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주 - 1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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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교 소공자.
정파인이 흔히 부르길 마교라 하고, 당사자들이 칭하길 신교로 통칭하는 그곳은 명교와 배화교, 혈교, 밀교의 사대 세력이 통합된 곳이었다.
교주는 각 교에서 추천해온 네 명의 기재를 제자로 받아들여 공정히 무공을 사사하며 그중 가장 뛰어난 자가 다음 대 지존의 지위를 잇게 하였다.
신교의 네 세력은 자신의 교에서 교주를 배출하기 위해 100인의 기재들을 모아 어릴 때부터 무공을 수련케 하며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이를 교주의 제자로 추천하였다.
대표로 뽑힌 1인을 제외한 나머지의 99인은 소공자를 따르는 친위대가 되었는데 명교의 백룡대, 배화교의 흑룡대, 혈교의 적룡대, 밀교의 청룡대가 그것이었다.
교주 아래 동등한 지위를 가진 소공자들은 지존이 되기 위한 그 경쟁에서 꼭 공정하게만 임하는 것은 아닌지라 신교의 역사이래 내분을 겪는 일도 더러 있었다.
십만 신교도들이 운집하고 있다는 천산의 너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를 백인의 기마대가 달리고 있었다.
백 명의 인원의 복색이나 무장이 하나같이 똑같았는데 검은 무복에 검은 망토를 차고 오른손엔 긴 마상 창을, 고삐를 쥔 왼손목에는 작은 방패를 찼다.
그뿐만이 아니라 허리춤에는 베기 좋은 짧은 도를 차고 있었고, 머리 뒤로 삐죽이 솟아오른 검 손잡이로 보아 장검 또한 등에 멘 듯 보였다.
이들의 복색만 보자면 잘 훈련된 군부의 기마대와 엇비슷했으나 실상은 배화교 출신의 흑룡대가 분명했다.
배화교는 주술에는 가히 최고라 할만했지만, 상대적으로 절정 무공이라 할만한 것들이 적었다.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하여 마치 군부의 부대와 같이 발전하여 전투에 특화되었다.
흑룡대는 그 개개인의 무공이 다른 대보다 약할지는 몰라도 체계적인 훈련과 마치 한몸인 듯 움직이는 이들의 기마술에 당할자가 없어 100인이 함께 뭉친 흑룡대는 가히 무적이라 명성이 자자했다.
이들이 흑룡대라면 가장 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사내는 흑룡대주의 지위를 겸하면서 교주의 두 번째 제자인 소군악이 분명했다.
올해 스물여섯의 소군악은 그 무공성취에서 명교 출신의 첫째 제자 파극무보다 한 수 뒤처진다. 평가받으나 배화교의 장기인 주술에 능통하여 그 부족한 부분을 상쇄하여 둘이 비무를 벌이면 삼백 합이 지나도 무승부로 끝나기 일쑤였다.
“빌어먹을.”
말을 달리는 소군악의 표정은 악귀와 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명교의 다음 대 교주를 정하는 비무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비무로 모두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기면 신교의 교주가 되어 지존의 지위를 누릴 것이며 지게 되면 배화교로 돌아가 배화교주의 진전을 잇게 된다.
비무를 사흘 앞둔 이때에 소군악은 신교를 떠나 황무지를 달리고 있었다.
“비열한 새끼!”
샛별을 보고 일어나 무공을 연마하며 오후부터 주술을 연구하고 해가 지면 잠이 들 때까지 서책을 읽는다. 다른 제자들이 치열하게 무공수련에 애를 쓰는 데 반해 소군악은 무공수련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아 옥면서생(玉面書生)이라 불리는 소군악이다.
그런 그가 욕을 하고 있었다.
교주의 제자가 되어 지난 15년간 한결같이 살아온 그다. 모든 것을 억제하고, 오로지 무공과 주술만 파고들었다. 그렇게 살아온 목표는 오직 하나 지존이 되어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 유일한 방법은 사흘 뒤 비무대회에서 이겨 자신의 가진 능력을 입증하는 것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경쟁자가 그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정도 개새끼!”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밀교출신의 사제자 이정도의 계략에 놀아나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덮어 써 버렸다. 지난 15년간 소군악과 파극무에 한 번도 무공대련에서 이겨보지 못한 이정도는 일찌감치 경쟁구도에서 밀려났다.
신교 인들은 파극무와 소군악 중에 다음 대 지존이 탄생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이정도의 계략에 말려 일이 엉뚱하게 되어버렸다.
“사형…….”
악귀 같던 소군악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자신의 맞수자 동반자였던 파극무. 그와의 승부에서 졌어도 소군악은 흔쾌히 파극무를 지존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파극무는 죽었다. 그리고 그 누명을 자신이 뒤집어썼다. 파극무에 한수 밀린다고 평가받는 소군악이 비무를 앞두고 지존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사형을 죽였다는 것이다.
신교의 고수들이 지금 소군악을 쫓고 있었다.
“빌어먹을.”
소군악은 결심한 듯 말고삐를 낚아챘다.
히이이이잉!
놀란말이 앞발을 치켜들며 날뛰다 멈춰 섰다. 놀라운 것은 간발의 차이로 그를 따르던 흑룡대원들의 행동이었다.
히이이이잉!
선두에서 달리던 소군악이 멈추며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 흑룡대원들은 신기에 가까운 마상술로 말을 멈춰세웠다.
“대주! 달리셔야 합니다.”
부대주 등평이었다.
“어디로 간단 말이더냐?”
“일단은 몸을 피하셔야 하옵니다. 살아계셔야 누명도 벗을 것이 아니 옵니까?”
소군악은 고개를 돌렸다. 강호가 아무리 드넓다 하여도 신교인들이 마음먹고 찾아내자면 못 찾아낼 것이 없다. 소군악과 등평이 실랑이 하는 사이 신교의 추격자들이 꼬리를 밟았다.
등평이 창을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장로원 열화귀(熱火鬼) 고진이 직접 오다니!”
등평의 놀람은 당연하였다. 장로원은 신교의 네 단체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를 유지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고수들로 이루어진 장로원은 교주의 명령만을 듣는다. 고진이 나타났음은 교주가 소군악의 죄를 인정했음을 의미했다.
“것 보아라. 내게 돌아갈 곳은 없다.”
소군악은 담담히 말했다. 스승께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나섰으니 더는 누명을 벗을 길이 없다. 자신의 누명을 벗고자 한다면 교주의 권위에 도전해 신교를 뒤집어 엎어야 한다.
흑룡대원만을 이끌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저희가 막겠습니다. 어서 비고로 서두르소서.”
비고는 배화교의 비상시를 대비한 최후 보루였다. 배화교의 무공들과 비전 주술이 보관되어있는 보물고이자 은신처였다.
드넓은 황무지의 어느 오아시스 지하에 만들어져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나 그 진실된 위치를 아는자는 배화교 내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고진이 이끌고 온 오백의 추격대가 하나둘 말에서 내려 반원을 그리며 포위망을 형성하려 했다.
“이 공자! 신교로 돌아갑시다. 이 무슨 추태요?”
“당신도 내가 사형을 죽였다 생각하시오?”
고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진실이야 교주님께서 가려 주실 터.”
등평이 소리를 낮춰 소군악을 재촉했다.
“어서 가십시오. 대주. 더 늦으면 포위를 뚫기 어렵습니다.”
고진이 이끌고 온 오백의 고수들 뒤로 또다시 천여 명의 무사들이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쫓아오고 있었다. 이만한 무리를 이끌고 온 것은 흑룡대를 궤멸시킬 작정이었다.
소군악은 등평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억울한 누명을 썼다 하나 어찌 내 형제들의 피로 오명을 씻겠는가?”
“대주!”
등평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소군악도 등평도, 나머지 흑룡대원들도 모두 처음에는 다르지 않았다.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함께한 그들은 형제나 다름없었다. 소군악이 교주의 제자가 되며 상·하의 관계가 나뉘었을 뿐.
“흑룡대는 들어라!”
“명!”
“모두 신교로 돌아간다!”
“존명!”
복창하는 흑룡대원들의 어깨가 떨렸다. 추격대를 이끌고 온 고진이 싱겁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격이 유약하다더니 교주의 그릇으로 약하구나.’
신교로 돌아가면 소군악은 죽는다. 소군악 그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돌아가고자 함은 흑룡대원들을 살리고자 함일 것이다.
“잘 생각하셨소. 이 공자에게 억울함이 있다면 교주께서도 풀어 주실겝니다.”
틀린 말이다. 이미 교주는 이정도를 다음 대 후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교주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정도였다. 명교의 교주가 자신의 자식을 몰래 밀교로 보내 키우게 한 것이다. 고진을 비롯한 몇몇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정도가 태어나던 24년 전 이미 다음 대 교주는 정해져 있었다.
“무장을 해제토록 하시오!”
고진의 말에 소군악이 뒤를 돌아봤다. 기마 위에서 당당한 백인의 흑룡대. 그들은 침묵으로 울고 있었다. 꼭 감은 눈꺼풀이, 꽉 깨문 입술이 떨리는 주먹이 울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삭풍이 이는 겨울인지라 눈이 내리는 것이 무슨 별일이겠느냐마는 신기하게도 눈은 흑룡대의 주위로만 내리고 있었다.
고진 처음 보는 신기 조화에 두 눈을 부릅떴다.
“이 무슨 조화인가?”
고진은 순간 눈매를 번뜩였다. 사술과 주술에 능한 소군악이 무슨 수를 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리둥절 하기는 소군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휘이이이잉! 지이이이잉!
눈발이 더욱 거세지더니 이윽고 하늘에서 빛 무리가 떨어져 내렸다.
쿠아아아앙!
“으으으윽.”
흑룡대를 중심으로 광풍이 몰아쳐 고진은 앞섭으로 눈을 가리고는 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천근추의 수법을 발휘해 지면에 발을 박아넣었다.
바람을 타고 눈발이 휘날렸다. 거센 눈보라에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이게 대체!”
주술이 어느 경지에까지 올라야 자연의 이치까지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인가?
“허억!”
바람이 잦아들고 눈이 그쳐 눈을 뜬 고진은 경악했다. 흑룡대가 자리했던 땅은 온통 얼어붙어 있었고 흑룡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네발에 두 쌍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백룡이 한 마리 나타나 있었다.
“어어억.”
고진은 너무 놀라 우왕좌왕하는 수하들을 수습할 겨를도 없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백룡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일수도 없다. 그 눈빛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후우우우욱. 콰콰콰콰콰!
백룡의 입이 벌어지며 눈보라를 토해냈다.
이정도가 교주의 직위에 오르면 장로원의 호법 자리를 약속받은 고진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쿠오오오오오!
백룡의 포효가 황무지를 떨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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