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 윤슬2
항상 주변에 도움만 받던 내가 홀로서기란 쉽지 않았다. 인재라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전예와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떤 청년이 나를 보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인재라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매번 실망한 나는 그날도 역시 기대치를 낮추며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첫인상은 내 기대치를 매우 높게 만들었다. 그의 키는 8척에 조금 못 미쳤고 수염이 매우 아름다웠다. 또한 나만큼 젊었고 팔은 매우 길었다. 그의 이름은 태사자라고 했다.
“나는 요서태수로 부임하고 수많은 인재들을 얻으려 했으나 그들은 내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허나 그대를 보니 내 마음이 매우 편해집니다.”
“과찬이십니다. 태수님. 저는 청주 동래군 출신으로 태수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본래 동래에 군주조사를 지냈으나 청주 관리와 일이 생겨 요동으로 잠시 나와 있던 중에 태수님이 인재를 찾고 계신다 하여 작은 힘을 보태고자 이 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배움은 많이 없으나 활을 조금 쏠 줄 압니다.”
과연 태사자의 모습을 보니 팔이 튼튼하고 건실하여 활시위를 당기다 못해 부러트릴 수 있을 정도였다. 흐뭇한 내 표정을 보며 태사자는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다.
“이 곳은 만리장성의 보호를 받지 못해 조정에서도 크게 신경을 못 쓰고 있어 북방 이민족에 침략이 잦은 곳입니다. 제가 태수님에게 힘을 보태 작게는 요서, 크게는 태수님이 가는 모든 곳의 방비를 담당하겠습니다.”
이 말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당장 내가 있는 요서군의 관청도 만리장성 바깥이었기 때문에 언제 이민족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곳이었고, 공손찬의 대장인 엄강도 우북평과 요서 모두를 신경쓰기엔 벅찬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내 무예실력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하나 다행인 것은 조정에 힘이 약한 곳이기 때문에 사병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500명 남짓한 사병을 모았고 1000여명의 관군과 합쳐 운용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이들을 관리할 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태사자는 이 일에 매우 적합했다.
“지금부터 태사자 자네를 내 부장으로 임명하겠네. 부족한 나를 위해 힘써주시게나.”
“감사합니다 태수님. 태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병사들을 일당백으로 훈련시키겠습니다.”
태사자가 내 밑으로 들어오게 된 이후로 나는 전예에 대한 갈증을 잠시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다시 인재영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재난은 심각했다. 이 곳은 지방 중에 지방이었고 있던 인재마저도 선비나 오환에게 끌려가거나 중앙으로 진출해 이미 떠났기 때문이었다.
한계를 느낀 나는 주준 장군에게 서신을 보내 상황을 설명한 후 어양과 연, 계 지방 등에 인재 모집에 대한 방을 붙이는 것을 허가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태수이기 때문에 관리를 함부로 고용할 권한이 없었지만 이 곳은 조정에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렇게 험한 곳에 오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노력의 시간은 헛되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188년이 되었다. 여전히 내가 원하는 인재들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태사자를 보며 위안을 얻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계에서 또 한명의 인재가 찾아오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서막으로 아직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어 매우 뛰어났고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소인은 서막이라 하옵니다. 먼저 시간을 내어주신 태수님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능력 외에도 매우 뛰어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은 항상 겸손했지만 그의 생각은 이 곳 백성들을 다스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또한 그는 농사지식이 상당하여 나는 서막을 서주의 속죄관으로 파견하고 싶을 정도였다. 전예와 비교하더라도 속죄관에는 더 잘 맞는 인재였다.
나는 서막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며 그를 부조종사로 임명하였다. 비록 요서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아 부조종사로써 해야 할 일은 많이 없었지만 훗날 그를 속죄관으로 파견할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비록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인 인재들의 영입으로 요서는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이를 본 공손찬은 엄강을 다시 소환했지만 태사자라는 뛰어난 장수가 있는 나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또한 공손찬은 군사를 일으켜 틈틈이 이민족들을 소탕하였기 때문에 요서 지역에도 이민족의 출현은 점차 뜸해졌다. 거기에 요서 주변에 백성들에게 요서 지방은 안전한 곳으로 소문이 나 많은 가구들이 이 곳으로 이주해왔다.
나는 서막에게 그들을 요서 지역 중 만리장성에 보호를 받는 지역으로 이주시키게 했고 거기서 그들에게 땅을 개간하도록 했다. 그러던 중 나는 긴급한 태사자에게 첩보를 받게 되었다.
그는 요서와 우북평이 이어지는 경계선을 순찰 중이었는데 그 곳에 이민족이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출전하였으며 공손찬에게 서찰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또한 서막에게도 서신을 보내 내가 없는 관청을 지키도록 하였다.
출전하는 나의 발걸음은 매우 다급했다. 태사자가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진격하면 좋겠지만 그의 성격으로 추측해보건대 태사자는 분명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바로 전장으로 내달렸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순찰대는 50여명에 기병들로만 편성되었고, 그 기병들은 말과 함께 자랐던 이민족에 비하면 형편없을 것이 분명하였다. 전장에 도착하니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태사자와 순찰대는 적들에게 포위되어 고군분투 하고 있었고, 이민족들도 상황을 전달 받았는지 사방팔방에서 그 수를 드러내어 육안상으로 봐도 2만명은 족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즉시 돌격 명령을 내렸지만 병사들은 겁에 질렸는지 그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혼자 돌격한다 한들 태사자를 저 곳에서 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물러선다면 그 어떤 인재가 나에게 오겠는가. 여기서 태사자를 잃어버린다면 나는 예전과 같이 또 혼자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라도 그들에게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뒤편에 있는 병사들은 눈치만 보고 있었고 비교적 앞에 서있던 병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따라 돌격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이렇게 망설이는 데에는 태사자가 열심히 훈련을 시켰다고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징병을 한 탓에 아직 규율이 바로잡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었다. 우리들의 돌격은 잠시나마 이민족을 뒤로 물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우리 군 전체가 고립되는 형태가 되고야 말았다.
“태수님 위험합니다. 이 곳은 제게 맡기시고 어서 퇴각하십시오. 위험합니다!”
나는 오랜만에 아래가 저릿했지만 더 이상 바지에 실례를 할 수는 없었다. 말을 이어나가면 바지에 실례를 할 것 같아 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이 보기에는 그 표정이 결연해보였는지 순찰대중 한명이 말했다.
“태수님. 뒤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태수님께서 이 사지에 뛰어드신 것을 보고 저는 크게 감명 받았습니다. 태수님이 저희를 지켜주시려고 하는 뜻을 저희는 충분히 느꼈습니다. 이제 저희가 태수님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 것이었다. 꿈보다 해몽이라 하는 옛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혼자 도망갈 수는 없었다. 아니 도망간다 하더라도 사방을 둘러싼 이민족들에게 잡힐 것이 분명했다.
“그럴 수 없다. 출정할 때에 공손찬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니 우리가 조금만 더 버틴다면 우리를 도우러 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사실 희망이 있는 말은 아니었다. 여기서 계까지의 거리는 꽤 있었고 공손찬도 계속해서 주변 이민족 토벌을 나가기에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그가 이 곳으로 오는 데에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한시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때 이민족들에 뒤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태수님 저기를 보십시오. 어디 깃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한 무리의 부대가 적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희망적인 말이었다. 이민족들의 진형은 급격히 어지러워졌고 몇 무리의 이민족들은 그 쪽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갔다. 우리는 조금이나마 헐거워진 포위망을 뚫고 누군지 모를 부대와 합치기 위해 달려 나갔다. 그런데 구원군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느낌이 이상했다. 그 부대의 깃발이 어딘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노란색 깃발...!’
그렇다 그 깃발은 황건적을 나타내는 누런 깃발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황건적의 난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던 곳이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황건적은 없을 것이었다. 내 의구심은 그들과 가까워진 다음에야 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속죄관에 여광과 여상이었다.
“아니. 자네들이 어찌하여 이 곳에 와있는 것인가.”
놀란 나의 물음에 여상이 답하였다.
“저희가 논에 물을 채우고 있던 때였습니다. 갑자기 한 노인이 저희들을 급하게 부르더니 열흘 내로 윤슬님이 위험에 빠지게 되었으니 싸울 채비를 하여 북쪽으로 향하라 했습니다. 저희는 그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해 의아했으나 혹시 몰라 사람들을 이끌고 이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광과 여상 형제가 데리고 온 속죄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거기에 태사자의 무용까지 겹치게 되어 이민족들을 순간적으로 격파할 수 있었다. 이민족들은 잠시 우리와 거리를 벌려 병사를 배치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었다. 나는 여광과 여상을 태사자에게 소개해주었고 여광에게 더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침 저희가 이곳으로 올 준비를 할 때에 미축이 속죄관에 들렀습니다. 저희가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고 미축이 우리에 보급을 담당해주어 이곳으로 빠르게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상황을 보니 저희가 큰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한번 벌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여광은 말에 타더니 적진 앞으로 한걸음에 뛰어나갔다.
“나는 서주의 여광이다. 듣자하니 너희가 싸움을 잘한다하여 겨루어보고 싶어 나왔다. 너희의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면 너희들의 대장은 한번 나와서 나와 붙어보자.”
나는 여광에 당돌함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적들과 우리의 군사 차이는 한눈에 봐도 많이 나는데 누가 이런 도발에 응할 것이란 말인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민족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말을 타고 활쏘는 것을 배웠으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자 일종에 오락인 호전적인 사람들이었다.
내가 미쳐 속으로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에 부족의 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창을 옆구리에 비껴 잡으며 말과 함께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여광이 창을 끊임없이 부딪치며 어느 새 50합을 넘기게 되었다. 이민족의 족장은 땀을 장대비처럼 쏟아내고 있는 반면 여광은 점점 여유가 생기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일기토에서 도망은 패배를 의미했고, 일기토에서 패배한 자는 부족 안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민족의 족장은 다시 한 번 말을 내달리며 여광에게 달려왔고 그의 몸은 곧 창이 꽂힌 채로 바닥에 뒹굴고야 말았다.
이 모습을 본 우리 군은 사기가 크게 올라와 있었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 적들을 몰아내기 위해 모든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여상님. 제가 병사들을 이끌고 여광님과 선봉에 서겠습니다. 여상님은 태수님을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태사자는 즉시 창을 휘두르며 적에게 돌격했고, 그의 옆에는 살아남은 순찰대들이 함께였다. 이민족들은 이 모습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 되었다. 나는 그러던 중 한 소년이 미쳐 도망을 가지 못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태사자를 불러 추격을 중지했으며 여광과 여상에게는 병사들을 돌보라하였다. 그리고는 그 소년에게 이끌리듯 가서 말을 걸었다.
“저들은 약탈을 하러 이 곳에 왔다고 하지만 너는 소년이 아닌가. 너는 몇 살이며 어찌하여 이 곳에 오게 되었는가.”
나는 그 소년에 말을 듣고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그 소년은 누구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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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과연 그 소년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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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는 정사에 있습니다!
항상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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