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급깎이 님의 서재입니다.

소나타빌 빈 방 있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B급깎이
작품등록일 :
2019.09.11 20:26
최근연재일 :
2019.12.30 18:0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1,970
추천수 :
62
글자수 :
182,121

작성
19.10.28 12:00
조회
104
추천
1
글자
10쪽

Chapter 7: 봄비 -2

DUMMY

“됐습니다. 제 우산이 아니라 호텔 물건이니 로비에 두십시오.”

비블리오 씨는 옐례나 양의 손을 잡고 테이블에 내려놓았어요. 그 뒤로 한동안 옐례나 양은 비블리오 씨에게 말을 걸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어요.

비블리오 씨는 안심한 채로 새로 구상하고 있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옐례나 양은 비블리오 씨의 생각이 절정에 달해 막 수첩에 옮겨 적기만 하면 되는 바로 그 순간에 다시 말을 꺼내 그의 심기를 건드렸답니다. 옐례나 양이 일부러 그런 건지, 실수로 그런 건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저처럼 아름다운 러시아 여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일이 자주 있으신 것 같아요. 저를 아주 박하게 대하시네요.”

옐례나 양이 한쪽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테이블에 우아하게 몸을 기댔어요. 비블리오 씨는 드디어 소설을 쓸 수 있겠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구상한 주인공들이 한순간에 달아났으니 그런 건 눈에 뵈지도 않았어요. 아주 점잖은 방법으로 철없는 러시아 귀족을 모욕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어요. 그의 쪼잔한 영혼이 복수심으로 불타올랐어요.

“아 물론입니다. 러시아 아가씨는 아닙니다만 이 호텔에는 미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둘러보시지요.”

옐례나 양은 비블리오 씨의 말대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주변에는 삭막한 나무작대기들뿐이라고 말했어요. 근처에 앉은 채 부글거리는 속을 삭이고 있던 힐다 양 뿐만 아니라 별 생각 없이 갬런 씨와 한담이나 나누던 스칼렛 양도 화가 났어요. 스칼렛 양이 옐례나 양을 쏘아보자 그녀가 왼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이 박살나며 붉은 음료가 옐례나 양이 입은 외투에 튀었지요.

직원이 유리조각을 치우려했지만 스칼렛 양은 몰래 수신호를 보내 치우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이 건방진 러시아 아가씨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답니다. 옐례나 양은 거북스런 한기를 느꼈고, 스칼렛 양이 마냥 순한 줄 알았던 갬런 씨도 바짝 긴장했어요.

“뭐, 이런 거야 벗으면 그만이죠.”

옐례나 양은 침착하게 외투를 벗고 비블리오 씨에게 더 바짝 기댔어요.

“레베데바 양, 백작의 따님답게 행동하시지요. 당신의 행동이 거리의 여인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블리오 씨는 옐례나의 어깨를 밀어버렸어요. 아아, 드디어 비블리오 씨가 한 방 먹인 것 같네요. 옐례나 양이 적의를 품은 눈으로 비블리오 씨를 쳐다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녀의 앙다문 턱 밑 근육이 씰룩거렸어요.

“체통이야 내 나라에서 지키면 되는 거죠. 이곳에는 내 친척이나 지인들이 아무도 없는데 남이 뭐라 하던 제가 신경이나 쓰겠어요? 그리고 저는 러시아로 돌아갈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귀족으로 태어나셨다면 국가를 위해 일하셔야합니다.”

“내가요? 러시아와 차르를 위해서요? 하!”

“그럼요.”

“좋아요, 학자 양반. 내가 국가에 충성을 바쳐야하는 이유가 뭔데요? 어디 들어보자고요.”

옐례나 양은 아예 비블리오 씨 쪽으로 의자를 틀고 다리를 꼬았어요.

“당신은 귀족이고, 그건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지위가 아닙니다. 당신의 조상들 중 누구 하나가 어떤 공을 세워서 얻었거나 돈을 주고 작위를 샀을 지도 모르지요. 당신은 그 작위 덕에 사회에서 갖은 특권을 보장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러시아 민중 대다수는 그런 귀족들의 사치를 부양해주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하고 있지요. 그래서 당신이 그 특권을 활용해 민중에게 베풀어야하는 겁니다.”

“난 귀족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오히려 나는 귀족이 싫은 걸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귀족이 싫어요.”

“귀족이 싫다고요? 좋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 평민하고 결혼하면 되죠. 그러면 내 신분이 내려가고, 내 배에서 나온 핏줄도 귀족이 아닐 테니까요. 따분하고 배 나온 백작, 공작들 보다는 건너편에 앉은 주방장이나 신발 가게 주인이 훨씬 나아요.”

“웃기는 소리! 당신은 말만 그렇게 하지 막상 결혼 상대를 고를 상황이 되면 그런 사람들은 눈에 차지도 않을 겁니다. 설령 평민과 결혼한다고 해도 이미 수중에 돈이 넘치니 작위 따위는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돈도 계급과 별 다를 게 없습니다. 당신이 백작 영애가 아니라 노예가 되어도 돈만 많으면 그만입니다.”

“그런 악담을 퍼붓다니! 돌아버렸군요!”

둘은 한참을 옥신각신하며 싸웠어요. 서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보다 못한 스칼렛 양은 포크로 와인 잔을 쳐서 대화를 중단시켰어요.

“포에트리 씨, 레베데바 양, 이렇게 활달하게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기뻐요. 벌써 친해지신 것 같네요. 다만 다른 분들이 식사를 즐기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염려스러워요. 남은 대화는 식사 이후에 하시거나, 잠깐만 두 분이서 바람이나 쐬시며 대화를 마치고 들어와 주세요.”

스칼렛 양은 말은 굉장히 부드럽게 했지만 두 사람을 째려보면서 당장 식당에서 나가지 않으면 이번 달에 적자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호텔에서 쫓아내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어쩜 큰 목소리로 싸워대는지 우산을 쥐어주고 정원으로 쫓아냈는데도 말소리가 계속 들렸답니다.

“당신은 그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을 뿐입니다. 직접 이룬 건 하나도 없고, 이룰 능력도 없지요. 당신은 능력도 없고 사치를 부릴 줄 밖에 모르는 천한 여잡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해본 적도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거고요!”

“뭐라고요? 지금 말 다했어요?”

“아직 더 남았습니다!”

“아니, 입 닥쳐요. 내가 말 할 테니까!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딴 식으로 지껄여요? 그냥 내가 귀족이고 변변치 못하게 추파나 뿌려대니까 고깝지 않아서 막말하는 거잖아요! 그게 그렇게 짜증나면 귀족하시던가! 이 평민아!”

“그럼 어디 잘 하는 게 있기라도 합니까? 말해보시지요, 당신이 뭘 할 줄 알든 내가 당신보다는 열 배 더 잘 할 테니까!”

“아유, 이번 저녁은 망했다.”

스칼렛 양은 두 팔을 테이블 위에 포개고 고개를 묻었어요. 식당은 정원에서 한참 떨어져있는데 말소리가 아직까지 들리는 걸로 보아 두 사람은 몇 시간 뒤에 성대에서 피가 날 게 확실했어요.

비블리오 씨는 식사가 끝난 다음에야 객실로 돌아갔는데 하필이면 두 사람의 객실이 전부 서쪽 구역에 있어서 같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지요. 두 사람은 가까이 붙어서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에도 서로에게 으르렁거렸어요. 서로가 아주 미워죽겠는 것 같았어요.

“오늘 밤 10시 로비에서!”

“좋습니다, 어디 덤벼보시지요!”

둘은 호텔 복도에서도 시끄럽게 소리치고 문을 쾅 닫고 객실로 돌아갔어요.


몇 시간 뒤, 갬런 씨는 정찬을 망쳐서 기분이 울적해진 데다가 야간 근무까지 하는 날이라 기운이 쪽 빠져버린 스칼렛 양 옆에 찰싹 붙어서 그녀를 위로해주다가 비블리오 씨와 옐례나 양이 결연한 얼굴을 한 채 1층 홀로 내려오는 걸 보았어요.

“포에트리 씨 이 시간에 왜 밖으로 나오셨습니까?”

비블리오 씨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갬런 씨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곧장 살롱으로 들어갔어요. 곧 옐례나 양도 따라 들어갔지요.

“피타야, 설마 둘이 저 안에서 음...... 아니겠죠?”

“설마 그러려고요. 아까 개와 고양이처럼 싸우는 걸 봤잖아요. 그보다 오늘도 남미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거짓말하지 마세요. 받아줄 기운이 없어요.”

“거짓말 안합니다. 약속하지요.”

비블리오 씨와 옐례나 양이 얼마나 속을 썩였으면 귀신의 입에서 기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요?

아무튼 살롱 안에서는 환희에 찬 비명과 탄식 등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으므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았어요. 스칼렛 양도 깜짝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고는 했으니까요.

그 뒤로 한 시간 쯤 지났을까요? 갬런 씨가 남미 원주민을 만났던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땀범벅이 된 비블리오 씨가 먼저 밖으로 나왔어요. 비블리오 씨는 몸에 힘이 쪽 빠졌는지 터덜터덜 걷다가 홀에 놓인 소파에 주저앉았어요. 반면에 옐례나 양은 5분 쯤 지나서 당당하게 계단을 타고 객실로 돌아갔답니다.

갬런 씨는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간단합니다. 저 여자가 내 주머니를 털어먹은 거죠!”

갬런 씨는 주머니에서 트럼프 카드 뭉치를 꺼내서 로비에 집어던졌어요. 아, 포커에서 졌군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큰 돈을 거신 건데요?”

“아, 버터컵 양, 나도 전 재산을 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논쟁이 끝나지를 않아서 포커에서 이긴 사람이 승리한 걸로 하기로 합의를 봤을 뿐이에요. 그런데 저 러시아 여자가 처음에는 엄청 잃는 겁니다. 하는 족족 내가 이겼지요. 나는 내가 이겼고 애초에 돈을 따려고 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제발 더 하자고 비는 겁니다. 자기가 겉으로는 돈이 많아보여도 돈이 얼마 없어서 방금 잃은 돈이 없으면 숙박비도 못 낸다기에 다시 했는데......”

“뻔하네요. 싹 털렸군요?”

“예.”

“에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나타빌 빈 방 있어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 Chapter 20: 어머나 세상에 -3 [완결] 19.12.30 35 1 8쪽
50 Chapter 20: 어머나 세상에 -2 19.12.29 27 1 8쪽
49 Chapter 20: 어머나 세상에 -1 19.12.28 22 1 9쪽
48 Chapter 19: 3년 만의 외출 -2 19.12.27 21 1 9쪽
47 Chapter 19: 3년 만의 외출 -1 19.12.26 22 1 11쪽
46 Chapter 18: 마법 신발 -2 19.12.25 25 1 7쪽
45 Chapter 18: 마법 신발 -1 19.12.24 21 1 8쪽
44 Chapter 17: 어떻게 된 거냐면 -2 19.12.23 18 1 10쪽
43 Chapter 17: 어떻게 된 거냐면 -1 19.12.22 23 1 9쪽
42 Chapter 16: 뭐라고요? -2 19.12.21 25 1 9쪽
41 Chapter 16: 뭐라고요? -1 19.12.20 21 1 9쪽
40 Chapter 15: 토네이도 심령학 연구회.-3 19.11.13 28 1 9쪽
39 Chapter 15: 토네이도 심령학 연구회.-2 19.11.12 25 1 8쪽
38 Chapter 15: 토네이도 심령학 연구회.-1 19.11.11 24 1 8쪽
37 Chapter 14: 두 번째 프로포즈.-2 19.11.10 34 1 9쪽
36 Chapter 14: 두 번째 프로포즈.-1 19.11.09 25 1 10쪽
35 Chapter 13: 드디어 알았네.-3 19.11.08 31 1 9쪽
34 Chapter 13: 드디어 알았네.-2 19.11.07 25 1 8쪽
33 Chapter 13: 드디어 알았네.-1 19.11.06 25 1 7쪽
32 Chapter 12: 속고 속여요.-2 19.11.05 28 1 10쪽
31 Chapter 12: 속고 속여요.-1 19.11.04 46 1 10쪽
30 Chapter 11: 봉봉의 모험 -2 19.11.03 29 1 8쪽
29 Chapter 11: 봉봉의 모험 -1 19.11.02 30 1 7쪽
28 Chapter 10: 말도 안 되는 이야기 -3 19.11.01 21 1 7쪽
27 Chapter 10: 말도 안 되는 이야기 -2 19.10.31 26 1 7쪽
26 Chapter 10: 말도 안 되는 이야기 -1 19.10.31 24 1 7쪽
25 Chapter 9: 원고와 다이아몬드 -2 19.10.30 19 1 7쪽
24 Chapter 9: 원고와 다이아몬드 -1 19.10.30 31 1 8쪽
23 Chapter 8: 이제 펜 좀 잡을 까요? -3 19.10.29 24 1 7쪽
22 Chapter 8: 이제 펜 좀 잡을 까요? -2 19.10.29 60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