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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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내의녀
실제로 모아보니 서양 언어를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 중에 내 눈에 들어온 자는 김홍륙이라는 자였다.
러시아 근처 함경도 출신인데 천민출신이었으나 어부 일을 하며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자는 러시아 근방에서 일을 하며 러시아인과도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각 지방에서 받아온 전서를 임 주부가 읽어주고 있다가 내 흥미를 자극한 자에 대해서는 추가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품계를 주는 일도 아니니 천민이어도 일단 데려와 보게나.”
천민들은 한양 구경이라도 할 겸 상금을 노리면서 지원하는 것 같았다.
"러시아어를 말 할 수 있다고 하나, 쓰고 읽는 건 못한다고 합니다."
“말하는 게 가장 어려운 건데, 그게 된다면 가장 좋은 거지."
예전에 공부했던 토익 스피킹 테스트가 잠시 생각났다.
나는 리딩, 그러니까 읽는 게 가장 점수 올리기 쉬웠고 리스닝이나 스피킹은 너무 어려웠었다.
임 주부가 모아온 리스트를 보니 조선은 내 생각만큼 꽉 막힌 건 아니었다.
대비의 탓이었던 건지 대원군의 탓이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다들 대놓고 서학을 배운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각 지방뿐만 아니라 대신 중에서도 서양 언어를 하는 자가 몇 명 있었다.
"아무래도 천주교도들이 많습니다."
지원서 뿐만 아니라 몇몇 자들에 대해서는 조사도 해두었다.
천주교를 배교하지 않은 자들은 이미 죽거나 감옥에 갇혀있었기에 이들은 모두 천주교를 배신한 자들이었다.
"실제로 천주교도가 아니지만 서학을 공부한다고 신고를 당해서 천주교도가 아니라고 밝힌 자들일 겁니다."
임 주부는 종이를 계속 넘기다가 멈췄다.
“이 자는 저도 알고 있는 자입니다.
박하양(朴夏陽) 평양의 박규수 손자가 됩니다.
나이는 27세,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양반이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서학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박규수의 손자라는 거지.”
내가 대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들을 때는 한번씩 놀랄 때가 있다.
대원군의 라이벌 같은 박규수는 벌써 육십이 넘었고 그의 손자도 27세라니···
내 나이 15세밖에 안되는데 이들을 뽑고 관리한다는 게 웃기기도 하다.
“그렇습니다.
언어도 중국어는 이미 완벽하고, 영어와 불란서어도 간단하게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도 불러보도록 하시오.”
박규수만큼 똑똑한지는 만나봐야 알 것이다.
임 주부는 이 밖에도 서학을 경험했던 자들을 섞어내서 몇 명 한양으로 모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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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시침을 하겠습니다.”
의관은 매일 나를 방문해 몸을 살폈다.
다만 요즘 바뀐 거라면 침을 놓는 수가 많아졌다.
“오늘은 어떤 시침을 하나?”
궁녀가 옷을 올려주는 걸 거부하고 직접 올리며 물어보았다.
“다리와 발입니다.
삼음교혈, 곤륜혈입니다.”
의관은 짧게 말하며 침을 넣었다가 뺐다.
“모두 후사를 위한 혈입니다.”
의관이 시침을 끝내고도 말을 이어내지 않자 옆에 앉아 있던 내의녀 춘금이 알려주었다.
춘금은 나이가 40이 다되어가는 베테랑 의녀로 대비들의 신임도 받고 있는 이다.
“후사라니··· 대비께서 말씀하시던가?”
“대비전에서 말씀이 없던 건 아닙니다만, 전하께서 아직 후사가 없어 의관들도 한약뿐만 아니라 시침 하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말이 적던 의관이 담백하게 대답했지만 내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 잘 하고 있소.”
의관으로 의녀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왕이 있는 시대에 후사가 꼭 필요하다 보니 대비들도 나에게 매일 말하는 것이 후사였다.
“올해 의녀들은 몇 명 들어왔는가?”
시침이 끝나자 의관과 내의녀는 자리를 비우려고 일어났으나 나의 질문에 멈추고 대답했다.
“궁으로 들어오는 내의녀는 2명에, 혜민서에는 4명이 발령되었습니다.”
매년 시험에 비하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이 상궁이 이번에 출궁하는 건 들었겠지?”
“예, 전하.”
내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내명부내에서는 이 이야기로 난리 났을 것이다.
“이 상궁과 함께 내의녀 춘금과 혜민서로 간 신임 의녀 2명이 같이 가도록 하게.”
갑작스러운 발언에 다들 놀라했다.
물론 가장 놀라는 건 갑작스럽게 출궁을 명 받은 춘금일 것이다.
“어차피 내의녀도 자리를 비어줘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같이 궁 밖으로 다녀오게.”
대비들이 좋아하는 춘금이긴 하지만 나이가 있다보니
몇 년안에, 아니면 올해 중이라도 출궁할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춘금 본인이겠지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이 든 의녀의 두 눈이 떨리고 있었다.
분노에 의한 건지 놀람에 의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명이니 거부할 수 없겠지.
“내의녀도 궁에 들어온지 20년은 되었을 텐데
밖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일세.
이 상궁을 잘 보살펴 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아직도 눈은 떨리고 있었다.
어쩌면 바로 대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
“대비께는 내가 따로 말씀드릴 테니 출궁할 준비를 하게.”
- 작가의말
11/25 수정을 조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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