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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소 님의 서재입니다.

저격병과 장미와 늑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비르소
작품등록일 :
2020.11.27 23:39
최근연재일 :
2021.02.13 22:25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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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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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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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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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생환

DUMMY

후세 사람들은 엘40-펠256에서 벌어진 이 전투를, 다 잡은 물고기 입이라는 뜻의 ‘포말하우트 전투’라고 불렀다.


트란잠 제국 19개 항공대 38,000기의 비공함과 4국 연합 공군 22,000기의 비공함이 전면전을 벌인 이 전투에서 토크란 공화국은 연합 공군 전체 전력의 70%인 15,400대를 투입했지만, 사흘간의 공중전으로 전부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포말하우트 전투로 공화국 공군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제국 역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어서 전쟁은 고착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제국이 막대한 생산력으로 이를 복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공화국과 하부대륙연합이 이 전투를 통해 얻은 것은 앞으로 6개월간 큰 전투가 없으리라는 것뿐. 이제 그들의 땅이 제국 황제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누워서 하늘을 보는 게 얼마만일까?


하늘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곳을 날기만 했지 이렇게 바라봤던 적은 없었다.


그러자 눈물이 흘렀다. 비단 눈부신 하늘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었다고......


레빈은 수도 없이 되뇌었다. 죄책감이 그의 굴레라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추락의 충격으로 사지가 전부 부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정신만은 또렷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무의미했다. 저 의미 없고 파랗기만 한 하늘처럼.


빛은 한동안 레빈의 눈 속에서 머물다가 연기처럼 떠나갔다.


졸음이 쏟아졌다.


백은빛의 장미 속에서 그는 꿈도 꾸지 않는 영원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러다 불현듯 어쩌면 삶은 끝났고, 이곳은 죽은 뒤의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고,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는 곳. 그래도 상관없었다. 레빈은 이 허무의 시공간 안에서 지극히 맑은 평온을 만끽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운명은 레빈의 희망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나브로 시간은 한없이 빛으로 도배된 그의 방에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했고 그 균열은 점차 커지며 삽시간에 그의 방을 시간으로 가득 채웠다.


시간은 공간을, 공간은 실체를 불러왔다. 오래된 외딴 섬에서 허상에 몸을 담그고 있던 레빈은 문득 실체에 대하여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죽느냐? 사느냐? 레빈에게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의식이 돌아오려나 봅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귀가 조금씩 뜨였다.


“생체신호 체크 해. 주사 준비하고.”


“심장 고동이 빨라지고 있어요. 50, 60, 70······.”


“각성제 투여.”


“뇌파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신 마사지해줘. 어떻게든 살려내야 해!”


끊어졌던 의식의 끈이 다시 연결되고 있었다.


레빈이 알지 못하는 목소리들이 의식의 저편에서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돌아가도 되는 걸까? 돌아가봤자 패잔병인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을까?


“그쪽 눌러!”


“출혈이 있습니다.”


“거기 말고! 봉합 부위 아직 만지지 말랬잖아!”


레빈의 허파로 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더 크게 더 깊이 숨 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운명의 신 바르카스가 이렇게 결정한 것일까?


“허억······. 허억······. 허어어어억.”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레빈 바르카슈 하사. 정신 들어요? 나는 공화국 공제병원 의사 피르슈 힘비허입니다. 정신 들어요?”


“허억······. 허억······. 물······. 무······.ㄹ”


“물은 아직 안돼요. 간호사! 물수건으로 하사님 입술을 좀 축여줘.”


“네.”


흐릿한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살리려는 어느 노의사의 모습이 보였다.


빛이 다시 레빈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방금까지 보던 막연히 하얗고 환하기만 한 빛은 아니었다. 색이 있었고, 생동감이 있었고,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눈을 떴습니다!”


간호사의 호들갑이 무섭게 피르슈 박사는 전화기로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통령부 연결해서 모리스 수석 비서관님께 알려주세요. 그가 깨어났다고!!!!!!”

피르슈 박사의 목소리가 기쁨과 흥분에 떨리고 있었다.



레빈이 온전하게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레빈은 점차 주위를 인지했다. 그의 뇌가 다시 가동을 시작한 덕분이었다. 다음 주부터는 간단한 유동식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레빈은 살아서 기쁘다기보다는 얼떨떨한 기분이 역력했다.


“지금은 움직이기 힘드셔도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질 거예요.”


붕대를 갈며 상처 부위를 소독하던 간호사가 말했다. 레빈이 눈을 떴을 때 피르슈 박사 옆에 있던 이였다.


공화국 공제병원 간호사 마리온 실버트.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예쁘다고 생각했다.


“......뭐가 어찌 된 건지......”


레빈이 입을 열자 마리온이 토끼 눈을 하고 레빈을 쳐다보았다.


“말하실 수 있으세요?”


“그런 것 같아요. 수다 떠는 건 안 되겠지만······.”


마리온이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를 부르려 하자 레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사람 부르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려주세요.”


“네? 아······. 네.”

마리온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제게 어떤 일이 생겼었는지······. 부탁드립니다.”


“네, 저. 아, 그러니까······.”

마리온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말씀드릴게요. 바르카슈 하사님은 정부에서 특별 관리하시는 분이셔서.”


“좋아요.”


“8개월 전에 포말하우트란 곳에서 큰 전투가 있었대요. 제국과 공화국 전쟁의 분수령이 될 사상 최대의 전투였다던데. 그 일로 공화국과 제국 모두 큰 피해를 입어서······.

현재는 둘 다 조용해요. 다만 거기서 살아 돌아오신 분이 몇 분 안 되는 데 하사님은 그분들 중 한 분이세요. 정부에서는 13인의 용사라며 선전하고 있죠.”


“지금 열세 명이라고 하셨어요? 생존자가 겨우 열셋······?”


“네, 바르카슈 하사님까지요.”


“다 합쳐서 18만 5천명이었어요. 근데······ 열셋이라고요?”


레빈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너무나도 참혹한 결과였다. 레빈은 그대로 생판 모르는 마리온의 어깨를 붙잡고 흐느꼈다.


“죄송해요. 제가 괜한 걸 말씀 드렸나봐요.”


마리온이 어쩔 줄 몰라 하자 레빈이 얼른 눈물을 훔쳤다.


그러자 낯선 물건이 그의 눈앞에 보였다. 그의 왼팔은 찰칵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부품들이 안에서 뭔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더니 레빈이 움직이자 윙 소리를 내며 그의 움직임을 따랐다.


“이게 뭐죠?”


“병원에 후송되어 오셨을 때 하사님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상태였어요. 전신 골절에 두부에는 큰 출혈이 있었고. 한쪽 눈은 새카맣게 타버렸고, 왼팔은 절단되어서······.”


“······.”


“다행히 정부에서 벨리슈탈 공방 쪽에 얘기해서 여러 부분을 인공물로 대체했어요. 골절이 심해 뼛조각이 여기저기 뚫고 나왔던 양다리와 절단된 왼팔, 그리고 한쪽 눈. 다행히 거부반응도 없으셨고······.”


“의족, 의수, 의안이라······. 병신이 되었네요.”


“그런 말씀 마세요! 하사님께선 지금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계세요.”


마리온은 이들 인공 신체에 최신기술이 적용되어 있다고 했다. 다만 자세한 기능은 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재활을 통해 차차 알게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불편한 거 있으시면 거기 침대 위에 빨간 벨을 눌러주시면 바로 와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빈이 그러하겠노라고 하자 마리온이 중환자실을 나갔다.


8개월.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누워있는 동안 레빈의 생일도 지났으니까. 이제 그는 소년이 아닌 성년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년식도 제대로 못 했네······.’


토크란 공화국 젊은이들에게 성년식은 특별한 의미였다.


열아홉이 되는 해의 1월1일이 되면 전국의 젊은이들이 수도 벨마덴에 모여 일주일간 화려한 축제를 벌인 후, 사람이 살지 않는 드브리, 즉 작은 공중대륙들을 개척할 권리를 정부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리로 떠나거나 떠나지 않거나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지만, 고아로 살아온 레빈은 제대하는 대로 적당한 드브리를 찾아 떠날 생각이었다.


물론 살아서 제대라는 것을 하게 되면.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머리에 번지르르한 포마드 기름을 바른 중년 남자가 레빈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달려왔다.


레빈은 그의 갑작스러운 환대에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뒤이어 들어온 한 무리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과 기자들은 레빈을 한층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레빈은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모리스 브렌버그.

현 공화국 대통령 알렌 버나드의 수석비서관이자 국회의장.


큰 몸집과 큰 목소리 때문에 토크란 공화국 대통령 관저이자 국회인 디스커스 궁(宮)의 호른이라 불리는 남자.


“오오, 레빈 바르카슈! 포말하우트의 송골매가 드디어 긴 잠에서 깨어났군요.”


모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이 병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플래시 세례가 이어지자 모리스는 레빈의 의수를 잡고 만세를 부르려 했지만, 레빈은 재빨리 자신의 왼손을 침대보 밑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민망해진 모리스는 레빈의 오른손을 부여잡았다.


“귀관의 용맹은 우리 군에 큰 귀감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각지에서 연일 승전보를 올리고 있습니다.”


“······.”


모리스가 거구의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아 레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레빈은 부담감이 느껴졌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연실 셔터를 눌러댔다.


“지금 환자분은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병실로 달려온 마리온이 이를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모리스는 레빈을 어깨동무하고 포즈를 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레빈은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당시 상황을 물어도 될까요?”


“레다무스-II에 배속되어 있던 게 사실입니까?”


“이자크 대장과의 대결은 어땠나요?”


“노노! 환자분의 안정을 위해 악몽 같았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질문은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그쪽부터.”


레빈은 모리스가 알아서 기자들의 질문을 정리해주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라니케 포스트의 가브 로튼 기자입니다. 공화국 금성훈장이 유력한데, 미리 이에 대한 소감을 들어도 될까요?”


넉살 좋은 기자의 질문에 모리스를 비롯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웃지 않는 것은 레빈과 마리온뿐이었다.


“저는 그런 훌륭한 일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왜 없습니까! 포말하우트의 눈부신 전과!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첫 출격에서 무려 스물 다섯기의 비공함 격추. 게다가 적의 주력인 브라더후드 오브 울브즈의 리더 이자크에게 치명상을 안긴 거까지. 이 정도면 훌륭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지요?”


“맞습니다.”

“물론이죠.”


그러자 레빈이 말을 이었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시는 거 같은데 이자크는 그렇게 심하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뺨을 살짝 스친 거밖엔······.”


“자, 다음 질문받겠습니다!”

모리스는 멋대로 레빈의 말을 끊어 버리고는 다른 이의 질문을 청했다.


“토크란 데일리의 짐 핫셀입니다. 새로운 팔과 다리가 마음에 드십니까?”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서······.”


“눼. 눼. 물론이죠! 공화국과 벨리슈탈의 최고의 기술자들이 만든 작품이니까요. 최신예 마성공학 기술이 적용되어 원래의 팔다리보다 편안하고 강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가능하다면 마누라 몰래 제 가운데 다리를 바꾸고 싶습니다만.”


모리스의 저질 농담에 웃음이 이어졌다.


“자, 우리의 영웅님께서는 이제 휴식이 필요하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받겠습니다.”


그러자 기자들 무리 저 뒤쪽에서 추레한 롱코트를 입은 헝클어진 머리의 남자가 손을 들었다.


“거기.”


“토크란의 목소리의 크룩 릴랜스입니다. 믿을만한 정보에 의하면 포말하우트의 부상자가 실제보다 축소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때 군 통신망 내에 계셨으니 잘 아실 거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현재 정부에서는 보안을 이유로 당시의 통신 내역의 언론공개를 일체 거부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발표한 건······.”


“그 믿을 만한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 전혀 신뢰가 가지 않네요. 그런 유언비어에 근거한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모리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크룩을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4만이 아니잖아요! 8만 아닌가요? 10만?”


“용사님 편히 쉬게 하셔야지. 얼른 끌어내!”


그러나 레빈은 편히 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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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41 공돌이푸
    작성일
    20.12.12 00:08
    No. 1

    떼몰살 총력전...

    마성석라는게 꼭 밖에 노출되있어야 하는건가요?
    그림이 좀 있으면 이해가 쉬울텐데...
    재밌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0 두부갑빠
    작성일
    20.12.12 03:21
    No. 2

    뭐그냥 드론에 건전지 달았다 셈치면 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3 자와라
    작성일
    20.12.12 15:00
    No. 3

    제국vs공화국이나 한번의 전투에서 수만에 달하는 함선이 동원되는것, 뭔가 포퓰리즘적인 공화국 정치지도자가 등장하는 것등에서 은영전이 떠오르네요.
    뭐 은영전의 느낌이 떠오를뿐 실제론 완전히 다른 별개의 소설이지만 말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NyaMN
    작성일
    20.12.13 03:16
    No. 4

    재밌는데 그림이 있으면 더 이해하기 쉬울 거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0 음원미션
    작성일
    20.12.15 04:15
    No. 5

    아 또 은영전 찾네 ㄹㅇ..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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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성과 청소년과 노인을 위한 법 +2 20.11.29 735 15 11쪽
» 생환 +5 20.11.28 815 20 13쪽
3 포말하우트 전투 - 3 +2 20.11.28 907 24 13쪽
2 포말하우트 전투 - 2 +7 20.11.27 1,141 23 14쪽
1 포말하우트 전투 - 1 +9 20.11.27 1,876 3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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