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마음껏 농락하세요.
“그 아악! 살려달라고! 나 발목 끊어진다!”
구동한의 애절픈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런 미친! 저게 멉니까요?!”
- 띠링! 오염된 던전 퀘스트.
워킹 트리 사냥.
워킹 트리(0/1)
보상. 튼튼한 나무 껍질 2개.
“제길 뿌리로 움직이는 거였어?”
움직이는 영역에 비해 몸이 가벼웠고, 배설물도 없이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가 나무였기 때문인가?
구동한을 낚아챈 워킹 트리의 모습은 주변에 있는 나무와 같은 모습이었고, 내 허벅지만 한 십여 개가 될듯한 뿌리를 이용해 움직이고 있다.
“식물이면 짐승들의 수액을 빨았던 거고?”
그리고 자세히 보니 뿌리 중에 둥그런 것이 있었는데,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고전 게임에 나오는 꽃봉오리 괴물처럼 생겼네?!”
평소 나무로 위장하고 있다가 먹잇감이 가까이 오면, 뿌리를 이용해 사냥하는 놈 같다.
- 평범한 한손 검을 장착했습니다.
- 튼튼한 사슬 갑옷을 장착했습니다.
기온이 낮습니다. 페널티로 모든 공격에 충격을 13% 방어합니다.
* 경고. 영하의 기온에선 장비 파손이 매우 높습니다. 영하에선 착용하지 마십시오.
“미친.”
15%를 방어하는 가죽 바지보다 성능이 안 나온다. 모든 움직임이 10% 감소한 것도 덤이다.
곧장 한손 검을 들고 워킹 트리를 향해 뛰어갔다.
“하압!”
“신형! 머리 숙이세요! 관통 사격!”
피융.
강력한 내력이 담긴 화살이 내 머리 위를 지나, 구동한의 발목을 감은 뿌리를 관통하고 근처 다른 뿌리에 박혔다.
[휘이이이이이.]
워킹 트리가 휘파람 부는 소리, 혹은 이명 소리 같은 비명을 지른다.
- 전투 마스터리 : 검술이 활성화됩니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오는 뿌리들을 피해, 규원의 화살에 관통돼서 힘을 못 쓰는 너덜너덜한 뿌리를 잘랐다.
“으아아아!”
“야 너 안 죽었으니깐. 소리 그만 질러!”
떨어진 구동한을 잡아 뒤로 빠졌다.
[휘이이이이-.]
“빨리 장비 챙기고 싸울 준비해. 민서 씨도 화염 덫 설치 부탁드립니다.”
“네. 리더 기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백화점에서 100만 원에 산 5L 기름통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넘겼다.
“비싼 거니깐 아껴 쓰세요.”
“네. 화염 덫 설치되면 바로 끌고 오세요.”
“네 서둘러 주세요!”
곧바로 워킹 트리에 뛰어들었고, 박규원이 내가 가끔 놓친 뿌리에 공격했다.
“신형! 저도 지원합니다!”
“어. 박규원 넌 민서 씨한테 기름 있으니깐 그걸로 불화살 좀 만들어 쏴.”
“안 됩니다요! 지금 상황에서 불 지피려면 시간 많이 걸립니다요!”
“젠장 그걸 생각 못 했네. 불붙일 불쏘시개 가지고 다니는 거 없어?”
“없습니다요! 위험! 확산 사격!”
찹찹찹.
물에 젖은 이끼 위로 낀 살얼음 지대. 걷기 매우 불편하다. 다행이라면 저놈 하나만 처리하면 던전이 클리어 된다는 것 뿐.
“빨리 처리하고 집에 가자!”
“알았습니다요! 조준 사격!”
“으아! 맹렬한 돌진!”
“조금만 버텨 주세요! 덫이 완성돼요!”
[피이이이이-.]
그렇게 죽어라 싸우는 그때 귓가에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 알림. 매칭이 성공합니다. 누군가 오염된 던전에 침입합니다.
“신형! 방금 알림 소리 들었습니까요?!”
“몰라! 일단 사냥에 집중해!”
“빨리 공격해요. 저 방금 죽을 뻔했다고! 구르기!”
워킹 트리 뿌리 아래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구동한과 그가 못 보는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나와 규원이 죽어라 싸웠고.
“리더! 덫이 완성됐어요! 끌고 오세요!”
“구동한 뒤로 빠져! 집에 갈 시간이다!”
“정신없어요! 민서 씨! 어딨어요!”
“여기예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와요!”
구동한이 뒤로 구른 후, 돌진기를 써서 민서 주변으로 부리나케 이동했다.
“덫 안 밟게 조심하세요!”
“그 정돈 알고 있다고요!”
동한이 민서를 향해 직선으로 이동하다 옆으로 몸을 날려 덫이 있는 방향을 피했고, 난 사슬 갑옷 안에 있는 티셔츠를 찢은 후 돌돌 뭉쳐 민서에게 던졌다.
“민서 씨! 기름 묻혀서 규원한테!”
“네! 저한테 던지세요!”
[피유우우우우-]
잔뜩 어그로가 끌린 상황이라 그럴까? 구동한과 나를 향해 성난 워킹 트리가 뿌리를 이용해 따라온다.
딸깍! 취이이이익!
[피이이이이이-!]
높은 음역의 주파수가 귀를 후벼판다.
놈에게 묻은 기름과 함께, 화염 덫에 있던 부싯돌이 발동되며 불이 붙었다.
“규원 씨 받아!”
오민서가 기름통에 기름을 잔뜩 묻힌 천을 박규원에게 던졌고, 규원이 그대로 화살에 감으며 불붙은 워킹 트리를 향해 뛰어갔다.
"클라이맥스입니다요! 이단 점프!”
날렵하게 움직인 박규원이 불붙은 워킹 트리의 몸통 옆면에 착지해서 불을 기름 천에 옮겨 붙인 후. 다시 도약해 빠지며 불붙은 화살을 활시위에 건다.
“조준 사격!”
뿌리에 붙은 불과 다르게 박규원은 워킹 트리 상부에 달린 메마른 침엽수 부분을 향해 공중에서 활시위를 놓았고.
[삐이이이이이-!]
화르르륵!
메마른 침엽수에 불이 사방으로 붙으며, 놈이 뿌리를 꿈틀대다 몸이 멈추더니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 띠링! 오염된 던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튼튼한 나무껍질 2개를 획득합니다. 보스 경험치는 던전 종료 후 정산됩니다.
“···?”
“뭐? 방금 알림 소리 뭡니까요?”
던전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그런데도 포탈이 생성되지 않는다.
불타오르는 워킹 트리에 붙어,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우리는 의문에 휩싸였다.
* * *
- 띠링! 오염된 던전에 5회차 침입합니다. 적대 진영의 헌터 사살 시. 막대한 보상과 함께 인벤토리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 이곳에선 진영 살인 페널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흐흐흐. D급을 4인으로 들어오는 인간이 우리 말고 또 있었네요?”
“거봐. 있다고 했잖아. 이번엔 어느 나라 놈들일지 기대가 되는군.”
“오우. 벡터 얼굴이 잔뜩 흥분했군.”
“그러게 말이야. 베일! 여기 발자국이 찍혀 있군. 물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군. 저곳부터 가보자고.”
“이번에 머저리한테 얻은 총의 위력을 확인해 볼 수 있겠군.”
“크큭. 이번엔 선(善) 진영 녀석들이 많길 기대해 보자고.”
푸른 눈에 털 가죽의 방한 장비를 착용한 백인 남자 넷이다. 그들은 룰에 익숙한지 거리낌 없이 물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띠링. 보스를 죽여 오염된 던전 침입 자격을 얻습니다. 본 던전이 침입 받은 상태입니다. 방어 후 자동 매칭됩니다.
* 오염된 던전을 1회 이상 침입을 성공하여야 던전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게 뭐죠? 매칭? 오염된 던전?”
오민서가 우리에게 물었지만, 우리도 이 현상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오염된 던전이라는 게 거슬렸는데 그거랑 관련 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요?”
“아까 우리가 이 괴물이랑 싸울 때 받은 알람 소리랑 연관 있는 건가?”
“맞아요. 저도 아까 덫 설치할 때 분명 들었어요.”
뭔가 느낌이 불길하다.
이 섬에 우리 말고 누군가 침입했다고 한다. 하늘을 보니 지금 오후 3~4시 정도 된 거 같다.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아직 상황은 모르지만 빨리 캠프로 돌아가야 돼. 이곳에서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간 큰일 나.”
알 수 없는 뭔가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곧 해가 진다. 해가 떨어지고 얼어 죽기 전에 캠프로 움직여야 한다.
“신형 혹시 요 근래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생기지 않는 포탈들과 관련 있는 거 아닐까요?”
“무 포탈 현상?”
“가끔 종종 있지 않습니까요?”
규원이 언론에서 가끔 소식을 전하는 것 중 무 포탈 현상이라 해서, 던전이 기간이 지나, 브레이크 현상이 될 때가 지났는데도, 닫힌 채 반응 없는 형상을 말하고 있다.
“진짜 무 포탈이면 어떡해요? 우리 죽는 거예요?”
“일단 이동하며 각자 생각을 정리해서 의견을 말해보도록 하죠. 출발하죠.”
우리는 캠프를 향해 이동했다.
점점 기온이 떨어져 발이 얼어붙고, 몸이 둔화된다. 한걸음 한걸음 내 디딜 때마다 발가락이 부서지는 느낌.
“어? 잠깐 중지. 최대한 숙이고 숲 쪽으로 이동해.”
“저게 뭡니까요? 어째서 연기가?”
우리가 세운 캠프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분명 출발 전에 불씨를 확인했었고, 이런 축축한 곳에서 자연적으로 불이 났을 리 없다.
“누군가 우리 캠프를 점거하고 있어.”
“어떡합니까요? 설마 침입했다는 것이 헌터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직할 때, 기술을 선택하던 것 중 하나의 특이한 기술이 생각났다.
‘닫힌 포탈을 이용해 던전에 난입할 수 있어요. 이미 끝난 던전이라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난입한 던전은 24시간 후 탈출할 수 있으니까요. 마음껏 농락하세요.’
“지금 우리 캠프를 점거하는 이들은 확실히 헌터야. 내가 방금 기억난 게 있어.”
“기억? 어떤 기억입니까요?”
“이미 닫힌 포탈을 이용해 강제로 침입할 수 있는 기술. 내가 전직할 때 배울 수 있던 기술 중의 하나였는데, 그런 것과 같은거 같아.”
“신형. 저기 사람이 보이는데 한번 가볼까요?”
“동한 씨. 누군지 모르고 어떤 불순한 목적인지 모르는데 괜찮겠어요?”
“일단 우리한테 적의가 있는지는 부딪혀 봐야 알죠. 제가 다녀올게요.”
“동한아 그냥 있어. 일단 생각부터···.”
“생각은 뭔 생각을 해요? 지금 얼어 죽게 생겼는데. 시간 끌 때예요?"
“···.”
동한의 말도 일리 있다.
실시간으로 체온이 떨어지고 있는데, 답도 안 나오는 것을 시간 끌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동한. 가려면 직선으로 가지 말고, 우리 위치가 들키지 않게 돌아서 다가가. 내가 활로 지켜 줄 테니까.”
“어. 박규원 네가 지켜준다니 든든하네. 다녀올게.”
“가더라도 우리 위치 생각하면서 움직여. 우리가 잘 볼 수 있게. 그리고 민서 씨가 길목마다 설치한 덫들 있으니까, 다치지 않게 물가로 이동하고.”
“알았어요. 민서 씨 다녀올게요.”
우리 위치가 들키지 않도록 뺑 돌아 물이 있는 쪽에서 캠프를 향해 갔다.
“안녕하세요!”
구동한이 소리 지르자 불 앞에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
“캠프에 있는 거, 사람 맞습니다요.”
“어 나도 보고 있어.”
“리더. 저 사람 총을 메고 있네요?”
“레벨이 우리보다 높거나, 돈이 많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멀리서 지켜보니 구동한에게 총을 멘 남자가 다가가는 게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동한과 뭐라 말하고 있다.
“무슨 이야길 하는 걸까요?”
“내 생각인데 지금 구동한 녀석 제스처 하는 거 보니깐, 말이 통하지 않는 거 같지 않아?”
“듣고 보니 그런 거 같습니다요.”
한참 이야기 하던 동한이 숨어있는 우리를 향해 손 흔든다.
“저 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말함과 동시에 총을 든 인영이 뒤를 돈 구동한을 발로 차 넘어트렸고, 구동한의 머리통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게 보였다.
“서둘러 동한을 도와 줘야겠···.”
타앙.
산기슭 어딘가에서 큰 소음과 함께 자리에 일어난 규원의 배에 피가 물들었다.
“어? 저격···?”
당황한 눈으로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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