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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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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수 :
451,055

작성
20.12.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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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8화

DUMMY

8.


그 단순한 행동에 연기가 일순간에 걷혔다.

그리고 도망가던 길베르트의 눈에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황궁의 벽에 얕고 날카로운 선이 그려졌다.


“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길베르트는 그만 주저앉고야 말았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따끔함에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대보니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손을 가져오니 새빨간 액체가 묻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거 피 맞지···? 만약 저 선이 나를 향했다면···.’


길베르트의 머릿속에 목과 몸이 분리되어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거품을 물며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눈에 들어온 광경에 유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 인간이야?”

“뭐 때문에 그러느냐, 꼬마야?”

“정말로 저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야? 기사들은 다 그래?”


유리의 질문에 롬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가 제일 처음에 말했지 않느냐.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이제는 믿을 수 있겠지. 그래도 기사라고 다 이런 것은 아니다. 훈련하고 어느 정도의 경지를 이룩한 무인이면 가능하지. 그것보다 꼬마야.”


자신을 향한 무미건조한 눈길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싸워야지.”


망설임 없는 대답에 롬이 한 가지 더 물어보았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듯이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어떠냐?”

“내가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벗어난다고 해도 전진을 할 수 있는 인생도 아니고. 그러니 싸워야지.”


롬의 눈길이 살짝 쓸쓸하게 바뀌었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느냐?”

“겨우 굶주리고 길바닥의 벌레를 집어먹는 삶을 벗어났는데 여기서 뭘 더 바라라고.”

“평범한 삶 말이다.”

“바랄 걸 바라야지.”


유리는 단검을 뽑고 롬을 향해 달려들었다.

허리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으나 롬은 무리 없이 쳐냈다.

단검이 튕겨 나왔으나 그 힘을 이용해 한 바퀴 돌며 반대쪽을 향해 다시 휘둘렀다.


‘탄성이나 균형 감각은 좋아.’


유리의 공격은 롬의 눈에 훤히 보여 부드럽게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래도 유리는 쉴 새 없이 공격을 이어나갔다.

흙까지 뿌리며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이 어린아이를 죽여야 하나.’


허나 그 어떠한 공격도 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유리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분명히 기회가 생겼음에도 롬은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후···.”


유리는 롬과 검을 맞대며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상대는 아직 자신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죽일 거야? 살릴 거야?”

“고민 중이다. 범죄자와 아이의 사이에서 말이다.”


롬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런 아이들이 몰래 들어온 것을 보면 분명히 이 안에 관계자가 있겠지.’


계속 고민하면서도 시선은 유리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캐물어도 답해주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정보를 얻기 위해 저 어린아이를 고문한다?’


롬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건 내 마음이 편치가 않아. 위험을 안고 가는 수밖에 없겠어.’


둘에게는 꽤 기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못 참고 유리가 살짝 움직였는데 어느새 롬이 그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도대체 언제!?’


그래도 유리는 무의식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롬은 여유롭게 피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플 거다.”


그대로 유리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온 몸의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유리를 덮쳤다.

그 한 번을 버텨내지 못하고 유리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죽기는 싫은데.’


유리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감긴 눈꺼풀 너머로부터 미세한 빛줄기가 흘러들어와 유리의 눈이 절로 떠졌다.


‘여긴.’


자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흘러나오는 천장이었다.


‘죽은···건 아니겠지.’


유리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살피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도저히 시도할 수가 없었다.

힘을 줄 때마다 온몸에 지독한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한 중년 기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째서···.”


기사의 정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롬이었다.

유리는 롬의 얼굴을 보자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절로 얼굴을 찡그려졌다.

롬은 의자를 하나 들고 와 침대 옆에 앉았다.


“여긴 어디지.”

“내 집이란다.”

“왜 내가 여기 있지. 난 그때 분명히 당신 공격에 맞고는.”

“정신을 잃었지.”


롬은 유리를 지그시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널 살려준 것도 모자라 치료를 해준 것에 의문이 들 테지.”


유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정보를 원한다. 너희 조직의 이름이 무엇인지. 만약 나를 제거했다고 하면 다음 목표는 누구인지. 조직의 머리는 누구인지. 모든 정보를 원한다.”

“내가 왜 가르쳐줘야 하지?”

“가르쳐 주기 싫다면 입을 다물어도 된다. 대신 고문실로 가게 되겠지.”


둘은 서로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유리는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목표를 모르기 때문에.

이후 자신의 신변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를 하도록 하지.”


서로 간의 정적이 깊어지는 가운데 롬이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거래? 정보를 분다고 해도 길바닥 인생으로 돌아갈 뿐인데.”

“나라면 길바닥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줄 수 있는데.”


그 얘기에 유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믿을 수는 없는 말이었지만 확실한 사실은 있었다.

그의 지위와 재력과 능력이면 가능하다는 것을.

하지만 유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현재 황궁의 분위기는 몹시 어수선하다. 폐하의 병세도 좋지 않을뿐더러 황제파의 귀족들도 의문의 사고를 당하며 사라지고 있지. 게다가 기사단도 파가 갈리고 있어. 이 와중에 폐하의 측근 중 하나인 나를 암살하러 왔다? 안 봐도 뻔하지. 그러나 증거가 없다. 너희 말고는 말이야.”

“그것을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거짓을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순간 한없이 차갑고 진지하던 표정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늙은이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낭만적인 데다 오글거리지만···. 너와 검을 맞대고 얘기를 하며 네놈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단다. 잘못 느낀 것이라면 아직 나는 부족한 거겠지. 물론 내가 이 방을 나선 순간 따로 조치는 취하겠지만 말이야.”

“겨우 그런 이유로?”

“아이들을 고문하기에는 좀 그런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 있겠느냐. 그냥 내가 본 너를 믿을 뿐이고 그 재능에 욕심이 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살려주고 치료해줬지.”


유리는 맥이 빠지며 실없이 웃고 말았다.


“재능 있는 사람을 그렇게 좋아한다더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네.”

“저기 뒤에서 문이나 지키고 있는 놈도 뒷세계에서 행동하다가 내 따뜻한 손길로 개과천선한 놈이지. 나는 재능만 있으면 웬만해선 등용한다. 물론 죄에 대한 값은 달게 받겠지만.”


그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이 손해를 볼만한 것은 없다고 판단한 유리가 입을 열었다.


“머더러즈.”

“사실이냐.”

“이런 것 가지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롬의 얼굴은 삽시간에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나도 이 이름이 당신들한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아.”

“장소는.”


끓어오르는 롬의 살기에 유리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황제의 동생인 루이의 별장 지하.”

“내가 죽었을 경우 조직의 다음 타겟은.”

“몰라. 나 같은 놈한테 정보를 가르쳐 줄 리가 없지. 애초에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임무에 당신한테 보낸 것부터 이해가 안 가는데. 그래도 목적은 알아.”

“뭐지, 그 목적이란 게.”

“현 황제를 포함한 황제파의 제거.”


유리는 점점 무거워지는 공기를 버티기가 힘들었다.

힘들어하는 그를 보고서야 롬은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분명 루이만이 죄인이 아니겠지”

“3기사단장 크라이 마기나스. 조직의 부 마스터야.”


롬은 머릿속으로 둘의 이름을 되뇌었다.


“고맙구나.”

“묻는 말에만 대답했을 뿐이야. 그러면 나한테는 어떤 벌을 줄 거지?”

“기사단에 들어와 제국을 위해 일을 하게 될 거다.”

“내가?”


롬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추천서 한 장이면 문제없이 통과될 거다.”

“그건 그렇겠지만.”

“그럼 당분간 여기서 지내고 앞으로는 나를 스승으로 여기려무나. 이름이.”

“스승?”


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너는 나한테 혹독하게 훈련을 받을 테니까.”

“감당 가능한 거야?”

“가능하니까 데려왔지. 그리고 아까 말하지 않았나, 재능이 아깝다고 말이야.”


유리는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조용히 꺼냈다.


“유리.”

“그럼 유리 쉬려무나. 그것보다 네 친구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건 차차 얘기하자고.”

“먼저 예의부터 가르쳐야겠군.”


유리는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이상한 사람이네.’


유리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미소를 바라보며 롬은 방을 나섰다.

유리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나, 살아있구나. 게다가 나 같은 놈한테 제국을 위해서 일하라니.’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밝은 미소가 유리의 입가에 걸려있었다.

물론 유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유리는 길베르트와 같이 롬의 사택에서 지내게 됐다.


“좋다.”

“그러게.”


덕분에 둘은 13년의 인생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평범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롬은 아니었다.


***


“머더러즈의 체포와 사살을 허한다. 그리고 둘은 내 앞에 끌고 오도록 하라.”

““예, 폐하!””


명을 받은 총 단장과 롬은 기사단을 이끌고 조직을 향해 나아갔다.

탈출을 시도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수배령과 현상금을 걸어 빠르게 조치를 취했다.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보고를 받고 이틀 동안의 수색 끝에 총단장과 롬은 둘을 체포해 황제 앞에 끌고 갔다.

분노, 상실감, 배신감.

황제는 이루어 말하지 못할 감정에 휩싸였다.


“국가전복죄를 일삼은 둘과 일가족 전체 그리고 측근들에게 사형을 내린다.”


그 일 이후로 병세가 좋지 않던 황제의 몸은 더욱 악화됐다.


“1기사단장. 이제부터 새로운 총기사단장으로 기사단을 이끌고 제국을 보호할 것을 명한다.”


그것을 끝으로 황제는 악화된 병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46의 나이로 서거했다.

비어버리게 된 황좌에는 아스 황태자가 앉게 되었다.


“임명식을 거행할 상황은 아니니 일단 부단장들을 단장 대리로 세우도록 하지.”


반년 후 기사단의 체계나 황궁의 상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며 새로운 단원들의 입단식이 진행되었다.

그곳에는 유리도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기사단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롬은 새로 입단한 단원들과 차례로 악수를 했고 이윽고 유리의 앞에 섰다.


“기사단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수석 기사라니 자랑스럽구나.”

“다 스승님 덕분입니다.”


처음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유리의 행동과 경지에 롬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입단식을 진행하지.”


그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우레와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너희들은 기사가 되는 과정들을 모두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서게 됐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기사로서의 맹세를 시작하겠다. 수석 기사는 앞으로.”


이전의 삶.

앞으로의 삶.

두 가지의 삶이 떠올랐지만, 앞으로의 삶만을 생각하며 유리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너는 제국의 기사로써 제국에 충성하고 제국민을 위해 그 힘을 다 쓸 것인가!”

“맹세합니다.”

“너는 제국의 검으로써 제국이 막힘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그 검을 휘두르겠는가!”

“맹세합니다.”

“너는 제국의 한 축으로서 제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 힘을 쏟아붓겠는가!”

“맹세합니다.”

“맹세와 함께 이들 모두 기사가 된 것을 제국 기사단 총기사단장 롬 하루스의 이름 아래 선언한다.”


그 말을 끝으로 롬은 한 자루의 검을 하사했다.

유리는 황궁이 있는 방향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입단식에 참가한 기사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정말 축하한다, 유리 리버스.”

“리버스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스승님?”

“축하 선물이다. 내 지위를 어느 정도 이용했지. 리버스는 이제 너의 성이 될 것이고 다시 태어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그 성격도 좀 죽이려무나.”


‘리버스.’


마음속으로 자신의 성을 되뇌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앞으로 공적인 자리에서는 총단장님이라 부르거라.”

“예, 총단장님.”


둘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입단식은 신기루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앞에는 롬 대신에 검은색의 장발과 같은 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남자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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