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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소 님의 서재입니다.

저격병과 장미와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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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르소
작품등록일 :
2020.11.27 23:39
최근연재일 :
2021.02.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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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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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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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백은의 장미 - 1

DUMMY

새벽은 밤보다 짙은 어둠을 선물하고 있었다.


변경에 핀 장미는 어둠을 먹으며 자랐다. 요컨대 이 어둠이야말로 목마른 백은의 장미가 그토록 기다리던 새벽의 이슬이었다.


토크란 공화국에서 4만5천뤽 정도 떨어진 208060 드브리에는 벌써 이틀째 공화국의 신형 비공함 한 대가 드브리의 공전에 보조를 맞추며 소의 등에 붙어 있는 쇠파리처럼 찰싹 들러붙어 있었다.


그들이 낮과 밤을 바꾸며 행동한 것도 어느덧 일주일째였고 맛대가리 없는 공화국 공군 표준휴대식량키트 1호를 먹은 것은 이주일째였다.


“부함장, 현재 상황 보고 바란다.”


함장 이젤린 그린필드 대위는 담요를 두른 채, 식량 키트에 딸려있는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함교에 앉아 있었다.


“토크란 공군 제1연대 159항공대 19번함 스펠바우스-키네틱급 비공함 아벨라르. 총원 10명. 현재 이동 상황은······.”


“아니 세리. 미헨가도까지 얼마나 남은 건지만 얘기하면 돼.”

“1,235뤽 남았습니다.”


“제국에서의 움직임은?”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드브리와 드브리를 밟으며 이동하는 ‘징검다리 항법’으로 이동하다 보니 이렇게 깊숙이까지 온 것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천공에서 적의 위치를 탐색하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왔지만, 그 기본 원리는 공기와 반응하는 마성석의 빛을 탐지하여 거리를 측정하는, 사이다(SHDAR, Shine Detection and Ranging, 빛을 이용한 탐지 및 거리 측정)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단지 이를 얼마나 더 넓은 범위로, 얼마나 더 정확한 감도로 측정하느냐의 차이였다.


징검다리 항법은 엔진을 끈 상태로 드브리 뒤에 숨어 드브리의 움직임에 의지하는 항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드브리가 방패 역할을 하는 덕분에 마성석이 가동되며 나타나는 빛을 완전히 차폐할 수 있어서, 적의 탐지를 피할 수 있었다.


이젤린은 여기까지 온 것에 필연적인 행운도 따랐다고 생각했다. 먼 거리를 여행할수록 마성석의 순도도 떨어지고, 순도가 떨어지면 그만큼 빛의 감지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철저한 성격의 이젤린은 이러한 우연의 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헛걸음이 아니어야 할 텐데······.”


이젤린에게 공화국 안보부의 비밀지령이 내려진 것은 보름 전의 일이었다. 공화국 변경에 대규모의 병력이동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크니우스 사령장관은 반신반의했지만, 정부의 입장은 일단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장기 정찰업무를 전투 비공함이 수행하는 것은 넌센스였지만, 아벨라르의 승조원들은 요즘, 소위 말하는 가장 잘나가는 인물들이었다.


윗분들은 그들을 계속 선전하기 위해서라도 이에 걸맞는 전과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키지 않아도 이젤린도 군인인 만큼 그분들의 취향을 맞춰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헨가도 오픈 시간은?”


“시뮬레이션 된 바에 의하면 12분 동안 2.5야반(1야반=1뤽x1뤽 정도의 크기)정도라고 합니다.”


“2.5밖에 안 된다고? 비공함 하나가 10분 동안 겨우 지나갈 크기인데 아저씨들은 왜 가보라고 한 거야?”


각자 다른 크기의 드브리들이 각자 다른 공전주기를 갖고 회전하다 보면, 우연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수 있는 공간이 일정 시간 동안 생길 때가 있는데, 이를 가도(街道, Thoroughfare)라 불렀다.


다만 대체로 가도가 열리는 시간이 짧고, 그 크기도 크지 않았는데 이는 공화국에는 천만다행인, 즉 제국에서 공화국 쪽으로 직접적인 폭격을 가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포말하우트의 경우는 제국 측에서 대규모의 공병대를 투입하여 가도를 넓히고, 그곳으로 공화국의 방해를 뚫고 지속적으로 병력을 집결시킨 뒤 벌어진 것이어서, 그 준비만 해도 2년이 걸렸다.


즉, 제국은 3년의 전쟁 기간 중, 2년을 포말하우트를 위해 썼던 것이다. 공화국에서는 사전에 이를 알고 지속적으로 방해했지만, 결국 제국의 대규모 병력이 모이는 것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젤린은 이번 작전에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 정도 규모의 가도는 공화국 근처에도 얼마든지 있었고, 공화국에선 가도의 입구마다 요격 부대를 운용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이렇게 먼 곳에 이 정도 밖에 열리지 않는 가도를 막기 위해 병력을 투입하는 건 오히려 인적 물적 자원의 낭비였다.


막상 이렇게 계산이 되자 이젤린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만일 별일 없이 돌아가게 된다면 책임자에게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물론 하극상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30분 후, 가도에 도착합니다.”


“총원전투준비.”


“알겠습니다. 레뮤, 코헤르 총원전투준비······.”


“아니, 내가 직접 말하겠어.”


이젤린은 부함장이자 조타수인 세리 메레디스 소위에게 자신을 통신 채널로 연결해달라고 하더니 목이 터지라 외쳤다.


“언니들.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 일들 해! 기상! 기상! 다들 위치로!”


이젤린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기상나팔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모두를 잠의 손아귀에서 끌어내렸다.


가정 먼저 모습을 보인 것은 레뮤 로버츠 중사와 코헤르 뮤 중사였다.


이들은 함교에서 아벨라르의 오퍼레이터를 맡고 있었는데 원래 교대로 낮과 밤을 책임졌지만, 오늘은 이젤린의 명령으로 둘 다 비번이었다.


레뮤와 코헤르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리에 앉자마자 손거울을 꺼내어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세리가 주의를 주자, 그들은 서로 동시에 거울을 집어넣고, 오퍼레이터용 헤드셋을 착용했다.


“자, 자, 주인마님이 또 시작했다! 다들 배에 힘 빡 주라고!”


상부 기관포장 리아 화이트송 하사가 말했다.


그녀는 타투매니아여서 얼굴을 제외하곤, 몸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얼굴에 타투를 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아프다는 이유였는데, 타투 없이 얼굴만 본다면 의외로 인상이 강하지 않고 순하게 보일 정도였지만, 그녀의 팔뚝은 여느 남자 못지않게 강인했다.


“아······. 힘들어.”


엘젠리카 로우 상병이 투덜대자 리아가 등짝을 한 대 치며 말했다.


“빨리 자리로 돌아가! 그래도 살아있으니 힘들다는 게 느껴지는 거야. 뒈지면 이도저도 없다구!”


“차라리 하사님 말대로 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난 아직 죽기 싫거든? 똑바로 안 하면 이따 나머지 공부시킬 거야 알겠어?”


“네, 네. 하사님.”


상부가 막 채비를 마쳤을 때 하부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만 앉자마자 총알을 일발 장전한 리아와 달리, 하부 기관포장 카티야 돌레트 병장은 자기가 당길 방아쇠부터 시작하여 총구며 총신이며 총열을 먼저 위생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고 있었다.


그의 부사수 에디제 쉴즈 일병이 그 모습을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녀의 청소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헤드셋으로 함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로즈베리. 마성석 가용범위는?”


“출력의 85.5%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귀무가설 허용 수준으로 이상 없습니다.”


기관실의 스윗 로즈베리가 여러 밸브들을 조작하며 대답했다. 그녀의 안경 위로 증기가 뿜어져 나오자 잔뜩 김이 서렸지만, 그녀는 밸브의 게이지를 보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페리는 어딨어?”


“제 옆에 있습니다. 함장님.”


리아가 기관포를 잡고 이미 발사 준비를 마친 페리 데로즈 일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다들 자리에 있는 거지?”

“넷, 함장님!!!”


“좋아. 이제부터 미헨가도에 도착할 거다. 이주일간 고생한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한다. 다만 귀관도 아직 이 먼 곳까지 온 이유를 모르겠다. 만일 별일 아니라면 가서 정보부 애들을 기만죄로 고소할 방침이다. 물론 맛없는 전투식량을 우리 언니들 먹으라고 넣어준 보급대대장도 같이. 부함장. 브리핑 바란다.”


“네. 함장님. 다들 가도에 대해 잘 알 테지만, 미헨가도는 제국 쪽 변경과 공화국 쪽 변경을 연결하는 가도이다. 다만, 정보에 의하면 최근 이곳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고 하여 이에 대한 상황조사의 임무를 띠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았으므로, 교전 상황이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각자 위치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것. 레뮤. 출발해.”


“고정송곳 해제합니다. 기체 진동에 유의하십시오.”


세리의 말이 끝나자 드브리에 닻처럼 비공함을 고정하던 송곳이 뽑혔다. 비공함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다가 이내 사뿐히 하늘에 앉았다. 드브리 뒤에 매달려 움직이다가 이제야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비공함 아벨라르는 출발선 위에 선 스프린터처럼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곧 배면의 마성석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드브리 속으로 전속력으로 튀어 나갔다.


자잘한 드브리들이 기체에 부딪히든 말든 그 표면에 흠집조차 주지 못했기에 아벨라르는 미세 조정 없이도 깊고 묵직한 속력을 낼 수 있었다. 가끔 커다란 드브리를 만나도 여유롭게 피해버렸다.


피하고 나서 제자리를 잡고 다시 속도를 내는 데는 아주 짧은 시간만이 걸릴뿐이어서 직진과 방향변경 시의 속도 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렇듯, 아벨라르 특유의 뛰어난 선회성과 빠른 속도는 공화국과 제국을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스펠바우스-키네틱급 비공함은 토크란 공화국과 벨리슈탈 공방 간의 비밀기술제휴의 결과물이었다.


양국이 공동으로 제작한 이 경이로운 성능의 비공함은 개발에 참여한 모든 장인들에게 긍지를 심어 주어, 공화국의 장인들은 이를 공화국 기술의 혁신이라 불렀고, 공방의 장인들은 벨리슈탈 기술의 쾌거라고 불렀다.


확실한 것은 이런 비공함이 공화국에 많이 배치된다면 전쟁은 공화국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지만 그러기에는 제조원가나 유지비가 너무 비쌌다.


“가끔 옛날이 그리운 게, 이 부드러운 승차감이 멀미가 날 때가 있어.”


리아가 투덜거리는 사이, 그들 앞에 낭떠러지 같은 깊고도 공허한 하늘이 나타났다.


드브리도 구름도 하나 없는 깨끗한 하늘이자, 새벽의 별들이 바다를 이루는 하늘이자, 바람에 물안개만이 하염없이 떠다니는 하늘이었다.


드브리들의 공전이 겹치지 않는 일시적인 자연현상에 의해 생겨난 풍경이었지만, 하늘에 항상 뭔가 껴있는 것만 보며 자라온 공화국의 소녀들에게는 탄성을 지를 만큼의 장관이었다.


무엇보다 멀리서 운무(雲霧)를 헤치며 떠오르는 태양은 잠시 작전 수행 중이란 것도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상황은 그녀들의 긴 소풍을 허락하지 않았다.


“적의 탐지전파 감지.”


“경치 즐길 새도 없네. 방해전파 켜고, 우리 쪽 탐지 결과 보고해.”


“거리 455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엄청난 크기의 구조물이 포착됩니다.”


“뭐?”


아직 새벽이라 육안식별은 어려웠지만, 이젤린은 함교 창을 열어 쌍안경을 대고 밖을 보았다. 검푸른 하늘에 뭔가 시커먼 물체가 미동도 하지 않고 떠 있는 게 보였는데 얼핏 보아도 보통 비공함의 10배 아니 30배는 넘는 크기였다.


“제국 녀석들 여기서 뭐 하려는 거지?”


“접근할까요?”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접근한다. 전원 경계상태 유지.”


제국의 공병대가 이 변방 가도에 짓고 있는 저 커다란 구조물은 무엇일까?

병참기지? 인공 드브리? 신규 비공함?


이젤린은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지만, 결국에는 가까이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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