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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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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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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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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4

DUMMY

4


화령 호텔.


“다른 소식은 없고?”

“없어. 이번에는 조금 신중할 모양이야.”


일을 마친 민선은 곧장 사무실로 복귀했다. 어제 오후 갑작스레 연회장 예약이 들어온 탓에 평소보다 그 준비가 급히 진행되었다.


회의에 필요한 다양한 사무 용품과 간단히 섭취가 가능한 다과들, 다행히도 통보받은 참석자 수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제시간에 무사히 마무리했다.


이토록 중대한 사안은 최소한 일주일 전에 연락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아무튼 고객의 요청이라 보통 때보다 더더욱 신경을 썼다. 현장 직원들에게 몇 번이고 차질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야 가까스로 숨을 돌렸다.


사실 그녀가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정도로 분주했던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어제 오후 처영 성당에서 체포된 호억 탓이었다.


요청 사항 자체가 다소 기묘하기는 했으나, 돌연 연회장을 예약한 경우 정도야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사례도 아니라서 무난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제부로 갑자기 사장을 잃은 DM 리테일의 사정은 달랐다. 석수라도 멀쩡히 자리를 지킨다면 좋으련만, 삼성산 터널의 사고 이후로 아직 일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둘 대신 업무 내용들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법무 팀은?”

“오전 중에 검토 마치고, 출발할 거야.”


어차피 디엠 리테일의 임원은 호억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 못했다. 거주지가 어디이며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지, 회사와 관계없는 영역은 칼 같이 구분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덕분이었다. 그러니 당분간 석수를 대신해 움직여도, 가까운 관계자로 생각할 터였다.


방송으로 얼굴과 신분이 공개되면, 더더욱 골치가 아파졌다. 그러니 신상 공개만큼은 최대한으로 방어해야 했다. 실력이 우수한 법률 자문들을 모조리 동원해서.


연달아 일으킨 화재의 규모가 심히 컸지만 인명 피해가 전무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껏 방화 혐의로 얼굴이 공개된 경우도 없으니, 충분히 부딪칠 만한 싸움이었다. 불리해도 그 얼굴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일은 끝까지 막겠다.


변호인단 또한 그녀의 권속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뜻을 가졌으나 사회적 제약 탓에 꿈을 펼치지 못했던 이들이 다수였다.


유철에게 승리하는 즉시, 민선은 그들에게 관련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은 피해자로서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회사와 일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투자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각종 고시에 합격했고 몇몇은 호텔로 다시 돌아와 부지런히 법률 자문을 도맡는 중이었다. 같은 오귀이니 호억에게 다른 뒤탈이 생기지 않겠고 성공률도 좋아 이번 실적 역시 기대할 만했다.


“되도록 서둘러야 해. 은근히 겁이 많아서, 벌써 형사들에게 기가 죽었을지 몰라.”

“그 대단하신 성질에···? 그대로 전할게.”

“그대로?”


설마 직전의 부연 설명까지 낱낱이 전달할 심산인가. 민선은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로 지하를 쳐다보았다.


호억의 뒤처리를 하는 현 상황이 아무래도 탐탁지 않았을까. 낙천적인 심성이나 평소 그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던 터라 불가능한 추측은 아니었다.


“의뢰인에 대해 잘 알아야, 애들도 완벽히 대비하지 않겠어?”

“하기야··· 그렇겠네.”


구태여 추궁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대답에 꽤나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체포된 현장부터 동행하지 못한 이상 조사 도중에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아무리 뛰어난 변호사라도 알기 힘들었다.


의뢰인의 성격이라도 미리 안다면, 계속된 형사의 질문과 압박에 어떤 식으로 답하고 반응했을지 얼추 짐작이 가능하겠다.


그나저나 성당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대는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어머니의 시해를 행한 혐의로 호억에게 줄곧 쫓기던 강수호 아니겠는가.


한강 공원에서 뜻밖의 기습을 당한 이후로 당분간은 절대 움직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어디서 잘도 도움을 받는지 이번은 호억과 호각으로 맞선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의미가 있겠는가. 누구보다 올곧고 고지식한 그 성정에 어떻게 함부로 호억을 공격할까. 그래서 성당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때까지 유의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겠다.


「처영 성당에서 오귀 간 전투··· 2명 체포」


기사는 분명 두 명만 체포되었다고 전했다. 하나는 서울 광장에서 줄곧 귀왕을 지켰던 무사이고 다른 하나는 그간 화재를 일으킨 주범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귀왕의 적통으로 알려진 그 청년은 어떻게 되었는가. 구치소에서 석방된 직후 수호와 동행하지 않았던 것일까. 오로지 언론으로 접한 그들의 소식은 어느 하나 속시원하게 해명되는 구석이 없었다.


애당초 순순히 체포된 점도 믿기 힘들었다. 경찰에게 잡히기 무섭게 가장 많은 손해를 감수할 입장은 당연히 호억이었다. 수호야 특정한 직업과 인간관계 없이 늘 어머니의 옆에 머물렀지만, 호억은 사회적인 신분이 존재했다.


때문에 현장이 다소 요란해져도, 경찰들의 추격을 적극 따돌리는 편이 나았을 터였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대처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지, 조금씩 불안해졌다.


경찰에서 아직 그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금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중이라 이번에는 보다 신중한 자세로 사건을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기다리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겠다. 행여나 면회라도 갔다가는 화령 호텔의 대표 또한 오귀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었다.


DM 리테일이 직면한 위기 말고는 당장은 걱정거리가 없었다. 현장 사진만 확인하면 꽤나 격렬하게 싸운 듯하지만, 어디까지나 호억의 영력이 자아내는 오해였다.


정면으로 도저히 꺾기 힘든 상대와 맞서다 보니 두려운 마음에 크게 짖는 강아지처럼 그 불씨를 확장시킨 모양새였다.


이런 결과가 빚어질까 도중에 손을 뗐지만, 막상 우려가 현실이 되니 성가신 상황에서 벗어났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민선은 옷걸이에서 겉옷을 챙겼다. 사장의 부재를 모르고 있을 회사를 잠시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까지 중한 사건일 줄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사장의 부재가 장시간 이어진다면 필시 다른 말이 나오기 쉬웠다.


석수가 그 징검다리 역할로 복귀할 때까지 연막을 쳐서라도 이쪽이 대신 나서야 했다. 동기들 중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나설 만한 사업가가 자신밖에 없는 탓이었다.


“당분간은 호텔에 소홀할지 몰라. 노력이야 하겠지만, 여차하면 부탁해.”

“걱정 마. 여기는 늘 잘 돌아갔잖아.”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하고.”


민선은 사무실을 나와서, 분주한 걸음으로 승강기에 올랐다. 혼자 남겨지자 머지않아 심경이 복잡해졌다.


이런 경우는 연희가 대신 나서도 좋으련만, 호억의 외형을 하고 자리를 지킨다면 급한 불은 어렵지 않게 진화가 가능하겠다.


기업 경영에 대한 자문은 때마다 가르치면 그만이었다. 본디 이만한 기업은 현장에서 재깍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실현이 불가능한 그림은 주저 말고 미련을 버리자. 누구보다 수호를 배려하는 그녀가 늘 그와 대치하는 호억을 위해 앞장설 리 있겠는가.


호텔 밖으로 나오자마자, 대기하던 기사가 타이밍 좋게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그래,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지.”


당혹스러운 마음보다 원망이 컸다.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보다 조심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 과제였나. 옛날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한 번의 실수조차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몇 년 전과도 판이했다. 작은 무례와 사건에도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으며, 도로와 건물들 곳곳이 온통 감시 카메라 천지였다.


하물며 사적 영역을 지켜야 할 공간에서도 빈번하게 불법 촬영이 벌어지고 있으니 더 설명하지 않아도 그 위험성은 알 만하겠다. 이런 환경에서 여태 조심성 없이 행동하고, 나쁜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하면 정말 바보였다.


언젠가는 반드시 거쳤을 과정이었다. 그저 규모와 시점이 가볍게 넘기지 못할 수준일 뿐이었다. 민선은 그렇게 마음을 다스렸다.


“어디로 모실까요.”

“DM 리테일 본사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이 이상은 도착한 이후에 고민하기로 했다. 이동하는 중에는 한숨을 더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머리가 휴식을 허하지 않았다. 호억에 대한 염려를 미루었더니 금세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좀먹기 시작했다.


호텔을 나오는 도중에 본 광경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차림새가 단정한 이들이 단체로 초조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가. 다급하게 지나쳤을 때는 일정에 차질이 생긴 손님과 안내자일 것이라고 여겼는데, 돌이켜 보니 그들의 복장이 관광과 조금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숫자도 상당했다. 목격한 인원으로 계산하면 열 안팎이었는데. 그러자 뇌리에 또 다른 숫자가 스쳤다.


혹시 오늘 오전으로 예약을 했던 연회장의 관계자들인가. 호텔 로비에서 쭉 대기하던 인원과 참석 예정자의 수가 대략 일치했다.


아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수행 비서겠다. 꽤 명성이 자자한 기업의 대표들이니 필시 하나 이상은 대동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안에서 무슨 소식을 들었기에 하나같이 그 표정이었을까.


어제 오후에 예약한 내용은 꽤나 특이했다. 내부 소음이 절대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대비해 달라는 요청은 가끔 받기는 하지만, 이후에 어떤 상황을 목격하든 필히 비밀로 부치라는 요구는 예사롭지 않았다.


연회장 내부에서 문제될 만한 일을 자행할 작정인가. 담당자가 혼자서 결정할 성질이 아니었던 만큼 해당 사안은 곧장 자신에게 올라왔다.


일단은 예약을 승인했다. 한동안 관광업이 주춤한 데다 사방이 막힌 연회장에서 벌일 만한 일은 틀림없이 한계가 있었고 특히나 예약자의 신분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대신 회사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임명된 이획의 새로운 대표인, 방리혜였다. 나름대로 유명한 법무 법인이 이런 시기에 자진해서 손해가 될 만한 만행을 저지를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장소만 대여한 호텔에 책임질 소지가 발생하지는 않겠다. 막말로 살인이 아니고서야, 마침 이어서도 예약이 비던 연회장이라 크게 문제될 만한 구석도 없었다.


“보기와 다르게 추진력이 있네.”


그동안 일어났던 병폐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리일까. 위태로운 때에 회사를 물려받은 이로서는 최선일지 몰랐다. 기존 임원들을 질책하여 이미 망가진 조직 내부의 질서와 규범을 바로잡는다.


그래서 대기 중이던 수행 비서들이 그렇게 진땀을 뺐을까. 호텔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귀왕의 적통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던 만큼 그와 절반은 핏줄이 통하는 형제로서 아예 무신경할 수가 없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날 이획은 어떤 모습일까. 민선은 저절로 자신의 옛 시절을 떠올렸다. 유철이 난잡하게 만든 판을 일체 정리하고, 현 권속들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았던가.


당시에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모두가 각자의 일에 열심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삶이 안정된 나머지 그만한 열정을 드러낸 지도 벌써 여러 해 전이었다.


그저 다른 불행이나 사고가 터지지 않기를 소원할 뿐이었다. 새로운 삶까지 포기하고 싶었을 만큼 모두가 힘들었으니까. 여기서 더 나태해져도 굳이 다그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조차 서울 광장에서 별안간 터진 사건 때문에 더는 안심하지 못하게 되었다. 호텔도 언젠가는 그로 인한 진통을 겪겠다. 이런 시국에 화령 호텔의 사장과 직원들이 오귀라는 비밀이 과연 얼마나 지켜질까.


이제라도 난관에 부딪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 또한 유철처럼 급격히 변하는 시류에서 낙오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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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6 21.01.29 65 0 14쪽
372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5 21.01.26 56 0 14쪽
»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4 21.01.26 69 0 12쪽
370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3 21.01.22 59 0 15쪽
369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2 21.01.22 77 0 15쪽
368 호랑이 새끼는 자라면 1 21.01.19 55 0 15쪽
367 하늘이 돈짝만 6 21.01.19 5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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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하늘이 돈짝만 4 21.01.15 79 0 12쪽
364 하늘이 돈짝만 3 21.01.12 65 0 11쪽
363 하늘이 돈짝만 2 21.01.12 75 0 12쪽
362 하늘이 돈짝만 1 21.01.08 51 0 13쪽
361 쥐 본 고양이 9 21.01.08 53 0 13쪽
360 쥐 본 고양이 8 21.01.05 62 0 12쪽
359 쥐 본 고양이 7 21.01.05 53 0 12쪽
358 쥐 본 고양이 6 21.01.01 49 0 12쪽
357 쥐 본 고양이 5 21.01.01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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