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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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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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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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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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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9.


검은 남자가 눈에 들어오기는 했으나 유리는 삽시간에 변해버린 공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멍하게 주저만 앉아있을 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자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흔들었다.


‘뭐지?’


어느 정도 정신이 든 뒤에야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유리는 손을 내밀어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남자는 찡그렸던 얼굴을 펴며 유리를 일으켜 세웠다.


“감사합.”


인사를 하는 와중 새하얀 머리, 피부, 눈동자를 가지고 순백의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검은 남자의 옆에 나타났다.

유리의 사고는 여전히 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미안, 잠시 뒤처리 좀 한다고 좀 늦었어.”


하얀 남자는 그에 관해 신경을 쓰지도 않은 체 검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검은 남자는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 손가락으로 유리를 가리켰다.


“와있었구나.”


하얀 남자는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상황 파악이 잘 안 될 거야.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 아직 한 명이 안 와서 말이야.”

“예···.”


얼떨결에 나온 대답을 들은 하얀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씁쓸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착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많은 꽃으로 만들어진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여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과 함께.

여자는 나타나자마자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왜 지금이야, 지금!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검은 남자는 진작에 눈치를 채고 있어 귀를 막아 고함을 피할 수 있었다.

하얀 남자는 온전히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진정시켰다.


“진정해. 네가 제일 바쁜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어떡해. 다 이렇게 될 운명이었어.”

“하! 누가 운명의 신 아니랄까 봐 운명, 운명. 아주 입에 달고 살아. 어!”


한 명은 불만을 한 명은 설득을 한 명은 무시를 하고 있는 사이 유리는 당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지를 않나, 남자를 향해 신이라 하지를 않나. 정신 나간 마법사들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혹시라도 기회가 생기면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 사이 두 남녀의 대화는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왜 불렀어!”

“해결사가 왔다고! 그것 때문에 부른 거라고 했잖아.”


남자의 얼굴에서는 이제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고 답답함만이 가득 묻어 나왔다.

검은 남자는 무시를 하며 귀를 막은 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기만 했다.


“무슨 해결사!”

“부활 주술을 막아줄 해결사. 바로 우리 옆에 있다고.”


하얀 남자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돌려 유리를 확인했다.


“진즉에 말해주면 좋았잖아! 이게 무슨 추태야.”


여자는 남자를 지나쳐 검은 남자의 옆에 섰다.

하얀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남자는 하얀 남자의 앞에 섰다.


“이것도 내 운명이겠지···.”


검은 남자는 말 없이 어깨를 두드려 줬다.

이제 얘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유리는 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저한테 설명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당신들은 뭡니까? 또 여긴 어디고 무슨 상황인 겁니까?”

“하찮은 것 주제에 감히.”


뭐라고 따지려던 여자는 검은 남자의 손에 가로막혔다.

덕분에 하얀 남자가 편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당황할 필요 없어. 다 설명해 줄 거니까.”


하얀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뭐 믿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정체부터 말해줄게. 우리는 너희가 믿고 기도하는 신이란 존재들이야. 나는 운명의 신인 얀. 말 없는 친구는 명계의 신 비샤. 저 여성분은 시간의 여신 아일린.”


유리는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것을 저보고 믿으라고 하는 말입니까?”

“그래도 저게!”


또다시 발끈하려던 아일린을 비샤가 막아 세웠다.


“분명히 믿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나도 너와 같은 상황에 빠지면 그럴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따로 할 말이 없는 걸.”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솔직히 털어놓으시죠.”

“이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코앞에 닥치니 난감하네.”


가만히 얘기를 듣고만 있던 비샤가 유리의 앞으로 걸어갔다.


“음? 비샤?”


그리고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유리 리버스.”


사람을 홀리는 듯한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인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릴 때 섭취한 약물들로 늦은 나이에 병이 생겨 치료를 위해 기사단을 은퇴. 그 와중에도 기사학교의 교수로 들어가 여러 기사를 배출해내다 76세의 나이로 사망 예정이었으나 한밤중의 전투에서 심각한 장기손상 및 과다출혈로 사망.”


미래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말이 나오자 유리는 경계심을 일으켰다.


“뭡니까, 당신.”


비샤는 그의 질문은 무시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방금까지는 네 것이었는데 네 딸의 사망록, 말해줘?”


유리는 경계심은 지우고 검을 강하게 움켜쥐며 마나와 살기를 일으켰다.


“말해봐.”


위협적인 기세에도 비샤는 무신경했다.


“저게!”


오히려 아일린이 분노로 가득 찬 표정과 함께 나서려는 것을 얀이 막아 세웠다.

하지만 그런 얀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리아 리버스. 유리 리버스의 입양아로 들어간 후 노력과 재능으로 마법부에 들어간다. 이후 뛰어난 마법사들을 배출하고 황족들을 가르치며 마도 학장이라는 지위와 함께 백작위를 하사받았으나 모든 것을 거절하고 변두리 귀족의 영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85세의 나이로 사망할 예정이었지만.”


비샤는 말을 잠시 끊었다.

그의 몸 주위로 새하얀 아지랑이가 잠깐 피어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방금 6살의 나이로 죽었군.”


유리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비샤에게는 닿지 못했다.

아니 닿을 수 없었다.

그의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도대체 뭘?’


그뿐만 아니라 검을 쥐고 있던 오른손과 오른팔마저 사라졌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머리로 따라잡지 못하는 사이 비샤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유리의 눈에는 비샤도, 그 뒤에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얀과 아일린도, 전부 사라졌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어둠뿐이었다.


‘이곳은?’


어둠뿐인 공간에서 유리는 자신의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손끝 발끝부터 서서히 사라져가는 촉각까지.

모든 감각이 사라져갔다.

시간이나 공간도 느끼지 못했다.


‘윽.’


사라지는 감각과 함께 두려움이 일며 정신이 점점 무너져갔다.

굶주리던 생활.

머더러즈.

길베르트와의 만남.

기사단 그리고 마리아.

자신의 과거와 마리아를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버텼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정말 내가 행했던 일들일까.’


자신의 과거를 의심하고.


‘정말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던 것일까.


자신의 주변을 의심하고.


‘정말 내가 존재하고 있던 게 맞을까.’


자신의 존재마저 의심했다.

그에 도달한 순간 유리라는 존재는 어둠에 잠식되어갔다.

하지만 완전히 잠식되기 직전 은은한 빛과 함께 비샤가 나타났다.


“아···.”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각을 시작해서 모든 감각과 정신이 순서대로 돌아왔다.


“우웩!”


그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라졌던 것들이 한 순간에 돌아오며 느껴지는 모든 감각과 정보를 버티지를 못했다.

구역질하는 것을 모자라 아예 발작하기 시작했다.

위험해 보이는 상황인데도 비샤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기운을 흘려보냈다.


“하아, 하아.”


무너지던 정신이 돌아오며 떨림이 잦아들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싶었는지 그의 머리에서 손을 거뒀다.

정신이 돌아왔음에도 유리의 눈동자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비샤의 얼굴을 향할수록 떨림은 더욱더 거세졌다.


“방금은.”

“죽음.”


그것이 정말 죽음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단어 말고는 이것을 표현할 방법도 없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든 이가 어떠한 존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신.”


담담하게 내뱉은 말.

하지만 유리에게는 한없는 무게를 가진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단어였다.


짝!


“자, 이제 우리가 신이란 것을 믿을 수 있으니까 얘기를 마저 해볼까.”


그냥 손뼉을 친 것이 아니었는지 공간의 분위기에 단 한 번에 가벼워졌다.

유리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잠깐 시간을 주고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고 느껴질 때쯤 대화를 이어갔다.


“일단 네 질문에 답을 주자면 이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 속이라고 할 수 있어. 너는 지금 죽은 상태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지?”

“예.”

“그래. 그리고 네가 여기 있는 이유는 아까 내가 아일린과 얘기를 했듯이 네가 부활 주술을 막아줬으면 해서야.”

“예.”

“뭐 궁금한 점 있어?”


유리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말해. 이래 봬도 너희가 전지전능하다고 말하는 신이니 웬만한 것들은 답해줄 수 있으니까.”


유리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말로 딸이 죽은 것입니까?”

“역시 그것부터 물어보네. 비샤.”

“죽었어.”

“비샤가 그렇다네. 그는 명계의 신이니까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니야.”


유리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떨어트린 채 주먹만 움켜줬다.

방금 엄청난 일을 겪어 감정이 심하게 요동치지는 않았으나 깊은 상실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화하기가 힘들어지자 얀은 유리를 포기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얘 아니면 아예 운명을 바꿔야 되는데.’


“길게는 못 주지만 딸과 대화할 시간을 줄게.”

“어?”

“뭐?”

“예?”


유리와 얀 그리고 멀뚱히 지켜보던 아일린까지 비샤를 향해 의문을 던졌다.

비샤는 그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 주술이 완성되기까지는 1달이 걸려. 그리고 영혼이 오염되기까지도 1달이 걸리지. 그 말은 딸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1달이라는 것. 네가 그 전에 주술을 막고 떠도는 영혼들을 구해주면 남은 시간만큼 얘기할 시간을 줄게.”

“정말입니까?”


비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말하는 순간 그것은 신언이 되. 이것을 어기면 전지전능에 위해를 가하게 되고. 그러니 걱정하지마. 그리고 너의 딸이 환생하고 행복한 운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게. 가능하지?”

“근 시일 내에는 안되지만 가능은 해.”

“야! 비샤, 너는 또 왜!?”


둘에게 따지려던 아일린은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비샤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려던 말은 다른 곳에서 흘러나왔다.


“신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신들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비샤는 담담히 답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어. 단지 이 일을 해결해준다면 오염되고 사라질 뻔한 영혼들을 구해주는 일이 돼. 나는 그게 고맙기에 그저 보답하고 싶을 뿐이야.”


비샤와 유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유리의 눈에 보이는 비샤의 얼굴은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 일, 하겠습니다.”


적지 않은 각오가 담긴 말이었다.

물론 딸에 대한 마음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비샤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일린을 바라봤다.


“그렇게 됐으니 아일린. 시간은 부탁할게.”

“알겠어. 하면 되잖아.”


아일린이 손가락을 튕기자 드레스의 꽃 몇 송이가 시들었다.

유리의 몸 주위에는 금색의 빛무리가 감싸기를 잠시 곧바로 사라졌다.


“끝났어.”

“고마워. 그럼 나머지는 얀과 얘기하면 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비샤는 조용히 사라졌다.

얀은 미소를 지으며 유리에게 다가갔다.


“그럼 우리는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해볼까?”

“알겠습니다.”


이 공간에는 이제 아일린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는 그냥 들러리일 뿐이잖아.”


그녀의 불평불만을 제외하고 이 공간에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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