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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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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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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함경도의 별 5

DUMMY

문중사는 급하게 속사로 속삭였다.


“만약 저 길로 적이 나타나면 첫 사격에 다섯 발 이상 쏘지 말고 위치 이동한다. 대신 초탄과 2탄은 최대한 정확히 쏴라. 내가 어깨를 치면 바로 중지하고 따라와. 적이 올 경우, 도로를 따라 후퇴하듯이 이동하다 쏘고 세 번을 안 넘고 산으로 올라간다. 산으로 들어가면 총 스위치 안전으로 돌리고 절대로 쏘지 않는다.”


“저기!”


최하사의 말에 문중사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림자들이 넘어갔던 담장 위치에서 그림자들이 거꾸로 넘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둔한 동작. 누가 다친 것 같다. 넘어갈 때는 굉장히 빨랐지만 넘어올 때는 첫 사람이 넘는데 시간이 꽤 덜렸고 그 다음부터는 다시 빠르게 넘어왔다. 3명. 문중사가 넘어가는 걸 봤을 때는 다섯 명 정도로 봤었다.


“아, 젠장... 썩을 놈의...”


다시 그 오른쪽의 비포장도로. 둘이 걸었었고, 다가오는 둘을 사살했던 그 길로 북한군이 뛰어오고 있었다. 왼쪽에는 두 명이 다친 하나를 부축하며 가고 있고, 그 오른쪽 길에서 적 분대가 뛰어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둘이 먼저 발포했다가 양쪽에서 사격을 받을 수도 있다. 갈등된다. 만약 이대로 놔두면 두 무리는 길에서 마주치고, 부상자를 조력하고 있는 세 명의 무리가 먼저 노출되어 집중사격을 받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셋은 문중사나 최하사나 아무리 봐도 아군 같다.


어둠 속에서 중사와 하사는 눈을 마주본다. 개전되어 넘어와 자신들 지역대를 제외하고 처음 보는 아군이기도 하다. 반가우나 위기가 곧 닥친다. 둘의 눈빛은 결정했다. 일단 자리가 좋아야 한다.


둘은 수풀에서 도로 쪽으로 나와 3미터 간격으로 자리를 잡아 거총하고 최대한 야간사격 기준으로 가늠자 가늠쇠를 본다. 주간에는 지향으로 쏴도 탄착점을 보고 쏘면 3탄 안에 적중률이 높아지나, 야간의 이 88보총은 다른 문제다. 각종 스코프와 사이트가 장착된 총이면 이런 야간전투에서 식은 죽 먹기로 목표를 거꾸러트릴 수 있으나, 재보급이 없어 실탄이 떨어졌고 그래더 적성화기를 들었다.


두 무리는 점차 앞으로 나오고, 수풀 속 두 명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준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적 분대는 길에서 서로가 수직으로 조금씩 겹쳐서 속보로 오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문중사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어 최하사도 당기기 시작했다. 둘 다 단발로 정확히 쏘려했다. 일대 고요가 다시 깨진다.


AK 노리쇠가 후퇴전진하고 총알이 적을 향해 난다. 다행히 주민들이 주로 쓰는 길은 도로 너비로 약간 밝게 반들반들하고 거기에 직립한 목표는 조금 검게 보여 조준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길에 적 두 명이 쓰러졌고, 나머지는 앞으로 뛰기도 하고 수풀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둘은 사격을 계속 했고, 이어 적 분대도 응사를 시작했다. 서로가 위험했다. 무월광에 가까운 상태에서 총구섬광이 워낙 커 지속적인 은폐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쏘기 시작하는 순간 문중사는 부축하는 세 명의 무리가 자기 둘을 적으로 오인하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잠시 뒤돌아본 그림자가 저 세 명 안에 있다면 그래도 오판 오발 확률이 낮은 거라 생각했다.


세 명 중에서 한 명이 적 분대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그 순간 문과 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5.56밀리를 쏘고 있었다. 이전의 교전에서는 긴장 때문인지 총소리를 구분 못했으나 이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저 친구는 지금 적외선 포함 조준경으로 쏘는 것이 분명했다.


추정은 정확했다. 길 앞에서 뛰던 두 명이 곧바로 쓰러졌고, 그 사격자는 이어 적이 몸을 던지 수풀을 향해 약간 간격이 있는 단발로 쏘고 있었다. 조준경으로 정확히 보고 쏘는 것 같았다. 나머지 둘은 한 명을 부축하고 점차 길을 향해... 그리고 문과 최가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사격자는 엎드리지도 무릎을 구부리지도 않고 정확히 서서쏴 자세로 계속 단발로 긁었는데, 얼핏 봐도 사격자세는 무척 견고하고 반동에도 곧바로 정 자세로 돌아온다. 훈련이 많이 된 사람이다. 그러자 적 분대가 흩어진 곳에서 응사가 점차 사라진다.


문과 최는, 저 앞의 서서쏴 사격자가 저쪽만을 쏘는 것을 알았기에, 최초 사격 섬광이 일어난 문과 최를 적어도 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사격자가 쏠 때도 문과 최는 여전히 최대한 그들이 들어간 수풀을 향해 계속 쐈고, 다가오는 둘이 놀라거나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부축하는 둘이 많이 가까워졌을 때, 문중사는 크지 않은 소리로 상대를 불렀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오인하여 총질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나, 아주 간단한 말이기는 하나, 자신들만이 사용하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다. 그 대표적인 말이


‘너희 몇 여단이야?’


대한민국 군대에 여단이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여단에 일련번호로 구분된 것은 특공 일부 외에 다른 부대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예전에는 ‘너 몇 공수야?’ 묻는 경우도 있으나 그건 옛날 말이 되었다. 문중사는 상대가 순간 듣고 반응하기 쉽도록 앞뒤 여유를 두고 입을 열었다.


“이리로...”

“......”

“어이, 몇 여단이야?”


상대는 잠시 얼었다. 전시에 북한에서 들을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문중사가 아예 경계심을 풀게 하려고 곧바로 이어 말했다.


“우리 조랑말이야, 너희 어디냐고!!!”


문과 최는 그들을 먼저 봤기 때문에 쉽게 말이 나왔지만, 상대 두 명은 갑작스레 들린 말에 좀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곧 반응했다.


“쎄면발이. 이게 여기서 뭔 일이야. 우리 경계차단조 아니었어? 난 11중대 담당관님인 줄 알았는데...”


문과 최는 둘을 수풀 안쪽으로 잡아 끌어들였다.


서서쏴 하던 사람이 탄창을 교환하며 뛰어왔다. 부축하던 대원이 그를 향해 ‘김중사임. 여기!’ 손을 흔든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 사람은 곧바로 수풀로 들어왔고, 이때부터 다섯 명의 말은 앞뒤 없이 섞였다.


“오중삼. 여기 쎄면발이람다.”

“맞은 데가 좀 그러네. 거즈로 막아야할 것 같은데.”

“여기 아군이라니까요.”


“야이, 자식아. 아까 넘어가기 전에 내가 봤어. 차단조인 줄 알았는데, 차단조는 건너편으로 들어갔잖아. 아까 안 봤으면 이 친구들 쐈을 거야... 일단 압박으로 감자. 걸으면 출혈 안 멈출 텐데...”


“조준경으로 다 맞췄습니까?“


“참고 있어봐. 조금 강하게 조일게. 어, 다 맞췄어. 하나만 아리까리...”


“일단 뜨시죠. 이 일대 잘 압니다. 400미터 가면 좋은 데 있습니다.”


다섯 명은 부상한 대원을 양쪽에서 부축하며 문중사가 말한 쪽으로 이동했다. 최하사가 후미에 서서 따라오며 뒤를 감시했다. 서서쏴 하고 지혈하고 있는 사람은 딱 봐도 답이 나온다. 주특기 의무에 팀에서 부사관 투-쓰리 레벨. 10분 정도 지나 소나무들이 사방을 차폐하는 곳에 도달했고, 그 고참은 적색 필터 후레시로 부상자에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등 밀착해서 이 빛 좀 가려.”


응급조치를 한 오중사란 사람은 마지막 조치를 끝내고 부상자 눈을 본다.


“기수야, 이거 얼마 안 남은 몰핀인데, 너인데 때린다. 그러니까 각오하고, 우리 전부 다 은거지로 복귀해야 돼. 이 악물고 니 가야 한데이. (고개를 돌리며) 어이 마징가. 미안한데 여서 한 십리만 얘 부축하고 가는 거 좀 도와줄래? 그냥 얼굴보고 말하는 거다. 내가 고참이니까. 나 부후 00기야. 높은 사람 있어?”


“없습니다.” 문중사가 대답했다. “돕겠습니다. 우린 정찰 나왔거든요.”


“그래, 고맙다. 가자...”


“세상 요지경이다. 니미 이런 데서 이렇게 만나다니.”

“쎄면발이가 우리 여단 섹터에 붙은 줄도 몰랐슴다.”


힘을 덜 썼던 문중사과 최하사가 총을 각개로 메고 부상자를 부축하고, 김중사가 선두, 나머지 조랑말 둘이 후미에 섰다. 한바탕 폭풍을 경험한지라 사방의 고요는 더욱 더 무서웠다. 길을 걷고 싶었지만 이 시기에 목숨을 담보하지 않는 이상, 길은 죽음의 길, 매복의 길이었다. 그러니 부상자도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옆구리에 맞았는데, 상태가 약해 보이지 않는다.


실전을 치르면서, 내장부 몸통에 맞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된다. 겉은 어찌 조치라도 되지만 몸 내부는 어쩔 수도 없고, 재보급도 요원한 상태에서 부상자 후송은 불가능하다. 꽤나 열차역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니 일단 벗어났다는 안도가 점차 다섯에게 스며든다.


“아직 실탄이 남았습니까?”


“그러니까 말야, 우리도 일부 보총 쓰는데, 야간에 차단조 함마, 조준경 달린 우리 총 써야지, 그 총으로 야간사격 되나?”


“재보급 요청해도 안 오잖습니까!”


“어? 없었어? 우린 받았어. 우리도 5.56밀리 보름이 뭐야, 한 열흘 쓰니까 실탄 떨어졌지. 우리가 너그들보다 남쪽에 있어서 가능했던 건가?”


“지역대에 수송기가 날아왔다구요?”


“아니, 대대로 묶었지. 각 지역대 보급조가 모여 한 DZ에서 받았어. 알겠지만, 다 야간작전인데 아카보 쓰모 밤에 뭘 제대로 맞출 수가 있어야지.”


“저희는 거의 다 아카보(AK) 들었습니다.”


“그럼, 총은? 묻었어?”

“네.”

“우리도 묻었다가 다시 파서 써. 재보급 받고.”

“다른 조들은 분산한 거죠?”


“또 결원 생겼을 걸. 우린 재겹지 못 가니까 은거지 들어가 봐야 알지 뭐. 지역대 몇 명 남았어?”


“열여덟입니다.”


“비슷하구나. 어디 한 40명 뭉친 지역대 있을라나?”


“목표 30km 못 가서 점프하다가... 비상으로.”


“미친 거지. 우린 헬기 타고 왔다. 제일 쌈빡할 걸?”


“다행입니다.”


“다행은 뭔 다행이야. 지랄염병 했는데. 작계연구에 없었는데, LZ 근처에 넘들이 우글우글했어. 거 빠져나오다 많이 당했다. 군장이 좀 무거워야지. 어째 위성사진 볼 때부터 좀 이상하다 했어. 포병 주둔지 큰 거 하나 있었고, 쌈빡한 거 하나 또 있었지. 경보병여단인가 뭐, 우리랑 비슷한 거. 여기 어디 쉬울 거 있어? 기수야, 괜안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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