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사는 재벌 3세

새로운 시작(2)

본 글에 등장하는 구단, 인물 등은 현실과는 상관 없는 허구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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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래요? 무슨 매장 점검이야, 매장 점검은!”

단장실을 나오자마자 조용했던 입을 열기 시작한 현수가 한껏 불만을 내비쳤다.

“뭐겠어, 일하겠다는 거잖아.”

“매장 점검보다는 선수단 전력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 아니에요? 괜히 잘 돌아가는 매장은 왜 건드리려고 그런대요?”

“너 정말 그렇게 생각 하냐?”

오현태는 현수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아무리 자신이 현수를 아낀다지만 지금 말은 거슬렸다.

사실 청조의 야구장에 개선을 요구하며 가장 많은 불만이 제기되는 게 다양한 먹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전의 단장들은 그런 팬들의 요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시후는 다른 모양이었다.

가장 먼저 팬들의 개선사항에 손을 데려는 걸 보면 말이다.

‘이번엔 혹시 다르려나?’

이전의 단장들은 본사에서 잠시 거쳐 가는 단계로 여길 정도로 야구단에 관심이 없었다. 그랬기에 팬들의 요구사항도 성적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구단 내부에서는 매년 새로운 선수단의 육성을 요구하고, 2군과 3군 시설을 정비해야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이 역시 개선되지 않았다.

청월그룹에서 청조 야구단의 가치는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시후는 또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드는 오현태였다.

아무래도 기존의 단장들과 다르게 시후의 위치는 특별했다.

거기다 한 때 야구선수를 꿈꾸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면?

잠시나마 희망을 꿈꾸던 오현태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시후에 대한 언론보도를 떠올리면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지나치게 적대적인 언론의 태도가 의아하긴 했지만 아예 상관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오현태는 제발 올해는 무사히 시즌을 별 탈 없이 완주하길 소망했다.

매년 감독을 바꾸는 것도 이젠 정말 힘든 일이었으니까.

오현태가 현수와 윤중을 데리고 나간 단장실은 조용했다.

강직한은 평소에도 말이 없기로 유명했고, 시후 역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그런 시후를 살피는 강직한의 눈빛은 여전히 아리송했다.

‘조금은 변하시려는 건가?’

모두가 포기했지만 강직한은 여전히 시후가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야구선수가 되겠다며 열심히 도전하던 시후의 모습은 젊은 날의 윤회장을 꼭 닮았었다.

주변의 반대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강직한은 진심으로 시후를 아꼈고, 그의 도전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런 시후가 빛을 잃고 망가지기 시작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서였다.

버스 전복 사고.

야구선수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시후는 재벌로서 자신을 버렸다. 오직 야구만으로 평가 받기를 원한다면서 남들처럼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 날도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있던 시후는 눈길에 버스가 전복되면서 어깨에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다시는 야구공을 잡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시후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강직한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이후로 시후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고 시큰둥했다. 주변의 냉소와 자신을 향한 조롱을 참지 못했다.

전보다 예민해졌고, 까칠해진 시후의 곁에는 이제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직한은 여전히 시후가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

단지, 시후가 이전처럼 열정을 쏟을 곳이 없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다고 믿었다.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자리만 만들어지면 이전의 그로 돌아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윤회장이 장난처럼 꺼낸 말에 강직한이 나섰다.

사람들은 윤회장의 부탁으로 강직한이 시후의 곁에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윤회장이 시후를 구단의 단장으로 임명하게 된 것도 강직한의 노력이 있었다.

아무리 윤회장이 야구단 성적에 관심이 없다지만 시후가 그 자리에 앉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나선 건 강직한이 생전에 이런 적이 없었던 탓이었다.

윤회장은 강직한이 처음으로 하는 부탁에 기꺼이 비난을 감수하며 시후를 단장으로 임명했다.

전폭적인 지원은 힘들겠다는 말을 했으나 강직학은 신경 쓰지 않았다.

성적보다는 시후가 변하고자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으니까.

강직한이 보기에 윤회장을 가장 많이 닮은 건 시후였다.

하지만 그런 강직한의 기대와 다르게 시후는 연일 실망스런 행보를 이어갔다.

무리한 취임식부터 시작해서 야구단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래서 강직한도 내심 걱정이 앞섰지만 오늘의 시후를 보니 나름 괜찮을 것도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저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직한은 시후의 부름에 살짝 웃었다.

“아무것도요. 그보다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시후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보는 편한 미소에 강직한의 입가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맺혔다.

“갑자기 적극적이신 이유가 뭡니까? 혹시라도 다른 마음이 있으신 거면 지금이라도 솔직해주세요.”

웃는 얼굴과 다르게 강작한의 말투는 무거웠다.

사실 오늘 아침부터 저 말을 하고 싶었을 강직한의 마음을 시후는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마음이 쓰렸다.

지금 생각하면 강직한은 늘 자신을 응원하고 믿어주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다.

윤회장의 뒤를 따라서 그가 죽었다고 했을 때, 시후는 야구를 잃어버린 그 날처럼 커다란 상실감을 맛봐야만 했다.

세상에 유일하게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준 사람의 부재.

그것이 얼마나 큰 상실인지를 시후는 그 날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땐 너무 늦은 후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만큼은 자신을 믿는 강직한에게 적어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안목이, 그의 기대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까지 맘대로 살 순 없으니까요. 어차피 그룹에서 일하게 될 거면, 차라리 야구가 내게 맞겠다 싶어서요. 경영 쪽은 영 재능이 없으니까요.”

자신이 아무리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시후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자신의 그릇은 청월그룹 전체를 이끌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야구는 달랐다.

해온 게 있었고, 미련이 남았기에 아낌없이 남은 열정을 퍼부을 생각이었다.

자신의 다짐으로 인해서 따라오는 주변의 평가 따위는 이제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의 진심 따위는 궁금해하지도 않을 테니까.

“야구단을 잘 이끄시면 분명 좋은 기회가 오실 겁니다.”

그 말에 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굳이 매점부터 확인하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정 마음에 들지 않는 가게는 계약 기간도 끝났으니 내보내면 될 텐데요.”

“그냥 궁금해서요. 대체 얼마나 형편없으면 커뮤니티를 몇 년 동안 불태울 수 있는지. 그 수준이 몹시 궁금해졌거든요.”

시후의 대답에 강직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처럼 매장에 대한 불평불만은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청조 야구장의 매점은 총 다섯 개였다.

다른 야구장에 비해서 규모가 작은 편이라 먹을거리 역시 마땅치가 않았다.

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가게는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이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특히나 핫도그 가게 주인인 강덕만은 오랜 시간 청주 구장에서 장사를 해온 인물이었지만 무조건 현금으로 받고, 가격에 비해서 맛과 질이 떨어진다는 평이었다.

‘그 맛없는 핫도그가 5천원이라니!’

아무리 물가가 올랐다지만 긴 소시지 하나와 양파, 양배추로만 된 핫도그는 가격에 비해서 형편없었다.

‘가장 먼저 구장 시설부터 정리해야지. 사람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게 없으면 결국 지갑을 열지 않으니까.’

가장 큰 불만인 현금결제도 바꿀 생각이었다.

요새 누가 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니나, 전부 카드나 모바일로 결제하지.

시대에 뒤떨어지면서 변할 생각이 없는 이들을 끝까지 끌고 갈 마음이 없는 시후였다.

‘특히 강덕만은 더욱 안 돼!’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 강덕만은 큰 사고 하나를 치게 된다.

매년 받는 위생평가에서 최악의 평가와 함께 질 나쁜 재료를 시작으로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구단의 가치가 크게 깎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도 누가 시킨 거겠지만.’

시후조차 강덕만의 뒤에 누가 있는 건지는 몰랐다. 그러니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강덕만을 미리 내 칠 생각이었다.

‘뭐, 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 있다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만약 강덕만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강덕만의 뒤에 누가 있다는 심증이 확실해지는 순간이라고 시후는 생각했다.

그의 성격에 자신의 제안을 듣자마자 화를 내는 건 물론이고 당장 가게를 정리할 성격이었으니까.

‘어디 어떻게 나오나 한 번 볼까?’

과연 강덕만은 어떻게 나올까.

그를 중심으로 뭉친 다른 이들의 태도 역시 시후는 자못 궁금했다.

*

“흐음.”

시후는 오현태와 현수, 윤중이 가져온 음식들을 골똘히 바라봤다.

“오실장님.”

오현태는 시후의 부름에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소문과 다르게 시후에게는 묘하게 사람을 긴장시키는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제가 본 인터넷 사진과는 좀 다르네요?”

“....”

오현태는 딱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봐도 강덕만을 비롯해서 매점 주인들이 음식에 신경을 쓴 태가 팍팍 났다.

찌릿!

오현태의 눈빛이 현수를 향했다.

자신 있게 강덕만에게 가겠다고 설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멍청하게도 또 당하고 말았다.

평소 남 험담을 하기 좋아하고, 뒤에서는 이런 저런 얘기를 잘하는 현수였지만 막상 당사자 앞에서는 자기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연히 성격이 드세기로 소문난 강덕만의 입김에 홀랑 넘어갔을 게 터였다.

“죄송합니다.”

오현태는 변명 대신에 자신의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했다.

현수의 저런 성격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알면서도 강덕만에게 보낸 건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시후는 자신의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오현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현태의 저런 점은 마음에 들었다.

청조 구단이 그나마 지금의 이름을 유지하는 건 전부 그의 공이 컸다.

그런 오현태가 5년 후 다른 구단으로 떠나면서 청조는 진정한 의미의 몰락기를 겪었다.

시후는 되도록 오현태와는 잘 지내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청조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큰 그였으니 자신의 계획이 그의 마음에 든다면 누구보다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다시 가져오세요. 전부 다요.”

시후의 말에 오현태는 현수와 윤중을 데리고 곧장 단장실을 나섰다.

오현태가 가져온 닭강정과 후라이드 치킨은 그나마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안 드십니까?”

세 사람이 가져온 음식을 전부 밀어낸 시후의 모습을 보며 강직한이 물었다.

“굳이 먹어볼 필요가 있을까요?”

끄덕.

시후의 말에 강직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음식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이 가격에 이런 제품이면 팬들이 화가 나도 할 말이 없겠죠?”

“그렇군요.”

“올해까지 계약이라고 했으니, 연장은 없는 걸로 해요.”

시후의 말에 강직한은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윤회장과 자신이 시후를 청조의 구단주이자 단장으로 앉힌 순간부터 보장된 3년의 임기 동안은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시후가 온전히 짊어져야겠지만.

“그리고 차기 감독은 빨리 내정하는 게 좋겠죠?”

“아무래도 현장을 이끄는 건 감독과 코칭스태프니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취임식이 끝나면 곧바로 면담을 진행하도록 할까요?”

그렇게 말하며 강직한은 혹시 몰라서 가져온 서류 가방에서 오현태가 추천한 감독 후보들의 이력서를 꺼냈다.

“그건 넣어두세요.”

하지만 시후는 강직한이 보여주려는 감독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따로 생각해둔 사람이 있거든요.”

시후의 갑작스런 말에 강직한의 표정에 의아한 기색이 어렸다.

“따로요?”

“네.”

시후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자신이 생각한 그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차기 시즌에 나쁘지 않은 성적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도지680층]

건투를

[[탈퇴계정]]

잘 보겠습니다.
ㄲ.ㄹ하게 > 깔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