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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30 01:09
연재수 :
250 회
조회수 :
11,273
추천수 :
688
글자수 :
1,333,769

작성
23.03.01 12:00
조회
36
추천
2
글자
11쪽

159. 쉿 아무 말도 하지 마

DUMMY

가장 뜨거운 불의 거처인 불의 근원의 사면은 그가 일으킨 불기둥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디르앤은 망설임 없이 불기둥을 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가장 뜨거운 불의 히펠을 연료 삼아 타오른 불이기에 결코 만만한 불길이라고 할 수 없었음에도 디르앤이 방을 나서는 것은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가장 뜨거운 불은 그녀가 가진 불에 대한 친화력에 흥미가 동했으나 현재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페트라를 보며 물었다.


"지금 여기 카밀로테의 마법사들과 동행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나?"

"네."

"혹시 이들과 동행하는 이유가 네가 가진 그 특이한 힘때문인가?"

"..."


여느때와 다름없이 페트라의 입이 굳게 닫혔다.

하지만 이전에는 닫힌 입이 도무지 열릴 생각이 없어보였다면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안고 있는 비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제고 이에 대해서 마법사들에게 털어놓아야 했다.


곁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디르앤 때문에 기회를 잡고 있지 못했는데 그녀가 떠난 지금이 문득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뜨거운 불은 이미 어느정도 자신의 힘이 특별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고 다른 남아있는 자들이라고는 카밀로테의 마법사들 뿐이었다.

혼자 떠안고 있던 비밀에 대해서 말하겠다 결심이 선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쿠구구궁


"!"


돌연 들려오는 땅이 울리는 소리.

그와 동시에 그들이 있는 불의 근원 역시 미세하지만 흔들렸다.


"... 마법사들은 나와 여기에 남고 어린 사슴은 서둘러 사슴의 아이를 찾으러 가라. 위험하다."


가장 뜨거운 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페트라의 발에 묵색 히펠이 맺혔다.


"잠깐. 이걸 들고 가라."


그는 페트라에게 영웅왕의 검인 디스탕시온을 넘기며 말했다.


"만약 골락의 시장을 만나게 된다면 절대로 맞서지 말고 도망쳐라."


골락의 시장 에텔.

가장 뜨거운 불이 그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만나는 순간 가장 뜨거운 불은 알 수 있었다.

그가 굉장히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껏 만난 이들 중 가장 역겨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자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차원이 다르게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말이었다.

에텔 시장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얌전히 놔둔 것은 가장 뜨거운 불이 그를 완벽히 제압하여 죽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 라페는 그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많았고 히펠렌스인 자신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사람과 라페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그 여파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것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그가 벌이는 일이 선만 넘지 않으면 얌전히 넘어갈 생각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페트라는 지금 난리를 피우는 것이 용병왕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텔 시장이라는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위협의 등장에 그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묵색 히펠을 두른 페트라는 자신이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불의 근원을 벗어났다.


***


불의 근원에서 밖으로 나온 페트라의 눈에 비친 것은 모든 사람이 엎드려있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하하하! 그래 이 버러지들아! 내가 너희들의 왕이다. 그러니 고개를 조아려라!"


무수한 회색 알갱이가 사방에 떠있었고 라페의 비탈길을 따라 이어진 길 위로 무수한 라페의 전사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그들 사이로 홀로 유유히 용병왕이 서있었다.


여전히 화려하기 짝이 없는 갑옷을 걸친 채였는데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의 손에는 못보던 검이 들려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못 보던 검이란 페트라와 용병왕의 대련에서 라페의 전사가 가져왔던 용병왕의 무수히 많은 검 중에도 없었다는 소리다.


제 아래팔 정도의 길이 정도 되는 그리 길지 않은 양날검이었는데 평범한 장인이 만든 검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균형잡힌 검날은 금방이라도 베일 것 같은 예기를 뿌리고 있었으며 자루와 검날의 길이 비율 역시 완벽하여 검을 다루는 자라면 그게 누구든 잡고 휘두르기만 해도 절로 흥이 날 것 같은 명검이었다.


천천히 산길을 타고 오르던 용병왕은 정상에서 내려오던 페트라와 마주쳤다.

그는 페트라가 손에 쥐고 있는 영웅왕의 검을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이거 참... 안 그래도 그걸 가지러 가는 길이었다. 거기서 기다려도 되는데 가져다주기까지 하고 친절한 곰탱이로군."


덩치가 큰 페트라의 어깨까지 올 정도로 크고 무거운 대검을 페트라는 가볍게 들어올려 용병왕을 겨누었다.


"디르앤은?"

"응? 아 나의 흑장미 디르앤?"


용병왕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글쎄? 어떻게 했을까? 아하하하!"


뭐가 그렇게 웃긴지 크게 웃어젖히는 용병왕.


그런 용병왕을 보며 페트라는 용병왕이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한 가지 더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눈동자 색깔이었다.


페트라가 이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용병왕의 눈동자 색을 기억하고 있었다기 보다는 양쪽의 눈 색깔이 달라서였다.

한 쪽이 파란색의 누가봐도 사람 눈동자다 싶은 눈동자였다면 다른 한 쪽은 눈동자라고 하기에는 그저 까만색 구체처럼 생긴 것이 박혀 있었다.


"궁금하다면 내게서 알아내거라. 미련하고 우둔한 곰탱아."

"..."

"아. 서두르는 것이 좋을 걸? 망설이는 사이 그 혼혈이 어떻게 될 지는 나도 모르..."


콰아앙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묵색의 히펠을 두른 묵직한 대검이 용병왕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하하하하! 뭐야. 곰탱이! 이런 얼굴도 할 줄 아는구나?"


천하의 명검 디스탕시온을 걸고 대련을 할 때에도 투지를 불태우지 않던 녀석이 지금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말해. 디르앤이 어디에 있는지."


카가가각


검끼리 맞대고 잠시 힘겨루기를 하던 용병왕은 우습다는 듯 페트라의 검을 떨쳐냈다.

생각보다 강력한 힘에 페트라의 몸이 뒤로 날았다.


"곰탱이 네 놈은 방어와 다르게 공격에는 영 소질이 없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지금도 너에게 힘을 숨길 여유가 있는 건가?"


페트라의 공격이 어설펐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베기의 교본이라고 할만큼 정확한 베기였다.

여기서 용병왕이 말하는 것은 페트라가 가진 묵색 히펠의 특성이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대로라면 그의 히펠은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란 것을 용병왕은 알고 있었다.


- 디스탕시온도 가져오고 동시에 네가 부단장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갑작스레 등장한 혼자 움직이는 손을 보더니 에텔 시장이 용병왕에게 한 말이었다.


- 그의 히펠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부수는 힘이라면 모를까.


그러면서 에텔 시장은 용병왕에게 검 한자루를 건네었다.


- 내가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검이다. 네가 알고 있듯이 내가 돈이 많아서 말이야. 가장 좋은 검을 구해놨지. 아마 네 유성검도 예닐곱 번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아버지의 말대로 그 자의 특성이 모든 것을 부수는 힘이라면 제 히펠도 이 검도 부수고 말텐데요.

- 히펠의 특성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본질은 결국 힘과 힘의 충돌이다. 그러니 넌 더 큰 힘으로 찍어누르면 된다.

- 하지만...


에텔 시장은 손을 들어올려 용병왕의 한쪽 눈을 덮었다.


- 네가 부단장을 크게 보고 있다.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아라. 그렇다면 생각보다 그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용병왕의 눈에서 손을 뗀 후에는 이미 용병왕의 눈동자가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용병왕의 새로운 눈에 비치는 페트라는 과연 아버지의 말대로 그리 크지 않았다.

조금 전 순수한 힘 싸움에서도 그가 우위를 가져가지 않았던가.


"나에게서 그 혼혈의 행방을 알아내고 싶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회색의 히펠이 용병왕의 검을 뒤덮는 동시에 그의 몸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갔다.

그가 높이 치켜든 검이 무게를 부풀리며 페트라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이미 대련 중에 몇 번이고 받아냈던 세로 베기였다.


이전에 했던 대로 페트라는 적정량의 히펠을 둘러 그의 검을 막아내려 했지만.


카각


"커허억."


그 위력이 대련을 했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검을 맞대는 순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페트라는 대검을 꺾어 용병왕의 검을 흘리려 했다.

빗겨 내려가는 검을 보며 용병왕은 피식 웃고는 몸을 틀어 페트라의 복부를 걷어찼다.


터어어엉


용병왕의 발길질에 그 큰 거구가 너무나 쉽게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구궁


날아가는 페트라 주변으로 회색 덩어리들이 모여들더니 그를 땅으로 내동댕이쳤다.

용병왕이 쓰는 히펠의 특성인 무게도 이전보다 훨씬 무거워져 있었다.


좋지 않은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페트라가 온 몸에 제 히펠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땅에 처박힌 그의 위로 용병왕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그마한 검 위로 순식간에 압축되는 히펠.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르기였다.


"크아아아!"


내지른 기합과 함께 용병왕은 유성이 되어 페트라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전처럼 그의 기술의 위력을 막아줄 가장 뜨거운 불의 히펠도 없었다.

심지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공격 하나하나가 이전보다 강해진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라페를 이루는 산 중 하나가 평지가 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인듯 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용병왕의 유성검이 페트라에 닿기 직전이었다.


스스스스스


"!"


다리 없는 생물이 바닥을 길 때 내는 소리가 사방으로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페트라의 묵색 히펠이 크기를 부풀리더니 마치 물에 떨어뜨린 물감처럼 불규칙적으로 공간을 점유해 나갔다.

이걸 과연 단순히 기운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의 묵색 히펠은 마치 생명체처럼 주변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크기를 한껏 부풀린 검은 생명체는 어느순간을 기점으로 움직임을 멈추더니 용병왕을 보았다.

그래.

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파르르


맛있는 것을 봐서 기쁜듯 몸을 떤 묵색 히펠은.


크가가가각


그대로 용병왕에게 달려들어 그를 집어삼켰다.


"..."


원래대로면 산을 가라앉혔을 용병왕의 공격이 묵색 히펠에 잡아먹히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로지 정적.

지독한 정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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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쉿 아무 말도 하지 마 23.03.01 37 2 11쪽
158 158. 상상도 못한 정체 23.02.28 30 2 12쪽
157 157.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23.02.27 3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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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5. 눈높이 교육 +1 23.02.22 36 2 12쪽
154 154. 이거 죽이면 나랑 사귀는 거다 23.02.21 46 2 11쪽
153 153. 하지 말라면 하지 마 23.02.20 41 2 12쪽
152 152. 비호감 행동 +1 23.02.16 34 2 11쪽
151 151. 나쁜 자식 내 마음도 모르고 23.02.15 53 2 12쪽
150 150.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1 23.02.14 42 2 12쪽
149 149. 바보 아니다 23.02.13 32 2 12쪽
148 148. 서른마흔다섯 번 +1 23.02.09 32 2 11쪽
147 147. 따끔해요 +1 23.02.08 36 2 11쪽
146 146. 나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해 +1 23.02.07 40 2 11쪽
145 145.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너희도 떨어져라 +1 23.02.06 38 2 11쪽
144 144. 너의 여정에 내가 함께할게 23.01.05 50 2 12쪽
143 143. 대화가 필요해 23.01.04 45 2 12쪽
142 142. 빨간 머리 대현자 23.01.03 65 2 12쪽
141 141. 보아라 파국이다 23.01.02 58 2 13쪽
140 140. 띠링 기만을 기만한 자 칭호 획득 22.12.29 48 1 12쪽
139 139. 기만 +1 22.12.28 48 2 13쪽
138 138. 침잠 22.12.27 52 2 12쪽
137 137.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22.12.26 50 2 12쪽
136 136. 됐어 나 지금 얘기할 기분 아니야 22.12.22 54 2 11쪽
135 135. 길을 잃거든 그에게 길을 묻거라 22.12.21 49 2 12쪽
134 13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2.12.20 47 2 12쪽
133 133. 뭐야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22.12.19 5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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