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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님의 서재입니다.

바질 리브스 홀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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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작품등록일 :
2021.07.3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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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23:3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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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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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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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독사과를 빼앗다 -4-

DUMMY

이후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던 두 사람에게 한 남자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데이지 씨!”


그를 본 데이지도 손을 흔들었다. 가벼운 뜀박질로 데이지에게 다가간 사람은 조지였다. 여전히 목에 카메라를 메고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에 몇 가지 도구를 담아 들고 온 조지는 옆에 있는 리사에게도 인사했다.


“안녕. 우리 어제 만났지?”


리사는 여전히 조금 경계하는 눈치였다.


“이쪽은 조지야. 연을 고쳐주러 왔어.”


데이지의 말에 리사는 경계심을 조금 푼 듯 했다. 고개를 속이며 인사를 하자 그들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그래서 망가진 연은 어딨죠?”


리사가 연을 들어 보여줬다. 비닐로 만들어진 그것은 가로 살이 거의 부러져 있었고 꼬리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많이 해졌네요.”

“못 고칠 정도야?”

“그건 아니에요. 살 하나만 바꾸고 스카치테이프로 메우면 될 것 같아요.”


조지는 우선 장바구니 안에서 대나무 살을 꺼냈다.


“우리 배에 대나무가 있었어?”

“창고에 있던 안 쓰는 대나무 발에서 뽑아왔어요.”

“그랬구나.”


조지는 대나무 살을 대조해보고 니퍼로 잘라 길이를 맞췄다. 커터 칼로 두께를 맞추고 사포로 다듬었다. 얼추 쓸만해 보이는 가오리연의 살이 만들어지자 부러진 것과 교체하고 고정했다. 구멍이 난 것을 제외하면 그럴듯해 보였다. 바꿔말하면 구멍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조지는 테이프를 꺼내 구멍을 메울 정도로만 잘라 붙였다. 연은 전처럼 팽팽해져 그 위용을 되찾았다.


“오. 제법인데?”


데이지의 칭찬에 조지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고친 연을 리사에게 주자 리사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잘 됐다. 이제 다시 날려볼까?”


고개를 끄덕인 리사는 다시 연을 잡았다. 어제 데이지가 알려준 대로 연을 날리기 위해 고군분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조지가 말했다.


“부탁받아서 한 일이긴 하지만 왠지 뿌듯한데요?”

“그렇지?”

“저 꼬마랑 만나려고 밖에 나온 거였어요?”

“그런 셈이 됐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데이지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몰라.”


달리는 리사를 보던 조지가 말했다.


“굉장히 의외네요.”

“뭐가?”

“데이지 씨가 애들하고 놀아주는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데이지는 다시 침묵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지.”


두 사람이 보는 가운데 리사의 연이 날아올랐다. 데이지에게 배운 대로 얼른 얼레를 조종하며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잠시 후 올라가는 듯싶었던 연은 그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날아올랐었다. 저 멀리에 있던 리사가 데이지를 향해 소리쳤다.


“성공했었어요!”

“그래, 나도 봤어! 대단한데?”

“계속할 거예요!”

“그래! 분명 더 오래 날 수 있을 거야!”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리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데이지 씨가 왜 다시 왔는지 알 것 같네요.”


조지의 물음에 데이지가 의문을 표했다.


“무슨 소리야?”

“보고 있기만 해도 편안하잖아요. 이런 풍경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맞는 말이다. 험한 사람들을 만나고 총알을 나누고 거친 분위기 속에서 사는 사람은 이런 풍경을 쉽게 볼 수 없다. 작은 생명이 오롯이 순수한 한 목적만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가까워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데이지가 생각했다. 그것뿐일까? 그걸로 충분하게 지금 내가 이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어제 어떤 생각을 했지?


잘만 달리던 리사가 발을 헛디뎠는지 넘어졌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리사에게 달려갔다. 그들이 도착할 때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괜찮아?”


데이지의 물음에 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린 몸이 걱정되었던 데이지는 리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치마를 들쳐 무릎을 봤다.


“이건······.”


생각보다 많이 까지진 않았다. 그 보다 걱정해야 했던 건 무릎 위부터 보이는 푸른 멍 자국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 데이지는 리사에게 물었다.


“잠깐 팔 좀 걷어볼래?”


리사는 팔을 숨기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본능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경계심을 느끼는 리사의 팔을 걷은 데이지는 팔꿈치 위로 몇 개의 멍 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이지 씨, 이건 혹시······.”


조지의 말에 서로를 본 두 사람은 보편적으로 유추 가능한 의심을 하게 되었다. 데이지가 최대한 상냥하게 리사에게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야?”


리사는 입을 꾹 다물다가 말했다.


“넘어졌어요.”


전형적인 답변에 조지는 작게 탄식했다. 데이지는 일단 알았다며 대답했지만 리사는 괜찮지 않은 것 같았다. 연을 껴안은 채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리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연을 껴안았다. 데이지가 그녀를 붙잡았다.


“있잖아, 같이 가지 않을래? 데려다줄게.”


조지는 데이지의 말이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무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던 거겠지. 그런 의무감은 확실히 데이지와는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리사는 어쩔 줄 몰랐지만 데이지는 적극적으로 리사를 설득했다. 다친 상태로 보내기엔 너무 걱정된다며 리사를 자극하지 않을 말들을 골라 그녀에게 말했다. 결국 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와 조지는 그녀의 옆에 섰다.


주상 복합 단지 쪽이 아닌 낮은 산이 보이는 쪽으로 리사는 걷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자 개발과는 거리가 먼 낡은 집들이 두루 모여있는 곳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재개발이 승인 안 된 동네라고 두 사람은 추측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 데이지와 조지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리사는 아까보다 확연히 말수가 줄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두 사람은 결국 그나마 이 정도라도 대화에 응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리사가 도착을 선언했다. 약간 불편했던 그 기조가 끝나는 때였다.


“여기 까지면 돼요.”


길가에서 그렇게 말한 리사에게 데이지가 되물었다.


“여기까지? 아직 길가잖아.”

“괜찮아요. 집까지 얼마 안 걸리니까요.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인사를 하고 길모퉁이를 향해 달렸다. 이러다 또 넘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조지는 돌아서다 말고 아직 멈춰있는 데이지를 불렀다.


“뭐 하세요?”

“잠깐만. 확인해볼 게 있어.”

“왜 그러는데요?”


데이지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만약 짐작하고 있는 일이 사실이라면 지금 일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 그래서 기다리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앞을 보고 모퉁이로 걸어갔다. 조지는 그런 데이지에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일단 주민들이 보기에 수상해 보일 수도 있을까 봐 데이지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데이지 씨.”


작게 자신을 부르는 조지에게 데이지가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대어 보였다. 결국 조지는 데이지와 함께 모퉁이 길을 감시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조용한데요?”


조지의 말대로 집들이 널린 길가는 고요했다. 데이지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수 분이 지나고 나서 데이지는 길모퉁이에서 멀어졌다.


“가자.”


두 사람은 바질 리브스 호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던 바질 리브스 호의 선원들은 평소랑 다른 분위기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평소라고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으나 밥상머리가 조용한 이유가 데이지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콜린은 그것을 눈치채고 데이지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콜린이 데이지를 걱정하다니. 조지는 제법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사를 데려다준다고 했던 데이지에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며 음식을 씹지 못했다.


“남들에게 말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말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알아?”

“무슨 소리를 하는지 감도 안 잡히니까 제대로 말해주지, 그래.”


데이지는 긴 한숨을 쉬로는 조지를 바라봤다.


“우리 조지가 날 대신해서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건 안 돼요.”


조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 뭐야. 왜 안 된다는 건데?”

“물론 저도 사정을 알고 있으니까 말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 가장 심란한 건 데이지 씨 아닌가요? 사건을 해결하고 싶으신 거죠? 제가 도와야 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도울 거예요. 하지만 데이지 씨의 감정을 대신 토로해주는 건 하고 싶지 않아요.”


조지는 데이지의 헛웃음이 수긍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데이지가 말을 시작했다.


“어제 기억나? 어떤 여자애가 연 날리는 걸 도와줬다고 했던 거.”

“그래.”


데이지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그래서?”


콜린의 물음에 데이지가 반응했다.


“응?”

“응이 아니라 말을 시작했으면 다 해야지.”

“아, 미안. 이런 얘길 해본 적이 있어야지. 머릿속으로 정리 좀 할게.”


말을 마친 데이지는 한동안 생각을 하는 듯했다. 콜린과 조지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어제 생각이 나서 오늘 같은 장소에 가봤거든. 그렇게 만났는데 걔 연이 부러져 있더라고. 그래서 조지를 불러서 연을 고쳐줬어.”


콜린이 조지를 봤다. 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동안 걔가 연 날리는 연습을 했어. 얼마간 뛰어다니다가 넘어진 거야. 놀라서 다가갔는데 몸을 보니까 이곳저곳에 멍이 있더라고.”


그 말을 들은 콜린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데이지는 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학대를 받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데이지의 진심 어린 말이 끝났다. 잠자코 듣고 있던 콜린이 데이지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애를 돕고 싶다는 거야?”

“그런 거지.”

“왜?”

“왜냐니?”

“오랫동안 봐 온 것도 아니고 어제 막 만난 애가 학대를 받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받는 것 같으니 도와주고 싶다고? 진심으로?”


데이지의 말문이 막혔다. 필사적으로 리사를 돕고 싶은 이유와 그 근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같은 여자끼리의 의리일까? 친구가 없다는 동질감과 동정심에서? 설마 인류애는 아니겠지.


고민을 거듭하던 데이지는 그것이 별로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아이가 가정에서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 동기가 중요한 것 같진 않아.”


약간 고압적인 말투였기 때문에 조지는 싸움이 나나 조마조마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긍정했다.


“그렇긴 해.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해결하면서도 애나 어른이나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낼 거야. 물론 가정폭력이라면 애초에 어른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건 알 바 아니지만 말이야.”

“그 점엔 나도 동감이야.”


두 사람은 피식거리며 웃었다.


“제 생각인데요, 리사네 부모님은 주말에도 일을 하시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낮에 없던 거고요. 저녁 시간이면 있을지도 몰라요.”


조지의 말에 데이지가 수긍했다.


“그렇네. 확실히 일리가 있어.”


머리를 싸맨 데이지는 고개를 올려 콜린을 쳐다봤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콜린은 씹던 음식을 삼키고 말했다.


“정말 일을 해결하고 싶다는 가정하에서 하는 말이야. 집을 불시에 찾아가든 어떻게든 확인을 해서 사실이라면 경찰에 신고해야지.”


데이지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다 먹고 정리를 마친 데이지는 방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보다 짙게 피로가 느껴졌다. 차라리 빨리 자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었다. 결국 눈을 뜨고 보이지 않는 천장을 바라봤다. 리사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 생각해보니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여태까지 일어났던 문제들은 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전과 달라졌다. 방식이 달라졌고 적응을 해야 했다. 그런 일은 언제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보편적인 일이다. 데이지는 마음을 편히 먹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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