야 백성이 편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존경하는 세종의 말씀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움직였던 날들이 잊히지 않았다. 목숨이 위태로워도 그녀는 끝까지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싸웠다. 육체적 힘이 월등한 수인과 만나고도 기가 꺾이지 않았고, 위기에서 벗어난 직후에도 쉬지 않고 본연의 의무를 속행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걱정해야 하거늘, 카메라 앞까지 진출하기 이르렀다. 많은 렌즈들 앞에서 영광스러운 상처마저 공개하며, 방해 세력에게 일침도 날렸다.


그녀가 아닌 타인이면 가능했을까. 검사의 양심을 거스를 수 없어 어렵게 행동했어도, 낯선 장소에서 피습당한 뒤로는 그 의지가 꺾였을 것이었다.


잘못했다고 비난당할 일은 아니었다. 어느 누구든 살고 싶은 본능을 소유하지 않는가. 단지 그렇게 어려운 과업을 그녀가 해냈을 뿐이었다.


그동안 일어난 많은 참사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의 성격이라면, 애당초 수상한 작태들을 그냥 넘기지 않았을 테니까. 앞으로도 온당하게 일하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감히 믿었다.


“복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오실 분을 기다리려고 합니다.”

“벌써 결과를 확신해? 아서라··· 뚜껑 열기 전까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갈 의향이 생겼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는 교훈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만한 인물이라면, 바로 옆까지 도달하지 못해도 스스로 경호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돌진하는 총탄 앞으로 몸을 날려도 후회가 없겠다. 그녀가 주도할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없이 찬란할 테니까. 그것들을 수호하는 데 성공한 만큼 만족스러운 순간이 있을까.


총칼이 통하지 않는 육체라서 솔직히 그런 사명감은 필요 없을지 모르겠으나, 탁월한 조건을 특히나 살려서 그녀의 옆에 있다면 더욱 보람차겠다.


사실 이보다 든든한 방패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오귀가 못마땅해도, 그만한 위협을 어렵지 않게 예방할 만한 인재도 오귀였다. 게다가 전보(轉補) 전까지 현장을 지휘한 이력도 있었다. 윗선에서도 이쪽의 가치를 상당히 평가할 것이었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면 지난 정권을 허무는 데 강력히 일조한 입장인 점이었다. 행여나 거절이라도 당할까,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이후로 계속 시기를 재는 중이었다.


“일단 바뀌기만 한다면, 만족하렵니다.”

“그러시겠지. 난 또 뭐라고······.”


찬용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토록 순수한 이에게 다분히 앞선 상상을 하고 있었다니, 도중에 김이 팍 샜다.


도현에게 느끼는 호감이 진정한 군주를 본 기사의 마음이라니, 이제까지 있었던 일도 익히 상명의 됨됨이를 아는 터라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사람의 인연이 본디 마음대로 되는 성질이던가. 어차피 중요한 요소는 그들의 마음이었다. 이쪽에서 어떤 찬란한 전망을 상상해도, 정작 당사자가 나서지 않는다면 죄다 부질없었다.


“네? 그럼 어떤 의미로···.”

“아니야, 됐어! 이 정도가 딱 좋아! 이상은 내가 불편해.”

“예에··· 알겠습니다.”


상명은 이내 미묘한 낌새를 감지한 듯했다. 사실 이런 방면으로 눈치가 심히 부족하나, 전직 청와대 경호원의 감으로 기가 막히게 수상한 공기는 잘도 감지했다.


이어진 질의에 찬용은 한사코 손을 저었다. 상상한 위기가 끝내 현실로 나타나지 않자, 다시 머리가 맑아지고 있었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내에게 여태 무슨 착각을 했는지, 강수호만 생각해도 정답이 나오지 않는가. 털어놓기도 민망해서 아마 죽을 때까지 비밀로 안고 가겠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그만해라. 생각 좀 정리했더니 자꾸···.”

“무슨 생각을 그렇게···.”

“아아, 그러니까! 아··· 말을 말자.”


어쩐지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입장 같아서 어색했다. 더욱이나 오해를 부르는 상대의 언사까지, 찬용은 일순간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술잔과 마주했다.


가끔은 너무 건강한 이 몸이 원망스러웠다. 오늘처럼 취하고 싶은 날은 도리가 없었고,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도 종종 있었지만 정신이 너무나 멀쩡한 탓에 감히 실행하지도 못했다.


지금조차 그러했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오랫동안 홀로 안고 산 진실을 상대에게 모두 말하고 싶었지만 안 되었다.


충분히 신뢰할 만한 상대임에도 그 자체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책임을 피하는 것 같아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옆에서 지켜봤을 뿐이야. 모든 일은 그 아이 스스로가 해낸 성과야. 그 영광을 나 같은 녀석에게 작더라도 나누지 마.”


상명도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이 이상 실례될 언사를 금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속으로 감복했다. 되바라진 겉모습과 달리 깊게 생각하는 그가 여전히 신기했다.


아마 그녀가 아니어도 결국 돕지 않았을까. 곤지암 시설에서 탈출한 죄수들을 두고 볼 마음씨가 절대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저지를 만행을.


다소 삐딱해 보이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다. 물론 자신은 잠깐 얽혔던 인연에 불과하나, 애당초 기본이 그릇된 자를 그녀가 가까운 거리에 둘 리 없었다.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 그는 스스로를 심히 비하하고 있었다. 일종의 자책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제법 자신감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외형에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이 줄곧 궁금했지만, 끝끝내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상대가 누구든 먼저 실토하지 않은 진실에 대해서 캐물으면 실례였다. 저마다 느끼는 강도가 다를 뿐이지, 털어놓기 곤란하다는 뜻은 분명하니까.


거기다 그가 여태 침묵하고 있는 일이라면, 그 무게가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다면 이쪽이 분발해야 하겠다. 무거운 짐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든 자연히 들 만큼 미더운 조력자가 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도 끝내 말하지 않았으니, 영원히 듣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잿밥에 눈독들일 필요가 있겠는가. 중요한 사실은 둘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곧 큰일을 앞두었다는 것이었다. 앞날이 보다 번창하도록 서로가 가능한 한 손을 잡아야 했다.


“저기요.”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진정한 시작이었다. 상명은 바텐더에게 술을 주문했다. 흐뭇한 시선이 어딘가 기묘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술친구 해 드릴까요? 감사의 의미로.”


‘감사’라는 말을 대체 몇 번이나 언급하는지, 찬용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쯤 되면 전부 알아챘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얼굴빛만 살피면 여전히 순진한데, 오히려 그것이 이쪽을 골리기 위한 하나의 전략은 아닐는지. 그렇지 않고서야 구태여 저 말을 되풀이할 이유가 있는가.


“너 지금 나 놀리지? 사실 다 눈치챘지?”

“전 정말··· 모르겠는데요?”


이윽고 자신의 앞에도 놓인 술잔을 들면서 상명은 조용하게 웃었다. 이토록 편안하게 웃는 일조차 참으로 간만이었다. 작년까지 갖은 사건에 정신없이 휘둘렸으니까.


이만한 여유를 찾은 지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상대가 무엇을 염려하는지도 정말 몰랐다. 어떻게 오해했기에 자꾸만 본인이 먼저 찔려서 이야기하는지, 첫인상과 사뭇 달라서 그냥 놀리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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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 종곡 21.02.19 51 0 14쪽
384 어른 괄시는 해도 9 21.02.16 50 0 14쪽
383 어른 괄시는 해도 8 21.02.16 53 0 13쪽
382 어른 괄시는 해도 7 21.02.12 45 0 13쪽
381 어른 괄시는 해도 6 21.02.12 46 0 13쪽
380 어른 괄시는 해도 5 21.02.09 47 0 12쪽
379 어른 괄시는 해도 4 +1 21.02.09 52 0 13쪽
» 어른 괄시는 해도 3 21.02.05 58 0 13쪽
377 어른 괄시는 해도 2 21.02.05 42 0 13쪽
376 어른 괄시는 해도 1 21.02.02 83 0 13쪽
375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8 21.02.02 47 0 15쪽
374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7 21.01.29 124 0 16쪽
373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6 21.01.29 64 0 14쪽
372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5 21.01.26 55 0 14쪽
371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4 21.01.26 67 0 12쪽
370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3 21.01.22 58 0 15쪽
369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2 21.01.22 76 0 15쪽
368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1 21.01.19 54 0 15쪽
367 하늘이 돈짝만 6 21.01.19 49 0 13쪽
366 하늘이 돈짝만 5 21.01.15 45 0 13쪽
365 하늘이 돈짝만 4 21.01.15 78 0 12쪽
364 하늘이 돈짝만 3 21.01.12 64 0 11쪽
363 하늘이 돈짝만 2 21.01.12 74 0 12쪽
362 하늘이 돈짝만 1 21.01.08 50 0 13쪽
361 쥐 본 고양이 9 21.01.08 52 0 13쪽
360 쥐 본 고양이 8 21.01.05 61 0 12쪽
359 쥐 본 고양이 7 21.01.05 52 0 12쪽
358 쥐 본 고양이 6 21.01.01 48 0 12쪽
357 쥐 본 고양이 5 21.01.01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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