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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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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7.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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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고무보트 19

DUMMY

기로에 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위하듯이 터진 길었던 섬광 속에서 한원사가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믿고 싶지 않지만 적다. 그리고 저 밑에서 보트를 밀고 뛰어들다 내 대가리를 친 세 놈을 포함해 임시팀장 중위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적은 언제든지 더 나타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전에 포를 하나라도 더 깨는 것이다. 그게 우리 해군을 죽인다. 그러나 마음은 떠나고 싶지 않다. 기춘이가 죽었더라도 그 곁에 있는 새끼들 다 죽이고 나서 가고 싶다. 내가 죽더라도. 아니, 갈 수가 없다. 그러나 빨리 가야 한다.


----------------------------------


4중대 세 명이 쓰러졌고, 본부도 두 명이 전사했다. 지역대장은 땅을 치고 싶었다. 1지역대장은. 말이 특수전이지 이렇게 적은 병력으로 이런 방대한 해안포들을 때리는 것도 무리인데다, 하려면 개전 직전에 기습을 해야지, 전쟁 터진 마당에 완전경계태세로 있는 적진에 들어가 그걸 하라니. 이 말을 대대장에게도 할 수 없었다. 대대장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위쪽 어디에서 개념이 증발했다. 이게 무슨 자살특공작전도 아니고.


작전에서 명명한 7번 포와 8번 포는 적 제대가 다를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고, 그 중간에 상당히 큰 적 거점이 위성사진에도 보였다. 산에 나무들이 없으니 놈들도 위성촬영에 대비해 어떻게 완전히 가릴 방법은 없다.


4중대와 본부팀은 기적적으로 무사하게 벼랑을 기어오르고, 남은 장비를 로프로 끌러 올리는 데 성공했다. 다시 장비와 탄약을 배분하고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 거점을 만났다.


이미 유선으로 남한군 내습은 전파된 것이 분명했고, 지역대장이 그 거점에서 첫 섬광을 보는 순간 기관총과 소총이 폭발하고, 이어 두려운 박격포탄까지 낙하했다. 이건 분명 소대급 이상이다. 곧바로 엎드려 추가 장비와 탄약을 풀고 전투를 시작했다. 수류탄 투척은 어림도 없는 거리였고, 지역대장과 4중대장을 포함한 21명은 거점을 향해 긴 수풀 속으로 포복을 시작했다.


총알은 계속 날아왔고, RPG로 생각되는 게 날아와 터졌다. RPG 폭발을 모두 처음 경험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가운데, 저 뒤에도, 저 앞에도 총소리들이 들렸다. 저 앞은 지역대장 자신의 부하들인 1-2-3중대. 이런 거점에 걸려 예비/지원조 임무도 못하고 보병전투를 벌이는 자신이 지역대장은 원통했다. 그 상황 그 자리에서 거점을 피해 우회한다는 건 전혀 불가능했다.


그냥 벌판이다. 그 자리에서 당하느니 일단 수류탄 투척거리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역대장은 소리쳤다.


“수류탄 투척거리까지 돌격한다! 그 다음은 각개격파 하라! 우린 1파에게 도달해야 한다. 여기서 이렇게 싸울 것이 아니다! 20초 동안 숨을 고르게 하라. 그리고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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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호흡 속에서 대검을 꺼내 일단 물품들 포장을 잘랐다.


‘이런 미친. 이렇게 적재만 하면 뭐야? 아예, 전투 중 사용도 않고 목숨 부지해 반납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뽀드 안 뒤집어졌으니 다행이지. 내 이런 거 한두 번이 아니지. 군대 헛발질. 출납장부와 작전계획과 떠드는 입. 막상 현장에 내던져진 병사들은 깨닫지. 결국 여기 온 사람들은 떠드는 소리만 듣다가 문득 새로운 현실에 도착해 서 있다는 걸. 외롭게. 위에서 떠들고, 따까리들은 현장에 가고, 막상 와보면 그토록 위에서 떠들던 소리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생 구라였다. 장교 특수전 주특기 만들어야 돼.’


내 대검에 찢어지는 방수포 위로 땀이 떨어진다. 약간 기분이 가볍다. 왜? 몸이 풀렸잖아. 이 물건들은 해안포 포좌나 포를 파괴할 때 폭약양이 가늠이 안 되자 일단 추가로 가져가라고 한 거다. 그런데 포장도 뜯지 않았다. 군장 하나를 열어 뒤집어엎고 그 안에 TNT C4를 넣었는데, 도로대화구용 폭약통도 있는 게 아닌가. 니미 이걸 어디다 써? 2층에서 못 내려갈 때 바닥을 1층으로 뚫으라고?... 도폭선과 뇌관통도 발견, 뇌관은 특전조끼 포켓.


순간 북쪽에서 총소리와 폭발. 2지역대? 8번 포는 저기보다 먼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기 아군이 있다는 소린데... 아군이면 우리 지역대나 2지역대 외에 여기 존재할 리가 없다.


다시 물품을 넣는다. 수류탄? 더? 그럼. 저 안에서 수류탄 무척 필요하지. 안 되면 포구에도 넣을 수 있고. 뭐 니미 우리가 백호냐? 스턴탄 넣고 권총탄 갈기게. 우리는 노가다니까 수류탄으로 조져.


대충 꾸리고 짊어져 일어서니 휘청. 이게 몇 킬로야?


잠깐 저게 뭐지? 우와. 폭탄통. 뭐 장대도 아니고, 저런 게 공병도 아닌데 여기 있다니. 두 개만 들고 가자. 가만, 이거 폭탄통 전용 뇌관이 있나? 이걸 어따 써?... 허. 어따 쓰긴, 뇌에 기스났냐? 포열에 넣고 조지면 최고잖아! 양 손에 하나씩 두 개만 가져가 보자.


그런데 저 북쪽 중간은 뭐야? 왜 저기서 총질하고 난리지?... 니미 2지역대 목표 남쪽으로 흘러 상륙했구나. 참 전투 난망하다. 전투 중에 탄약 가지러 산보하고. 이럴 줄은 몰랐지. 몇 시야? 이상하다. 아무 것도 두렵지 않고, 별로 힘들지도 않다. 미쳤나? 가자. 가자. 저기로 가자. 저기... 뭔가 나에게 오고 있어. 말로 표현 못할 육감이.


그렇다. 난 평생 육감으로 살아왔다. 남들이 그렇다는 것을 듣기도 했지만, 난 내 것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 난 내 인생을 먼저 예지몽으로 거의 다 보고 산다. 물론 그게 예지몽이었다는 건 똑같은 현실이 닥쳐야 안다.


어떤 이상한 장면이나 상황을 꿈에서 여러 번 꾸었는데, 그게 현실에서 아주 정확히 나타나고 나는 아차! 또 왔네. 그런다. 하루에 두 번 오기도 하고, 한 2주일 잠잠한 때도 있지만, 내 인생에서 줄기차게 왔다. 사고 난 비행기에 서 있는 장면도 이미 봤었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 계속 예지몽으로 미래를 본다. 예지몽을 꾸고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까지 안 다면 그 얼마나 무서운가. 사건이 닥치고 나서 깨달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항상 고민했다. 인간의 삶이란 어차피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그럼 난 뭔가? 난 저 높은 곳에 있는 분의 이미 예정된 하찮고 작은 피조물 그저 그것인가? 그럼 사람에게 인생이란 단어 만드는 것도 우습잖아. 그건 불특정한 사건의 연속을 말하는 단어야. 인생은 내가 끌고 가는 거야... 아니면 저 높은 곳에서 끌고 가는 거야? 뭐 퀘이사나 블랙홀 충돌 이런 거 생각하면 지구나 인간이 하찮기는 하나, 그럼 나는 좆도 뭐야? 이 생각을 하며 여기 존재하고 있는 나는 뭐냐고. 날 굴려 놓고 하느님 나 책임질 거야?


아니지.... 아니지... 교만이다. 내 인생을 망친 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가 다 망쳤다. 사실 망쳤다는 단어도 이상하다. 어느 정도 해야 망치는지 어디 나와 있나? 기준이나 표본 있어? 그러나 모든 실수는 나의 아집이었다. 알게 모르게 날 도우려 하고 호의를 베푼 사람들 많았다. 내가 같잖은 자존심과 알 수 없는 오기로 모두 걷어 차 버렸을 뿐. 나는 나 외에 관심도 없이 그 모든 걸 무시했다. 맞아! 그게 운명론이건 아니건 내 인생을 오류로 몰아넣은 것은 나야. 다만, 나의 오류도 인생의 일부분인데, 내가 뭘 그렇게 그토록 조장했냐고 항변하고 싶은 거지.


분명히 장담하건데, 얼마 뒤에, 몇 분 지나지 않아. 내가 과거 꿈에서 봤던 예지를 볼 것 같다. 그게 죽으라면 죽어야지 뭐. 내가 어쩔 수 없는 거야. 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 이 작전에 나올 때, 난 사방에 대고 온갖 잡소리와 잔소리와 불만을 토로하고 장교에게 대들고 부사관들에 욕을 했지만.... 행복했어.


역시 군인은 전장에서 작전을 해야 돼. 그게 군인의 맛이야. 목숨을 걸었기에 가치가 있어. 내 것도 안 내놓고 멋진 걸 바라는 건 개 엿 같지.


그래 맞아. 난 즐거웠어. 후배들은 옛날 군대가 더 힘들었다고 착각하는데, 군대는 항상 힘들다. 옛날처럼 두들겨 패지 않아서 편할 거라고? 니들이 원사까지 달면서 계속 실제 군대를 겪었냐? 까는 소리. 세대가 다른데 패서 될 문제야? 우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존나게 터지다 입대한 세대야. 씨바 체육선생에게 개 맞듯이 맞으면서 처음 배운 게 원산폭격이야.


우리 시대는 패야 일이 돌아간 거야. 그거에 적응되어 있었으니까. 그 모든 것들. 군대 개젖같고 항상 대가리 짱구들이 옳다고 우기고, 별들에게 보이기 위해 생쑈를 하고. 측정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편법에 부대가 완전히 뒤집어지고. 별에 별 것을 다했지. 그러나 이 순간 군대는 모든 것을 넘어서 자유롭다. 여기까지 와서 참견하는 사람 없으니까. 선수 빼곤 뽀드에 안 올랐으니까.


지난 일주일이 가장 행복했다. 어리지만 ‘전우’라고 할 애들이 죽어가고 있다. 느끼는 건 뭐? 어렵게 말할 필요 없다. 무척 화가 난다. 복잡한 감정 아니다. 대상이 북한군이건 무엇이건 화가 나고 다 밥숟가락 놓게 하고 싶다. 어려운 말도 격한 말도 쓰고 싶지 않다. 그냥 그것이다. 모든 행복이 영원한 행복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 거리의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고 웃는 게 어디 인간사회야?


내가 이런 무기질 원사가 된 것은, 내가 아무 것도 창의적으로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휘관들은 2년마다 어려져. 그 2년이 쌓이니 이제 아들 나이가 지휘관 오지. 나랑 같은 연차는 사단장하고 군단장하고. 우린 갈쿠리 셋 위에 별 달면 거기서 그만이야. 점차 어려지는 대위들이 계속 아이고 조원사 수고하십니다... 하겠지. .


그런데 말야. 이게 꼭 군대만 그래? 아닐걸? 나이가 거꾸로 가는 건 사회도 마찬가지야. 직급 높은 놈이 꼭 나이가 나보다 많아? 먹고 살기 위해 참고 버티지.


아예 거기에 순화되어 자기 살길 냉정하게 찾던가. 어차피 가진 것 없이 조밥으로 태어났으면 그 순환고리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거기서 벗어나려고 허우적대다 뒤지는 거지. 누가 자신이 조밥임을 자처하겠어. 기분 드럽잖아. 다 죽여버리고 싶지. 그래서 난 어느 순간 무기질이 되었어. 난 순응이란 이름으로 모든 걸 포기했어.


그리고 지난 일주일 전부터 바로 여기 이 자리까지 나는 유기질이 되었다. 나는 소생했다. 난 인간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행복에 도달했다. 여한 없다. 나가서 아파트 경비나 하면서 살라고? NO! 사람은 다 지 성격이나 곤조로 길이 정해져 있어. 난 나가서 그렇게 못 살아. 견디지 못할 거야. 연금 따위는 내 멀어진 가족에게 주던가 안 되면 불우이웃에게나 주던가,


아무도 안 받으면 개나 줘버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흑인 장기수처럼 가석방되면 곧바로 자살할 거야. 난 2부 가리 머리로 평생을 살았어. 내 인생을 망친 게 나란 건 정확히 알지만, 그로 인해 파생된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참지 못하겠어. 내가 해놓고 못 참는다니 나도 참 더러운 놈이지. 그래 나 같은 놈에게 행복은 행복할 때 끝내야지? 그거 더 길게 바라다 더 비참해질 거야. 그래, 나는 도래하지도 않을 내가 만족할 미래에 살았고, 재현되지도 않을 과거를 잊으려 고통 받으며 살았다.


난 길다란 이 폭약통을 양손에 하나 씩 잡을 때, 또 하나의 예지몽을 봤지. 그래, 난 군대에서 안 나가. 절대로 나갈 수 없어. 그 절대로 나가지 않을 방법이 바로 지금 눈앞에 펼쳐진다. 지금까지 먹고 싸고 가끔 노란물도 넘어오고 그랬지만. 여기가 내 집이야. 먹고 싸는 내 몸 뚱아리 같은 거는 별 거 아냐. 몸뚱아리는 뚫리고 찢어져도 상관 없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사고의 주체가 내 인생이야. 사건과 스토리가 인생이 아냐. 지금의 실존이고, 지금 내가 내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인생이며 그 모든 것이야.


아, 씨... 베레모 가져 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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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덤블링 나이프 1 20.08.10 985 27 12쪽
45 함경도의 별 6 +1 20.08.07 1,037 28 9쪽
44 함경도의 별 5 20.08.06 1,012 27 11쪽
43 함경도의 별 4 20.08.05 1,019 24 9쪽
42 함경도의 별 3 20.08.04 1,094 30 13쪽
41 함경도의 별 2 +1 20.08.03 1,168 24 12쪽
40 함경도의 별 1 +2 20.07.31 1,537 28 12쪽
39 고무보트 21 20.07.30 1,070 27 8쪽
38 고무보트 20 20.07.29 1,028 24 7쪽
» 고무보트 19 +2 20.07.28 1,029 3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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