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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시계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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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1.26 22:54
최근연재일 :
2013.03.24 01:40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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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54
추천수 :
235
글자수 :
420,623

작성
13.01.18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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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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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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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피에스타(fiesta)-11




붕어 없는 붕어빵, 시계 없는 시계의 아이







DUMMY




쾅! 팔라스는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후두둑. 팔라스가 떨어진 곳에서 으스러진 돌가루가 흘러내렸다.

“으으...”

팔라스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긴 어디지?”

방금 있던 곳의 아래층이라는 것은 알았다. 팔라스의 손에 물컹거리는 것이 잡혔다. 그것의 정체를 알기도 전에, 진한 피 냄새가 풍겨왔다. 팔라스의 몸이 굳었다. 팔라스는 숨을 골랐다. 팔라스는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인간의 신체 조각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정확하게 어느 부위인지는 모르지만, 그것만은 확실했다. 팔라스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뗐다. 방 한 구석에 램프가 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팔라스는 램프와 그 옆에 떨어진 부싯깃을 주워들었다.

치직. 램프에 불이 피어올랐다. 주변이 환해졌다.

“머리가 없어.”

사체들이 피 웅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용인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용인이 아니잖아.”

팔라스는 현기증이 났다. 위층에서 봤던 자들은 인간이었다. 어떻게 용인이 아니냐고 확신할 수 있냐고, 누군가 물으면 팔라스는 답할 것이다. 그들에게서는 용인 특유의, 차가운 피를 가진 족속 특유의, 그 냉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그들은 피어를 썼다. 이 방의 기사들의 머리를 먹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보았던 그들의 모습은 용인도 인간도 아니었다. 그저 괴물, 괴물에 가까웠다.

“난 용인들이 비늘을 쓰는 건 본 적 없어.”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았는데....팔라스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위층에서 계속해서 금속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의 잔영이 동그랗게 뚫린 구멍에서 비치고 있었다.

“제이드.”

‘즉시, 노엘에게 가.’

노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이를 닮은 아이. 팔라스는 등불을 들고 허둥지둥 문을 향해 달려갔다.

“기아아아아!”

피어였다. 팔라스의 몸이 흔들렸다.

‘어차피 노리는 건 나일 테니, 당신은 적당히 알아서 빠져.’

불현듯, 제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노엘은 핑계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은 뒤에 두고 싸웠다. 그것도 혼자서. 검까지 자신에게 주고. 제이드는 그걸 배려라고 믿었겠지만, 팔라스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어차피 노리는 건 나인데, 당신은 별로 도움이 안 돼. 알아서 빠져. 거치적거리니까.’

“젠장!”

팔라스는 소리쳤다.

‘나도 용인과 몇 번이고 싸워봤다고. 마치 혼자서 다 하는 것처럼 굴다니.’

저녁 후식으로 먹은 말린 무화과만큼이나 껄끄럽고 퍽퍽한 배려였다.

‘항상 무시당하지.’

아무 실력도 없다고, 아무런 도움도 못된다고. 그저 “여자”로서의 쓸모밖에 없다고.

‘쓸모가 있어야, 살 수 있어. 영지 사람들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어.’

팔라스 자신이 쓸모가 없는 존재라면, 팔라스가 지금까지 고생하며 노력해온 것들은 의미가 없다.

팔라스는 이를 악물었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나의 경험과 지금 내가 본 것들을 종합하자. 결론이 나올 때까지.

이대로라면 난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도움만 받는 존재에 불과하다. 제이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멋대로 날 유린한 것이겠지.

팔라스는 피 속에 발목을 묻고 생각에 잠겼다.


“뭘 어쩌겠다고?!”

지안이 외쳤다. 고슴도치처럼 빽빽이 등에 난 비늘 창들이 제이드를 향해 날아왔다. 비늘 창은 촉수처럼 방향을 틀어, 제이드를 쫓아왔다.

“너는, 기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기사는 대 용인 병기 같은 존재들이었다. 용인들과 가장 비슷하면서도 다른, 용인의 맞수였다. 제이드는 벽을 밟고 뛰어올랐다. 그 반동으로 비늘창을 찼다.

“어라?”

지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이드는 비늘창을 걷어차고, 다시 또 그 반동으로 다른 비늘창을 걷어차면서, 그렇게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기사님, 어이, 기사님. 넋 놓지 마시고. 그냥 두고 가고 싶은데, 밀리아 녀석 얼굴 봐서 도와주는 거야.’

카라의 귀찮아하는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나야 그냥 찍어둔 공간루트가 있으니, 그걸 타고 가도 돼. 정 안되면 내키지는 않지만 목만 하크리 상자에 담아서 보낼 수도 있어. 하지만, 기사님은 그럴 수가 없지. 한 번 신체가 잘리면 재생은 되어도 폐인이나 다름없지. 그러니까 애초에 왜 혼자서 쳐들어간 거야, 이 등신 같은 인간아. 당신이 내 제자였다면 피부를 모두 벗겼을 거야! 이 미친 새끼야!’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매웠던 카라의 손길도 생각났다.

‘여기서 살아나가면, 딱 뺨 한 대만 때리자!’

카라의 일갈도 떠올랐다.

‘용문은 두 개가 있다. 마법사도 기사도 잘 모르는 곳에 하나가 더 있지.’

카라는 히죽 웃었다. 자신이 알아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시혜자의 태도로 거만하게 웃었다.

‘기사는 용인과 비슷해. 애초에 둘은 같은 데서 출발한 종족들이니까. 용인의 힘이 훨씬 더 많이 응축된 것일 뿐. 기사들은 세 개의 차크라, 혹은 단전이라고 불리는 곳에 기를 담아두고 생성하는 장치가 있어.’

‘장치?’

기사의 힘을 마법사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카라가 마뜩찮았다.

‘용인은 그곳이 딱 한 곳에 있다. 바로 여기.’

카라가 아미 사이를 가리켰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곳보다 손가락 한 마디쯤 위쪽이었다.

‘이걸 쳐라. 할 수 있지? 정확하게 가격해야 한다.’

말이야 쉽지. 제이드는 밀려드는 용인, 아니 용인의 변형 물들을 보며 난감해했다. 그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무작정 뛰어들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때는 그랬다.

지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커졌다. 제이드는 지안의 이마를 가격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기를 실은 공격이었다. 삼안이 있다고 알려진 자리, 기의 저장소이자 생성소. 닿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제대로 된 공격을 먹이기 어려울 뿐이다. 하지만, 그곳이 그들의 약점이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비늘창이 가닥가닥 끊어졌다. 지안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

‘너희 같은 어설픈 변형물은 더군다나 깨지기 쉽지.’

지안은 뒤로 물러섰다. 제이드는 지안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피어를 포함한 힘의 근원을 무력화시켰다. 기를 덧씌운 팔이 지안의 뱃속에 파고들었다. 근육이 갈리고, 그 안의 내장을 휘젓는 게 느껴졌다. 팔을 휘감은 기는 회오리치면서 지안의 몸을 갈가리 찢으며 뚫고 나갔다. 그 일격으로 지안의 몸은 거의 양단되다시피 했다. 몇 가닥 남은 근육과 힘줄만이 상반신과 하반신을 간신히 연결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하하하, 이런, 이런! 이런 자가 있을 줄이야.“

제이드가 지안의 머리를 베려는 순간,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덩치였다. 라이안의 팔이 제이드의 팔과 부딪혔다.

“기사가 뭐냐고 물었지? 대답하지. 너희는 용인의 찌꺼기다.”

섬광이 튀었다. 이글거리는 열기에 두 사람의 얼굴이 어그러져 보였다.

“용인이 되다 만 찌꺼기. 우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아니, 어쩌면 현 세계 전체가 그럴지도.”

둘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밀어냈다가 다시 부딪혔다.

카앙! 금속성 소리와 함께 둘은 또 떨어졌다.

“용인에게 대항하기 위한 존재라고? 그건 자기만족일 뿐이야."

라이안의 얼굴에 비늘이 돋아났다. 비늘은 라이안의 얼굴 전체를 덮었다. 그 모습을 보던 제이드는 흠칫했다.

‘약점이 사라졌다.’

“자기만족이라도 괜찮나? 그게 기만일지라도? 엉? 기사님.”

라이안은 돌진했다.



팔라스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팔라스를 쫓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감에서일까, 아니면 무신경함일까. 팔라스는 “그들”애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이, 그러니까, 처음 나타났을 때....’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아마도, 그들은 꽤 오래전부터 둘을 보고 있었던 듯 했다. 둘의 대화며, 뒹구는 모습까지도 다 듣고 봤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빠졌다.

‘영주가 된 걸 봐서는 진짜 몸 한 번 징하게 굴렸나보다. 나도 여자로 태어날 걸. 그냥 몸 한 번 내주는 걸로 이것저것 다할 수 있잖아?’

소년의 이기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 살아왔는데 그런 말을....’

팔라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꼭 틀린 말은 아니지.’

자괴감이 가슴을 훑었다.

‘샨은 제이드가 준 거예요.’

밀리아가 말하지 않았던가. 샨에 이어 후원을 약속받았다. 단지, 잠자리 몇 번 가져준 걸로. 셀레나라면 눈이 휘둥그레졌겠지. 대단하다, 너 능력 좋다, 호들갑을 떨면서.

팔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의 한탄은 좀 더 나중에 해도 되었다.

팔라스는 다시 생각했다. 그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를.

섬광, 섬광이 튀었었다. 제이드가 날린 검기에 부딪혀 튀었던 뭔가가 있었다.

‘비늘.’

운모처럼 얇고 둥그렜던 그것은 비늘이었다. 용인이 비늘을 날리며 공격한다니....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거 말고...뭔가 중요한 게 있었는데.’

그들은 제이드의 공격을 받고 즉각적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어째서? 제이드는 그들의 급소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제대로 맞았다면 살 수 없었다. 아무리 그 자가 기사라고 하더라도. 제이드의 실력 또한 최상에 해당하니, 어설프게 맞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찰나였지만, 그들은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피어가 울렸다.”

쓰러진 다음에 피어가 울렸다. 그리고 일어났다.

“사제?”

사제는 기사들의 부상을 치료해주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진정한 존재목적은 “사역”과 “정화”였지만. 그들 또한 전투사제란 존재가 있었지만, 기사만큼 효율적이지 못했다.

“음...용인의 사제라.”

아니다, 저들은 용인이 아니다.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인간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사제의 힘도 가능하겠지. 아니, 사제가 아니라 그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피어는 또 무슨 상관이지?”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저들에게는 뭔가가 더 있다는 것이었다.




지안은 이리의 품안에서 눈을 떴다. 지안의 뿌연 시선 속에 라이안과 제이드의 접전이 보였다. 제이드는 몇 번이고 라이안에게 부딪혔다. 라이안은 철옹성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예기어린 공격도 아무 소용없었다. 라이안의 몸은 전체가 갑옷이었다. 눈조차도 용인들처럼 속눈꺼풀이 덮고 있었다.

“이상하군.”

제이드는 뒤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이게 다야?”

부웅! 라이안은 제이드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기는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하기가 어려웠다. 제이드는 기를 충전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뒤로 피했다. 재까닥, 라이안이 제이드에게 바싹 붙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잽싼 몸놀림이었다.

제이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짧은 주먹질을 내질러보았다. 쾅! 주먹을 맨 바닥에 그대로 내지르는 충격이 전해졌다. 팔 전체가 고통으로 진동했다.

“하하하!”

라이안은 즐겁다는 듯 웃으면서 다리를 올려 찼다.

“가아아아아!”

피어였다.

라이안의 공격을 피하려는 찰나, 몸이 기우뚱하고 균형을 잃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라이안은 제이드의 명치를 올려찼다.

제이드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갑니다...





작가의말

비축분없이 쓰고 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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