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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04 22:09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11,098
추천수 :
684
글자수 :
1,309,674

작성
22.06.20 12:00
조회
38
추천
4
글자
11쪽

31.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해

DUMMY

치안군에 들어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흉흉한 일을 연달아 겪은 넷과 세슈람에게 따로 휴가가 주어졌다.


"전 노역형을 살고 있는 건데 휴가도 나오는 거예요?"


라고 물으니 율레가 별 쓸데없는 질문이라며 답해주었다.

치안군 노역형이라는 제도 자체가 인력난이 심한 치안군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나름 귀중한 인력 함부로 굴리다가 오래 쓰지도 못하면 안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죄인 신분이니 거취가 자유롭지는 않을 거다. 기본적으로 집에서만 지내야 하고 어디 가기 전에는 나한테 미리 허락을 받아라. 감시가 따로 붙지는 않겠지만 네 경로는 알고 있어야 해서 그렇다. 그러니 혹시 어디 갈 계획이 있다면 미리 말해라."


워낙 갑작스레 주어진 휴가이기에 넷은 마땅한 계획이 없었다.


"아니요. 딱히 없습니다. 그냥 집에 갔다올까 싶습니다."

"그래. 그 외에 변동사항이 생기면 내게 보고하고 움직여라."

"넵."


이날 저녁 마을 경계를 돌고 별대로 복귀한 넷은 곧바로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


카밀로테 순환선에서 내리자마자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퀴퀴한 냄새가 마을 주변을 둘러서 핀 저주받이꽃 무리의 달큰한 냄새와 섞여서 코를 간질였다.

쓰레기 냄새는 좋은 향이 더해져봤자 쓰레기 냄새일 뿐이지만 넷은 이 냄새가 그토록 반가웠다.


그녀 마을의 유일한 밥벌이인 카밀로테 야간선을 지나는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어? 안녕! 오랜만이네!"

"아. 안녕하세요 다날씨."


마을 입구를 지나 집으로 향하던 넷을 붙잡은 것은 다날이었다.

과거 그녀의 오빠의 손에 자신의 아이가 불타 죽는 것을 보고 그 충격으로 미쳐버린 가여운 여자였으며 동시에 넷에게 의미심장한 조언을 해준 여자였다.

결과적으로 의미심장한 조언들은 모두 넷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졌기에 그녀는 다날이 반가웠다.


"우리 오빠랑 같이 일한다고? 너무 잘 되었다."


오랜만이라는 다날의 말에 자초지정을 설명하며 자신이 별대에 있다고 얘기해주자 그녀는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미치면서 과거에 오빠가 그녀에게 저지른 일도 같이 잊었는지 그녀에게 율레는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저... 여기까지 혼자 나오신 거예요?"

"응!"

"그래도 에우랄을 찾으려면 다날씨 혼자보다는 어머니랑 같이 찾는게 낫지 않겠어요?"


넷은 다날의 어머니가 줄곧 하던 부탁이 생각났다.

이미 죽은 제 딸을 찾아 헤매는 그녀를 보면 번거롭더라도 부디 집으로 다시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다날은 도리질을 하였다.


"응? 오늘은 내 딸 찾으러 온 거 아닌데?"

"네? 그러면요?"

"친구가 놀러오기로 했어!"

"다날씨 친구요...?"


다날은 자기가 친구를 마중하러 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상기했다.


"에고. 내 정신 좀 봐. 그애 짜증 많이 났게다."


사실 걔 성격이 좀 더럽거든.

이라고 덧붙인 다날은 오래가지 않아 걸음을 멈췄다.


"어... 언제 왔어?"

"네가 하도 안 오길래 그냥 성격 더러운 내가 왔다."

"아하하... 들었어?"


다날이 말한 성질이 더럽다는 사람은 넷 역시도 아는 사람이었다.

뵈나 율레, 며칠 전 넷과 함께 12월 마을에서 습격을 받았던 치료사였다.


그녀는 가죽 주머니에 싸인 큼지막한 덩어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넌..."

"아. 안녕하세요."


넷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휴가?"

"네."

"그래."


짤막하게 인사를 나눈 율레 치료사는 다날의 손을 끌고 넷을 지나쳐갔다.


"가자. 고기 사왔어."

"세상에! 진짜? 사랑해!"

"아! 좀 떨어져."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다날을 밀어내던 그녀는 넷을 슬쩍 보며 물었다.


"... 너도 같이 가서 좀 먹을래?"

"아... 아뇨. 전 집에서 먹으려고요. 간만이라."

"그래 그럼."


옆에서 빨리 가자고 보채는 다날에게 고기 덩어리를 넘기자 다날은 신이 나서 먼저 제 집으로 달려갔다.

다날이 가고 한숨 돌린 율레는 어째서인지 넷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노역형이랬지?"

"네? 네."

"평생 있을 게 아니니 주의하도록 해."


혹시 그 머저리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도록 말이야.

스쳐지나가듯 건넨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에는 적잖은 무게가 실려있어 무겁게 넷의 마음 가운데 내려앉았다.


'다날씨 친구가 그 치료사님이었다니...'


그러고보니 율레 부대장과 치료사가 나누는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마치 이미 서로 알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아. 설마 그분이...?'


문득 넷의 머릿속에 종종 다날씨 옆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이 떠올랐다.

긴 생머리의 풍성한 갈색머리를 하고 항상 불만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여자.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바로 머리를 짧게 자르기 전의 뵈나 율레였다.


"딸!"


넷이 우두커니 서있으니 반가운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율트나, 그녀의 아빠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빠!"

"올 때가 되었는데 안 온다고 네 엄마가 다녀오라고 난리를 피우지 뭐니."


율트나는 제 딸을 품에 꼭 끌어 안고는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했다.


"아. 좀 그만 해. 나 괜찮아."

"도대체 습격은 무슨 말이야.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그건 또 어떻게 들었대..."


율트나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서 하자며 집으로 향했다.


벌컥


"여보! 우리 딸 왔어!"


호기롭게 문을 열며 들어가는 율트나를 따라 집에 들어가니 맛있는 냄새가 그녀를 반겼다.

갖가지 야채를 넣어 만든 걸쭉한 토마토 스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거기에 콧속을 찌르는 매운 향까지 나는 것을 보니 그녀가 온다고 하람이 특별히 신경 쓴 것이 분명했다.


"어. 반갑고."

"엑.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서둘러 주방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듀시아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있을 때도 종종 오긴 했는데 이제는 아주 제 식구인것 전혀 위화감이 없는 모양새였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음식 다 식게."


하람이 버럭 짜증을 내며 그녀를 맞았다.

그녀의 짜증에 넷의 얼굴로 슬며시 미소가 비집고 나왔다.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도 그렇고 집을 떠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넷은 이런 것들이 그리웠다.


"자. 일단 밥부터 먹자."


율트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서서히 솥에 담긴 스튜가 연기를 내며 따뜻하게 데워졌다.


"오. 햄도 넣었네?"

"내가 사왔어."

"이야. 우리 듀시아 아주 바람직한 청년이야."


평소라면 보기 힘든 햄이 큼직한 조각으로 스튜 안에 있는 것을 본 넷은 흡족한 표정으로 듀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었고 오래간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낸 넷은 뽈록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며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였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엄마가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말이다.


"12월 마을에서 일어난 폭발 가운데 네가 있었다니. 무슨 일인지 설명해."


아니... 어머니 왜 아빠 지팡이는 손에 쥐고 계신 거예요. 무섭게.


"네가 죽을 뻔 했다는 말이 정말이야?"

"아니...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멀쩡하게..."




하람이 쥐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내리 찍었다.


'오우야 박력이 무슨...'


"치안군이 좋은 곳이라고 말은 못해도 적어도 딸이 연합전에 참전해서 죽는 꼴은 면했으니 거기에 감사해야겠다 싶었어. 근데! 그새를 못참고 또 죽을 뻔해? 네가 사람이야? 어?"

"아니 누가 들으면 내가 죽고 싶어서 일을 벌이기라도 한 줄 알겠네! 나도 피해자야! 습격 당한 거라니까?"

"어! 너 말 잘했어. 일을 벌이지 네가! 어? 그럼 안 벌여?"


하람이 화를 못 참고 기어코 지팡이를 휘두르며 넷을 쫓았다.


"훈련한다며! 훈련하러 나가는 거라며! 그러면 훈련을 했어야지. 미카에 왜 숨어 들어가! 어? 근데 일을 벌이는 게 아니야? 응?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하지 않고서야 그런 일을 벌여?"

"으악! 아니! 그건 내가 죄송한데! 잠깐만 그거 맞으면 나 죽어!"

"그냥 죽어! 어? 네가 바라던 거잖아!"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붕붕 거리며 공기 가르는 소리가 나는 것이 저기에 맞으면 뼈 하나 쯤은 나가겠구나 싶은 넷은 필사적으로 하람을 피해 도망다녔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듀시아는 자기가 사온 단팥빵을 꺼내 율트나와 하하호호 웃으며 나눠먹기 시작했다.


"너... 거기 딱 가만히 있어."

"아. 제발 그만 좀 해 엄마!"

"여보!!!"


하람이 우렁찬 목소리로 제 남편을 부르자 빵을 우물거리던 율트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집 옆에 있는 창고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왔다.

무거워 보이는 흑빛의 철판은 갑옷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게 뭐에요...?"


당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 넷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으니 하람이 으르렁 거리며 답했다.


"입어."

"응?"

"당장 그거 입으라고!"


그녀의 으름장에 넷은 얼떨결에 아빠가 건넨 철판을 몸에 둘렀다.

그러자 손에 들릴 때만 해도 묵직하던 철판이 순간 가벼워지면서 그녀 몸에 딱 맞게 달라붙었다.


"앞으로 너 그거 몸에서 한 시도 떼어 놓지 마.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그냥 네 몸이다 생각하라고."

"아니 그니까 이 갑옷이 뭔데 이러냐고."


씩씩거리던 하람은 식탁으로 돌아가 단팥빵을 집어 들었다.


"어머. 이런 걸 사오고. 내 딸이 네 반만 닮아도 얼마나 좋을까?"


언제 으르렁 거렸냐는 듯 서글서글한 얼굴이 된 하람을 보며 넷이 기겁을 하고 있으니 율트나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거 흑갑이야. 호위군에 제공되는 흑갑."

"뭐라고?"


넷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율트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입고 있는 갑옷은 현재 카밀로테에서 제일 좋은 갑옷이라는 뜻이 되었다.


흑갑.

대현자를 호위하는 호위군에게만 제공되는 갑옷으로 전투 지팡이 제다카의 대비책으로 만들어진 갑옷이다.

반 호흡에 9단계 위력의 마법을 쏘아대는 제다카를 막을 수단이 필요하다 여긴 대현자가 특별히 대장장이 가문인 은우에 의뢰해 만든 것이 바로 흑갑이다.


즉 정의의 숨결을 막을 수 있는 갑옷은 현재 흑갑이 유일하다는 말이었다.

만들기 워낙 어려워 정규군 전체에 주지 못하고 호위군에게만 주는 말 그대로 귀하디 귀한 물건이었다.


"엄마랑 아빠랑 머리 싸매고 같이 만든 거야. 우리 딸 죽지 말라고."

"아빠..."


아빠의 말에 넷은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다만 계속 의문으로 남는 것은 이렇게 감동적인 선물을 주기 전에 엄마는 왜 그렇게 잡도리를 했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화를 내더니 지금은 듀시아랑 하하호호 거리며 빵을 뜯어 먹고 있다.


"하여간. 우리 엄마지만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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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 손은 지팡이보다 빠르다 22.06.28 38 3 12쪽
36 36.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22.06.27 40 3 12쪽
35 35. 우리의 처음을 그리며 나는 22.06.24 39 3 12쪽
34 34. 묻고 두 배로 가 22.06.23 43 3 12쪽
33 33. 막대한 부를 과시해 버렸지 뭐야 22.06.22 37 3 11쪽
32 32. 왔노라 보았노라 받았노라 +1 22.06.21 56 4 11쪽
» 31.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해 +1 22.06.20 39 4 11쪽
30 30. 없었는데 있었습니다 +2 22.06.18 43 4 12쪽
29 29. 이것까지만 피우고 끊어야지 22.06.17 40 4 12쪽
28 28.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 남은 것은 +2 22.06.16 47 5 11쪽
27 27. 순간시력 검사 +2 22.06.15 45 5 11쪽
26 26. 일과 삶 그 균형의 수호자 +2 22.06.14 53 4 12쪽
25 25. 응어리는 물에 풀어 캔버스 위에 22.06.13 50 4 12쪽
24 24. 한걸음 한걸음 22.06.10 51 4 11쪽
23 23. 그 여자 치료사 그 남자 치안군 22.06.09 50 4 11쪽
22 22. 낮말도 밤말도 그가 듣습니다 22.06.08 50 5 11쪽
21 21.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22.06.07 50 5 12쪽
20 20. 좋아하는 여자가 멸망이었던 건에 대하여 +2 22.06.06 65 7 11쪽
19 19.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22.06.03 47 5 11쪽
18 18. 치안군에는 빛나무가 많이 자랍니다 22.06.02 60 6 11쪽
17 17. 꿈에 22.06.01 56 6 11쪽
16 16. 꿩 대신 닭이라기에는 닭이 더 좋아 +1 22.05.31 63 7 12쪽
15 15.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에 사는 마법사 22.05.30 56 6 11쪽
14 14. 미친 여자의 미치광이 오빠 22.05.27 61 6 12쪽
13 13. 명문가 집착녀 22.05.26 63 7 11쪽
12 12. 진도가 너무 빨라요 +1 22.05.25 72 6 12쪽
11 11. 죽음의 숲에 가면 귀신이 이놈 한다 22.05.23 60 6 12쪽
10 10. 축하합니다 10단계를 달성하셨습니다 +1 22.05.23 65 7 12쪽
9 9. 가족은 건드는 게 아니다 22.05.20 78 8 12쪽
8 8. 아룡 죽이기 22.05.20 98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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