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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18 17:21
연재수 :
2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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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7
추천수 :
686
글자수 :
1,321,598

작성
23.02.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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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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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55. 눈높이 교육

DUMMY

용병왕에게서 흘러나온 탁한 회색빛의 히펠은 곧 고운 가루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어디까지나 맨눈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었고 디르앤이 눈에 히펠을 집중하자 훈련장 내부의 공기 중으로 자잘한 가루가 된 용병왕의 히펠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우그그극


용병왕의 히펠이 사방을 점거하자 페트라의 주변이 무겁게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용병왕의 히펠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공기에 무게라도 생긴듯 페트라를 땅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페트라는 곧장 몸에 히펠을 보내 자신을 짓누르는 힘을 버텨냈다.


쩌적

쩌저저적


어느새 짓누르는 힘은 강해져 훈련장을 덮고 있는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크흠!"


이를 본 가장 뜨거운 불이 콧바람을 내뿜으며 눈을 부라렸다.

대충 해석하자면.


'겨우 이 정도에 바닥에 금이 가다니. 끝나면 다들 굴린다.'


정도였다.

겨우 훈련장 바닥을 까는 데에 최상급의 기사가 작정하고 내뿜는 히펠을 버틸 정도로 고급 자제를 가져다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장 뜨거운 불이 그것까지 알 바는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지는 무게에 가장 뜨거운 불은 훈련장 주변을 그의 히펠로 둘러쌌다.

라페란 나라가 산 위에 지어졌다보니 이대로 두 사람이 대련을 하다가 산이라도 무너지면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히펠렌스라는 존재들은 산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자들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용병왕만큼 산을 평탄하게 하는 데에 적합한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요쿨라토르 아무시스 용병왕.

사람들은 흔히 그에게 용병왕이라는 이명이 붙은 이유가 그가 용병 중 가장 강해서 붙었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그는 용병 중 가장 강한 자이니만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에게 굳이 왕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따로 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은 용병들이 골락에 쳐들어온 적이 있었다.

용병왕이 골락과 계약을 맺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인데 그날 쳐들어왔던 용병의 수가 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평균적인 용병단의 수가 일백 이쪽저쪽을 왔다갔다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거의 열 개에 달하는 용병단이 참가한 일이라 볼 수 있었다.


많은 인원이 모인만큼 도시가 혼돈의 도가니에 빠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용병왕이었다.

성문 하나를 점령하고 도시 내부로 향하던 용병 무리를 향해 그가 손을 뻗었고 그것으로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모든 용병들이 그의 발 앞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때 그 모습은 마치 용병들이 왕에게 절하는 모습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에게 붙은 정확한 이명은 '얼간이들의 왕'.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한 용병왕의 히펠.

그의 히펠의 특성은 무게였다.

창공을 비상하는 것들을 땅으로 기어코 끌어내리고 마는 시샘하는 자의 손이었다.


"왕에게 절해라. 곰탱이."


용병왕의 선언과 함께 잘게 나뉘었던 히펠이 더 두꺼워지며 훈련장을 점거하는가 싶더니 페트라를 내리누르는 힘이 강해졌다.


쿠구구


벽을 넘었다는 자가 이 정도에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은 제한하고 본인은 자유롭게 움직이게 된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차이는 결코 작지 않았다.


"너희들의 왕 앞에서 모두 고개를 조아리란 말이다."


그가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 대검을 타고 회색 히펠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본래도 컸던 대검보다 훨씬 더 크게 자라난 칼날 모양의 히펠이 순식간에 완성되었고 용병왕은 이를 그대로 페트라가 서있는 곳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가 팔을 휘두르는 동시에 검을 두르고 있는 회색 히펠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게가 더해진 것이다.


최상급 기사의 육체, 완벽에 다다른 히펠의 조작, 거기에 무지막지한 무게까지 더해진 그야말로 한 번에 모든 것을 담은 베기였다.

별다른 화려한 효과도 없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베기였지만 이 한 번의 베기를 버텨낸 자들은 없었다.

심지어 일곱 수호수의 그 거북도 이 앞에서는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콰아아아아앙


용병왕의 검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고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 훈련장을 덮쳤다.


"... 이것으로 한 번이군."


하늘도 가르고, 가른 김에 땅까지 갈라버릴 것 같은 맹렬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던 것에 비해서 용병왕의 얼굴은 여유가 넘쳤다.

검을 회수한 그가 손을 휘휘 젓자 먼지가 걷히며 대검에 찍혔던 페트라의 상태가 드러났다.


페트라의 거대한 체구에 비하면 나무젓가락같이 작고 얇은 검은 여전히 건재했으며 페트라 역시 반으로 갈라지지 않고 멀쩡한 상태였다.


방금 용병왕의 공격은 명백히 최상급의 기사만이 할 수 있는 위력이었고 아무리 강한 상급의 기사들이라 해도 이 공격 앞에서는 무사할 수 없었다.

페트라가 벽을 넘은 초월자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골락의 시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무뿔사슴단의 부단장께서는 실력을 숨기고 계셨나 보군요."

"그렇다. 어리긴 하지만 사슴이다."

"허..."


답을 한 것은 가장 뜨거운 불이었다.

페트라 일행을 묶어서 부를 때는 사슴의 아이라더니 페트라 혼자 부를 때에는 어린 사슴이라고 하긴 했었다.

골락의 시장은 말수가 적은 라페의 지도자가 그의 말에 대꾸해줬다는 것이 퍽 신이 났는지 말을 이어갔다.


"과연 부단장님의 경지를 꿰뚫어본 가장 뜨거운 불께서 이 대련을 고집하신 이유가 있으셨군요."

"크흠!"

"이제야 부단장이 이 대련에 응한 이유를 알겠습니다...만. 부단장께서는 왜 그런 조건을 걸었던 겝니까?"


페트라가 걸었던 조건 두 번째.

그것은 자신은 방어만 할테니 용병왕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면 자신의 승리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경지가 비슷하다고 해도 막기만 하는 것은 불리할 텐데요. 부단장님 히펠의 특성이 방어하기에 용이하다고 해도 말이죠."

"어려서 그렇다."

"... 그렇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시장은 잘 가다가 한 번씩 뜻 모를 말을 하는 가장 뜨거운 불의 대화법에 도통 적응할 수가 없었다.


한편 이 대련을 지켜보는 세슈람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여긴 무슨 괴물들 소굴도 아니고...'


지금 그의 귀로는 용병왕과 페트라 그리고 가장 뜨거운 불까지 세 사람 몸 속에서 나는 종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디르앤 아줌... 누나가 히펠을 끌어올릴 때 나던 소리도 꽤 큰 편이었는데 지금 세 사람은 디르앤 누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


애써 귀에 들려오는 소리들을 차단시킨 세슈람이 다시 고개를 들 때였다.

그의 눈이 마침 그를 바라보고 있는 시장의 눈과 마주쳤다.


"아이야. 괜찮은 게야? 힘들면 밖에서 쉬거라."


왜소한 체구에 두꺼운 안경을 걸친 그는 표정이 좋지 않은 세슈람이 걱정되었는지 손을 뻗어왔다.




세슈람에게 닿기 직전, 가장 뜨거운 불이 시장의 손을 제지하였다.


"대련 중이다. 집중해라. 시장."

"... 그러죠."


콰아아앙


때마침 두 번째 굉음이 울려퍼졌다.


***


처음의 베기는 그저 맛보기였는지 이후 괴물같이 강한 공격이 쉬지도 않고 페트라 위로 쏟아졌다.



콰아앙

콰아아앙


공격이 거듭될 수록 강해지는 위력.

용병왕의 대검에 맺힌 회색의 히펠은 얼마나 빽빽한지 색깔이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무게가 늘어났고 무게가 늘어날수록 위력이 증가했다.


그렇게 너댓 번을 더 내려찍고 나서야 용병왕이 공격을 멈췄다.


"... 과연 꺾이지 않는 강철의 히펠이라더니 단단하긴 하군."


용병왕이 뭐라고 말하던 페트라는 답이 없었다.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가만히 용병왕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태연함이 얼간이들의 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내 공격을 받아낼 셈이냐?"


여전히 묵묵부답.


"그래. 알겠다. 그렇다면 이것도 막아보거라."


페트라의 히펠이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단했다.

특성이 강철과 같은 단단함이라고 하던가?

괜히 이명이 페룸의 양자가 아니었다.


몇 번 검을 맞대본 바에 의하면 곰탱이가 상당히 강한 것은 분명했으니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실제로도 요엠가움을 대표한다는 그 잘난 일곱 수호수 중 '거북'이라는 작자는 쓰러져도 진작 쓰러졌을 검을 곰탱이는 몇 번이고 버텨내지 않았던가.


'그래. 분명 예상은 했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의 예상보다 페트라가 더 강하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페트라가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용병왕이 행동거지가 가볍긴 해도 명색이 히펠렌스다.

초월자라 불릴 정도가 되면 검만 맞대도 상대방의 경지가 예상이 가기 마련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는 그가 검을 섞었던 자들의 경지를 정확히 예측했었다.


그런데 페트라에 한해서는 계속 예측이 어긋나고 있었다.


'저 곰탱이의 히펠...의 특징인가?'


예측이 어긋나는 이유가 페트라가 단순히 실력을 숨기고 있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까부터 페트라가 꺼낸 묵색의 히펠이 주는 묘한 감각 때문인지.

그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용병왕은 탐색전은 이쯤하고 슬슬 제 최선을 드러내기로 했다.


대련 조건에 페트라가 저는 막기만 한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무슨 장난을 치려는가도 싶었다.

다른 속셈이 있을 수도 있으니 경계한다고 벌이던 탐색전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적이 그저 막기만 하는 멍청한 녀석이라면 마침 그의 최선의 검을 선보이기에도 좋았다.

그가 가진 최강의 기술은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말이다.


용병왕이 대검을 들고 자세를 잡으니 공기 중에 녹아들었던 히펠들이 그의 대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미 진하게 물든 히펠에 덕지덕지 붙은 히펠들까지 더해지니 검날 모양을 하던 히펠이 뭉툭하게 바뀌었다.

사방에 퍼뜨렸던 히펠을 다 모았는지 용병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그극


무엇인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뭉툭하게 천장까지 솟은 용병왕의 히펠이 조금씩 크기를 줄이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컸던 회색의 덩어리가 압축되고 있었다.


그그그그그극


점점 칼날의 형태로 바뀌고 있는 덩어리는 어느순간부터 발발 떨리고 있었다.

한계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다시 한 번 압축.

또 압축.


그렇게 숱한 압축을 거듭한 결과물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들고 있던 대검의 크기까지 줄어든 히펠은 그냥 탁한 회색빛의 검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검의 표면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동하는 중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용병왕이 두 발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걸 막는다면 곰탱이 네 놈의 승리다."


천장에 다다른 그의 몸이 마침내 다시 추락을 시작할 때.

그는 검에 압축시킨 히펠의 무게를 최대치로 부풀렸다.


"흐으으읍!"


그 광경을 본 가장 뜨거운 불도 훈련장 전부를 감쌌던 저의 히펠을 두 사람이 있는 공간 주변으로 모아 힘을 집중시켰다.

용병왕이 무게를 끌어올린 순간 그 자리에 있던 그의 모습이 순간 눈에서 사라졌다.

사라지는 동시에 페트라가 있던 곳에서부터 청각을 앗아갈 정도로 커다란 굉음과 함께 무엇인가 폭발하였다.


용병왕의 베기의 여파로 가장 뜨거운 불의 히펠은 조금 버티다가 찢겨 나갔고, 훈련장 주변은 아주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가장 뜨거운 불이 상쇄해서 이 정도였지 아니었다면 이 산 자체가 내려 앉았을 것이다.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갔던 디르앤이 벌떡 일어나 훈련장이었던 곳으로 달려갔다.


"페트라! 괜찮아? 페트라!"


훈련장이었던 곳에 도착한 디르앤은 페트라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폐허가 된 곳 한 가운데에서 여전히 묵묵히 그 자리에 서있는 페트라를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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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 이것도 내 거 저것도 내 거 23.03.02 45 2 11쪽
159 159. 쉿 아무 말도 하지 마 23.03.01 35 2 11쪽
158 158. 상상도 못한 정체 23.02.28 30 2 12쪽
157 157.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23.02.27 32 2 12쪽
156 156. 한동안 일광욕은 필요 없겠어 23.02.23 44 2 11쪽
» 155. 눈높이 교육 +1 23.02.22 35 2 12쪽
154 154. 이거 죽이면 나랑 사귀는 거다 23.02.21 43 2 11쪽
153 153. 하지 말라면 하지 마 23.02.20 40 2 12쪽
152 152. 비호감 행동 +1 23.02.16 34 2 11쪽
151 151. 나쁜 자식 내 마음도 모르고 23.02.15 52 2 12쪽
150 150.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1 23.02.14 42 2 12쪽
149 149. 바보 아니다 23.02.13 32 2 12쪽
148 148. 서른마흔다섯 번 +1 23.02.09 31 2 11쪽
147 147. 따끔해요 +1 23.02.08 36 2 11쪽
146 146. 나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해 +1 23.02.07 39 2 11쪽
145 145.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너희도 떨어져라 +1 23.02.06 38 2 11쪽
144 144. 너의 여정에 내가 함께할게 23.01.05 49 2 12쪽
143 143. 대화가 필요해 23.01.04 45 2 12쪽
142 142. 빨간 머리 대현자 23.01.03 63 2 12쪽
141 141. 보아라 파국이다 23.01.02 58 2 13쪽
140 140. 띠링 기만을 기만한 자 칭호 획득 22.12.29 48 1 12쪽
139 139. 기만 +1 22.12.28 48 2 13쪽
138 138. 침잠 22.12.27 52 2 12쪽
137 137.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22.12.26 50 2 12쪽
136 136. 됐어 나 지금 얘기할 기분 아니야 22.12.22 54 2 11쪽
135 135. 길을 잃거든 그에게 길을 묻거라 22.12.21 49 2 12쪽
134 13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2.12.20 46 2 12쪽
133 133. 뭐야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22.12.19 56 2 11쪽
132 132. 낚시 +1 22.12.15 56 2 12쪽
131 131. 쑥쑥 자라렴 22.12.14 4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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