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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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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40,473
추천수 :
1,192
글자수 :
258,011

작성
24.03.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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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한눈팔지 않겠다 (1)

DUMMY

촬영은 피서객들의 협조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현과 김희성이 실랑이를 벌이는 씬.

한은서가 울며 어디론가 뛰어가고 둘이 그녀를 따라가는 씬.

그녀가 도망치다가 우연히 성태철과 마주치고 그의 별장으로 향하는 씬.

그리고 별장에서 와인과 분위기에 취해 그녀가 성태철과 가볍게 입을 맞추는 씬까지.


아이가 있는 유부녀를 중심으로 전개된 내용이었다.

상식적으로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했다.


‘하긴, 우리 엄마도 욕하면서 드라마를 보시지.’


작품성이 문제였다.

시스템 창에 마이너스가 뜨는 게 환상처럼 아른거렸다.


커피와 샐러드로 점심을 때운 뒤.

하이라이트인 수영복 노출씬을 촬영했다.


아이와 함께 다시 바닷가에 나온 신이슬.

이현과 김준, 최강현도 우연 같은 필연으로 마주친다.


“우리 불편한 감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지.”


김준이 멀리서 아이를 보고 제안한다.


가정적인 아빠, 재미있는 삼촌, 엄마의 멋진 직장 동료.

아이를 포함해 그들 다섯은 모처럼 현실을 잊고 물놀이를 즐긴다.

물에 흠뻑 젖어 배우들의 몸매가 훤히 드러나지만, 시청률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다.


‘오전만 해도 멱살 잡고 싸우지 않았어? 이게 무슨 급전개야?’


내심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건들지 않는 게 대한민국 드라마의 공식 중 하나였다.


뜬금없이 고무보트가 등장한다.

시간당 오천원을 받고 빌려주는 2인승 보트다.


“엄마, 나 배 타고 싶어.”


유치원생 아역이 천연덕스럽게 보챈다.


“파도가 심한데.”

“싫어, 싫어. 배!”

“알았어. 그럼 잠깐만 타자.”


신이슬은 망설이다가 보트에 오른다.


물론 몸매를 드러내는 걸 잊지 않는다.

원래는 불법이지만, 안전 요원의 협조 아래 구명조끼는 안 입는다.


이어서 아이가 보트에 오른 순간.

한은서 각본, 김희성과 성태철 주연의 허술한 연극이 막을 올렸다.


***


이번 씬의 주인공은 한은서와 아역이었다.

촬영 카메라, 구경꾼들의 핸드폰, 기자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둘에게 향했다.


남자 배우들은 수영복 위에 타월을 두른 채 해변에서 대기했다.


‘파도가 생각보다 높은데. 날씨도 안 좋고. 적당히 멈춰야 하는 거 아닌가?’


준호는 멀어지는 보트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별로 안 중요한 씬이었다.

대본대로라면 적당히 노는 폼만 잡고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한은서는 신이 나서 노를 저었고, 어느새 제법 먼 거리까지 나아갔다.


영 께름칙했다.


- ······때때로 강한 북동풍으로 인한 너울성 파도가 예상되는 가운데, 피서객들은 주의하시어······.


오는 길에 들은 일기예보가 떠올랐다.


“보기 좋네.”

“슬슬 준비하시죠.”


김희성과 성태철이 기분 나쁘게 웃으며 수군거렸다.


‘뭘 시작한다는 거야?’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모른 척했다.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선배들은 사람들 앞에서만 그에게 친한 척했다.

특히 그가 주인공이 된 포스터를 찍은 이후, 두 선배의 태도는 눈에 띄게 냉담해졌다.


“컷! 은서 씨, 그만합시다!”


보다 못한 감독이 촬영을 중단한 찰나였다.


“꺄야아!”


한은서의 높은 비명과 함께 보트가 좌우로 기우뚱했다.


‘저거 뭐야?’


처음엔 그녀가 혼자 쇼하는 줄 알았다.


눈 뜨기 힘든 광풍이 불어왔다.

바닷물은 너울성 파도처럼 거칠어져 작고 위태로운 보트를 덮쳤다.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김희성과 성태철은 용수철처럼 뛰쳐나가다가 멈칫했다.


젠장, 파도가 예상보다 높고 거칠었다.

둘은 바다에 몸을 던지려다가 움찔하고 물러났다.


‘어쩐지 기자를 많이 불렀더라니. 이거였어?’


그제야 준호도 그들의 계획을 알아챘다.


촬영 중 조난을 당한 한은서.

이때 김희성과 성태처럼이 '짠' 하고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 드라마가 아닌 실제 상황.

- 김희성과 성태철, 목숨을 걸고 사랑을 구하다.


언론에는 둘의 활약이 대서특필된다.


‘누구나 계획은 그럴듯하지.’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김희성과 성태철의 수영 실력은 개헤엄은 겨우 면한 정도였다.


한은서의 수영 실력도 문제였다.

‘기본은 할 테니까 적당히 구해주는 폼만 잡으면 되겠지.’

라고 두 베테랑은 생각했지만, 그녀는 완전히 맥주병이었다.


구조 요원?

아까 김희성과 성태철이 자신 있게 돌려보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수영부 출신인 둘이 책임지겠다고.


거친 파도가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치는 가운데 수면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수영 좀 하는 다른 스태프들도 나섰지만, 키보다 높은 파도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망설였다.


“으아앙.”


아역 배우는 보트 끝을 움켜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저걸 어째?”

“119! 빨리 누구 좀 불러 봐!”


감독과 스태프들도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


“누가 좀 도와······.”


황 작가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치는 도중이었다.


“비켜!”


뒤에서 들려온 다급한 외침.

준호는 두 선배를 지나친 뒤, 타월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몸을 날렸다.


“어? 강준호다!”

“강준호야! 강준호가 한은서를 구하러 갔어!”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역삼각형의 몸매를 자랑하는 남자 주인공.

사랑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거친 파도를 헤쳐 간다.


대본에도 없는 극적인 연출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었지만, 이 와중에도 작품을 생각하는 게 감독의 본능이었다.


“카메라. 빨리 카메라 돌려!”


정 감독이 헤드셋을 쓰며 소리쳤다.

스태프들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촬영을 재개했다.


돌연 장르가 변했다.

치정에 가까운 삼류 멜로 대신 해양 액션 활극이 펼쳐졌다.


“쟤는 일상이 곧 드라마네. 백마 탄 왕자도 아니고. 대체 못하는 게 뭐야?”


황 작가가 준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지켜보던 모든 팬과 기자도 기도하듯 양손을 모으고 준호를 지켜봤다.


***


한은서를 구하러 뛰쳐나가기 전.


도전 과제 : 백마 탄 왕자님

- 상대 배우가 위험에 빠진 상황. 멋진 활약으로 그녀를 구하세요.

- 성공 시 화제성 + 100포인트. 동료 평가 + 100포인트.

- 실패 시 화제성 - 100포인트. 인지도 - 100포인트


시스템 창이 불쑥 나타났다.


‘보너스가 200포인트라고?’


깜짝 놀랐다.

도전 과제를 자주 봤어도 이런 건 처음이었다.


망설이고 있을 틈이 없었다.

도전 과제도 걸렸지만, 한은서는 미우나 고우나 동료이자 드라마의 타이틀 롤이었다.


게다가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을 모른 척할 만큼 야박한 놈이 아니었다.


“레디, 액션.”


준호는 입술을 달싹거려 시스템 창을 불렀다.


갱신된 사용자 현황은 아까 확인했다.


···

신체 : 187cm, 79kg.

직업 : D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840

잔존 포인트 : 299

······


그동안 포인트를 많이 비축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체중의 변화였다.

지방을 빼고 근육을 늘린 덕분에 TV로 볼 때는 더 단단하고 날렵했다.


“불과 이주일 만에 10kg이나 벌크업하시다니. 이런 운동 재능을 그동안 왜 썩히셨어요? 이 정도면 예전과 거의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트레이너의 칭찬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지금은 한은서를 구하는 게 중요해.'


수영은 옛날부터 몸 관리 차원에서 꾸준히 했다.

어느 정도 자신 있었지만, 파도가 넘실대는 상황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연기라고 생각하자.’


기술 연기 중 수영을 레벨 7로 만들었다.

그다음 상황 연기 중 수상 구조도 레벨 7을 찍었다.

각 127포인트씩, 피 같은 포인트 254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준비 완료.

세부 스탯을 열어 레벨업이 반영된 걸 확인한 뒤.


“비켜!”


준호는 타월을 벗어 던지고 지체 없이 내달렸다.


***


파도는 보기보다 훨씬 크고 거칠었다.

자칫 균형을 잃으면 건장한 성인도 휩쓸려 버릴 것 같았다.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해안의 바위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광경을.

숙련된 해녀도 파도가 거칠 때는 물질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2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파도에 하도 얻어맞아 얼얼하다 못해 감각이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나도 죽는다.’


준호는 이를 악물고 손, 발을 휘저었다.

거품처럼 일렁이는 파도 너머로 한은서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사, 살려······.”


그녀는 기우뚱거리는 보트 끄트머리를 겨우 잡았다.


그것도 곧 한계였다.

그녀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보트에서 울고 있는 아역 배우에게 도움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수영을 레벨 8까지 올릴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그사이에도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수영 레벨을 올린 덕분인지 곧 요령이 생겼다.


‘어차피 파도를 이기는 건 무리다.’


그는 밀려온 파도가 빠지는 걸 이용해 치고 나갔다.


파도가 빠질 때마다 몇 미터씩 쭉쭉.

이걸 몇 번 반복하니 금세 보트가 가까워졌다.


한편,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강 배우 뭐야? 수영 선수였어?”

“스턴트 연기를 잘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정 감독과 황 작가는 반쯤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마침내 준호가 한은서에게 닿았다.

파도는 아까보다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거칠었다.


“사람 살려!”


한은서는 준호를 세게 끌어안았다.

화사한 화장은 바닷물에 번져 엉망이 돼 있었다.


‘제길, 같이 죽겠네.’


뭔가를 끌어안는 건 물에 빠진 사람의 본능.

하지만 구하러 온 사람에게는 최악의 행동이었다.


‘어쩌지?’


준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급하게 오느라 다른 도구도 없었다.

작은 고무보트에 의지하면 자칫 아역 배우까지 셋 다 위험했다.


결국 방법은 하나.


‘미안합니다. 원래 여자한테 폭력을 쓰는 사람은 아닌데.’


퍼억, 준호는 그녀의 명치를 주먹으로 힘껏 쳐올렸다.


“컥.”


그녀는 대번 움직임이 둔해졌다.

한 방 더 치자 의식을 잃은 듯 축 늘어졌다.


‘됐다.’


준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뭍 쪽으로 천천히 수영했다.


경찰이나 구조대가 늦게 오는 건 한국 영화의 공식이었다.

둘이 반쯤 돌아왔을 무렵에야 구조대가 보트를 타고 다가왔다.


한은서 먼저.

준호는 구조대원이 내민 손을 잡고 보트에 올랐다.


“으아, 죽는 줄 알았네.”


그는 보트 벽에 기대앉았다.


“한은서 씨. 제 말 들리십니까?”


한쪽에서는 구조대원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인공 호흡했다.


죽지는 않았다.


“으으.”


그녀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손발을 꿈틀거렸다.


‘뭐? 45kg? 다이어트했다더니. 더럽게 무겁네.’


그제야 준호는 쓰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무사히 뭍에 도착했을 때.


“강준호! 강준호! 강준호!”


사람들은 주먹을 움켜쥐고 그를 연호했다.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과 배우들도 섞여 있었다.


“준호 씨!”


황 작가가 그를 덥석 끌어안으려다가 멈칫했다.

배우에게 사심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주위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강준호 씨, 지금 소감이 어떻습니까?”

“파도가 엄청나게 컸는데, 무섭지 않았습니까?”

“수상 구조는 언제 배우신 겁니까?”


폭풍처럼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

팬들은 그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느라 정신없었다.


“고마워요.”


정신을 차린 한은서가 슬그머니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죽다 살아난 뒤였지만, 그녀의 예쁜 얼굴은 다른 의미로 발그레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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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감정의 소용돌이 (1) +2 24.03.26 1,033 3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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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액션은 감동이다 (1) +3 24.03.24 1,081 30 12쪽
12 계약 완료 +2 24.03.23 1,070 27 13쪽
11 혼자서는 안 됩니다 (4) +3 24.03.22 1,060 36 12쪽
10 혼자서는 안 됩니다 (3) +2 24.03.21 1,067 33 13쪽
9 혼자서는 안 됩니다 (2) +2 24.03.20 1,111 32 13쪽
8 혼자서는 안 됩니다 (1) +4 24.03.19 1,139 32 12쪽
7 진짜 배우 (3) +4 24.03.18 1,139 35 11쪽
6 진짜 배우 (2) +3 24.03.17 1,153 35 12쪽
5 진짜 배우 (1) +6 24.03.16 1,190 36 12쪽
4 전쟁은 시작됐다 +2 24.03.15 1,211 33 12쪽
3 최적의 사냥터 +2 24.03.15 1,288 32 12쪽
2 내 연기는 경험이다 +5 24.03.14 1,488 33 14쪽
1 단역입니다 +4 24.03.14 1,974 3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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