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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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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1,055

작성
20.1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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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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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화

DUMMY

6.


“이게 도대체···.”


그곳에는 소년, 소녀가 손을 맞잡은 채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왼쪽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비어버린 눈 안에서는 피를 흘리며.

둘은 서류에서 봤던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로 납치된 아이들이었다.


“그만.”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하던 유리를 누군가가 어깨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묵직하고 짧은 음성에 뒤를 돌아보니 단테와 안나가 서 있었다.


“4단장님 이건···.”


유리가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단테가 어깨에서 손을 내리고 종이와 펜을 꺼내 끄적이곤 아이들을 향해 날렸다.

날아간 종이는 아이들에게 닿기 직전 푸른 불꽃에 타 없어졌다.

그리고 어떠한 들려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에 주변을 둘러보니 현장을 둘러싸고 있던 시민들이 사라졌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심지어 자신의 감각 안에 기사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나가 곁으로 다가갔다.


“당황할 필요 없어. 단지 단장님이 사람들을 물리는 주술을 쓰셨을 뿐이야.”

“주술이라니?”

“마법과 비슷한 거라고만 단장님께 들었어. 나도 잘은 몰라.”


단테는 몸을 숙여 아이들 주위로 그림을 그려갔다.

그림을 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림은 은은한 흰 빛을 뿌리며 천천히 사라졌다.


“안나.”

“네, 단장님.”

“조사해라.”

“알겠습니다.”


안나는 두 명의 기사와 함께 조사를 시작했고 단테는 유리의 옆에서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술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취한 건 아니겠지.”

“취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 아이들은.”

“가장 먼저 납치되었던 아이들이다. 괜한 생각은 하지 말아라.”


단테의 뒷말은 소용이 없었다.

이미 유리는 소녀의 모습을 자신의 딸과 겹쳐 보는 중이었다.


‘마리아···.’


유리에게는 그 어떤 말도 들리는 상황이 아니었다.

단테는 유리의 앞에 서며 눈을 마주쳤다.

괴로움, 분노, 슬픔, 좌절감 그리고 절망.

이 모든 것들이 담긴 유리의 눈이 단테에게로 향했다.


“저건 네 딸이 아니다.”


유리는 입을 우물거리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 딸은 아니지만 제 딸도 저렇게 되지 않습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포기할 생각이냐.”

“그건···.”


단테가 주저앉은 유리를 일으켰다.


“그렇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라.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그것을 끝으로 유리는 자리를 벗어났다.


***


“부단장님, 너무 취하셨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기사단과 움직여야 하니 그만 드시는 게.”

“내 기분을 모르겠으면 그냥 술이나 따러.”


지난 9일 동안 쌔가 빠지도록 움직였다.

정보 길드를 넘어서 흥신소까지 돌아다녔지만 얻은 정보는 0.

단 하나도 없었다.


“음? 다 떨어졌네. 여기 술 한 병 더!”

“네.”


심지어 9일 동안 나흘 주기로 처음 발견된 아이들과 똑같은 행색의 아이들이 2번, 총 4명이 발견됐다.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가는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술에 손을 가져갔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항상 술에 절어있기는커녕 아예 의지하는 수준이었다.


“부단장님,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니 일찍 귀가해주십쇼.”


기사는 경례하고 술집을 나왔다.

유리도 조금 더 마시다가 남은 술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기사님, 돈은 주고 가셔야죠?”

“아···. 미안.”


깜빡했던 돈을 내고 가게를 나왔다.


“우웩!”


롬이 허락한 기간의 마지막 날 밤.

하늘에는 검고 썩어들어가는 유리의 마음과는 달리 달이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이제 한 달 정도 뒤면 개기월식이네. 마리아가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유리는 비틀거리며 여관을 향해 걸어갔다.


‘음?’


자신밖에 없던 길거리에 여자아이가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유리의 눈에는 상당히 익숙했다.

아이의 머리에는 딸이 선물 받았던 것과 똑같은 나비 모양의 머리핀이 있었다.


“뭐야···.”


유리는 재빨리 그들의 앞으로 가 얼굴을 확인했지만.


‘이건···.’


얼굴은 커다란 검은색 눈동자 하나만 그려진 새하얀 가면에 가려져 있었다.

유리가 당황하기를 잠시 아이가 쓰고 있던 가면의 입 부분이 갈라졌다.

동시에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이빨들을 보이며 섬뜩할 정도로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정말로 아비가 맞느냐?”


아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듯한 딸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넌 뭐야.”


유리가 검을 뽑으려 하자 검은색 복장을 하고 아이와 똑같은 가면을 착용한 10명의 인원이 나타났다.

다행히도 살기가 흘러나와 유리는 그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개자식들.’


그들의 손에는 칼, 창 그리고 도끼 같은 병장기들이 들려있었다.

유리는 마나와 살기를 일으키며 검을 뽑았다.


“나를 죽이려고 검을 뽑은 것이냐?”


아이의 말에 손을 잡고 있던 이가 검을 뽑았다.

검의 날이 유독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유리는 아무런 기색 없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는 검을 휘둘렀다.


‘한 손은 힘들어.’


유리는 술병을 집어 던지고 두 손으로 검을 쥐었다.

상대는 힘에서 어느 정도 밀리고는 있었으나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


둘 중 누구한테 하는지는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힘겨루기를 하다말고 서로 물러났다.

상대는 뒤로 물러나며 아이도 같이 챙겼다.

유리는 잠깐 비틀거렸지만 이내 균형을 잡았다.


“술 기운에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그냥 쉬는 게 어떠냐?”

“닥쳐.”


시선이 둘에게 집중된 사이 창을 든 자가 빠른 속도로 유리에게 달려들었다.

사각에서 들어오는 공격이었지만 몸을 틀어 부드럽게 흘리며 목을 벴다.


‘내가 살기도 못 느끼는 병신인 줄 아나.’


목에서 피를 흘리며 상대의 몸이 쓰러졌다.

머리는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 덕에 가면이 벗겨져 얼굴이 드러났지만, 유리의 눈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터인데. 꽤 좋은 실력이구나. 이것들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구나.”


아이가 손뼉을 마주쳤다.

박수 소리에 같은 행색을 한 이들이 50명 나타났다.

각자가 날이 서 있는 병장기를 들고 유리를 에워쌌다.


‘술기운에 살기에. 어지러워 죽겠어.’


59명의 적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유리도 마찬가지로 달려들었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이가 도끼로 검을 맞받아쳤으나.


‘마나도 안 둘러!?’


유리는 도끼와 함께 상대를 통째로 벴다.

동시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거나 흘리고 반격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 누구도 무기에서 푸른빛을 띠는 이가 없었다.


‘마나를 쓰지 못하는 건가?’


그것은 가능성으로만 남겨두고 계속해서 적들을 상대했다.

중간중간 비틀거리며 위험한 순간이 찾아오기는 했다.

그래도 남다른 반사신경이나 감각으로 어찌어찌 피해내거나 간단한 상처로만 끝을 냈다.


‘어지러워···.’


꾸드득


무언가가 부서지고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적의 몸이 들렸다.

유리는 주먹을 회수하고 적의 목을 휘감아 부러트렸다.

37명이 남았다.


“윽!”


비틀거리면서 고인 피를 밟고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온갖 날붙이들이 달려들었다.

온몸이 시뻘겋게 물들었지만 피 웅덩이를 굴러서 다리만 살짝 베이는 것으로 끝났다.

20명이 남았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내려찍었다.

머리가 부서지며 안의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들을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처리하더니. 실력이 꽤 좋구나.”


아이가 손뼉을 치며 감탄을 표했다.


“술에 취하지만 않았으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었겠어.”


귀기가 서린 푸른 안광을 빛내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이밀었다.

옆에 남아있던 이가 검을 뽑으려 했으나 아이가 손을 올려 그것을 제지했다.


“빨리 불어.”


그것은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무엇을 말이더냐?”

“네 목소리가 마리아와 똑같은 이유.”


입에 걸려있던 기분 나쁜 미소가 더 기괴하게 변했다.


“그 귀여운 아이의 이름이 마리아였구나!”

“마리아한테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


한 자, 한 자 씹어먹을 듯이 말을 해도 아이는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듯,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내뱉었다.


“두려움에 허우적거린 채 울먹거리며 지아비를 찾는 모습이 얼마나 가엾던지.”


아이는 자신의 가슴에 두 손을 올려 포갰다.


“내 가슴이 다 미어지더구나.”


유리는 가만히 아이의 언행을 지켜보았다.

가슴속으로 후회를 그리며. 분노를 일으키며. 살기를 띄우며.

흉포한 기세에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이는 그런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여전히 과도한 동작들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이 가슴의 미어짐도 없애고 그 아이를 두려움에서 구해줄 방법을 생각해 보았단다. 그런데 길게 생각할 필요 없이 순식간에 그 방법이란 것이 뇌리를 스치더구나.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침묵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현명하다는 듯이 말했다.


“바로 없애버리는 것이란다. 그 아이를.”


유리는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줬다.

그러나 검은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아이의 목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이 죽이고자 하였던 아이를 바라보는 유리의 눈빛에서는 당혹스러움만이 흘러나왔다.


“마리아, 네가···왜···.”


가면을 벗고 드러난 얼굴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보고 싶었던 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빠, 무서워···, 구해줘···.”


마리아와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가 눈물을 글썽였다.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버렸다.

눈과 검에 깃든 푸른빛도 사라졌다.


“마리···.”


유리는 딸의 이름을 끝까지 부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고개를 들어 자신의 배에 어른 머리만 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유리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아이를 바라보았고.

아이는 그 눈빛을 느끼며 쓰러진 유리의 곁으로 걸어가 작게 속삭였다.


“걱정 마려무나. 이 아이는 대업을 위한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이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신의 아비인 너의 곁으로 갈 것이란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피로 생기는 어지러움과 졸음 때문에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그 아이를 붙잡고 그것이 무슨 말인지 더 추궁하려 했으나.


‘아···.’


그럴 힘이 이제 유리에게는 없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너와 딸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편히 잠에 드려 무나.”


아이는 자신의 곁에 있던 자에게로 돌아갔다.

전투의 흔적은 주변에 드리웠던 어둠이 휩쓸고 지나가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유리는 머릿속으로 한없이 딸의 이름을 되뇌었다.

희미한 눈빛으로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부단장님! 부단장님!”


부름에 대답할 힘도 없었다.


“마리아···.”


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끝으로 깨지 않을 듯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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