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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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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055

작성
20.1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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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7화

DUMMY

7.


‘날씨 좋네.’


눈을 떴을 때 유리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마주했다.

이러한 날씨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알 수 없는 괴리감에 눈을 찌푸렸다.


‘기분이 왜 이렇냐.’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 한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눈짓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 얼굴.

유리는 지그시 바라봤다.

소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냐?”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 같은 순수한 미소.

유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남자의 이름을 내뱉었다.


“길베르트?”

“너는 네 파트너 이름도 까먹냐? 아니면 그 나이에 벌써 치매라도 왔어?”


분명히 익숙했지만,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너 뭔가 되게 어려 보인다.”

“무슨 소리야? 어려 보이는 게 정상이지. 이제 13살인데.”

“13살? 27살이 아니고?”


길베르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개꿈이라도 꿨냐?”

“꿈···.”


그 한 단어에 유리의 머릿속에서 하나둘씩 무언가가 사라져 갔다.

멍한 표정을 짓기를 잠시,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괴리감은 없었다.

길베르트가 정신을 차리라는 듯이 꾸짖었다.


“너 이번 우리 타겟이 누구냐?”

“제국 기사단 총단장 후보 0순위, 제1기사단장 롬 하루스.”

“알고 있네.”


길베르트는 잠깐 뜸을 들이고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이거 가능하냐?”

“해야지.”

“어떻게?”

“알면 이러고 있겠냐. 처음 받은 이런 임무에 그런 거물이라니.”

“그럼 거절을 하지.”


유리가 몸을 일으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보고 거절을 하라고?”

“너 정도면 가능하잖아.”

“간부도 아닌데 어떻게? 거절했으면 부 마스터 손에 우리 목이 날아갔을걸.”

“에이, 설마.”

“우리 같은 길바닥 출신은 이게 최선이야. 준비나 하고 시간 되면 깨워줘.”


그 말을 끝으로 유리는 몸을 돌려 다시 잠에 빠졌다.


“미치겠네, 진짜.”


귀에 들려오는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


낮잠을 자고 있던 유리는 불편함이 느껴져 감았던 눈을 떴다.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

그와 대조되는 백옥같이 새하얀 바닥.

그리고 끝없는 지평선.

유리는 그곳에 혼자 서있었다.


‘여기는···.’


상황 파악을 위해 일단 주변을 살펴봤으나.


‘분명 나는 길베르트 옆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곳에 길베르트는 고사하고 작은 생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유리는 걷고 뛰는 등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고 뭔가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게 자각몽이라는 건가? 자각몽에서 꿈을 꾸면 깬다는 말이 있긴 하던데. 뭐 길베르트가 알아서 하겠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해가 될 공간은 아니란 것을 확인했기에 다시 자리에 눕고 눈을 감았다.


“&%$. &%$!”


그렇게 잠에 빠지려던 순간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에 눈을 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보이는 사람은 없어 다시 눈을 감았다.


“&%$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눈을 감기를 잠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특정 부분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있었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고 잠이나 자려 했지만 그럴수록 목소리는 더욱더 보채듯이 말했다.


“&%$, 언제까지 잘 거야. 어서 일어나!”

“&%$ 놀아줘, 심심해.”

“&%$ 호박요리 해줘. 배고파.”

“&%$!”


유리는 참다못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새하얗고 사람의 형체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덩어리와 마주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유리의 가슴속에서 휘몰아쳤다.

후회, 분노, 절망, 슬픔, 그리움.


‘왜 이러는 거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입 닫아.”


그것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감정들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그것이 말을 걸었다.


“&%$, 나 누군지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알아.”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것이 다시 말을 걸었다.


“기억 안···나? 나는 &%$의 $%#@&*이잖아.”

“뭐라는 거야?”

“&%$의 $%#@&*이라고.”


어느 특정 단어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유리의 상황도 모른 채 새하얀 덩어리는 말을 이어갔다.


“왜 그 어둡고 차가운 곳에 나 혼자 내버려 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얼마나 기도하고 기도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차갑기만 한 대답에 그것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것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왜, 왜! 왜 모르는 체하는 건데!”


유리는 속이 울렁거려 얼굴을 찌푸렸다.


“모르니까 그러지. 아까 말했잖아. 난 너 같은 거 모른다고.”


눈물이 붉게 변하며 왼쪽 가슴에 어른 주먹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끔찍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모습에도 혐오감은커녕 오히려 유리의 가슴은 점점 미어져 갔다.


“&%$ 너무해.”

“시끄러.”


저벅 저벅


그것이 한 걸음 다가가자 유리가 한 걸음 물러났다.


“거짓말쟁이.”

“거짓말한 적 없어.”


저벅 저벅


또다시 서로는 한 걸음 다가가고 물러났다.


“이제는 다 싫어. &%$도 세상도.


유리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죽어.”

“뭐?”


유리는 피를 한 움큼 토하며 자리에서 쓰러졌다.

자신의 배에 크기가 꽤 큰 구멍이 뚫려있는 걸 확인했다.

그것의 공격을 유리는 전혀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유리는 간신히 말을 쥐어 짜냈지만, 그것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이 상황을 파악해보려 했지만, 힘이 빠져 뭘 할 수가 없었다.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유리, 유ㄹ··, 유···.”


자신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지만, 답할 힘은 없었다.


‘뭔가 익숙한데···.’


그 생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유리 좀 일어나.”


길베르트가 유리를 깨우기 위해 몸을 흔들고 이름도 불러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평소와 다른 행동에 길베르트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약을 그리 받더니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길베르트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더욱 세게 몸을 흔들었다.


“좀 빨리 일어. 히익!”


갑자기 자신의 팔을 붙잡는 손에 그는 화들짝 놀랐다.

유리는 자리에서 허겁지겁 일어나더니 배를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길베르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


“너 진짜 오늘 왜 그래.”

“길베르트?”


등에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유리는 겨우 진정했다.

길베르트가 냉수를 건네자 그는 냉큼 받아 허겁지겁 들이켰다.


“우웩!”


유리의 토악질에 길베르트는 다시 등을 두드렸다.

유리가 어느 정도 진정하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꿈자리가 사나웠을 뿐이야. 신경 꺼.”

“넌 진짜 말을 해도 그딴 식으로!”


유리는 길베르트를 무시하며 지나쳤다.

그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유리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어디 가!”

“어디 가긴. 타겟 잡으러 가야지.”

“지금 그 상태로 뭘 한다고.”


귓가를 스치고 단검 한 자루가 뒤에 있던 나무에 박혔다.

길베르트는 끝까지 말을 할 수 없었다.


“문제없지?”


유리는 다시 길을 걸어갔지만 길베르트는 주저앉아 자신의 볼을 쓰다듬기만 했다.


“빨리 와. 바빠.”


길베르트는 헐레벌떡 일어나 단검을 챙기고 옆으로 걸어갔다.

이후 그들은 꽤 오랫동안 걸어 황궁 근처의 골목에 도착하고 주변을 살폈다.

날은 짙게 구름이 져 상당히 어두웠다.


“이제 시작하면 될 것 같은데?”

“너 아무것도 못 들었어?”

“그러면 너는 뭐 들은 게 있냐?”

“어.”


힘들게 조사를 했는데 무언가 들은 게 있다고 하니 길베르트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럼 네가 앞장을 서면 됐잖아.”

“너도 들었을 줄 알았지. 알았으면 이리로 안 왔지.”


길베르트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참자. 참아.’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기에 씩씩거릴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고개를 골목 안으로 집어넣고 벽에서 몸을 땠다.


“빨리 앞장서.”


유리는 몸을 풀던 것을 멈추고 발걸음을 옮겼다.

길베르트도 얌전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황궁의 벽이었다.


“여기는 뭐 하려고?”


유리는 허리춤에 꽂아둔 단검을 뽑고 벽을 더듬었다.


“기다려봐. 분명 이쯤이라고 했는데.”


유리는 몸을 숙이더니 벽의 맨 아래에 나 있는 홈들을 하나하나 긁어갔다.


“설마 하나하나 다 긁으려는 건 아니지.”

“아니야. 분명히, 찾았다.”


단검은 벽으로 부드럽게 들어갔다.

그리고 단검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벽돌을 하나씩 뺐다.

곧 아이만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작은 구멍이 만들어졌다.


“나 먼저 갈 테니까 따라 들어와.”


유리는 망설임 없이 구멍으로 들어갔다.

길베르트도 따라 들어간 뒤 벽돌로 구멍을 막았다.

다행히도 둘이 있는 곳은 수풀로 가려져 있었다.


“뭐 보이는 거 있냐?”

“아니. 유리, 여기서 어디로 갈까?”

“일단 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가야지. 그곳에 집무실이 있다고 했으니까.”


둘은 소리를 죽이고 조심히 이동했다.

다행히 기사단 근처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새어 나오는 불빛도 없었다.

둘은 재빨리 움직여 건물의 벽에 붙었다.


“안에 사람 없겠지?”

“이미 시간도 자정이 넘었고 새어 나오는 불빛도 없잖아. 별다른 인기척도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황궁 안에 괴물 같은 놈들이 얼마나 많다는데.”


유리는 고개를 떨구며 말을 받았다.


“뭘 그렇게 쫄았어. 이미 조사는 다 끝냈잖아. 기사들 숙소는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이 시간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도 확인했고.”

“그건 그런데.”

“게다가 네가 괴물이라고 한 놈 중 진짜 괴물이 있었냐? 다 거품만 잔뜩 껴서는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던 놈들이었잖아. 됐고 빨리 문이나 열어.”


길베르트는 속으로 고함을 외쳤다.


‘그건 너도 괴물이라서 그렇지! 나는 아니라고!’


유리는 13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조직 내에서 전투로 손에 꼽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러니 저렇게 행동할 수는 있겠지만.

잠긴 문을 열고 있는 길베르트의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유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다르겠지만 다 똑같은 사람이야. 안 들키고 내가 먼저 찌르면 이겨.”

“꼬마 주제에 패기가 좋구나.”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유리와 길베르트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두 쌍의 눈동자가 도착한 곳에는 호쾌한 미소와 함께 태산과도 같은 기운을 풍기는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롬 하루스.”


유리 입에서 자연스레 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목소리는 꽤 떨리고 있었다.

기사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하하하하! 꼬마야,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것이냐?”

“제국에서 황제와 그의 핏줄 다음으로 유명한 이름인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음. 그것도 그렇군.”


유리와 롬이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는 사이 길베르트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진짜 미치겠네! 섣불리 덤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고. 유리가 달려들 때를 노려서.’


롬은 길베르트를 슬며시 쳐다봤다.


“꼬마야, 네 친구가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 같구나.”

“마침 나도 그 생각이 들었는데.”


정곡을 찌르는 소리였지만 길베르트는 아니라는 듯이 부인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생각했다고 그래!”


유리는 고개도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덤비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하겠고.”

“그러니 친구가 싸울 때 기회를 봐서 도망이라도 쳐야겠다고 생각하겠지.”


둘의 말에 길베르트는 대꾸도 못 하고 주먹만 꽉 하고 움켜줬다.

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둘의 대화에 그가 성을 냈다.


“유리, 서 있지만 말고 어떻게든 해봐!”


유리는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그냥 잠자코 있어. 나라고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게 무슨.”

“나 같은 걸 천명, 만 명을 데리고 와도 어떻게 해볼 게 아니야. 저건 진짜 괴물이야.”


길베르트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별난 놈이긴 하지만 어른, 아이 포함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서 강함으로는 손에 꼽을 수 있는 유리.

그런 유리의 입에서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 나왔다.


‘난 죽기 싫다고!’


이제 길베르트의 사고는 임무고 자시고 오로지 생존에만 치중하게 되었다.

품에 손을 집어넣더니 검은색 구슬을 꺼내 들었다.


“난 이렇게는 안 죽을 거야···.”


자신의 의지가 담긴 한마디의 말을 내뱉고 바닥에 구슬을 힘껏 던졌다.

구슬은 소리 없이 터지며 그들 주위로 검은색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냈다.


“멍청한 놈.”

“꼬마가 허튼수작을 부리는구나.”


롬은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고 가볍게 휘둘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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