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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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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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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고무보트 14

DUMMY

진수하고 모터 시동줄을 당길 때, 난 죄책감을 느꼈다.


내 주변 모든 것을 늪으로 만든 비열한 인간 아닌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나쁜 놈 아닌가. 모든 책임을 진실로 느끼지 않는 소시오패스는 아닌가.


그래서 생각했다. 난 저 어두컴컴한 해안에서 결코 내 삶을 위해 회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전처럼 객관적으로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베레모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걸 한번 증명해보고 싶다고.


무섭지 않냐고?

그럼, 당연히 무섭지.

안 무서워?

다 참는 거다.


각자 공포를 표내지 않고 숨기는 거다. 나 같은 인간은 삶이 과분했음을 한 번 쯤은 몸으로 회개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게 되면 아무래도 움켜쥐었던 것들을 하나둘 씩 손아귀에서 놓게 된다. 무섭기는 하나 두렵지는 않다. 난 잡지도 놓지도 않고 살아왔지만, 주변에, 나이를 먹어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움켜쥐려는, 불 같은 욕망이 자력으로 개선 불가능한 연장자들이 있다.


10년 째 개기는 한원사를 뒤지게 패고 싶지만, 죽음의 카드가 한 장 내려왔을 때 한원사를 밀어내고 내가 받는 것이 맞다. 정말 좋은 놈이다. 하사 시절 정말 날 따랐고, 전체 집합 외에 때린 적도 없다. 안다. 그러면서 열 받는다. 친했다가 어느 순간 멀어진 애증의 그 놈. 한원사는 나에게 일부러 시비를 건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정신 좀 차리라고. 한원사는 이미 대대 주임원사 끝내고 올라왔다. 나와 비슷한 졸업반이다.


넘은 내가 못마땅하다. 옛날의 그 조휘준 중사는 어디로 갔냐고. 시궁창 물에 밥 말아 먹었냐고. 당신 지금 좀비냐고. 창피할 줄 알라고. 알면서 모르는 척 하지만 한기춘 이 녀석은 아직도 내 아들 놈과 연락한다. 기춘이가 아버지 같다.


관사에서 오래 같이 살았고, 최고의 이웃사촌이었으며 나에겐 없는 잔정도 많았고, 그리도 내 이혼을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녀석이 마치 형처럼 굴었다.


결국 이혼하자 그때부터 날 적대시하고 무시하고 대놓고 개겼다. 원사 사회에서 1기수 차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사회나 따지지. 장기로 남은 사람끼리의 참 그러한 전우애가 있다.


상사도 친한 원사에게 반발로 형 술 좀 그만 먹어. 위장 빵꾸나고 싶어? 그런다. 이혼한 뒤로 원사 모임에 내가 나오면 한원사는 자연스레 자리를 피했다. 그래서 내가 안 나가기 시작했다. 난 혼자서 요일도 구분 없이 폭음해 들어가 쓸쓸한 방에서 디비 잤다. 뭐 만취하고 아침에 뛰는 건 놀랍도록 잘 하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다시 조준경으로 사방을 훑는다. 그때 문득.


‘어? 2파가 왜 아직도 안 와?“


---------------------------------------


앞바다 해상. 4중대와 본부팀을 태운 뽀드 네 대가 힘겹게 진수되어 바다로 나왔다. 그러나 1파가 떠난지 이미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함 내부의 잡다한 이유로 시간이 훅 지나갔다. 항상 있는 일이다. 그 잡다한 이유가 군대에서 사람 잡는 일이다.


네 대는 너무나 바빴다. 시계를 보고 있던 지역대장은 어서 시동을 걸어 출발하자고 했다. 검은색 LST의 그림자는 이제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기다랗던 검정 그림자가 한 뼘 짜리 정사각형 비슷하게 모양이 변하며 꼬리를 보인다.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자 지역대장은 더욱 조급해졌다.


나오자마자 지역대장이 일어나 수기신호를 강하게 반복했고, 모두 곧바로 시동줄을 당겼다. 네 대 모두 어렵지 않게 시동이 걸렸다. 지역대장은 해안을 지시했다. 조원사와 한원사가 같이 출발하던 때와 다르게, 중요한 절차를 생략했고, 그저 방위각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또한, 현재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저 앞에 1파의 지-라이트 있을 것이니 어려울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가장 심각하게 빼먹은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작전실행 직전의 최후 브리핑이다.

조원사가 한 브리핑은 단순하다.


사고 나면 추가물품-군장-특전조끼-총-군화를 버려라. 그리고 접안 시 행동.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단순하게 떠올릴 구령이 필요하다.


작전 직전 최후 브리핑은 정말 중요하다. 특수한 작전일수록 대원들은 무수한 것을 외우고 신경 써야 한다. 그러므로 실행 직전에는, 가장 중요한 것 다섯 가지 안쪽으로 강하게 주지시켜야 대원들 행동에 확실하게 도움을 준다.


숙지한 모든 것 중에서 당장 필요한 것만 강조하는 것. 총이나 사격에 관한 것은 육지에 도착해 다시 정리해주면 된다. 공포와 위기의 순간에 성서를 십계명으로 압축할 수 있는 사람은 뛰어난 전장 지휘관이다. 부하들이 위기의 순간에 모든 것을 기억할 거라고 믿는 건 낭만적인 착각이다.


여기서 지역대장은 선수 첨병들과 GPS 확인, 대형, 출발시간 등을 마지막 수기하고 정확히 숙지하는 걸 봐야 했다. 특히나 출발시간은 지휘관이 준비, 준비, 준비, 고! 하는 것보다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바로 ‘자신’이 잠시 깊은 숨을 쉬며 여유를 찾아야 한다.


제트기 조종사들은 비행 전 자신 만의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침묵의 시간 동안 자기가 할 일과, 혹시 문제가 생겼을 때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중요한 시간이다.


지휘관이 대원들에게 마지막 최후 브리핑으로 중요한 것을 말하듯이, 지역대장 본인도 바로, ‘자신’에게 중요한 요점을 부각해 자기세뇌 하고 나서.... 그때 출발시켜야 했다. 시작부터 이러한 여유와 사고의 명료함을 가져야 무언가 꼬이는 걸 방지한다.


꼬이면 계속 꼬인다. 머피의 법칙은 맨 처음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꼬이는 합리적 결과물이다. 한원사가 출발 전에 담배 하나를 피운 것은, 원래 밤바다에서 피우는 담배 맛이 좋기도 하나, 복잡한 작전 생각에서 잠시 빠져나와 머리를 식히고 냉정함을 찾으려는 행동이다. 물론 조원사는 그냥 담배가 땡겨서 피웠다. 전투 중에도 피울 인간이니까 이 내용의 표본은 아니다.


그렇게 공격 2파, 예비대 보트 네 대는 해안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보트 한 대에서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고 소리치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2파 그 누구도. 긴장한 보트 네 대는 모두 해안 쪽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보트,

2중대 팀 반을 태운 그 보트는 30분 동안 상당히 밀려 부유해 멀어졌다. 무전기로 연락할 방법도 없다. 지역대본부 무전기는 무선침묵으로 아예 꺼버린 상태였다. 어차피 모터 끄는 시점에서는 무전기 소음 때문에 불륨을 줄이거나 꺼야 하는데, 구차한 절차를 생략하려고, 지역대장은 껐다가 상륙 직후 켜라고 했다. 긴급한 상황일수록 절차를 지켜야한다는 것을 망각했다.


만약 지역대장이 2파 장비 점검과 진수를 중대장에게 맡기고 LST 측면 상갑판에서 1파부터 유심히 보고 있었다면, 문제를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LST의 해군 역시 진수되어 떠나면 OK라고 생각해 다음 절차를 진행했다.


나간 보트들은 성공이라 생각해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다. 부실한 수송함은 빨리 그 바다에서 나갈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북한 레이더에는 잡혔을 것이고 가까이 북한 전투함이 있다면 달려들 것이다. 잠수함도 있다. 이 수송함은 일부러 지원함을 옆에 붙이지 않고 단독으로 왔고, 각 지역대 역시 한 척 단독으로 이동했다. 레이더에 별다른 큰 공격이나 징후로 보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저 멀리 모터 시동이 꺼진 보트의 통신 주특기는 중대와 지역대 망 외에는 모른다. 대대망은 존재하지 않았고, 3개 지역대도 각자 단독이다.


아무리 저어도 보트는 계속 부유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지역대 외부로 연락하는 길은, 지역대 본부 통신이 알고 있는, 유사시 연락할 해군 FM 주파수 호출부호 딱 하나 뿐이다. 터널 해안포에 대한 작전결과는 바로 이 주파수 해군을 호출해 알려주기로 했고, 타격 효과에 따라 해군 함정이 와서 새벽에 더 직사로 쏠 것인가 결정된다.


그러나 부유하는 2중대 팀 보트는 해군 망 주파수와 호출부호를 모른다. 아니 모를 수밖에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똑똑한 통신주특기 사수들은 그런 거 꼼꼼하게 일단 적어둔다. 부유하는 보트의 통신 주특기가 그걸 적어놓았고, 순간 판단해 무전기를 켜고 해군 망을 시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보트는 무선침묵을 유지한 상태로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어긋남의 이유는 전체 브리핑 부재도 한 몫 했다. 수병들은 침투부대의 절차를 전혀 몰랐고, 그저 물에 뜨기만 하면 자기들 임무 끝이라고 생각했다. 보안을 이유로 전체 해군/침투부대 브리핑도 없었는데, 이는 큰 실수였다. 배에 같이 떠 있는데 보안은 무슨 개뿔 보안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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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 hi******
    작성일
    20.07.21 15:01
    No. 1

    시동 걸리지 않은 보트는 그대로 실종이군요. 하긴 2차대전 때에도 착륙실패한 글라이더 탑승병들 운명 생각하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ha******
    작성일
    20.07.21 15:14
    No. 2

    그 보트 승조원들에게는 안타까운 결말이군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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