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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시계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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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1.26 22:54
최근연재일 :
2013.03.24 01:40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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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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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글자수 :
420,623

작성
13.01.12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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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7.피에스타(fiesta)-4




붕어 없는 붕어빵, 시계 없는 시계의 아이







DUMMY



퍼억! 구빈원 옆 창고. 둔탁한 소음과 함께, 남자의 몸이 날아가고 있었다. 수사복을 입은 남자는 창고 밖, 진창에 처박혔다.

“내가 말했지.”

남자는 피 흘리는 턱을 움켜잡았다. 창고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은 공포로 질려 있었다.

“봉사 좀 해보고 싶다고.”

검은 눈의 여자가 자신을 보며 비죽 웃고 있었다. 여자는 뚜벅뚜벅 창고를 걸어나오고 잇었다. 여자의 뒤를 보라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따르고 있었다. 소년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소년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하, 하지만, 마법사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그, 그게 제이드 님이 오늘 오신다는데, 경계가 삼엄해서...그게 저 정도 연줄로는 어림도 없어요.”

“흠. 그게 사실이냐?”

현후는 창고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으으....그, 그렇습니다.”

신음소리를 내면서, 남자의 부하들이 말했다. 그들은 모두 현후의 매운 손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죠.”

로그가 말했다. 현후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제이드인가 뭣인가를 보기 위해서다. 그 작자를 만나지 못하면 말짱 헛걸음이야.”

제이드는 평소처럼 이곳에 병자들을 돌보러 온다고 했다. 현후는 남의 시선을 피하기에 괜찮은 장소일것 같아서,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나도 병자들 수발 잘 드는데.”

“누님이요? 안 믿기는데요.”

“다들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래.”

현후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기야, 내 소질은 누구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두들겨 패는데 있지.”

현후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후가 남자를 향해 생긋 미소지었다. 막 스물이 된 처녀의 풋풋한 미소였다. 남자는 어버버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 저 여자가 자신에게 한 짓이 떠올랐다. 저 미소가 남자는 너무 무서웠다.

“오랜만이에요, 삼촌.”

현후가 말했다.

“영지가 함락되고 여차여차한 일이 생겨서 연락 못 드렸어요. 뭐하니, 로그야. 삼촌이시다. 인사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로그는 현후의 눈치를 보면서 인사를 건넸다.

“뭐해요, 삼촌. 인사 안 받아요?”

현후의 목소리에 남자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대체 저 여자가 왜 저러는 지는 몰라도 일단 비위는 맞춰줘야 할 성 싶었다.

“네, 아니, 그, 그래 나도 반갑구나, 조카야.”

“그런데 어째요, 삼촌. 이렇게 아프시다니. 조카된 도리로 삼촌을 돌봐야 하지 않겠어요?”

“어, 어?”

현후는 허리를 숙였다. 현후는 남자의 팔을 잡았다.

“이 꽉 무세요?”

현후는 웃고는 남자의 팔을 바깥으로 꺾었다.



잠시 후, 남자는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었다. 현후는 남자의 몸에 엎드려 울었다.

“아아, 삼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만나자마자 이렇게 되시다니요.”

현후는 통곡했다.

“맥카일 수사님께 형제가 있었는 줄은 몰랐습니다.”

에스더 수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만 하지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으셨거든요. 그, 뭐더라. 음유시인이 된다고 삼촌이 집을 나가는 바람에 말이죠.”

로그는 현후가 일러 준 말을 척척 뱉었다.

“저희도 어제 만나고는 깜짝 놀랐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로그는 말끝을 흐렸다.

수사들의 말에 의하면, 맥카일 수사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은데...’

에스더는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런데 정신을 빼앗길 겨를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일손이 항상 부족했다.

맥카일은 이곳 구빈원을 주름잡고 있는 수사였다. 에스더의 눈에 맥카일은 수사라기보다는 깡패였다. 여기 구빈원에서 얼굴 반반한 여자치고는 맥카일을 거쳐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지키는 것은 있어서, 수녀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에스더는 맥카일이 부상을 입은 게 조금도 불쌍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돌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는데, 저치들이 도맡아해준다니 다행이었다.

에스더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야, 이거나 먹자.”

현후가 맥카일의 환자식으로 나온 빵을 반으로 쭉 쪼갰다.

“누님, 그거 환자 거잖아요.”

로그가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현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빵을 입에 우겨넣었다.

“한 끼 굶는다고 안 죽어, 이 녀석은.”

현후는 꿀꺽 빵을 삼켰다.

"게다가 너 처음에 이 녀석, 나쁜 놈이라고 하지 않았어?"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을 뿐이에요."

현후는 피식 웃었다.

"이런 식이 아니라면 뭐냐? '법대로 하자' 이거냐? 무탑의 법을 말해주자면, 매춘업, 즉 뚜쟁이는 불법이다. 강간, 납치를 통한 매춘은 더더욱 심하지. 그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팔 다리를 분해하고거세해버린다. 그자뿐 아니라 그자의 자식들까지.

그런데 더 웃긴 건, 업자가 아닌 개인이 하는 매춘은 합법이야."

현후는 톡톡 빵 옆의 죽 그릇을 두드렸다.

"이 녀석은 물론 사원과 수도원이라는 연줄이 있으니,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어. 그냥 여자가 원해서 한 짓이라고 하면 끝이지.

네가 원한다면, '법대로' 할 수도 있지."

로그의 얼굴에 복잡다단한 표정이 떠올랐다. 현후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삼안을 쓸 수도 있었지만 수녀와 사제들이 많은 곳에서 그랬다간 곧바로 눈에 띌 것이다.

"곧 오시는 기사님께 네가 말하면 된다. 제이드 드 세르디카. 그게 그의 이름이지.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는 탄원은 들어줄 거야. 그렇게 되면 이 치는 아예 사지 분해되고, 주변 사람들도 그 풍파를 벗어나기 어렵겠지.

모르지. 그냥 이 녀석 하나 죽이는 걸로 마무리 지을지. 신전을 너무 들쑤셔서 좋을 건 없거든."

현후의 말투는 마치 점심 메뉴가 이런 거다라고 말하는 투였다. 로그는 그 말투가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거야?"

로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정성스럽게 환자의 입가를 닦았다. 환자의 입에서 자꾸만 음식물이 새어나왔지만, 남자는 얼굴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남자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고, 환자가 제대로 죽을 삼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관절이 굳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주물러 주었다. 이어서 남자는 환자의 몸을 조심스럽게 굴렸다. 환자의 입에서 신음성이 흐르자, 남자의 동작은 아까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남자는 환자의 옷을 들추고 기저귀를 벗겨냈다. 환자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소리를 질렀지만, 남자는 묵묵한 동작으로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괜찮습니다."

남자는 환자를 향해 미소 지었다.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정말....정말....감사합니다."

지켜보던 자식된 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자식인 자신조차도 때때로 화를 내고 욕지기를 내던 일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저렇게 하다니.

간병인 하나 제대로 두지 못하고, 제대로 시설에서 치료받게도 못해, 이렇게 구빈원의 부설 병원에 맡겨놓고 가끔씩 보러오는 정도였다. 자식으로서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감사하다니요. 겨우 이런 일로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겨우 그런 일이 아님은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남자의 말에 그는 더욱더 몸둘바가 없어졌다.

남자는 부드러운 말로 인사를 건네고는 옆 병상으로 옮겨갔다.

"아아, 삼촌. 이게 웬일이에요."

인사불성이 된 환자 옆에 여자와 소년이 붙어 있었다.

"삼촌, 이 죽이라도 들어보세요."

소년이 숟가락으로 환자의 입에 죽을 흘려넣어주나, 거진 다 흘러내렸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다가왔다. 소년은 화들짝 놀라 무릎을 꿇는다.

"누,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분이신 것 같은데...이, 이런 일을..."

소년은 와들와들 떨었다.

"봉사에 귀천이 어디있겠습니까. 저는 이미 손에 익은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자, 제이드는 소년을 일으켰다. 지켜보고 있던 현후는 속으로 웃었다. 로그, 이 녀석이 연기력 갈 수록 느는데?

제이드는 환자의 입을 벌리고 수저로 죽을 약간 흘려보냈다. 제이드는 환자의 입을 다물리고 제대로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흐흑. 이제야 삼촌을 만났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현후는 눈가를 훔쳤다. 제이드는 현후를 바라보았다. 눈이 먼 여인과 어린 동생이었다. 제이드는 현후의 손을 맞잡았다.

"곧 나으실 수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감사합니다."

현후는 제이드의 팔을 잡아당겼다. 제이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력...장?'

맞잡은 손을 통해서 검은 색의 기가 전류처럼 흘러들었다. 현후가 빙긋 웃었다.

'마법사?'

제이드의 눈이 의심을 담고 흔들렸다.

"여기."

현후는 제이드의 손에 슬쩍 쪽지 하나를 쥐어주었다. 현후는 다시 환자에게로 몸을 틀었다. 제이드는 쪽지를 품에 숨겼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로그는 몇 번이고 외쳤다. 뒤돌아선 제이드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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