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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04 22:09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11,070
추천수 :
684
글자수 :
1,309,179

작성
23.02.21 12:00
조회
42
추천
2
글자
11쪽

154. 이거 죽이면 나랑 사귀는 거다

DUMMY

한산한 훈련장.

훈련장 한 가운데에는 용병왕과 페트라가 서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가장 뜨거운 불과 페트라 일행, 마지막으로 골락의 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페트라가 내건 조건 하나.

비밀리에 대련을 치르고 싶다는 이유로 현재 훈련장에는 이번 일에 관련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훈련장에 자리한 두 사람은 두르고 있는 갑옷부터 퍽 차이가 났다.

페트라가 투박한 철갑옷을 두르고 있다면 반대로 영웅왕의 갑옷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보석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새하얀 갑옷.


이를 처음 봤을 때 세슈람은 딜람의 성벽 마법이 생각났다.

색색깔로 빛나는 성벽 말이다.

그만큼 눈에 띄는 갑옷이었고 남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용병왕에게는 썩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두 사람에게 검을 가져다 줘라!"


가장 뜨거운 불은 훈련장 밖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고 오래지 않아 라페인 두 명이 뒤뚱거리며 페트라와 용병왕의 검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에 용병왕이 멀찍이 서있는 가장 뜨거운 불을 보며 말했다.


"뭐야. 정말 아무런 호위도 없던 건가?"


용병왕과 시장이 안내를 받아 불의 근원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가장 뜨거운 불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없었다.

호위하는 사람도 시종도 없었다.

영웅왕은 내심 그래도 저 땅딸막한 인간이 한 나라의 지도자이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지키고 있는 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지도자 앞에서 히펠을 끌어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그러겠거니 짐작이나 할 뿐이었는데 훈련장에 서서 히펠을 끌어올려보니 가장 뜨거운 불은 정말 혼자였다.


"내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지?"


혼자 웅얼거리고 있으니 용병왕의 검을 든 병사가 다가왔다.

병사는 품에 한아름 안고 있는 검들을 용병왕에게 내보이며 물었다.


"용병왕은 검이 굉장히 많더군. 한 자루면 되는가? 아니면 모두 줘야 하는 것이가?"

"... 왕이라 불리는 이 몸에게 말이 짧군?"

"라페인은 왕을 섬기지 않는다. 이해해라."

"하하... 그렇군."


굉장히 못마땅한 얼굴이 된 용병왕은 병사가 내보인 수많은 검 중에서 가장 커다란 대검을 꺼내들었다.

병사는 남은 용병왕의 검을 들고 다시 훈련장 밖으로 향했다.


"쓰읍... 여기는 왕에 대한 예우가 없단 말이야."


병사는 제 뒤에서 웅얼거리는 용병왕을 돌아보며 말을 덧붙였다.


"가장 뜨거운 불은 라페를 이끄는 자이기도 하지만 가장 강한 전사이기도 하다. 호위가 필요 없으시지."

"하...?"


병사의 말에 용병왕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방금 저 건방진 계집이 한 말을 해석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히펠렌스이자 용병들의 왕이라 불리는 자신을 대하는 데에 호위가 없는 것.

아니.

단순히 없는 것을 넘어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


일개 병사가 보기에 자신보다 저 머리 벗겨진 땅딸막한 자가 더 강해보인다는 뜻이었다.

우리 지도자가 너보다 더 강한데 굳이 호위가 필요해?

뭐 이런 것 말이다.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후우웅


용병왕의 대검이 공기를 찢으며 병사의 목을 향했다.


까아앙


금방이라도 병사의 목을 칠 것 같았던 용병왕의 대검은 언제 움직인 것인지 병사를 가로막고 선 페트라의 검에 막혀 있었다.


"무장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페트라는 용병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드물게 날 선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 한차례 시선을 주고 받은 후 먼저 검을 거둔 것은 용병왕이었다.


특유의 느물느물거리는 미소와 함께 그가 말했다.


"뭘 그렇게 날을 세우고 그러지? 내가 설마 정말 저 여인을 죽이려 했겠느냐 우둔한 곰탱아. 그저 예의를 좀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거짓말이다.

페트라는 알 수 있었다.

급하게 움직여 자세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용병왕의 검을 막느라 시큰거리는 손목이 그 증거였다.

만약 그가 막지 않았다면 뒤에 병사는 지금쯤 머리와 몸이 서로 남이 되어 인사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이 무조건 막을 것이라는 계산까지 깔고 벌였을 수도 있다.

아마 이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있다면 그가 살기를 내비치는 순간 반응을 할 것이고 무리를 해서라도 병사를 지키려 할 것도 예상했을 테니 말이다.


페트라와 병사 사이의 거리가 어느정도 있었기에 완벽한 자세로 병사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검을 들어야 겨우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

묵직하게 실린 히펠.

막지 않는다면 건방진 여자를 죽일 수 있고 페트라가 달려와 막는다면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검 한 번 맞댔을 뿐인데 용병왕의 음험함에 페트라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자 그러면 피차 준비가 된 거 같으니 시작하자. 곰탱아. 능력껏 내 검을 막아 보거라."


용병왕의 몸 주변으로 탁하기 짝이 없는 회색의 히펠이 솟아났다.


***


용병왕 요쿨라토르는 눈 앞의 페트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로써 두 번째다.'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이 말이다.

그것도 힘겹게 막아서 어디 날아가 처박힌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단단히 서서 완벽하게 막아냈다.


첫 번째는 그가 왕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치렀던 웃기지도 않는 초월이라는 시험 후였다.

일곱 수호수 중 하나라는 거북이의 히펠을 손쉽게 찢어발긴 이후 그는 며칠간 머무르며 히펠렌스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축하를 받아야 했다.

초월을 통과한 자를 축하해주는 자리를 갖는 것이 관례라던가.


어디 알지도 못하는 자가 히펠렌스가 되었다는 사실에 하고 싶지 않은 기색을 풀풀 풍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축하를 해주는 기사놈들의 표정이 얼마나 우습던지.

요엠가움의 여덟번 째 수호수라는 칭호는 처음부터 받을 생각도 없었던 만큼 축하연도 참석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재수없는 놈들이 애써 얼굴을 밝히며 자신 앞에서 빌빌대는 꼴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도통 질리지 않기에 축하연에 끝까지 남았던 것이다.


그렇게 즐거운 축하연을 보내고 있는 그의 눈앞에 나타난 자가 바로 디르앤 페룸 이었다.

용병 일을 하면서 한대륙 구석구석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인을 품어보았지만 그 중에 디르앤과 같은 여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금빛으로 풍성한 머리칼, 금빛 눈동자.

거기에 대비되게 까만 피부.

심지어 다른 요엠가움인처럼 까만 것이 아니라 짙은 갈색 피부였다.


누가봐도 혼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엠가움 사람들은 피부색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자들이다.

피부색이 어두울수록 요엠가움에 걸맞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요엠가움은 어지간하면 피부색이 다른 자들과 혼약을 맺지 않는다.

적국으로 오랜 시간 지내온 프로토케나 텔제민의 피부색이 하얗기에 생긴 인식이었다.


그는 그녀가 그 드물다는 혼혈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호기심이 동했다.

그 호기심은 어디까지나 저급한 욕구에 근거한 것이었다.


'저 여자를 품에 안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혹은.


'내가 바로 그 드물다는 혼혈과 자 본 사람이다.'


그래서 접근해보았다.

어떻게 해도 품에 품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자신은 다른 기사들이 빌빌 길 수 밖에 없는 히펠렌스지 않던가.


- 매혹적인 여인이군. 혼혈인가?

- ...


다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과 무시였다.

품에 달린 인장으로 보아하니 겨우 상급 중반에나 이른 기사가 자신에게 보이는 태도가 건방졌지만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몇 번이나 다가갔지만 그녀는 도통 그를 상대해주지 않는 것이다.


어느새 그는 그녀를 몰래 쫓아다니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 아니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또박또박 말해야 한다고 말했지?

- 으... 응.

- 그래야 나중에 페룸을 이어받아서 영지민들을 이끌 때에도 잘 할 수 있지.

- 내. 내가 어떻게! 감히 페. 페룸을 이어받아...! 너. 너랑 결. 결.결혼하지 않고서야...

- ... 에휴.


그녀는 옆에 있는 곰탱이같은 녀석을 미래의 배우자라 여기고 있다고.

심지어 그녀가 곰탱이를 택한 이유가 가문의 부흥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실력자이기 때문이란다.

히펠렌스인 자신을 두고 저 둔하고 모자라보이는 녀석을 택했다는 사실을 그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느정도로 재능이 뛰어나기에 이 몸을 두고 저 곰탱이를 택한 것인지 시험해보겠다.'


여차하면 죽일 생각도 있었다.

만약 이대로 곰탱이가 죽으면 디르앤이 현실을 깨달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 거기 곰같은 자여. 내 검을 받아 보아라.


그는 적당히 히펠을 두른 검을 페트라를 향해 휘둘렀다.


콰아앙


결과는 놀라웠다.

페트라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용병왕인 그의 검을 받아 친 것이다.

아무리 적당히 했다고 해도 겨우 상급의 기사가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소란에 히펠렌스들을 비롯한 기사들이 달려나와 그를 에워쌌기에 일을 더 시험해볼 수 없었지만 이 이후 그에게 페트라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언제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히펠렌스가 된 자가 함부로 요엠가움에 들어갈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역시 골락에 고용되어 바쁜 몸이 되었기에 페트라를 어떻게 할 수 없었는데 마침 라페에서 그를 마주친 것이다.

그것도 디르앤과 함께 말이다.


고맙게도 가장 뜨거운 불이라는 땅딸막한 자가 기회를 주었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페트라 가슴팍에 박힌 인장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잎이 무성한 나무뿔사슴의 머리였다.

결국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는 실력을 확인할 겸 다시 한 번 히펠을 담아 검을 휘둘렀다.


아직 대련 전이니 심하게는 아니고 완연한 상급을 이룬 자들을 벽에 처박을 정도의 세기로 말이다.

검이 부러져 그대로 뒈져 버리지는 않겠지만 검을 막고 날아가 어디 뼈에 금이라도 가는 식의 피해를 주면 좋겠다는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우뚝 서있었다.


'이 빌어먹을 곰탱이가 히펠렌스라...'


검을 다시 한 번 맞대보니 알 수 있었다.

눈 앞의 곰탱이는 무슨 이유로 경지를 숨기는 것인지는 몰라도 벽을 넘은 자였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꼭 디르앤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여기서 꼭 죽여야겠군.'


앞으로 벌일 일에 페트라라는 새로운 히펠렌스가 끼어들면 일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골락의 모든 병력과 용병들이 출전을 준비하는 중에 굳이 용병왕이라는 자가 시장과 함께 따로 움직인 것.

그건 용병왕이 히펠렌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현재 기사들의 정점이라 여겨지는 요엠가움의 국왕을 꺾어야 했으며 그를 꺾기 위해서 용병왕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명검 디스탕시온이었다.


'그런데 디스탕시온을 얻는 것은 물론. 미래의 적이 될 수도 있는 녀석을 처리할 기회를 얻다니 난 운이 좋군.'


요쿨라토르 아무시스.

용병왕의 회색 히펠이 사방을 점거하며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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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5. 눈높이 교육 +1 23.02.22 34 2 12쪽
» 154. 이거 죽이면 나랑 사귀는 거다 23.02.21 43 2 11쪽
153 153. 하지 말라면 하지 마 23.02.20 4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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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150.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1 23.02.14 42 2 12쪽
149 149. 바보 아니다 23.02.13 31 2 12쪽
148 148. 서른마흔다섯 번 +1 23.02.09 31 2 11쪽
147 147. 따끔해요 +1 23.02.08 35 2 11쪽
146 146. 나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해 +1 23.02.07 38 2 11쪽
145 145.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너희도 떨어져라 +1 23.02.06 38 2 11쪽
144 144. 너의 여정에 내가 함께할게 23.01.05 49 2 12쪽
143 143. 대화가 필요해 23.01.04 45 2 12쪽
142 142. 빨간 머리 대현자 23.01.03 61 2 12쪽
141 141. 보아라 파국이다 23.01.02 57 2 13쪽
140 140. 띠링 기만을 기만한 자 칭호 획득 22.12.29 48 1 12쪽
139 139. 기만 +1 22.12.28 48 2 13쪽
138 138. 침잠 22.12.27 51 2 12쪽
137 137.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22.12.26 49 2 12쪽
136 136. 됐어 나 지금 얘기할 기분 아니야 22.12.22 53 2 11쪽
135 135. 길을 잃거든 그에게 길을 묻거라 22.12.21 48 2 12쪽
134 13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2.12.20 46 2 12쪽
133 133. 뭐야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22.12.19 56 2 11쪽
132 132. 낚시 +1 22.12.15 56 2 12쪽
131 131. 쑥쑥 자라렴 22.12.14 48 2 11쪽
130 130. 이게 다 얼마야 +1 22.12.13 53 2 12쪽
129 129. 발 22.12.12 4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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