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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소 님의 서재입니다.

저격병과 장미와 늑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비르소
작품등록일 :
2020.11.27 23:39
최근연재일 :
2021.02.13 22:25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20,805
추천수 :
537
글자수 :
350,969

작성
20.11.29 21:50
조회
735
추천
15
글자
11쪽

여성과 청소년과 노인을 위한 법

DUMMY

“18만 5천명 중 토크란 공군만 12만명이었습니다.”


크룩 기자가 밖으로 끌려 나가기 전 레빈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레빈의 말에 용사가 깨어나 감돌았던 화기애애함도 수석비서관의 저질 농담에 꽃피던 웃음소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가 버렸다. 주위는 물을 끼얹은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하하. 용사님께서는 농담도 잘하시네요.”


모리스가 먼저 박수를 치며 눌려있던 분위기를 깨자 몇몇 기자들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용사님께서 아직 충격에서 덜 깨어나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에서는 육체적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가지고 계신 용사님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정말 괜찮지 않나요?”


소음이 다시 들려왔지만, 저 뒤에서의 외침은 잦아들지 않았다.


“몇 명이요? 다시 크게 말씀해주세요!”

모리스가 수행원들을 째려보자, 크룩 기자는 그들에게 붙들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자, 이제 용사님께서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다들 나가주세요!”


모리스가 웃으며 말하자 수행원들은 병실에 남아있던 기자들마저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게 중에는 안 가겠다며 버티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모두 밖으로 내쳐졌다.


병실 안에 고요가 시작되자 갑자기 싸늘한 공기가 밀려왔다.


“이보세요 용사님.”

모리스가 레빈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레빈을 녹여버릴 듯 이글이글 타올랐다.


“지금 우리가 제국과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는 모르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이렇게 된 게 다 전쟁 때문인데······.”


“그럼 미천한 제가 전쟁 영웅께 충고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아까의 웃음기는 온데간데없는 그의 기름진 얼굴이 레빈 앞으로 쓱 다가왔다.


“그런 거 다 아시는 양반이 군사보안은 어디다가 팽개쳐 먹으신 겁니까?”


“물어보길래 사실대로 답한 것뿐입니다만.”


“그 아시는 게 확실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일개 병사였던 분께서 어찌 전체 병력 규모를 알 수 있나요?”


“당시 통신선에서 들었던 것을······.”


“잘 들어요. 송골매씨. 확실하지 못한 정보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건 지금의 전시 상황에서는 국가반역죄나 다름없어요. 통신선에 오고 가던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토크란에는 원래 비공함이 5천대 밖에 없었어요. 나머지는 멕시즐이나 비엔라인에서 온 겁니다. 그럼 4만. 대충 떨어지는 군요. 그쵸?”


“......”


“앞으론 말을 좀 아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인터뷰했다가 오히려 혼선만 초래하면 영웅에서 역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겠지요?”


레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몸조리 잘하시고 사흘 뒤에 뵙겠습니다. 간호사, 용사님 잘 모시도록 해요.”


모리스가 다시 밝은 얼굴이 되어 레빈의 쾌유를 빌었다. 그는 의료진을 불러 이런저런 것들을 주지시킨 후, 수행원들과 사라졌다.


레빈은 한편으로는 어이도 없고, 기분도 좋지 않아 한동안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마리온이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뭐랍디까?”


“자신이 올 때까지 개인 인터뷰는 일절 금지라는 명을 하고 갔어요. 보안 때문이랍니다.”


“그렇군요.”

마리온의 말에 레빈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버나드 대통령, 다시 깨어난 공화국의 용사에게 축전 보내

<토크란 데일리>

약관의 영웅에게 쏟아지는 각계각층의 축하 메시지

<살라니케 포스트>

쾌유를 기원하는 온 국민의 염원이 영웅을 깨우다

<레퍼블릭 타임즈>

포말하우트의 송골매 재활 현장을 가다

<더 토크란>

영웅호색? 송골매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이룸나의 소녀들’

<팩트 뉴스>

전격공개! 하사님만을 위한 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이슈&가쉽>

12만의 전사자? 그날 포말하우트에서 벌어진 일은?

<토크란의 목소리>


레빈은 스스로 공화국의 인기스타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언론이, 상황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레빈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듯 보였다. 레빈은 이런 상황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일주일 만에 하사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어요.”


마리온이 각지에서 날아온 꽃다발을 꽃병에 꽂으며 말했다.


레빈은 중환자실에서 개인 병실로 옮겨졌는데, 그가 머무는 병실은 VIP 환자들만 머무를 수 있는 특실이었다.


마리온은 원래 중환자실 간호사지만, 레빈은 그녀가 계속 자신을 돌봐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병원 측에서도 그 의견을 받아들여 앞으로 퇴원할 때까지 레빈의 간호는 마리온이 전담할 예정이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


“글쎄요. 좋지도······. 나쁘지도······.”


“텔레튜브라도 보실래요?”


마리온이 버튼을 누르자 텔레튜브에서 환한 빛이 들어왔다. 마침 알렌 버나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하는 중이었다.


“아, 죄송해요. 이룸나의 소녀들이 나오는 방송으로 바꿀까요?”


“전 이룸나의 소녀들을 좋아한다고 한 적 없어요. 근무 중에 많이 들었다고 얘기한 거지. 사실 멤버 이름도 다 못 외우는걸요.”


“하긴, 서른여섯 명이나 되는 멤버들 이름 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럼 그대로 둘게요.”


마리온은 채널을 그대로 둔 채 꽃병만 정리하였다. 그녀가 아침 식사를 가지러 밖으로 나가자 공제병원 특실에는 레빈과 버나드 대통령 둘만이 앉아 있었다.


“...... 포말하우트의 선전(善戰) 이후, 우리는 각지에서 제국군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제국의 생산량이 우리와 비교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회심의 일격 이후, 그들의 공세에 허점이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기회이기도 합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저건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불과해.


“따라서 우리는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아닌 공화국의 한 시민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생명과 가족의 안전과 위대한 토크란 공화국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 달 전 발효된 베르그-타우 특별법에 여러분의 힘을 보태주십시오.”


베르그-타우법?

베르그 법은 알겠는데 ‘타우’는 뭐지?


“제국의 탐욕을 몰아낼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대통령은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하였지만, 레빈은 기분이 이상하여 한동안 멍하니 텔레튜브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좋아하시는 스크램블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대신 프라이로 가지고 왔는데 괜찮으세요?”


“간호사님, 혹시 베르그-타우 특별법이 뭔지 알아요?”


“얼마 전부터 적용된 여성 자원입대자와 은퇴 노인 재입대에 대한 특별법이에요. 하도 광고에서 떠들어 대는 데다 저도 조금은 군과 관련해서 일하고 있으니까······.

제대 후 일반 남성 입대자와 동일한 특권을 준다고 하던데 요즘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죠. 평생 서로 볼 일 없을 것 같았던 여성단체와 노인단체가 합심해서 들고 일어났거든요.”


소년병에 이어 여자와 노약자라니······.


“어떤 사람들은 ‘여성과 노약자를 위한 법’이라고 하더군요.”


레빈은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레빈이 입대하게 된 계기인 베르그법은 18~20세 미만 소년. 즉 미성년을 대상으로 징집 범위를 늘린 법이었다.


제대 후, 15년간 연금지급, 우량 드브리 우선 배정, 각종 세제 혜택, 취업 및 공직 진출 시 300% 가점을 골자로 한 법이었다.


겉으로는 강제성이 없고 지원하는 아이들만 받는다고 했지만 각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할당량이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급기야 아이들을 사지로 모는데 죄책감을 느낀 몇몇 선생님들이 징병 거부에 대한 양심선언 및 수업 거부까지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여성과 노약자까지 전쟁에 나가라고 등 떠밀고 있다니.


아무리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이라도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문득 자신이 지금껏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지 혼란스러워졌다.


과연 이 허울뿐인 민주공화정의 나라에 미래는 있는 걸까?


“간호사님, 오늘 아침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선생님을 불러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레빈은 메스꺼움의 원인이 질병 적인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는 아침 식사 대신 베개를 끌어안고 아침잠을 청했다. 구부릴 때마다 그의 팔과 다리에서 찰칵찰칵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정오까지 푹 잤지만, 레빈은 왠지 기운이 없었다. 일과표를 확인하니 오후에 재활 운동만 소화하면 하루가 마무리될 것 같았다. 레빈이 점심 식사를 마치자 마리온이 잔반을 가지러 병실로 들어왔다.


“다 먹었어요. 간호사님. 들고 가셔도 됩니다.”


“저, 하사님. 근데 오늘 특별 일정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재활 운동 하신 뒤에요.”


“뭐죠?”


“모리스 수석비서관님께서 뵙자고 하시는데······. 단둘이요.”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아마 모레 있을 용사의 날 행사 때문에 그러실 겁니다.”


“용사의 날이요? 그건 군 내부에서만 하는 축제일로 알고 있는데요?”


비공함 승조원의 사망률이 워낙 높기 때문에 전투 작전 후 무사 귀환하면 으레 보직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껏 먹고 마시게 했다. 그것이 정착되며 생긴 것이 ‘용사의 날(The Warrior's Day)’이었다.


“네, 근데 올해부터 정식공휴일로 격상되어 정부주관으로 바뀔 거랍니다. 그래서 내일 사전연습하고 모레 기념식을 할 거래요. 디스커스 궁에서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런 말씀 전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레빈이 괜찮다고 하자 마리온이 잔반을 들고 나갔다. 사실 그녀가 미안해 할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타의로 공인이 되어버린 레빈이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아마 말조심하라고 또 잔소리 듣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갑자기 레빈이 씩 하고 웃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레빈은 모리스와의 재회에서 무슨 말을 할 지를 생각해보았다.


포말하우트의 송골매로 살아갈지, 토크란 공군의 고문관이 될지는 전적으로 레빈 자신의 태도에 달려있었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선작, 댓글 및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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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5 ho*****
    작성일
    20.12.13 12:27
    No. 1

    애들을 징집할 정도가 되면 그냥 항복하는게 나은데 ㅠ,ㅠ. 우리나라도 6.25때 그랬지만 그건 유엔군이란 압도적 지원군이 올때까지 버틴거고 그렇지 않다면 완전 무의미한데 마치 2대전 말의 독일같군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28 하츠네미쿠
    작성일
    21.07.19 08:48
    No. 2

    효율을 무시하고 여자와 아이, 노인까지 징집하다니 이거 완전 북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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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반국가적 영웅 +5 20.12.01 596 13 13쪽
7 용사의 날 +5 20.11.30 626 18 11쪽
6 진실 혹은 침묵 +4 20.11.30 659 19 13쪽
» 여성과 청소년과 노인을 위한 법 +2 20.11.29 736 15 11쪽
4 생환 +5 20.11.28 816 20 13쪽
3 포말하우트 전투 - 3 +2 20.11.28 907 24 13쪽
2 포말하우트 전투 - 2 +7 20.11.27 1,141 23 14쪽
1 포말하우트 전투 - 1 +9 20.11.27 1,877 3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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