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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시계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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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1.26 22:54
최근연재일 :
2013.03.24 01:40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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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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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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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11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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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피에스타(fiesta)-3




붕어 없는 붕어빵, 시계 없는 시계의 아이







DUMMY

팔라스는 숨을 골랐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새벽의 찬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팔라스는 아침잠 많던 어린 시절, 미렌에게 걷어차이던 일을 떠올렸다.

‘식충이 년.’

미렌의 발길질은 매서웠고 끝을 몰랐다. 팔라스가 일어나서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찧을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팔라스는 간단한 세수를 마치고 여관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사위는 어둑어둑했다. 팔라스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이 여관은 팔라스네만 쓰는 것은 아니었다. 여려 다른 기사들도 묵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편이 좋았다.

‘흥, 차라리 기를 넣을 때 죽어버리지.’

“스승”이 된다는 것. 그것은 탑의 규칙에 따라 자신의 기를 종자에 넣어주는 걸 뜻했다. 스승의 기초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미렌은 좀처럼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혹시나하고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누가 벌레 아니랄까봐. 목숨 줄 하난 끈질기구나.’

기를 넣는 과정에서 낮은 확률이긴 해도 종자들이 죽기도 한다고 했다. 정말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다. 며칠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미렌은 팔라스가 자신의 무구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 여자애답게 굴라며 부엌에 쑤셔박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어쨌든 굶지 않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냐고 하곤 했다.

‘가르침, 가르침을 주세요.’

미렌이 아침밥을 차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어느날이었다. 팔라스는 미렌의 발목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팔라스는 핏발이 선 눈으로 미렌을 올려다보았다.

‘그걸로 뭘 하겠다고?’

미렌은 팔라스의 손에 들린 식칼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난 당신을 죽이지 못할지도 모르지.

‘적어도 제가 당신 발목 하나는 절단할 수 있을 것 같네요.한 번 시험해볼까요, 스승님?’

저, 여기 오기 전에 사람 하나 죽이고 왔답니다. 제 동생 네이를 죽인 남자의 목을 물어뜯었지요. 사람 피 맛은 정말 비리더군요. 소 돼지를 잡을 때보다 더 진하고 더 냄새가 강했지요. 그냥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시간을 보낼 바에야 차라리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합니다. 괜찮겠지요? 팔라스는 희게 웃었다.

‘좋다. 가르침을 주마.’

미렌은 팔라스의 손목을 걷어찼다. 손목이 그대로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이어서 미렌은 팔라스의 턱을 걷어찼다. 팔라스는 말 그대로 붕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미렌이 다가왔다. 팔라스는 미렌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미렌의 발이 팔라스의 눈 사이를 밟았다.

‘이게 마법사와 용인들이 말하는 삼안이란 게 있는 자리다. 동토의 놈들은 상단전이니, 차크라니하고 불러대지만 그냥 삼안이라고 해두자. 여기서 기가 생성된다고 생각해라.’

미렌은 발을 거둬들이는가 싶더니, 팔라스의 가슴 사이를 걷어찼다. 숨이 막혀왔다. 등딱지가 으스러진 벌레처럼 팔라스는 두 팔을 버르적거렸다.

‘이곳은 중단전이라고 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냥 회랑이라고 부른다. 기를 충전하고 모오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 동시에 기맥을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고.’

퍽! 발은 팔라스의 샅을 걷어찼다. 팔라스의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이 곳은 기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곳이지. 뭐 이론이 그렇다는 것이고. 하여간 내가 가르쳐 준 곳에 집중해라. 일단 ’기‘가 주입되었으니, 집중하면 기맥을 따라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그 다음단계는 좀 더 있다가 생각해보지. 네 년이 그 동안 죽지 않는다면.’

미렌은 발을 거뒀다. 미렌의 얼굴이 비웃음이 어렸다.

‘꽤나 한 성질 하는 구나. 어차피 노리개 년 주제에.’

팔라스는 멍하니 미렌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봐야 자식도 못 낳는 석녀일 테지만. 아니, 차라리 다행인가.’

미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버릇없는 년! 네가 원하는 대로 가르침을 줬다.'

미렌이 쏘아보았다. 미렌의 주먹이 날아오기 전, 팔라스는 서둘러 자리에서 외쳤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런다고 해서 미렌이 주먹을 날리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팔라스는 피가 흐르는 코를 부여잡고 자리에 쓰러졌다. 그러다가 빨리 밥을 하라며 날아온 발길질을 수어번 더 맞았다.

팔라스는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몸속의 기가 천천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내가 뭣 때문에 이런 걸 하는지.”

한숨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누나!’

한쪽 다리를 절던 어린 동생이 떠올랐다. 왜 수많은 형제들 중 그 아이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귀찮게 따라붙던 그 아이가 너무나 싫어서 화를 내고 때려서 쫓기도 했다.

‘저리 가! 오면 안 돼.’

로하의 경비병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던 날, 팔라스는 소리쳤다. 경비병들에게 끌려가면 어떤 짓을 당할 지 알고 있었다. 주인만큼이나 탐욕스럽고 잔인했던 그들은 취향마저 주인과 비슷했다. 어린 아이, 아직 여자의 태도 나지 않은, 막 가슴이 봉긋해지기도 전의 아이. 그들은 그런 아이들을 좋아했다.

‘이 멍청아, 오지 말라니까.’

네이는 주저 없이 달려왔다.

왜, 왜였을까. 어른들조차도 귀를 막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문설주에 기대어 흐느껴 울면서도 나서지 못했는데.

왜, 너는....

팔라스는 롱소드를 꺼내들었다. 가난한 주인을 만나 제대로 고생하고 있는 검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그저 낡고 해진 가죽 끈만이 가드부분에 칭칭 감겨 있을 뿐이었다.

팔라스는 이가 나간 데는 없는지, 혹시 녹이 슨 부분은 없는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팔라스는 롱소드를 한 번 위 아래로 휘둘러보았다. 부웅. 바람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오른 손은 여전히 어색했다. 새로 생긴 오른 손은 여자의 것 답게 부드럽고 고왔다. 연금술사는 손에 밴 굳은 살이며 근육까지는 재생시키지 못했다.

지난 삼 년 동안, 부단히 노력했건만 오른 팔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연습하러 나왔으면, 한 눈 팔지 마. 노엘.”

건조한 목소리가 났다. 뒤에서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고양이보다는 크고, 평범한 성인보다는 훨씬 작은 몸집이었다.

팔라스의 입술이 찢어졌다. 팔라스는 피가 흐르는 부분을 빨면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노엘은 멍하니 팔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팔라스의 검은 무겁고 확고해보였다. 호리호리한 몸은 쾌검이 어울려 보이는데.

노엘은 고개를 돌렸다. 팔라스의 말만큼은 충실히 따르고 싶었다.

‘팔라스가 아파요? 어디가요? 어제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러고 보니...’

어제 노엘은 핀을 올려다보며 서 있었다. 날카롭게 채근하는 목소리에, 핀은 그저 침묵했다.

‘뭘 생각하는지...모른다만...아니다.’

핀은 약간 뜸을 들인 뒤에 대답했다. 노엘은 그 휴지(休止)를 눈치 채고 입술을 다물었다.

‘엄마도 늘 그 시간에 사라졌어요.’

그리고 엄마는 항상 먹을거리와 함께 돌아왔다. 핀의 묵묵한 눈이 움찔하는 걸 보면서, 노엘은 물러났다.

오늘도 팔라스는 늘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났다. 늘 그렇듯이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기를 운용하는 법을 익히고, 검을 익혔다.

단지 그 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보였다.

‘그리고 늘 그 시간에 돌아왔지요. 내가 잠들었을 때,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노엘은 그날, 핀에게 다 뱉지 못한 말을 떠올렸다.

“팔라스.”

무거운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동작을 멈췄다.

“노엘, 연습 계속해.”

팔라스가 말했다. 노엘은 눈앞의 집단인형을 향해 목검을 날렸다.

핀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팔라스는 핀에게 다가가려다가 멈췄다. 팔라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 꽃....”

“황혼의 장미, 세르디카 품종. 향유가 유명한...”

핀은 말을 더 뱉지 못하고 불쑥 호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팔라스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쪽지를 받아들었다.

“밀리아 양이 보낸 거네.”

팔라스가 중얼거렸다. 팔라스는 쪽지를 품에 넣었다. 팔라스는 꽃다발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노엘에게로 다가갔다.

“노엘.”

노엘은 동작을 멈췄다. 팔라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너에게 스승이 생겼어. 저녁에 함께 뵈러 가자.”

“네?”

노엘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팔라스를 올려다보았다. 팔라스는 노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 스승은 팔라스 님 아니었어요?”

“아니야.”

팔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안 돼. 난 스승이 될 자격이 없어.”

“하지만...!”

노엘의 눈에 분기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팔라스의 오렌지색 눈이 슬프게 웃고 있었다. 언제더라, 저런 눈을 본 게....

“게다가 난 스승보다는 네 어머니가 되고 싶은 걸.”

노엘은 고개를 숙였다. 이미 팔라스의 결정은 내려져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노엘은 팔라스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다면 굳이 어머니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 네 어머니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네가 나중에 힘들 때 돌아올 자리 하나 만들어두고 싶어서 그래.”

팔라스는 말을 끊었다 이었다.

“네 스승님은 무척 좋은 분이시라고 하더라. 농노를 싫어하거나 꺼리는 분이 아니래. 인품도 훌륭하고...”

좋은 사람, 장담할 수 있을까? 밀리아의 말에서, 팔라스는 어렴풋이 그 스승이라는 사람이 꽤 고위직의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제이드의 지척에 있는 사람일지도. 그렇다면 어떤 사람일지 확답할 수 없었다. 제이드만큼이나 밀리아도 속을 가늠하기 어려웠으니까.

여관에 돌아오고 나서, 팔라스는 밀리아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노엘의 스승. 제이드의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사람이었다. 농노출신인 노엘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멜에게 노엘을 보내면, 그 순간부터 팔라스는 제이드에게 매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샨에 내려가면 차차 제이드의 관심이 식지 않겠냐고 했지만, 팔라스는 알 수 없었다. 제이드가 대체 왜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 지 이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가 싫다고 해도 보내실 거죠?”

노엘이었다.

“싫으니?”

노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혹시 팔라스가 날 싫어서 보내는 게 아닌가 해서.”

“아니야. 그래서 보내는 게 아니야. 더 강해져서 돌아오라고 보내는 거야.”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길. 나보다는 더 정의로운 기사가 되기를. 팔라스는 노엘을 안았다. 노엘은 팔라스의 품에서 소리 없이 흐느꼈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갑니다...





작가의말

맨땅에 헤딩...입니다.ㅎㅎ....전 아직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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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했습니다. 미렌이 팔라스에게 기를 설명하는 부분을 조금 손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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