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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마솥 님의 서재입니다.

수상한 던전의 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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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마솥
작품등록일 :
2023.05.10 14:26
최근연재일 :
2023.06.23 16:0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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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
추천수 :
38
글자수 :
249,566

작성
23.05.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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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대화

DUMMY

***


11화


***


강력한 목캔디를 입안 가득 우겨넣은 기분.


혹은 소염 진통제를 가슴속에 덕지덕지 뿌린 것 같은 기분이라 해야할까.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포션의 효능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얼떨결에 한 레벨업으로 '신비' 스탯이 2로 늘어난 것은 딱히 체감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나쁜 것은 아니겠지..'


가변치의 보유분도 늘어났고 안전이 보장된 지금 해야 할 것은 '목소리'와의 만남과 쓸 만한 물건의 파밍. 그리고 탑의 탈출이 우선이다.


신비에 대해선 잠깐 잊어두기로 한 서린이 조금은 가벼워진 몸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계속해서 나선 층계를 따라 올라가던 서린의 눈에 끝이 보인다.


읽지 못할 수상쩍은 책들이 가득한 '서재'와 수갑과 핏자국이 곳곳에 말라붙은 돌침대가 있는 '해부실'을 통과한다.


"..기분만 나빠지는 텅 빈 방들이란 말이지.."


아쉽지만 연구실로 보이는 곳에서 포션 키트를 챙긴 것 말고 유용해 보이는 물건은 구하지 못했다.


"..서재의 책들은 무기로 쓰기 충분해 보이긴 하는데. 굳이 가져갈 이유가 없네."


혹시 수상쩍은 마법사가 작성한 마법서 같은거라해도 당장은 의미가 없었다.


책을 휘둘렀을 때 불꽃 같은 게 나간다면 진지하게 고려해보겠지만..


"그딴 마법서가 있을리가 없지?"


서린이 초라한 수색 결과에 실망하며 거의 끝나가는 나선 계단의 끝을 바라본다.


올라가던 중 마지막으로 발견한 문은 잠겨있었다. 잠겨있는 문의 상당한 높이에 위치한 작은 철창을 열어 안을 살펴보니 잡동사니들이 잔뜩 들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중에서는 날붙이로 보이는 물건들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목소리에게 말해서 빌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목소리에 대해서 고민하던 서린이 나선계단의 끝. 천장에 그려진 벽화를 바라본다.


날개 달린 사자를 중심으로 맴도는 해와 달. 독특한 그림을 바라보며 귀를 쫑긋 펼치며 들어간 곳은 서린이 깨어난 제단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석실의 벽면에는 이름 모를 식물의 뿌리로 보이는 가는 줄기들이 말라붙어 있다.


보랏빛 천에 금빛 사자 문양이 그려진 천이 사방에 좌르륵 드리워져 있었고 먼지가 앉아 있는 호화스러운 가구들이 보인다.


등은 켜져 있지 않았지만 안개 덕분인지 내부는 밝았다.


호화로워 보이는 물건들로 장식된 실내를 둘러보자 방의 한편 구석에 거대한 캐노피 침대가 놓여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낯설어 보일 만큼 거대한 침대에 접근해보던 서린이 움찔거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차양으로 가리워진 내부에선 누군가가 작게 중얼거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diffeeloe.. guukacrauu.. buudafee.. difkakia.. kellauuje... kana..."


서린은 조용한 방 안에 울리는 목소리를 조용히 들어보다 질문해본다.


"..혹시 아서라고 하시던 분? 거기에서 주무시는 건가?"


서린의 말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일은 없었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직접 접근하는 방법 외에는 딱히 선택지가 없었던 서린이 발소리를 죽이고 침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보다 이내 침대의 차양막 앞에서 내부의 분위기를 살펴본다.


늘어진 차양을 살짝 들추어 바라본 캐노피 침대의 내부는 끔찍했다.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이해되질 않는 바싹 말라붙은 인간이 넝마가 된 옷을 걸치고 침대에 '박혀'있었다.


남자의 가슴을 침대째로 꿰뚫어 바닥에 고정시켜 놓은 수상쩍은 검에선 나뭇가지들이 자라나있다.


피부가 들러붙어 늑골의 형상이 그대로 드러나있고, 관리되지 않은 채 긴 세월을 자라난 듯한 머리는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정작 머리에 숱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형상을 한 미라.


산송장이 움푹 들어간 눈을 움직여 그를 바라본다.


지성의 빛이 느껴지지 않는 혼탁한 눈동자와 마주한 서린.


백탁이 맺혀 흐릿해진 남성의 동공이 백모의 수인을 거울처럼 비추었다.


"...cobo?"


힘 없이 무언가를 물어오는 남자.


"....어어.. 번지를 잘못 찾아왔나..?"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는 앙상한 미라를 보며 침을 꿀꺽 삼킨 서린이 모른 척 잡아떼며 커튼을 내리고 뒤로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각성한 좀비가 쫓아온다던가 하는 이변 같은 게 일어나진 않았다.


잠깐 조용해졌다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를 반복하기 시작하는 미라를 보고 서린이 소름 돋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건 또 뭔데?"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뼈와 가죽만 남아 있는 미라가 알아듣지도 못한 말을 지껄이는 공간.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서웠다. 가슴에 검이 꽂힌 채 산송장이 된 인간이 알아듣지 못 할 말을 불경한 주문처럼 웅얼거리고 있다.


"48Gac 7mec 100Gac kuuu ruuujauuk'kuf kuulkejecuc kac diiiceuu."


난감해진 서린이 캐노피 침대를 제외한 다른 공간을 찾아보고 있을 때, 주변에 가득한 식물의 뿌리에서 빚의 알갱이들이 기화하듯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그 빛은 캐노피 침대의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서린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고 있자 그의 머릿속에 다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사해 보이니 다행이로군. 반갑네.]


"..오."


서린이 내심 안도하며 목소리를 환영했다.


[몸 상태는 어떤가? 배낭을 챙겨 온 것을 보아하니 치료약은 제 때 챙겨 먹은 것 같군.]


"네. 그럭저럭 괜찮네요."


[....?]


"....?"


[....이런, 우리의 대화는 일방통행이었지.]


"....아."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서린이 팔을 ㄴ자 모양으로 굽히며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해 본다.


[표현력이 풍부하군. 제법 귀여운 것은 덤이고. 다행인 소식이야, 어느 정도는 대화가 통하겠어.]


"..쓰읍."


어쩐지 말투가 그를 재롱부리는 아가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조금 기분이 언짢아진 서린이 한쪽 발을 쿵 내려찍었다.


[..너무 심통부리지 말게. 저기의 고장 난 산송장과 수백 년 동안 단둘이 지내다 보면 타인과의 대화가 어색하게 느껴져. 양해를 부탁하겠네.]


확실히 말이 통하지 않다보니, 핀트가 어긋나버렸지만 결론적으로 서린의 말문이 턱 막혀온다.


수백 년을 살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는 목소리를 앞에 두니 전생의 기억을 가진 서린으로선 아가 취급 당해도 할 말이 없어졌다.


"..아서?"


결국 할 말을 잃은 서린이 얼핏 기억나던 그의 자기소개를 떠올리며 물어보자, 목소리가 기쁜듯 답해 왔다.


[기억해 줘서 고맙네. 내 이름은 아서일세. 이 탑의 관리를 맡고 있는.. 인간의 찌꺼기 비슷한 것이지. 말은 놓아도 된다네. 물론 나는 자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목소리의 말을 들어 보면 아서의 말에 그가 궁금한 것을 반응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뭐가 이리 번거로운지 툴툴거리던 서린이 손가락으로 캐노피 침대. 그 안에 누워 있던 산송장을 가르켜본다.


[저 안에 누워있는 게 궁금한가?]


고개를 끄덕이자 목소리가 흐음, 거리던 소리를 내더니 내심 큰 결심을 한 듯 말해 준다.


[저것은 과오를 저지른 어리석은 이의 결말일세. 불멸의 몸을 얻었지만 그에 따라오는 광기의 저주에는 무지했지. 언뜻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만 그저 단어의 나열일 뿐이라네.]


그 말에 관자놀이 옆에 손가락을 대고 빙빙 돌려보는 서린.


[...표현력이 제법이로군. 그가 미친 거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미쳤지. 어찌 보면 그 역시 피해자이지만 그는 이 비극이 깃든 대지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할 수 없다네.]


으음. 뭔가 감정이 이입된다기보단 게임에 등장하는 NPC의 대사를 듣는 기분이 든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네.."


하여간 흉한 꼴에 처한 남성에게 싸늘하게 대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낀 서린이 고민하다 다음으로 입 바깥으로 '아서'를 또렷하게 소리내어본다.


"아서."


[..응?]


"아서, 아서."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르키며 그의 이름을 말하자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챈 목소리가 다시 확인했다.


[..아무래도 나에 대해서 궁금한 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서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 산송장의 가슴팍에 꽂혀 있는 검이 하나 있을 테지. 그게 바로 나일세.]


설마 했던 에고 소드 선언.


서린이 황당한 눈으로 침대쪽을 바라보자 아서가 이미 말하지 않았냐는 듯 말해 온다.


[내가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네와의 접촉이나, 이 대화 역시 공짜는 아니야.]


갑작스러운 유료화 선언(?)인가 하여 서린이 내심 당혹스러워하자 아서가 걱정 말라는 듯 말을 덧붙였다.


[자네에게 호의의 대가를 요구할 생각은 없네. 다만 상당히 무리하고 있는거라는 것만 알아주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그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천 년이고 만 년이고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만한 여유는 없는 것 같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 서린이 서둘러 자신을 가르켜본다.


[...음.]


망설이는 아서의 목소리를 듣고 푹신한 털이 가득한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더 찔러보자 아서가 마지못해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 괴물이 탑을 가로막고 신성수가 말라붙으며 내 의무는 여기에서 끝인가 했지.]


아서의 말을 집중해서 듣다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에 절로 피곤한 표정을 지은 서린.


"..괴물이라 하면 한 녀석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그 표정을 보니 무엇인지 짐작했나 보군. '수확하는 자'일세. 달의 파편이 이곳에 찾아온 인간들의 온갖 사념들을 흡수하며 괴물로 자라났지.]


뉘앙스를 들어 보니 내려오면서 몇 번이고 조우했던 괴물의 존재는 이 탑의 관련자로 추정되는 아서가 의도하지 않은 무언가로 보인다.


다만 지금 물어본 건 그게 아니지.


자신의 가슴을 다시 폭 가르키며 강조한 서린에게 아서가 한숨 쉬며 말했다.


[후우. 숨길 생각은 없으니 너무 재촉하지 말게나. 다만 자네가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보면 조금 서글프군.]


"...충격? 하하. 설마."


잠자다 깨어나보니 알 속에서 수상쩍은 반인반수로 깨어난 것과 비교해보면 뭐..


서린이 팔을 ㄴ자로 굽혀가며 괜찮다고 힘주어 재촉하자 결국 아서가 털어놓는다.


[자네는 용사와 달의 사이에서 나온.. 피붙이. 그러니까 자식일세.]


입을 뎅 벌리고 뻣뻣하게 굳은 서린이 잠시 비틀거리다 바로 섰다.


"..용사가 인간? 아니 달이 인간? 잠깐 족보가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해 보니 달과 인간이 합방(?)을 했다는 것에서 자신의 수상쩍은 생김새까지.


아무리 최근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합방하는 잡식성 용사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그딴게 아비라고 하면 또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이곳이 현실인지 게임 속인지 계속해서 혼동이 온다고는 하지만 '타인과의 대화'에서 이렇게까지 현실감이 옅어져 본 건 또 처음이다.


하지만 산송장에 꽂혀 있는 에고소드.. 라고 주장하는 아서가 그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그의 가계도를 상상해 보던 서린의 눈이 혼란으로 차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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