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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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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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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화

DUMMY

11.


“충고 몇 가지만 할게. 너는 인과를 벗어났으니 주술과 관련된 자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죽이면 안 돼.”

“사람만 제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됩니까?”

“그래. 사람만 네 손으로 죽이지 마. 그리고 네 시간은 주술을 막을 때까지 계속 되돌아갈 거야.”

“다행히 목숨은 많군요.”

“차차 알게 되겠지만 좋은 건 아니야. 그리고 시간이 되돌아가면 적들은 네 존재를 알게 될 거야. 또 이종족을 찾아봐. 몇몇이 주술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 대신 엘프는 조심해. 걔들은 자연과 제일 가까운 존재라 너 같은 사람을 보면 경계부터 할 거니까.”

“알겠습니다.”


대답을 끝으로 얀이 손가락을 튕기자 유리의 뒤에 문이 나타났다.


“저 문을 넘어가면 다시 살아날 거야. 네가 일을 수행하기 편하게 선물도 줬어. 살아나면 알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죽여야 할 놈들을 알게 됐으니 포기할 일은 없을 겁니다.”


유리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문고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저입니까? 다른 이들도 있을 텐데.”

“우리가 눈치채고 나서 죽은 사람 중 이 일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당신들에게는 운이 좋았군요.”

“그런 셈이지.”


대답을 들은 유리는 문을 열었다.


***


“그렇게 된 거야.”


마리아와 자신의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유리의 설명이 끝났다.

집안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라이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기사단을 나가야지.”

“정말입니까?”

“그래.”


유리의 단호한 말에 라이라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내 검을 총단장님께 전해줘. 이 일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내 일에 개입하지 말아줘.”

“그 일을 왜 제가 해야 하는 겁니까.”


라이라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아는 상관이라면 이런 일 같은 경우에 자신이 했지 다른 이에게 부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유리는 지그시 바라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반응에 라이라는 화가 날 뿐이었다.


“왜 제가 해야 하는 겁니까. 굳이 기사단을 나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유리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건 힘들어.”

“그게 왜.”


유리는 손을 들어 라이라의 말을 막았다.


“그들은 지금 나의 존재를 알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하려는 일이 기사단의 이름에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어. 내 출신은 너도 잘 알잖아. 그러니까 기사단을 나가는 게 나나 그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라이라의 입이 굳게 닫혔다.


“네가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데다가 오래 봐왔던 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까 부탁하는 거야.”


침음을 삼키며 유리를 바라봤다.


“제가 아닌 단장님이나 총단장님이 설득하신다면 그에 응할 생각은 있으신 겁니까?”


유리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뜻이 전해진 것인지 라이라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유리는 라이라의 대답에 고마우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마워, 라이라.”


라이라는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유리는 조용히 허리춤에서 검을 때고 라이라를 향해 들었다.


“약속할 거지?”

“약속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유리가 써왔을 검을 바라보다 라이라가 손잡이를 잡았다.


“집안을 찾아보면 옛날에 아버지가 입으시던 옷이 있을 겁니다. 그런 행색으로 다니기는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고마워. 신세만 지네.”

“그럼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라이라는 유리에게 경례를 하고 집을 나서려 했다.


“맞다, 라이라.”

“예?”


라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불려 뒤를 돌아봤다.

은은하게 빛을 내는 유리의 손이 그녀의 어깨 위에 놓였다.


“부단장님?”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유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흐릿해졌고 몸은 축 늘어졌다.

다행히도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는 술집에서 나온 나를 본 적이 없어. 그리고 해가 뜨고 난 이후에 검을 단장님께 전해.”

“예.”


라이라는 생기 없는 눈과 함께 힘없이 답을 하고 문 옆에 멈춰 섰다.

이제 집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고 유리의 얼굴에는 미소 대신 차가운 인상만이 남아있었다.

옷장이 많지는 않기에 어렵지 않게 옷을 찾을 수 있었다.


“일단 피부터 닦아야겠지.”


누더기와도 같은 옷을 벗고 피와 흙먼지를 닦아냈다.

갈아입고 나니 살짝 크기는 했으나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로브도 두르고 집을 나섰다.


‘일단은 검부터.’


유리는 빛이 들지 않는 골목길을 다 꿰고 있는 듯이 막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점점 혼의 외지를 향해 걸어갔으며 이윽고 한 저택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 올 일은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버려진 지 꽤 오래된 저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안에서는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멀쩡한 부분을 찾기도 힘들었다.

을씨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지만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여기였지.’


저택 안으로 들어온 후 부서진 석상 옆의 바닥을 들추니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나타났다.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으나 유리는 발을 옮겼다.


‘이 장치가 아직도 작동 중이네.’


빨리 움직여야 하지만 오직 이곳에서만은 마나를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오래 걸리기는 했으나 계단을 다 내려온 유리는 오래되고 부서진 문 앞으로 걸어갔다.


‘머더러즈.’


과거 기사단이 괴멸시킨 이후 찾아오지 않았던 길드의 본거지를 본 유리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지독하네.’


그저 썩은 내로 찾아오는 불쾌감과 함께 문을 열고 걸어갔다.

단 한 점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도 유리의 발걸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주변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벽의 한 지점을 더듬거렸다.


‘아마 이쯤이었지.’


더듬거리기를 멈추고 힘을 주자 벽의 한 부분이 깊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기계가 힘없이 돌아가며 만드는 소음과 함께 벽이 아래로 꺼지면서 감춰져 있던 통로가 드러났다.


‘다행히 작동하네.’


유리는 곧장 통로를 향해 걸어갔고 얼마 가지 않아 또 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런데 이곳만은 문틈 사이로 미약한 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여전하고.’


정체가 불분명한 시약들, 각종 병장기, 어둠에 잘 녹아들 수 있는 여러 의복, 적당한 크기의 배낭들.

방은 온갖 물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유리는 그중에서 벽에 걸린 배낭을 하나 챙겼다.

그리고 그곳에 몇 가지의 짐과 함께 검은색 로브와 시약을 집어넣고는 각종 병장기 사이에서 흑색의 검을 챙겼다.


‘일단은 이 정도만.’


필요한 물건을 다 챙긴 유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저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곳까지 걸어오며 다음 목적지로 삼았던 밤의 새, 낮의 박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택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마나를 끌어올려 빠르게 이동해 가게 앞에 도착했다.


‘지나치게 조용한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가게 안에서는 어떠한 기운이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혹시 몰라 감각을 더욱 넓혀봤지만, 여전히 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작은 동물이나 벌레들의 소리나 기척마저도 느끼지 못했다.


끼익


천천히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유리는 자신의 기척과 소리를 죽인 채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게 뭔.’


눈에 들어온 가게 안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부서진 물건들, 깨져버린 병 사이로 흘러나오는 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시체들과 약간의 온기를 가진 채 흐르고 고여있는 피.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길베르트는 어디있지.’


유리는 사건의 정황을 살펴보면서도 길베르트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끼익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길베르트가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길베르트!”


물론 그도 이 가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옷가지들은 피에 흥건히 젖어있었고 전신에는 얕고 깊은 상처들이 즐비했다.

이마에서부터 흐르는 피는 턱선을 따라 땅에 떨어지고 있었으며 오른손으로는 천을 이용해 어깻죽지부터 잘려나간 왼팔을 지혈하고 있었다.


“유···ㄹ··.”


그 상태로 걸어 나오는 것은 역시나 힘든 행동이었는지 도중 쓰러질 뻔한 것을 유리가 재빨리 다가가 조심스레 부축했다.


“길베르트,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진 데다 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려오지 않았다.

유리는 그를 벽에 기대 앉히고 청각을 날카롭게 세운 뒤 입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안 들려. 천천히 말해봐.”

“ㄷ···ᅟᅡᆼ····리···.”


말이 부드럽게 들리지도 않고 갈라지고 끊기며 흘러나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것이 현재의 상태로는 최선임을 알면서도 유리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조금만 더 크게 말해줘. 조금만 더.”


유리는 자신의 귀를 더욱 가까이 가져갔다.

길베르트는 남은 힘을 쥐어짜듯이 입을 열었다.


“도망쳐, 빨리···.”


단순하지만 그의 심정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말에 유리는 한계까지 마나를 일으켰다.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귀를 뗀 순간 가게의 곳곳, 여러 구의 시체들, 길베르트의 몸에서 빛줄기가 새어 나오더니 끔찍하고 흉포한 화마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움직였다.


“망할.”


유리는 가게 안의 모든 것과 함께 화마에 집어 삼켜졌다.

자신을 뒤덮은 화마에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뜨거운 고통이 아닌 따뜻하게 감싸주는 포근함이었다.

예상치 못한 감각에 유리는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내가 왜 이곳에···.’


눈에 들어온 장소는 가게의 모습이 아닌 수많은 실뭉치가 떠다니는 장소.

자신이 살아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장소.

얀의 신전이었다.


“내가 데려왔어.”


당황함에 빠진 유리의 귀로 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주저앉아있는 유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자신이 어정쩡한 자세로 주저앉아있는 것을 깨달았는지 얀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죽을 줄은 몰랐어.”

“저도 몰랐습니다.”


유리가 일어나자 얀은 의자를 만들어내 그를 앉게 하고 자신도 맞은편에 앉은 뒤 말을 꺼냈다.


“어때? 능력 좋지?”

“꽤 편리한 능력이긴 했습니다. 정신조작 같은 건 난생처음 들어봤습니다.”


얀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단 시간은 돌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여기 온 이유가 궁금하지?”

“예. 아무래도.”


얀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한가지 말을 안 했었는데 그 능력을 준 이유는 이 일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이 일이 혹시라도 기록되지 않았으면 해서 말이야. 혹시라도 기록을 보고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미연에 방지하려는 거지.”


그 말을 끝으로 얀은 손가락을 튕겼고 유리의 뒤에 한 번 지나갔었던 문이 나타났다.


“그럼 고생해.”


그 말을 끝으로 얀은 사라졌고 유리는 문을 열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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