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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04 22:09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11,069
추천수 :
684
글자수 :
1,309,179

작성
22.12.2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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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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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38. 침잠

DUMMY

마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녀가 찾은 존재는 다름 아닌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였다.

빛의 검이라는 마법은 처음부터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힘을 빌려줬기 때문에 재현이 가능했던 마법이었다.


그녀는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빛의 검을 재현하기 위해서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를 찾았고 그녀의 부름에 답한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는 그녀에게 힘을 빌려줬었다.

작은 용과 맞설 때에도 넷은 줄곧 그에게 힘을 끌어다 쓰지 않았던가.


그러나 작은 용과의 싸움 이후로 넷은 빛의 검을 재현할 때마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를 찾지 않았다.

익숙해진 마법을 굳이 번거롭게 다른 존재를 거쳐서 재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인식의 변화도 변화지만 무엇보다도 그녀가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를 찾기에는 그녀는 무척이나 바빴다.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을 노리는 적대 세력은 여전히 건재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며 적에 맞설 힘을 키우기 위해 고된 훈련을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님. 제 말 듣고 있죠?'


작은 용과의 전투 이후 넷이 그를 찾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지만 그녀는 그가 곧바로 답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그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모른척하지 않았으며 길이 없는 곳에 길을 열어주곤 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마법을 재현할 수 없는 이 상황은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위기라고 할 수 있었고 앞일이 깜깜한 상황에서도 그는 또 다시 그녀가 생각도 못한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그러니 힘을 빌려주세요.'


하지만.


'...'


간절한 그녀의 바람에 되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넷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을 듣고도 침묵하는 것이었다.

침묵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왜... 왜 아무 말이 없는 건데요?'


그가 침묵하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 역시 듀시아나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전날 그녀가 습격자들을 대했던 방식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리라.


'지금 제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제게서 마법도 빼앗아 간 거냐고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억울한 감정은 곧 배신감으로 바뀌었으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원망을 쏟아냈다.


'당신은 지금까지 나를 버려뒀었잖아. 1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나를 당신은 내버려 뒀었잖아.'


최근 몇 개월 동안 마법 꼴랑 몇 개 가르쳐 주더니 이제는 내 행동을 통제하려 들어?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내가 겪은 고통의 시간을 당신이 알아?

이제서야 겨우 행복이라는 것에 근접했어.

그런데 행복을 움켜쥐려는 순간에 내게서 마법을 빼앗아가겠다고?


지금 마법을 빼앗긴다면 그녀는 현재 그녀가 이룬 모든 것을 잃는다는 뜻이었다.

넷은 누구보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서있는 자리는,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힘으로 이룬 것이었으며 힘이 있기에 유지되는 것이었다.


'당신이 내게 이럴 수는 없어! 여기까지 나를 이끌었다면 책임을 지란 말이야!'


그녀 삶의 근간이 되는 힘이 사라진다면 그녀는 다시 이전의 비루하던 삶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그럴 수는 없어...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절규를 이루었고 아집은 굳건해져만 갔다.

단단해진 아집을 제 마음에 둘러 오롯이 혼자가 된 넷.

그녀에게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 힘이 필요해? 그러면 내 손을 잡아.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줄게.


넷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목소리는 위험하다고.

별안간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근사근하니 상냥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 저변에 깔린 악의를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수상한 목소리의 제안을 지나치지 못한 것은 그 제안이 현재 그녀에게 있어 너무도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지킬 힘을 주겠다고...?'

'그래. 모든 마법을 침묵시킬 힘. 뜻대로 모든 세상이 움직이는 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은 모두 베어넘길 힘. 네가 원한다면 빌려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네것이 될 수 있어.'


목소리는 이 모든 것을 이룰 힘을 약속하고 있었다.


'조건은?'

'조건이라니. 난 어디에 누구처럼 치사하게 조건을 걸지 않아. 그저 나와 손을 잡기만 하면 돼.'


지금 내딛는 걸음이 자신을 위험한 곳으로 이끌 것이라는.

그런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 때가 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때에 걸음을 되돌려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이에게 그러한 침착함과 지혜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넷 역시 마찬가지였다.


꿀꺽


'저길 봐. 시간이 별로 없어.'


고민하는 넷을 목소리가 재촉하였다.

목소리의 말대로 혁명단이 대책을 세웠는지 슬슬 움직이려는 기색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고 말거야. 너의 것은 네 힘으로 지켜.'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은 목소리의 마지막 말에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다.


'좋아. 너와 손을 잡도록 할게. 그러니 내게...'

'압도적인 힘을 달라고? 당연하지! 키키킥 아주 좋은 선택이야.'


목소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넷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꿈틀대던 무엇인가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지독하게 어두운 꽃무리 속으로 넷의 영혼이 가라앉았다.


***


넷의 빛의 검 정도는 아니어도 마법만을 집어삼키는 마법은 하나 더 있었다.

세슈람이 재현하는 녹색의 광선이 그것이었다.


혁명단의 작전은 간단했다.

세슈람이 온힘을 다해 적들의 마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면 그 사이 다른 단원들은 3월 마을로 넘어가 인질을 구출한다는 것이 작전의 골자였다.


문제가 있다면 세슈람이 3월 마을을 넓게 덮을만한 크기의 마법을 재현하려면 오랜 시간동안 집광을 해야한다는 말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반혁명파 쪽에서 눈치를 채고 인질을 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혁명단에서 내린 결론은 다른 사람이 시선을 끌고 그 사이에 세슈람이 마법을 완성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3월 마을에서 맹탕을 가장했던 파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여야 할 사람이 다 모였으면 슬슬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는 말이었다.

시선을 끌기 위해 이레가 목소리를 키우며 앞으로 나섰다.


"저주받은 마법사들을 따르는 자들은 다 모였으면 이제 카밀로테에서 나가라!"

"우리가 너희 뜻대로 이곳을 떠난다고 하자.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인 게냐? 카밀로테에서 추방당한 추방자는 살해 당한다는 것을 너희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카밀로테에서 떠나라는 저들의 터무니 없는 요구는 처음부터 들을 생각도 없지만 시간을 끌기 위해 이레는 어느정도 장단을 맞춰주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다른 단원들이 교묘하게 세슈람을 가리며 섰고 이트나 학교장이 은밀하게 시야를 가리는 경계막을 펼치며 세슈람에게 신호를 줬다.


"준비는 됐어요. 세슈람군."


그의 신호에 맞춰 세슈람은 마법을 재현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땡그락


"?"


힘을 모으려던 그의 귀로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땡그락 땡그락


어딘가에 막혀 좀처럼 울리지 못하는 종소리.

이런 종소리는 혁명단에 속하지 않은 일반적인 마법사들이 마법을 재현하기 위해 몸 속의 힘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주변에는 이미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이 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종소리가.


땡그락


여지껏 들어왔던 소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다른 마법사들에게서 들리던 소리가 작은 종이었다면 지금 들리는 소리는 그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큰 종을 치는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커다란 종소리를 찾아 눈이 돌아갔다.


"넷. 너..."


커다란 종소리의 주인은 넷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숨을 몰아 쉬지도, 괴로움에 신음하고 있지도 않았다.

호흡을 멈췄던 사람이 급하게 숨을 들이켜듯이 단번에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넷이 감은 눈을 떴다.


"후..."


땡그락


세슈람이 들었던 넷의 소리는 오락가락하는 편이었다.

빛의 검이나 그 외에 트리아트 셋에게서 배운 마법을 재현하기 위해 힘을 모을 때는 맑고 청명한 소리가 났다면 그 외의 일반적인 마법을 쓰려고 힘을 모으면 일반 마법사들과 다를 바 없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가 단언하건데 청명한 소리든 먹먹한 소리든 넷에게서 이렇게 큰 소리가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의 넷은 이전과는 다른 넷이었다.


"다들 물러서요."


넷의 말 한 마디에 혁명단은 물론 주위 모든 사람들은 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이전처럼 몸 속의 힘을 노골적으로 흘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좀처럼 몸을 놀리기 어려워 했으며 몇몇은 아예 쓰러지기도 했다.


거대한 힘이 넷의 몸 속에서 약동하고 있었다.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이 흐르며 내는 소리가 세슈람의 귀로 조금의 여과 없이 그대로 들어갔다.

그 압도적인 크기 앞에서 세슈람은 제 존재가 먼지처럼 작아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의 감흥도 없이 무관심한 눈으로 차례차례 무너져내리는 사람들을 보던 넷은 이윽고 고개를 돌려 3월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세슈람군. 혹시 지금인가요?"

"아무. 래도... 그런 거 같은데요?"


이트나 학교장의 질문에 세슈람은 몸을 떨면서도 답을 이었다.

넷의 극적인 변화가 드러난 시점부터 맹탕과 나누던 대화를 멈추고 넷을 주시하고 있던 이레가 외쳤다.


"모두! 준비해라!"


이레가 명을 내리자 모든 단원들이 일사분란하게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넷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 잘 들어.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넷을 제외하고 저를 만난 사람들에게 은밀히 전했던 이야기.


- 셋이 파편에 먹히는 날이 찾아올 거야. 그 아이는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 네가 그 아이와 함께 있어줘. 그 아이가 외로운 싸움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마.


이를 전해 들은 단원들은 넷 모르게 모여서 그녀가 파편에 먹히는 날을 대비하여 대책을 강구해 뒀다.

사실 대책이라고 해봤자 별 것이 없었다.

그저 저들이 재현할 수 있는 마법을 재현하는 것.

더 괜찮은 대책을 세워도 의미가 없었다.

만약 대책을 세워서 해결이 될 일이었다면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는 그들에게 그 상황에 맞춰 대비를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넷과 함께 있으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들이 세우는 작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형형색색의 집광체를 본 넷이 말했다.


"나중에. 우린 나중에 해요."


그녀가 손을 가볍게 내저으니 혁명단이 준비했던 집광체가 모조리 사그라 들었다.

가볍게 단원들의 마법을 없앤 그녀는 날아올라 3월 마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넷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듀시아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그가 다급히 외쳤다.


"안돼! 넷!"


그를 보며 넷이 싱긋 웃었다.


"아냐. 듀시아. 안되지 않아."

"제발 멈춰!"


넷이 들어올린 손을 가볍게 내저은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아악!"


3월 마을을 점거하고 있던 반혁명파 사람들의 육신이 잘게잘게 조각나 공기 중에 흩날렸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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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1. 나쁜 자식 내 마음도 모르고 23.02.15 52 2 12쪽
150 150.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1 23.02.14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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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3. 대화가 필요해 23.01.04 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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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141. 보아라 파국이다 23.01.02 57 2 13쪽
140 140. 띠링 기만을 기만한 자 칭호 획득 22.12.29 48 1 12쪽
139 139. 기만 +1 22.12.28 48 2 13쪽
» 138. 침잠 22.12.27 51 2 12쪽
137 137.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22.12.26 49 2 12쪽
136 136. 됐어 나 지금 얘기할 기분 아니야 22.12.22 53 2 11쪽
135 135. 길을 잃거든 그에게 길을 묻거라 22.12.21 48 2 12쪽
134 13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2.12.20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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