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글향
작품등록일 :
2024.03.14 16:51
최근연재일 :
2024.04.26 08:4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40,472
추천수 :
1,192
글자수 :
258,011

작성
24.03.28 08:40
조회
963
추천
28
글자
11쪽

몸도 연기의 일부다 (1)

DUMMY

매니저와 촬영장으로 출근하는 길.

신호등 앞에서 잠깐 밴이 멈췄을 때였다.


“참, 메신저 보니까 내일 생일이던데. 미리 축하할게요.”


조수석의 준호가 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네? 이게 뭡니까?”

“뭘 좋아할지 몰라서 상품권 몇 장 준비했어요.”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매니저는 몇 번 사양하다가 두손으로 받았다.


“헉. 이렇게 많이?”


봉투를 슬쩍 열어 봤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넣어 둬요.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잖아요. 쉬는 날에 여자친구하고 쇼핑이라도 하고 와요. 근사한 데서 저녁도 먹고.”

“강 배우님은 다른 스타하고 좀 다른 거 같아요.”

“뭐가요?”

“다른 매니저들 말을 들어보면 까다로운 스타일도 많대요. 성태철만 해도 스타병이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요? 그런데 강 배우님은 팬 서비스도 좋고, 저나 다른 스태프들한테도 언제나 친절하시잖아요.”


김 매니저는 감탄 서린 눈으로 그를 힐끔거렸다.


“저는 무명 단역으로 오래 있었잖아요. 눈물 젖은 빵도 많이 먹어 보고. 그때 느끼고 배운 게 많아요.”


준호는 창밖을 돌아봤다.


연예인 밴은 어디서든 시선을 끌었다.

짙게 선팅돼 내부가 안 보일 텐데도 행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솔직히 제가 스타병 걸린 배우를 한둘 봤겠어요? 그때 스타병 걸린 배우들을 보고 다짐했죠. 아, 난 나중에 성공하면 저렇게 안 돼야지. 팬과 주변 사람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

“그리고 요즘은 SNS도 흔하잖아요. 예전에는 팬 서비스가 엉망인 배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어지간하면 팬에게 싫은 내색을 안 해요.”


단역을 전전하던 시절.

사인을 해주고 싶어도 아무도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인기 배우의 사인을 대신 받아줄 수 있느냐는 부탁까지 들었다.


‘그때 생각하면 행복한 거지. 팬이 있으니까 스타도 있는 거고.’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데요. 홈런왕 박병호 선수가 감독님에게 이런 말을 했대요. 주전 자리를 빼앗길까 두렵다. 초심을 잃었다 보이거든 언제든 말씀해 달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요. 만약 제가 초심을 잃었다 보이거든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준호는 매니저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강 배우님.”


김 매니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준호가 손을 흔들고 차에서 내린 뒤.


“존경합니다, 강 배우님!”


김 매니저는 허리를 구십도로 숙이고 외쳤다.


“내가 무슨 조폭도 아니고. 쪽팔리니까 하지 마세요.”


준호가 짐짓 화난 척 말해도 소용 없었다.


***


- 내 여자의 남자, 12% 돌파!

- 매일 아침, 그녀의 남자들이 기다려진다.

- 주부들의 아침 시간을 지우는 마법, 한은서와 강준호의 앙상블.


드라마는 순풍에 돛 단 듯 순항했다.

처음엔 50화로 일일 드라마치곤 짧게 기획됐지만, 일찌감치 20화 연장이 결정됐다.


“20화 연장은 1차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2차 연장도 있고요. 어차피 제작비도 적게 들잖아요? 방송국 입장에서는 뜻하지 않게 로또가 터진 셈이죠.”


정 감독이 입에 귀에 걸려 한 말이었다.


너무 연장하면 스토리가 가는 거 아니냐고?

일일 드라마는 막장이든 신파든 시청률만 잘 나오면 장땡이었다.

애초에 대단한 작품성이나 영상미를 기대하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야 잘됐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잖아. 이 기회에서 포인트를 바싹 당기자.’


준호 입장에서도 연장은 환영이었다.


연장에 따른 출연료와 보너스는 둘째 문제.

레벨업에 필요한 포인트를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최 대표는 조금 볼멘 표정이었다.


“아쉽네요. 드라마 덕분에 뜬 건 감사합니다만, 배우님 다음 스케줄에 영향이 있거든요. 연기 외적인 활동도 많고, 슬슬 차기작도 생각하셔야죠. 아침 드라마에서 계속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고요.”


결국 돈과 시간이었다.

준호를 잡기 위해 광고주들이 달아오른 터.

연장에 따른 추가 출연료가 짭짤하다지만, 광고 수입에 비교할 바는 못 됐다.


35화가 방송된 금요일 오후.

제작사 회의실에서 감독과 작가, 주요 배우들이 모였다.

작가는 대본만, 감독은 제작만, 배우는 연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촬영장의 훈훈한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지금까지는 최고입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감독이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다 감독님과 작가님 덕분이죠. 우리 팀, 최고입니다.”

“준호 씨 연기도 빼놓을 수 없죠. 초반에 터진 스캔들이 오히려 큰 홍보가 됐잖아요.”

“맞아요. 단역 출신이라 솔직히 연기는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갈수록 좋아졌어요.”


김희성과 성태철, 한은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차례로 말했다.


“제가 한 게 있나요? 다 선배님들이 잘 끌어주신 덕분이죠.”


준호도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반만 진심이었다.

선배들의 연기를 옆에서 보고 배웠지만, 그가 주연이 된 후 알게 모르게 견제가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뭐, 사회생활이라는 게 어딜 가더라도 비슷하겠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극이 조금 늘어질 때가 됐거든요. 초반의 화제성도 바닥을 드러냈고. 게다가 경쟁사에서 다음 작품 홍보를 시작했어요. 시청자들을 계속 붙들고 있으려면 여기서 화끈한 한 방을 터뜨려야 해요.”


황 작가가 진지하게 한 방을 강조했다.


‘화끈한 한 방?’


준호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무더운 여름. 주부가 대다수인 여성 시청자에게 어필하려면 그거밖에 없죠.”


김희성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안방극장의 베테랑답게 뭔가 아는 눈치였다.


“그래서 특별히 준비했어요. 2주 후 강릉에서 야외 촬영이 있습니다. 낮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근처 리조트에서 묵을 테니까 다들 스케줄 비워 두세요. 촬영도 하고, 좋은 곳에서 다 같이 한잔하고. 좋잖아요? 크크크.”


감독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여름 바닷가.

신이슬과 세 남자가 운명처럼 마주친다.


공식처럼 이어지는 세 남자의 기 싸움.

이때 바닷물에 젖은 수영복 위로 그들의 탄탄한 근육이 드러난다.


‘대한민국 참 좁네. 드라마에서는 어딜 가든 다 마주치나? 그리고 뜬금없이 웬 노출 씬이야? 메인 스토리하고 전혀 상관이 없잖아.’


준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쓴웃음을 머금고 삼켰다.


그의 생각을 읽은 걸까?


“어렵게 여길 것 없어. 노출 씬은 팬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돼.”

“맞아. 여성 팬을 대상으로 하는 아침 드라마에서 노출이 빠지면 말이 안 되지.”


김희성과 성태철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긴, 막장과 선정성은 아침 드라마의 키워드지.’


제목이 뭐였더라?

모 드라마에서는 남자 배우의 복근을 빨래판처럼 사용하는 씬을 선보였다.

자극적이고 개연성도 없는 전개라고 혹평받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화제성과 시청률은 폭발적이었다.


준호는 좌우의 김희성과 성태철을 곁눈질했다.

노출 씬을 예상한 모양이었다. 반소매 셔츠에 언뜻 보이는 근육이 제법 탄탄했다.


반면 그는 잔근육이 발달했어도 조금 마른 체형이었다.

피트니스에서 꾸준히 운동했지만, 강 씨 집안의 내력인지 근육이 잘 안 붙었다.


“선배들을 의식할 필요 없어요. 여자는 보디빌더처럼 우락부락한 것보다 살짝 마른 체형을 더 좋아하니까.”


한은서가 눈웃음치며 말했다.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돼. 티셔츠를 입고 찍어도 되고.”


성태철도 웃으며 거들었다.


‘다들 수영복을 입을 텐데, 나 혼자 티셔츠를 입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지.’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

정 감독과 황 작가도 슬그머니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 2주일이나 남았잖아요. 저도 그때까지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준호는 억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 과제 : 몸도 연기의 일부다

- 캐릭터와 상황에 맞는 멋진 몸을 보여주세요.

- 성공 시 화제성 + 30포인트

- 실패 시 화제성 - 20포인트. 인지도 - 30포인트


시스템 창이 불쑥 나타났다.


뜻하지 않은 노출씬.

갑자기 몸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


회의를 마친 뒤.

준호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변기에 앉은 뒤.


“레디, 액션.”


입술을 달싹거려 시스템을 불렀다.


······

신체 : 187cm, 69kg.

직업 : D급 연기자

획득 포인트 : 660

잔존 포인트 : 246

······


‘70kg 이하가 됐네. 좀 심각한걸?’


촬영장에서는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인삼즙과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었는데도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다.


‘포인트를 모아놓길 잘했네. 드디어 이걸 올릴 때가 된 건가?’


포인트 사용 중 캐릭터 연기.

지금까지 한 번도 올리지 않았던 연기였다.

준호는 일명 육체의 연금술사, 크리스찬 베일을 떠올렸다.


‘크리스찬 베일처럼 몸을 잘 쓰는 배우는 없지. 캐릭터에 맞춰 몸무게를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하니까.’


배트맨에게서는 근육질을.

머시니스트에서는 55kg의 깡마른 몸매를.

심지어 아메리칸 허슬에서는 뚱뚱하고 촌스러운 캐릭터를 선보였다.

팬들이야 그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같은 배우로서는 부럽고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이처럼 캐릭터에 맞춰 체형을 바꾸는 스킬이 바로 캐릭터 연기였다.

성형수술까진 아니더라도 주어진 신체 조건에서 캐릭터와 최대하게 비슷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조 스킬이었다.


‘몸도 연기의 일부지. 캐릭터를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다만 이건 일회성이었다.

작품의 고유한 캐릭터에만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외형과 스타일을 캐릭터에 맞추는 것일 뿐.

다른 스킬처럼 연기력이 극적으로 향상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걸 올리면 크리스찬 베일처럼 몸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겠지.’


캐릭터 연기 - 외형 일체화.

하단을 누르자 간단한 설명이 나왔다.


레벨 1. 분장을 통해 캐릭터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모방합니다.

레벨 9. 체형과 스타일, 언행 등 모든 면에서 캐릭터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됩니다.

(주의. 급격한 체형 변화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

전에도 이것 때문에 몇 번 망설였다.


‘부작용이 뭘까? 건강에는 당연히 적신호가 들어올 테고. 스트레스성 탈모?’


문득 아까 성태철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중요한 건 표정이었다.

그때, 성태철은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말로는 위로하는 척해도 어쩐지 비아냥거리는 느낌이었다.


‘상대가 누구라도 질 수 없지. 보너스가 걸린 도전 과제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안강최’라고.

안 씨, 강 씨, 최 씨가 고집이 세다는 뜻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남은 기간은 2주일.

촬영 때문에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에겐 시스템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해보자. 멋진 근육을 보여주면 여성 팬의 인지도가 확 올라갈 거야.’


결심을 굳혔다.


눈을 질끈 감고 127포인트를 투입.

외형 일체화를 단숨에 레벨 7까지 끌어올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레벨업하는 연기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한눈팔지 않겠다 (1) +4 24.03.30 955 26 12쪽
18 몸도 연기의 일부다 (2) +4 24.03.29 943 31 12쪽
» 몸도 연기의 일부다 (1) +2 24.03.28 964 28 11쪽
16 감정의 소용돌이 (2) +4 24.03.27 992 29 12쪽
15 감정의 소용돌이 (1) +2 24.03.26 1,033 31 12쪽
14 액션은 감동이다 (2) +4 24.03.25 1,052 29 12쪽
13 액션은 감동이다 (1) +3 24.03.24 1,081 30 12쪽
12 계약 완료 +2 24.03.23 1,070 27 13쪽
11 혼자서는 안 됩니다 (4) +3 24.03.22 1,060 36 12쪽
10 혼자서는 안 됩니다 (3) +2 24.03.21 1,067 33 13쪽
9 혼자서는 안 됩니다 (2) +2 24.03.20 1,111 32 13쪽
8 혼자서는 안 됩니다 (1) +4 24.03.19 1,139 32 12쪽
7 진짜 배우 (3) +4 24.03.18 1,139 35 11쪽
6 진짜 배우 (2) +3 24.03.17 1,153 35 12쪽
5 진짜 배우 (1) +6 24.03.16 1,190 36 12쪽
4 전쟁은 시작됐다 +2 24.03.15 1,211 33 12쪽
3 최적의 사냥터 +2 24.03.15 1,288 32 12쪽
2 내 연기는 경험이다 +5 24.03.14 1,488 33 14쪽
1 단역입니다 +4 24.03.14 1,974 3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