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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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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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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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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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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몸도 연기의 일부다 (2)

DUMMY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지만, 연기 시스템처럼 이 말에 충실한 것도 없었다.


외형 일체화 레벨 7.

드라마 일주일 치의 포인트를 쏟아부었다.

그 이름처럼 외형을 바꾸는 스킬이었지만, 레벨만 올린다고 갑자기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결국 몸을 만드는 건 나 자신이야.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효율이 향상되는 거지.’


가령 피트니스에서 일주일간 땀을 흘린다고 치자.

보통 상태에서는 일주일 운동으로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다.

하지만 외형 일체화를 레벨 7로 만들면 그 효과는 열네 배. 즉, 14주 동안 운동한 것처럼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건 연기도 마찬가지였다.

레벨을 올렸다고 연기가 자동으로 나오는 건 아니었다.

대본을 암기하고 연기하는 건 준호였고, 시스템은 그걸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거들뿐이었다.


“노출 씬이라고요? 알겠습니다. 최고의 트레이너를 섭외하죠.”


최 대표가 즉각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소속사와의 계약서는 연기 지도 외에 액션 스쿨이나 피트니스 지원 등도 포함돼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전담 트레이너가 촬영장에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박인환입니다. 앞으로 2주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TV에도 얼굴을 비치는 유명인이었다.

슬림한 운동복 아래로 근육이 터질 듯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기구를 사용하는 것만이 운동은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틈날 때마다 몸을 단련할 수 있죠.”


대본을 볼 땐 의자에 앉아 시티트 니 업.

의자 끝에 앉아 균형을 잡고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


메이크업 받을 때는 생수병을 들고 덤벨 운동.

1리터짜리라고 우습게 봤는데 횟수를 늘리니 팔이 뻐근했다.


출퇴근할 때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푸쉬업과 턱걸이도 했는데, 비슷한 운동이라도 자세와 방법에 따라 효과가 제각각이었다.


먹는 것도 달라졌다.

닭가슴살과 계란, 바나나 등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식사가 아니라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운동의 연장선상이었다.


‘배우는 몸 관리도 일이다. 연기라고 생각하자.’


싫은 내색은 전혀 없었다.

준호는 이를 악물고 운동에 매진했다.


운동 개시 일주일째.

촬영장 구석에서 푸쉬업하다가 잠깐 쉴 때였다.


“이야, 역시 대단하네요. 그동안 수많은 분을 가르쳐 봤지만, 강 배우님 같은 분은 처음이입니다.”


자세를 봐주던 트레이너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뭐가요?”


숨을 몰아쉬며 묻는 준호.

옆에 있던 김 매니저가 눈치 빠르게 수건과 생수를 가져왔다.


“배우님이 열심히 하시는 것도 있는데, 효과가 남들의 열 배가 넘는 거 같아요. 운동은 후천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부모님께서 젊었을 적에 운동 좀 하셨나요?”

“운동은 무슨. 그냥 시골에서 인삼 농사만 지으신 평범한 분들이에요.”

“에이, 이건 보통 재능이 아닌데요. 아예 이참에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해 보시는 건 어때요? 제가 장담합니다. 앞으로 2년 이내에 세계적인 보디빌더가 되실 겁니다.”

“선수는 아무나 하나요? 그리고 전 배우가 좋습니다.”


준호는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겸연쩍게 웃었다.


노력과 시스템의 콜라보.

씬의 촬영이 끝나면 외형 일체화 스킬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스킬이 없다고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몸을 유지하는 건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강 배우님, 촬영 10분 전입니다.”


조연출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알렸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준호는 수건을 매니저에게 돌려주고 의자에 앉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헝클어진 머리와 화장을 손봐줬다.


“강 배우님, 정말 몸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어깨가 이렇게 넓으셨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그의 어깨를 살짝 만지며 감탄했다.


‘내가 봐도 변했네.’


준호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내심 웃음을 참았다.

극 중 이현이 즐겨 입는 흰 셔츠 아래에 근육의 실루엣이 탄탄했다.


‘저 독한 놈. 진짜 이주일 만에 몸을 만들 기세네.’

‘혹시 우리가 실수한 거 아닐까? 지금이라도 계획을 수정할까?’


멀리서 김희성과 성태철의 불안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했다.


***


정오 무렵, 강릉 해변.

백사장은 사람들과 파라솔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파도가 바닷물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이야,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요즘은 다 외국으로 가는 거 아니었어요?”


준호는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내 말이. 8월 말이면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고 여기로 잡았는데. 완전히 망했잖아.”


황 작가도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8월 말이 됐는데도 체감온도가 40도 가까이 됐고, 덕분에 바닷가는 피서객들로 특수를 누렸다.


“그래도 날씨는 좋아서 다행이네요. 일기예보에서 바람이 세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고개를 들어 먼 바다를 봤다.


물놀이를 즐기기 더 없이 화창한 날.

다만 바람 때문에 파도가 간간이 크고 거칠어졌다.


“촬영 중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사이 스태프들은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을 통제.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 등의 세팅.

그림이 예쁘게 나오도록 모래를 정리하는 것도 모두 그들의 일이었다.


“와, 강준호다!”

“실물이 더 멋있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핸드폰을 꺼냈다.

중년 여성 팬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저씨 팬도 제법 많았다.


‘기자들도 많이 왔네. 아침 드라마의 야외 촬영까지 따라오는 경우는 드문데. 누가 부른 건가?’


촬영장이 잘 보이는 좌우.

대포처럼 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오며 가며 낯이 익은 연예부 기자들과 연예 관련 너튜버들이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배우들이 의자에 앉아 메이크업 받고 있었다.


“한은서 봤어? 여신이 따로 없네.”

“저 작은 얼굴에 눈, 코, 입이 다 붙어 있잖아?”


한은서도 주연답게 인기가 많았다.

비키니 위에 얇은 카디건을 입어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오늘을 위해 열흘 동안 물과 샐러드만 먹은 건 촬영장의 모두가 아는 안 비밀이었다.


김희성과 성태철도 마찬가지.

오늘을 위해서 갈색으로 태닝하고 근육을 다듬었다.

스태프들과 매니저들이 팬들의 접근을 차단해도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강 배우님, 옷 갈아입으셔야 합니다.”


코디가 의상을 가져왔다.


야자수가 그려진 흰색 비치 웨어였다.

오늘만은 이현도 냉정한 실장 콘셉트에서 해방됐다.


“고마워요.”


준호가 별생각 없이 티셔츠를 벗은 순간이었다.


“꺄아아!”


사방에서 비명처럼 높은 탄성이 터졌다.


‘뭐야?’


준호는 티셔츠를 반쯤 벗다가 멈칫했다.

인제 보니 주위의 이목이 온통 그에게 쏠려 있었다.


“저 근육 뭐야? 돌이네, 돌.”

“저거 CG 아니야? 뭐가 저렇게 멋있어?”

“자기, 저거 보고 뭐 느끼는 거 없어?”


여성 팬들이 황홀한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몇 명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의 줌으로 그의 모습을 담았다.


선명한 복근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모 드라마에서 선보인 복근 빨래판은 저리 가라.

근육은 칼로 새긴 듯 깊고 진하면서도 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저거 다 뻥근육이야.”

“맞아. 오빠처럼 적당히 살이 있어야 힘을 쓰는 거라고.”


일부 남성 팬들 투덜거림.

말로만이었다. 다들 선망의 눈으로 그의 몸을 구석구석 훑어봤다.


“김희성하고 성태철이야 전부터 몸 관리로 유명했으니까 그렇다고 쳐. 준호 씨는 언제 그렇게 만든 거야?”


감독도 촬영 시트를 들고 다가오다가 감탄했다.


‘선배들은 어떻게 봤을까?’


내심 웃음을 참고 오른쪽을 곁눈질했다.


예상대로.

김희성과 성태철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한은서도 두 뺨에 엷은 홍조를 띠고 그를 힐끔거렸다.


“준호 씨. 이거 성희롱으로 오해받을까 망설였는데.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성적인 목적은 없어. 그냥 순수하게 팬으로서 부탁하는 거야.”


꿀꺽, 황 작가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뭔데요?”

“나 이런 거 처음이야. 근육 한 번만 만져 보자. 제발.”


두 손을 모으고 고양이처럼 눈을 빛내는 황 작가.


“그러세요.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준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디빌더처럼 양팔을 머리 뒤로 하고 복근에 힘을 줬다.


“잘 먹겠습니다.”


응? 뭘 먹어?

그녀의 떨리는 손길이 복근에 닿은 순간이었다.


“안 돼!”


길고 자지러지는 외침이 백사장에 울려 퍼졌다.

멀리서 시샘 가득한 눈으로 황 작가를 노려보는 여성 팬들의 목소리였다.


***


배우의 본업은 연기였다.

사람이 북적이는 야외였지만 촬영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 씬은 59화의 엔딩에 쓰일 겁니다. 날도 덥고 보는 사람도 많으니까 후딱 찍읍시다.”


감독이 배우들을 불러 모아 상황을 설명한 뒤.

카메라 워킹을 확인하고 리허설 후 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회사 연수로 강릉에 온 이현과 신이슬.

공식 일정이 끝나고 잠시 바닷가에 들른다.

둘 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비치 웨어를 입고 있다.


여름 끝 무렵의 바다는 한가하다.

가족으로 보이는 네 명이 모래집을 만들며 놀고 있다.


멀리서 들리는 잡음은 나중에 편집하면서 음소거.


‘쉿!’


스태프들이 검지를 입술에 붙이고 주위의 구경꾼들에게 주의를 줬다.


해변에 앉아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두 사람.

문득 신이슬은 스르르 눈을 감고 이현의 어깨에 기댄다.


이현은 그녀에게 고개를 돌린다.


- 그녀는 내 여자야!


어젯밤, 그녀의 남자친구가 찾아와 악을 쓴 게 오버랩된다.


그도 알고 있다.

그녀가 돌아갈 곳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는걸.

그들의 엇갈린 운명은 점점 이별이라는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은 언제나 안녕이라는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죠. 고독은 배신할 일이 없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먼훗날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행복해하는 걸 보는 순간이 제겐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독백처럼 담담하게 읊조리는 이현.


신이슬은 잠든 게 아니다.

그녀의 긴 속눈썹에 맑은 눈물이 맺힌다.


지금부터가 백미다.

이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그녀를 쓰다듬으려 몇 번 손을 들었다가 내린다.


짧은 한숨, 긴 눈물.

언제나 냉정하던 그의 얼굴이 조금 낯설다.

눈은 울고 있지만 입은 웃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표정이다.


“······.”


그가 입술을 달싹거려 말하는 찰나.


“당신······!”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다는 남편이 분노와 당혹감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


“여보?”


당황하며 남편을 올려보는 신이슬.

그 순간, 화면이 정지되고 [다음 화에 계속]이라는 자막이 올라간다.


“오케이. 컷! 바로 그거야!”


정 감독의 요란한 사인이 촬영장을 현실로 돌렸다.


“몸이 좋아지니까 그림도 살아나네. 여자가 남자 어깨에 기대는 씬은 표정 못지 않게 몸도 중요한 법이거든요.”


황 작가도 환하게 웃으며 손뼉 쳤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멀리 뒤에서 둘의 뒷모습을 잡은 앵글이었다.

가뜩이나 한은서는 키가 큰 편. 준호의 몸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여자가 자기보다 작은 남자에게 기대는 어색한 그림이 나올 뻔했다.


물론 남자의 몸은 무조건 크다고 좋은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비율. 상대 배역과 상황에 맞게 몸을 쓰는 게 핵심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준호는 주변의 스태프와 구경꾼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와, 방금 대사 들었지? 어쩜 그렇게 멋있지?”

“나한테 하는 고백인 줄 알았어. 소름 돋은 거 봐.”

“나도 오늘부터 본방 사수다. 연기도 잘하는데, 몸도 기가 막히잖아.”


평소보다 더 큰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스태프가 아니라 구경하는 팬들의 반응이었다.


[30포인트 획득]

‘도전 과제 : 몸도 연기의 일부다’를 완수했습니다!


알림 창이 어김없이 떠올랐다.


‘시스템의 말이 맞아. 몸도 연기의 일부. 연기력이 한층 올라갔네.’


준호는 지난 2주일 동안의 고생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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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눈팔지 않겠다 (1) +4 24.03.30 954 26 12쪽
» 몸도 연기의 일부다 (2) +4 24.03.29 941 31 12쪽
17 몸도 연기의 일부다 (1) +2 24.03.28 961 28 11쪽
16 감정의 소용돌이 (2) +4 24.03.27 990 29 12쪽
15 감정의 소용돌이 (1) +2 24.03.26 1,031 31 12쪽
14 액션은 감동이다 (2) +4 24.03.25 1,050 29 12쪽
13 액션은 감동이다 (1) +3 24.03.24 1,079 30 12쪽
12 계약 완료 +2 24.03.23 1,068 27 13쪽
11 혼자서는 안 됩니다 (4) +3 24.03.22 1,058 36 12쪽
10 혼자서는 안 됩니다 (3) +2 24.03.21 1,064 33 13쪽
9 혼자서는 안 됩니다 (2) +2 24.03.20 1,109 32 13쪽
8 혼자서는 안 됩니다 (1) +4 24.03.19 1,137 32 12쪽
7 진짜 배우 (3) +4 24.03.18 1,137 35 11쪽
6 진짜 배우 (2) +3 24.03.17 1,151 35 12쪽
5 진짜 배우 (1) +6 24.03.16 1,188 36 12쪽
4 전쟁은 시작됐다 +2 24.03.15 1,207 33 12쪽
3 최적의 사냥터 +2 24.03.15 1,284 32 12쪽
2 내 연기는 경험이다 +5 24.03.14 1,483 33 14쪽
1 단역입니다 +4 24.03.14 1,964 3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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