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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시계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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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1.2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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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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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27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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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9




붕어 없는 붕어빵, 시계 없는 시계의 아이







DUMMY


아침이 왔다. 로그는 비척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행렬을 따라갔다. 행렬은 옥외의 세면장을 경유해서 외따로 떨어진 식당으로 향했다. 로그는 그곳에서 현후를 만났다. 현후는 눈가리개로 눈을 가린 채,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현후의 주변에는 “봉사자”라고 불리는 여자들이 붙어 있었는데, 왠지 겁먹은 얼굴들이었다.

“저...현후 누님?”

로그는 식판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로그, 어서와!”

현후가 반갑게 외쳤다. 로그는 현후 앞에 앉았다.

“누님 것을 깜빡했네요. 가져올게요.”

“괜찮아, 이 분들이 줄 거거든.”

현후는 싱긋 웃었다.

“여기 가져왔습니다.”

수사 한 명이 공손하게 현후 앞에 식판을 내려놓았다. 로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후의 식판에는 각종 해산물을 넣고 볶은 요리며, 고기 요리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로그는 현후의 식판을 보고는 자신의 식판을 바라보았다. 로그의 식판에는 달랑 죽 한 그릇과 숟가락만이 놓여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마법을 썼지.”

훗, 현후는 로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여기 수저 있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여자 봉사자가 조심스럽게 숟가락과 포크를 현후의 식판에 내려놓았다.

“지금은 없어, 동생이 왔으니까. 좀 있다가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가봐.”

“네, 알겠습니다.”

봉사자 두명과 수사 한명은 허리를 직각에 가깝게 숙여보이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너도 조금 주랴?”

현후가 접시 하나를 로그에게 내밀었다. 로그는 멍한 표정이었다.

“뭐가, 뭐가 어떻게 된....”

“뭐긴. 여기도 무탑처럼 힘이 지배하는 세계인 걸. 힘의 법칙을 행사했을 뿐이야.”

“어떻게요?”

현후는 스윽 주먹을 쥐어보였다. 로그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힘의 남용이에요.”

“...여기도 매춘이 있더군. 반반한 여자가 오면 수사들끼리 돌려가며 따먹고 내다파는 방식이야.”

“네?”

로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로그.”

“그, 그런 일이! 당장 신전에 알려야 해요. 이런 나쁜 놈들!"

로그가 씩씩 거렸다. 현후는 피식 웃었다.

”일단 앉아봐.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니까.“

로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식을 먹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둘에게로 쏠려 있었다. 로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로그, 로그. 세상이 어떤지 알잖아. 네가 열네 살이라도 대륙사람이니 대충은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후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로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기 수사들은 빈민 출신이야. 특별한 종교적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굶기 싫어서 들어간 놈들이라고. 그러니 하는 짓이라고는 예전에 했던 그렇고 그런 짓들이지.

위에서도 대충 상황은 알고 있지만, 인력부족이랄까? 워낙 빈민들이 많아서 말이야. 어떻게 수습이 안 되는 거야. 여기 수사들을 전부 내쫓아 버리면 당장 운영이 안되거든. 그렇다고 고고한 사제님들이 두 팔 걷고 일에 나설 리는 없고.

비록 엄격하게 관리하고는 있지만 그런 한계가 있는 거지. 설사 수사 놈들이 걸리더라도 큰 처벌 없이 넘어가고, 뭐 그런 거지.“

현후는 숟가락으로 해물볶음밥을 펐다.

“여기도 쌀밥이 있긴 있군. 난 한인들만 먹는 건 줄 알았어.”

“이 음식은?”

“여기 관리자들의 식당에서 좀 빼온 거야.”

로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나쁜 놈들이에요.”

현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볶음밥을 퍼먹었다.

‘역시 샌님인 건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탑 안에서만 생활한 온실형 천재인건가. 현후는 가늠해보았다.

어리광을 부리며 화를 내는 걸 계속할 건가. 아니면 그냥 체념할 것인가.

“좋아요. 일단은 참죠. 하지만 용서 못해요.”

로그는 죽 그릇을 입으로 가져갔다.

“먹어요, 먹어. 어서!"

로그는 벌컥벌컥 죽을 들이켰다. 현후는 피식 웃었다.


이제 햇발은 굵어져 차가운 기는 많이 가셨다. 제이드는 거울을 보며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와 목까지 채운 단추는 흐트러짐 하나 없어보였다.

“후우.”

제이드는 숨을 한 번 길게 고르고는 침실을 나섰다.

침실 주변은 고요했다.

‘아마도 밀리아가 한 것이겠지.’

제이드는 걸음을 옮겼다. 복도에 걸음이 울렸다. 멜이 제이드를 보고는 다가왔다.

“기다렸습니다. 보시겠습니까?”

멜이 제이드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오늘 일정입니다.”

“오전 일정이 모두 비어 있군.”

제이드는 일정을 살펴보았다.

“네, 밀리아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필요 없는 것을.”

제이드는 눈을 잠깐 감았다 떴다.

“지금 밀리아는 어디에 있나? 의논할 것이 있는데.”

“그게...개인 휴가를 내셨습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제이드는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오던 멜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몸이 좀 안 좋다고 했습니다.”

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세르디카를 탈출할 당시, 밀리아는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때조차도 부목을 대며 움직였던 밀리아였다. 게다가 아침에 볼 때만 해도 멀쩡했다.

“결재할 서류는 서재로 가져오게. 난 잠깐 밀리아를 보러 가야겠군.”

“네.”

제이드는 멜에게서 멀어졌다. 제이드의 걸음은 멀어지는 속도와 비례해서 빨라졌다. 아래층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거의 뛰다시피했다.

멜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곳은 무탑과 관계된 일을 처리하기 위한 곳으로, 임시거처와 비슷했다. 그렇다고 해도 밀리아의 거처는 너무 간소했다. 하인의 방에 가까웠다. 좁은 방 두 개를 서로 맞붙여 놓은 형태로, 하나는 일과 관련된 곳으로 쓰고 다른 하나는 잠과 식사를 해결하는 곳으로 썼다.

몇 번인가 제이드는 밀리아의 거처를 좀 더 큰 곳으로 옮기려고 했다. 처음에는 아예 저택에 딸린 소규모의 별채를 지어주려고 했었고, 그것이 거절 당하자, 제이드가 쓰는 공간과 거의 비슷한 규모의 방을 주려고 했다. 그때마다 밀리아는 웃으면서 거절했다.

‘저에게는 이곳이 더 편하답니다.’

밀리아에게는 영지가 있었지만, 밀리아는 한 번도 그곳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 밀리아는 늘 제이드의 옆에 머물렀다.

일각에서는 제이드의 숨겨진 애인이라느니, 개인 노예라느니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제이드는 갈색 문을 열어젖혔다.

“밀리아?”

책상에서 밀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밀리아는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몸에 흐르는 기는 정상으로 보였다. 제이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지, 꾀병인가?”

“네, 이를테면 그런 거예요. 혹시 사용자로서 종업원의 해태를 감독하러 오셨나요?”

“무슨 소리야. 필요하면 휴가 정도는 마음껏 써. 내가 무슨 악덕 영주야?”

제이드는 앉을 곳을 찾다가, 건너편 방의 침대에 앉았다.

“아침에 그런 소리를 하고 가서 죄송해요.”

밀리아가 말했다.

“...할 만한 소리였잖아. 뺨을 때린 것도 그럴만해서 한 거였고.”

밀리아는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제이드의 얼굴은 빈틈이 없어보였지만,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후회해요?”

무엇을? 하고 물어보려다가 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미워요?”

“.....그만큼 좋아하고 존경해.”

밀리아는 작게 웃었다.

“...날 용서할 수 있어요?”

“용서하고 말게 어디 있어. 우리 사이에. 웃으면서 받아들여야지.”

“팔라스, 좋아해요?”

밀리아가 물었다. 제이드의 눈이 밀리아를 응시했다.

“내가 막았잖아요, 십 년 전에. 정말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참으라고. 그때까지 팔라스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그래, 그랬지.”

“지금은 어때요?”

제이드는 웃었다. 어그러진 미소였다.

“미칠 것 같아. 단 한 순간도 내 옆에 없는 걸 참을 수 없어.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제이드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불안하게 떨리는 눈과 주체할 수 없이 뒤틀리는 미소를 막고 싶었다. 제이드는 눈가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못 참겠어. 날 떠난다는 걸.”

“제이드.”

밀리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어디 있어, 팔라스?”

제이드가 물었다. 밀리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가서 미안하다고 해야 해.”

“뭐가 미안한지는 아세요?”

밀리아가 은테 안경을 추어올렸다.

“...오해했어. 콜미오와의 관계 말이야. 내가 처음이었더군.”

제이드는 팔라스가 떠나고 난 자리를 쓸어보다가 발견했다. 붉은 꽃잎처럼 찍혀 잇던 자국들을.

"아, 처녀라서 미안하다 이거군요? 남자는 역시 똑같아.“

밀리아가 이죽거렸다. 피곤한 얼굴에 살짝 장난기가 어렸다.

”그게 아냐, 그게...난...정말...“

제이드는 장난에 맞춰주지 못했다. 제이드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

제이드의 얼굴이 굳었다.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제이드의 대답에 밀리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팔라스, 어디에 있어? 묵고 있는 여관에 있는 거야?”

“어쩌려고요?”

“데려와야지. 싫다고 해도 소용없어. 강제로라도 곁에 둘 테니까.”

밀리아의 눈이 흐려졌다. 저리 조급증을 내는 아이가 아니었다. 밀리아가 기억하는 어린 제이드는 마음이 여리고 다감한 소년이었다. 다른 사람이 상처 입는 걸 두고 보지 못했던 아이였는데....

“제이드, 그러지 말아요. 그럴 필요도 없어요. 내가 데려올게요. 오늘은 안 되지만.”

제이드가 고개를 들었다가 급하게 숙였다. 제이드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확실한 인질이 있으니까. 노엘. 팔라스의 양자죠."

“너무한 거 아냐?”

자꾸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숨겨보려, 제이드는 부러 밝은 소리를 냈다.

“부모가 로하에게 잡혀 있다고 고민이 많아 보였어.”

"그건 로하가 멍청해서죠. 누가 그런 야만적인 방식을 쓴대요? 난 노엘에게 스승을 줬어요. 멜 그리드. 그가 스승이 되어줄 거예요. 팔라스는 기꺼이 받아들였어요."

“그럼....”

“노엘을 멜에게 보여주겠다는 핑계를 대서 불러올게요. 그런 다음 제이드와 단 둘이 있게 해줄게요.”

제이드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그거론 부족해. 팔라스는 곧 샨으로 내려갈 거잖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밀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드는 눈가를 손바닥으로 쓸고 있었다.

"...팔라스는 여기 두고, 핀만 내려 보내면 안 될까?"

"팔라스는 기사잖아요. 게다가 팔라스에게 테실은 꽤 중요해요."

"뭐 때문에 기사가 된 거야. 그냥 보통 여자였다면 다리를 부러트려서라도 데려왔을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밀리아는 화를 내려다가 다물었다. 제이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샨까지 쫓아갈까?"

"안돼요."

밀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말했지만 노엘이 있잖아요. 여자는 아이를 중시하기 마련이죠. 당신에게 돌아올 거예요. 다시 만나면 어제처럼 굴지 말아요. 아침에 했던 것처럼 해서도 안 되고요. 좀 상냥하게 대해봐요."

"알았어. 상냥하게라..."

제이드는 피식 웃었다.

"다들 나보고 상냥하다고 하는데...이상하게 팔라스한테는 그렇게 되지가 않아."

제이드는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풀썩 밀리아는 책상앞에 도로 앉았다.

"하아...."

밀리아는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왜 그렇게까지...'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더욱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젯밤, 제이드를 막아야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른다면 모를까, 알고서는 쉽지가 않았다.

'그래...팔라스 정도는 괜찮겠지.'

그런 상 하나쯤은 줘도 되잖아. 남들은 술을 마시고, 약에 취해 사는데 팔라스가 그런 거라면...괜찮잖아? 밀리아는 생각했다.

'죄가 있다면 나에게 있으니까.....'

밀리아는 눈을 감았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갑니다...





작가의말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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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7.피에스타(fiesta) 13.01.09 217 2 8쪽
» 6.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9 +4 12.12.27 195 3 12쪽
34 6.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8 +2 12.12.25 20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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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6.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6 +2 12.12.25 20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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